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이 사계절 살기 좋은 땅이라는 업자의 말을 믿고 계약했으나 이내 후손들로 하여금 부동산 사기라는 아우성을 듣게 만드는 반도의 거주민으로서 한겨울엔 생존용 도롱이 롱롱 패딩을 입고 종종 걸음 치며 걷는 게 익숙해진 것이 슬플 때가 있다. 분명 나에게도 얼죽코(‘얼어 죽어도 코트’의 줄임말. 비슷한 다른 줄임말로는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가 있다.) 인 시절이 있었으나 반도의 추위가 블라디보스톡의 최저기온을 가뿐히 뚫어 버리기 시작한 어느 날부터 롱패딩은 한국인들의 제 2의 피부가 되었다. (인류는 다른 털짐승에 비해 어쩜 이렇게나 밍숭맹숭 매끈하고 연약해 빠졌는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선 끊임없이 도구를 발명해야 하는 숙명을 지닐 수 밖에 없는 동물이다.) 

덕분에 코트를 입을 수 있는 시기는 점점 짧아지다 못해 이젠 11월 – 12월 초까지만 허락된 패션 아이템이 되어버렸다. 한국의 계절을 < 덜 추운 겨울 – 갑자기 존나 여름 – 덜 더운 여름 – 갑자기 존나 겨울 >로 나누자면 덜 더운 여름과 갑자기 존나 겨울의 사이 타이밍을 잘 맞춰야 코트를 입을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지난 주에 가을이 왔다며 신나서 드라이 클리닝 했으나 한주 만에 옷장으로 사라지는 트렌치 코트 녀석의 신세로 전락한 코트들을 보고 있자면 겨울 패션의 미덕이 존재했던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우리… 얼죽코가 옵션인 시절이 있었는데… 이젠 모두가 멸종되지 않기 위해 털짐승을 흉내내며 펭귄처럼 걷고 있구나. 그치만 올해도 과거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짧게 입을 코트를 살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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