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내려고 했었는데 안 낼 것 같아서 그냥 쓴 데 까지 올려요(ㅋㅋ ㅋ ㅋ ㅋㅋㅋ...



선샤인 쿼터백 강과 짝사랑 중인 스토커 옹이 영생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가 될 뻔 했음..)



   나는 헤드셋을 통해 흘러나오는 체인몽커스의 노래를 속으로 흥얼거렸다. I I I can't stop. 요즘 어디서나 흘러나오는 이 곡은 지난 2주동안 헤드셋 속에서 물처럼 계속 고여있었다. So, baby, pull me closer. In the back seat of your Rover. That I know you can't afford. Bite that tattoo on your shoulder. Pull the sheets right off the corner. Of that mattress that you stole. From your roommate back in Boulder. 좋은 곡이었지만 그것에 다른 이유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저 멀리서 그애가 떠들썩하게 웃으며 공을 길게 패스하는 것이 보인다. You freakin moron. 야드 옆에서 짧은 유니폼을 입고 곧 있을 치어리더 경기를 위해 연습하던 치어 리더들에게 손을 흔들다가 그애가 던진 공에 머리를 얻어맞은 남자애가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자 그애는 낄낄거리며 외쳤다. 그 애의 얇은 머리카락이 청량하게 흩날리고. 내 헤드셋에서는 2주 전에 그 애가 흥얼거리며 지나갔던 노래의 후렴이 흘러나왔다. No we ain't never getting older, No we ain't never getting older. 백팩 가장 아래에 처박아둔 책은 마치 살아있는 것 같이 열을 내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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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게 하는데요.
형이라니까. 한국말 쓸 때는 형이라고 해. 아니면 그냥 영어 하고.

하이고마 무서버라. 무서버서 한국말 하겠나 이거. 내가 홍길동이가. 한국사람인데 한국말도 맘대로 몬하고. 꼴랑 한살 차이 나는 사람한테 햄 소리 안할라카면 영어 써야 하고. You'll never see me call you Hyeung, you know.

  옆자리에서 나오는 불평불만은 그칠줄을 몰랐다. 나는 저도 모르게 나오려는 미소를 안간힘을 다해 눌러야 했다. 형 소리를 일일히 붙이기 귀찮다며 자꾸 너라는 대명사를 가져다 붙이려는 노력은 가상했으나 나는 좀처럼 내 이름 대신에 가 붙는 형이라는 소리를 포기하기가 힘들어 모른척을 한다. 내가 다니엘보다 한 살이 많다는 같잖은 우월감만은 아니었다. 학교에서 다니엘은 거의 영어만을 사용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행정학에 몰려있었고 평소 다니엘과 몰려다니는 사회복지과 애들이나 풋볼팀 애들중에는 동양인이 아예 없다시피 했다. 그랬기에 그의 한국어는 집과 내 앞에서나 사용되었고 다니엘은 외동아들이었다. 형이라는 호칭은 오직 그 애의 세상에서 나만을 수식하는 대명사였다.

  근방에 월마트가 있다는 표시가 내비게이션에 떴다. 우리는 90번 도로를 타고 코큐에이트 주립공원을 지나오고 있었다. 배 안고파요? 월마트나 가요. 먹을 것좀 사게. 다니엘은 다시금 중얼거렸다. 나는 기어코 비집고 나오는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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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니엘 강. 22세. 한국계 미국인. 보스턴 칼리지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있으며 이글스 풋볼팀에서 쿼터백을 맡고 있음. 코어 커리큘럼으로는 영문학을 수강하고 있으며 셰익스피어를 질색함(가끔 뒷자리에서 자면서 이를 갈아 교수님께 눈총을 받기도 함). 수시로 머리색을 바꾸며 다소 커다란 체격에도 불구하고 둔하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조형적인 몸을 갖고 있음. 젤리를 비롯한 단 것을 아주 좋아해서 수시로 입에 넣고 다님. 과감한 컬러와 패턴 매치를 좋아함. 게이같다며 친구들이 타박을 놔도 악세사리를 즐겨함. 티 없이 하얀 피부와 코를 찡그리며 웃는 버릇이 있고. 눈 밑에 작게 눈물점이 있고, 그리고.

  그에 대한 단상을 두서없이 읊다가 나는 가장 주요한 사항을 누락했다는 것을 깨닫고 그만 헛웃음을 웃고 말았다. '그리고 아시안 스토커가 있음.'

  스스로가 바로 그 스토커인 마당에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 당장이라도 위키 한페이지는 자신있게 채울 수 있을 정도로 그 애에 대한 정보는 취사선택을 할 필요도 없이 머릿 속을 휘젓고 다녔다. '아시안 스토커가 있음'이란 문장에 볼드 처리가 되고 이탤릭체가 적용되어 이펙트를 먹인 것마냥 고만고만한 문장들 틈에서 유독 두드러진다. 그 애를 생각하는 나를 생각하게 되면 소름이 돋아 등골이 선득하다. 이제까지 성취하려고 이를 악물고 걸어왔던 모든 것들이 그 애 앞에서는 한없이 하찮아지는 것이 무서울 지경이었으나 무작위로 떠오르는 이미지와 미사여구 앞에서 나는 무력했다. 차라리 뭐라도 해서, 접근금지 명령이라도 받으면 나았을까. 타인이 강제로 접근을 금하는 것이 아닌 이상에야 내 쪽에서 그 물길처럼 흐르는 것들을 손으로 틀어막기는 역부족이었다. 가끔은 내 부모님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몸이 불편한 조부모를 따라 애리조나에 살고 있는, 그들의 유순한 입양아가 보스턴에서 학업에 매진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을. 그러나. 또 뒤이어 나는 그 애의 자취를 생각하고 마는 것이다.

  가끔 그 애의 이름이 다니엘이 아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그냥 평범한 친구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우리는 아시안이 전교생의 9%에 불과한 보스턴 칼리지에서 더욱 소수 축에 끼는 한국계였고, 그 한국계 사이에서도 몇 안되는 미국 시민권자였다. 게다가 유학생이 대다수인 한국인들은 좀처럼 선택하지 않는 영문학을 코어 커리큘럼으로 선택해서 수강하고 있었다. 우리는 평범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애는 사회복지를 전공하면서 풋볼을 하고, 나는 인문학에 대한 얼마 안되는 하찮은 애정을 교양시간에 쏟으면서. 행정학을 공부하고. 왜 하필 그 애는 다니엘이라고 불렸을까. 보스턴. 보수성으로 가득한, 전통이랄 것이 없는 미국의 고도(古都). 뉴욕에 비하면 아시안이 소름끼칠만큼 적은. 이름도 눈부신 하버드와 MIT가 있는, 점차 가장 성공할 사람들만이 모이는 도시의. 체스트넛 힐이라는 다소 웃긴 이름의 동네와 그 동네의 이름을 그대로 따온 커다란 저수지가 바로 옆에 있는. 보스턴 이글스 풋볼팀의 빛나는 쿼터백인. 떡 벌어진 어깨와 균형잡힌 몸과, 마음 내키는 대로 바뀌는 머리색 아래의 환한 얼굴을 가진 한국인의 이름은 다름 아닌 다니엘이었다. 성우, 셩우 등으로 알파벳의 성문표기 안에서 산산조각 나는 과거의 잔재를 성 앞에 매단 나와는 다르게 그는 마치 애초부터 미국에서 빛나는 삶을 살기 위해 준비되어진 사람 같았다. 처음 그 애가 영문학시간에 천연덕스럽게 옆에 앉아 자기 소개를 할 때 나는 눈만 껌뻑거렸다.

   한국 이름이 없어? Uh, 음. 내는 그냥 원래 이름이 이랬다. Call me, Dan. I mean, 어줍잖은 동포애가 움터 물어본 것이 괜한 짓이었음을 알리듯이 그에게는 '한국 이름'이라는 것이 없었고 필요하지도 않아보였다. 강이라는 대표적인 한국 성씨는 다니엘이라는 이름과 상충했지만 어색하지는 않았다. 그 애는 너무도 나와 달랐다. 유창한 영어 발음 뒤에 이어지는 한국어에는 남쪽의 향취가 짙게 묻어 있었는데도. 길게 휘어지는 눈꼬리는 누가 봐도 동양인이었는데도 네게는 나와같은 멍에가 없는 것만 같았다. 성우 스테인필드. 나는 너를 앞에 두는 순간마다 등 뒤에 매달린 내 부모의 성이 더욱 고단했다.

쩜오 위주의 잡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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