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노을 지는 교실에 앉아있었다. 복도는 조용했고 가끔씩 운동장에서 공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의 웃음소리는 창틀을 넘지 못한다. 소음 속에서도 고요한 공간은 있다. 


오이카와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의자를 조심스레 뒤로 뺐다. 등받이에 매달린 가방이 시계추처럼 흔들린다. 책상에 뺨을 붙이면 풍경은 옆자리 소년의 잠든 모양으로 까맣게 잘렸다.


‘토비오.’


미동도 않는 뒤통수를 바라보며 그는 생각한다. 내가 만약 초능력자라면.


소리 없는 백 번째 부름에 그가 반짝 눈을 뜰지도 모른다. 뒤돌아볼지도 모른다. 어쩌면 마침내 그에게 --한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할 적이면 혀끝이 달싹거렸다. 실지로 그의 이름을 부르고 싶어진다. 구현되지 않는 명령어를 끊임없이 누른다.


토비오, 토비오, 토비오.


그러다 문득 허망해지면

보이지 않던 벽이 그들 책상 사이에서 몸집을 불리고 저를 내려다볼 적이면, 

헤아리던 숫자를 잊어버린 척 말도 바람도 삼키고 무심한 손으로 그의 어깨를 쥐는 것이다.


“토비오 쨩, 집에 안 가?”


곧은 어깨가 꿈틀거린다. 고개를 들면 눌린 앞머리 아래로 한 대 맞은 듯 시뻘건 이마가 보였다. 애석한 일이었다. 이런 얼굴이 예뻐 보인다는 건. 


“……오이카와.”

“종례 다 끝났어.”

“아……. 근데 왜 지금 깨워?”

“내가 무슨 토비오 쨩 엄마에요? 오이카와 씨도 바빴거든?”


딱히 반박할 말이 없었는지 카게야마가 비죽 입술을 내밀었다.


“배고파.”

“만두 먹고 갈래?”


재빨리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나왔다.


배가 고프다 하면 네가 좋아하는 만두집에 가자고 해야지.

피곤하다고 하면 조금만 놀리다 자전거 뒷자리에 태워줘야겠다.

하지만 괜찮아 보이면 걸어가자. 그 편이 더 오래 같이 있을 수 있으니까.


그의 마음은 이토록 소소한 가지까지 다 대비해두었는데 소년은 그게 다 그냥 나오는 건 줄 알았다. 공을 벽에 던지면 퉁 튀어나오는 것처럼 그냥, 대충.


오이카와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가방을 들쳐매고 복도로 나섰다. 텅 빈 복도를 걸으며 평소처럼 우스갯소리를 한다.


“토비오 쨩은 오이카와 씨 없으면 진짜 어떡할래? 이대로 아침까지 자겠다?”

“배고프면 깨거든?”

“퍽이나.”


해묵은 짝사랑은 그에게 몇 줄의 주름살 같은 잔재주를 남겼다. 한 걸음 앞서 내려가던 오이카와가 얄밉게 혀를 내밀었다. 야! 소년이 버럭 화를 내며 그의 옆자리로 바투 붙는다. 오이카와는 뼈가 도드라진 단단한 손목을 쥐며 중얼거렸다.


“좋다.”

“뭐가.”

“뭐겠어?”


카게야마는 수학 시간에 이름을 불렸을 때만큼이나 험악하게 얼굴을 찌푸렸다. 주름진 미간에 아프지 않게 딱밤을 때리며 오이카와가 말했다.


“토비오 쨩이 왜 매시간 불려 나가는지 알겠네.”

“뭐라고?!”


카게야마는 영문 모를 시비에 씨근댄다. 오이카와는 그의 손목을 붙잡은 채 고개를 기울였다. 조금 큰 키, 조금 앞서가는 걸음, 그를 소년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모든 것을 그 얼굴 앞으로 돌려놓으며 말한다.


“그렇게 정직한 표정 짓지 말고 아는 체라도 해.”

“모르는 걸 어떻게 아는 척해.”

“한 번 해 봐.”


그리고 그는 웃었다. 소각장에 굴러다니는 러브레터처럼, 구둣발에 밟힌 자국 밑으로 흐릿한 고백을 읊듯이.


“착각은 내가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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