※카네츠구 ED 뒤의 이야기.
(치명적이고 중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직 플레이하지 않으신 분은 지금 바로 뒤로 가기를 눌러 주세요)  


 "벌써 자시(子時)인가…생각보다 많이 걸려 버렸군."

 카네츠구가 거처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달이 높게 뜬 늦은 밤이었다. 만약 아내와 딸이 잠들었다면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서는 소란스럽게 알릴 필요 없다고 사전에 지시해 놓았기에 불침번을 서던 자들에게만 조용한 마중을 받으며 방으로 향했다. 며칠 동안 집을 비워 외로웠을 두 사람을 위해 저녁 식사 전에는 도착하고 싶었지만, 도중 산짐승의 탓으로 무너져내린 언덕길의 보수 문제로 시간을 끌어 이렇게나 늦어져 버린 것이었다.

 "……다녀왔어."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인사를 하며 방문을 열자 툇마루에 앉아 고개를 꾸벅꾸벅 저으며 졸고 있는 사랑스러운 부인과, 옷자락을 덮고 그 무릎에 웅크려 누워 자는 수양딸이 보였다. 아무래도 둘이 사이좋게 달을 보며 기다리던 모양이었다. 졸리지만 혼자 기다릴 나나오가 걱정되어 옆에 붙어있겠다고 고집을 피웠을 아야메와 어쩔 수 없으니 함께 기다리자고 하다 먼저 꿈의 저편으로 향한 아이를 무릎에 누이고 재웠을 나나오의 모습이 선하게 떠올랐다.

 "자아,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대로 두기에는 감기에 걸릴 것 같아 걱정이었지만 곤히 자는 둘을 깨우기에도 미안했다. 잘 채비를 하고 오기 전까지만이라도 조금 더 재우는 게 낫겠다고 판단한 카네츠구는 일단 자신의 겉옷 하나를 꺼내어 나나오에게 걸쳐주기로 했다. 무인이었다면 이 정도의 기척에도 곧장 깨었겠지만 둘은 전쟁과는 멀고 세속에도 물들지 않은, 만물을 사랑하고 세상을 더욱 더 따뜻하고 올바르게 이끄는 이들이었다. 아직도 난세는 계속되지만 그래도 그의 눈앞에는 한 줌의 평화가 있었다. 아아, 나는 앞으로도 이 광경을 지키기 위해 힘낼 수 있겠구나. 카네츠구는 그 고요하고 사랑스러운 순간에 새삼 감동하며 살그머니 옷을 덮어준 후 방을 빠져나왔다.

* * *

 "이런이런……." 

 긴 여행에 지친 피로를 말끔하게 풀어내고 산뜻한 차림으로 돌아온 그가 본 것은 조금 전과 변함없는 자세로 잘 자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카네츠구는 흐뭇하게 웃으며 아야메가 일어나지 않도록 기척을 죽여 옆에 앉아 조심스레 나나오의 머리를 자신의 어깨 위에 얹었다. 그리고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지는 평온하고 귀여운 얼굴을 한참이나 행복에 잠겨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마에 쪽 소리가 나게 입맞춤했다. 식을 올리고 나서야 겨우 부르게 된 보물 같은 이름을 속삭이면서.

 "나나오…?"
 "으응, 카네츠구 상…?"

 눈을 깜박거리며 잠에 취한 목소리로 응석 부리며 허리에 손을 둘러오는 나나오를 보고 카네츠구가 기쁜 표정으로 웃었다. 두 사람은 곤히 자는 아야메 몰래 가볍게 입맞춤을 나누며 작은 목소리로 사랑의 말을 주고받았다. 

 "어서 오세요, 카네츠구 상."
 "아아, 다녀왔어. 우리 부인께서는 잘 있었나? 외롭게 만들어서 미안하군."
 "…외로웠어요. 그래도 기다리는 동안 아야메 쨩과 둘이서 새로운 요리법도 개발하고 즐거웠으니까 괜찮아요."
 "그랬나. 그대가 웃고 있었다니 다행이야."
 "후후. 그나저나 카네츠구 상도 참, 오셨으면 곧바로 깨우지 그러셨어요. 저 혹시 오래 졸았나요?"
 "아니, 전혀? 조금 전에 도착했으니 신경쓸 것 없어. 게다가 사랑스러운 아내를 이렇게 바로 옆에서 바라보고 있으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으니까."

 우에스기 가의 집정, 그리고 그 옆에 서는 정실. 서로 할 일이 잔뜩 있었기에 함께 있는 순간보다 만나지 못하는 날이 더 많은 일상이 계속되었는데도 항상 처음 맞이하는 이별처럼 애틋해 하고 그리워하는 두 사람은 주위에서 보기에는 완전히 사이좋은 잉꼬부부 그 자체였다.

* * *

 "흠…나로서는 오랜만에 부부끼리 즐겁게 지내고 싶었다만 매우 유감이군. 우리 공주님은 예나 지금이나 용신의 무녀님을 아주 좋아하는 모양이야."

 아야메가 깨어 있었다면 인사만 나눈 후 눈치 좋게 자리를 피해 주었겠지만 자고 있으니 그런 약삭빠른 행동을 기대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사랑스러운 수양딸을 억지로 깨워서 보낼 수도 없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꿈나라를 여행 중인 아이의 볼을 콕콕 찌르면서 투덜거리던 카네츠구가 일단 방으로 들어가기 위해 나나오의 무릎 위에 있던 아야메를 살그머니 안아 들었다.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인데요? 이것 보세요, 아야메 쨩은 카네츠구 상도 정말 좋아하는걸요."

 덮어주던 겉옷을 손에 고이 개어 들고 일어선 나나오가 부녀의 모습을 보고 후후 웃으며 카네츠구의 말을 부정했다. 그가 나나오의 시선을 따라 아래를 내려다보자 제자리를 찾은 것처럼 편안하게 카네츠구에게 전신을 기대고 헤실헤실 미소지으며 자는 아야메가 보였다.

 "그쵸?"
 "정말이군. 흠. 이거 난감한걸. …혼자 떼어놓기에는 미안해지는데."
 "그럼 오늘은 특별히 셋이서 나란히 자는 건 어때요? 조금 동경했어요, 그런 거."

 이 시대에는 그런 풍습도 없었을뿐더러 아야메의 나이를 생각하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집안의 사람들이 시끄럽겠지만 오랜만에 재회한 사랑하는 아내와 부모에게 응석 부리는 수양딸 어느 쪽과도 함께할 수 있으니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한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아야메를 침상의 가운데에 눕히고 양쪽으로 카네츠구와 나나오가 누웠다. 원래 두 사람만의 잠자리였기에 다소 비좁게 느껴졌지만 그 낯선 감각도 가족의 유대라 생각하니 나쁘지 않았다.

 "이거야 원, 아침에 일어날 아야메의 반응이 기대되는구만."
 "그러게요. 당황하면서도 기뻐할 거예요."
 "분명 귀엽겠지."
 "팔불출."
 "…그건 그대 아닌가. 게다가 나는 아야메가 아니라 나나오, 그대에게 홀딱 빠져 있어서 말이야."
 "……카네츠구 상의 입에서 그 말을 들으니 신선한 기분이에요."
 "언제였더라, 사츠키 공이 말해주더군. 오빠로서는 복잡한 심경이었는지 쓴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걸 들은 기억이 있어."

 카네츠구는 팔을 올려 건너편의 나나오에게 손을 뻗고 흐트러진 머릿결을 쓰다듬었다. 옆에 느껴지는 자그마한 온기는 분명 사랑스러웠지만, 평소와 달리 조금 멀게 느껴지는 침향의 내음이 아쉬웠다. 벌어진 거리를 안타깝게 여기는 건 나나오도 마찬가지였는지 머리카락 위에 있던 그의 손을 잡고 본인의 얼굴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어리둥절하게 바라보는 카네츠구의 손바닥에 입 맞추고 떼어내며 수줍게 웃었다. 어슴푸레하게 보이는 것이 어찌나 아쉬운지. 카네츠구는 솟아오르는 정염을 억누르며 깊게 한숨을 쉬고 답례라도 하듯이 입술의 감촉이 느껴지는 그 손바닥을 자신의 입술에 대고 일부러 소리 내 입 맞췄다.

 "…손이 닿는 곳에 그대가 있다고 하는데 우리 사이의 거리는 은하수보다도 멀군."
 "오늘은 식신도 까치도 없는걸요. 꿈에서 만나요, 카네츠구 상."
 "후우…그대는 어째서 그렇게 귀여운 말을 하는 거야. …알았다. 그럼 꿈에서 만나자. 잘 자라, 나나오."
 "안녕히 주무세요."

 달빛이 장지문 사이로 스며드는 어느 맑은 날 밤, 방에서는 화목한 세 사람의 고요한 숨소리만이 평화롭게 울려 퍼졌다.


드림러. 글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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