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옷깃 움켜쥐자 널 잡아 세운 방울들이 웃음 터트리듯 와르르 울렸다. 각양각색으로 절망의 색을 띠고 있는 감정들이 너로부터 혼란스럽게 쏟아졌다. 움켜쥐어 흔들리는 머릿속이 온통 자신을 원망하는 네 울분으로 휩싸이자 무감한 시커먼 구멍 속 눈가가 일그러졌다. 멱을 쥐어튼 손 떼어내려는 몇 번의 시도 후 허리춤 향하려던 검은 손이 천 밑 가려진 손톱으로 네 피부 찍어누르며, 멱 쥐고 있는 손을 단단히 붙들었다. 감염된 분노가 잇새로 샜다. 이성적이지 못했다.

너는 무엇이 문제였는지 돌아봐야 했다. 그렇게 소중한 것이면 그것에게 닥칠 모든 위험 차단하고 남았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고, 너는 네가 무엇에 방심했는지, 자신의 어떠한 과실이 네 소중한 것을 위험에 노출시켰는지 반성해야 했다. 불찰 저질렀음에도 아직 잃지 않았음에 감사해야 했다. 반복되지 않도록 위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야 했다.

머리끝까지 열이 올라 사납게 이 드러낸 입이 뒤틀린 가면 밑으로 물어뜯을 듯 포효를 내질렀다. 자신에게 닥친 불행은 모두 얌전히 있는 나를 남이 공격한 탓이라며 억울해할 게 아니라.

역정 토해내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고 그럼에도 속 들끓는 그 무엇도 풀리지 않아 자신 향한 증오로 선명해진 흐려빠진 눈을 노려봤다. 그래 내가 네 짐승 공격했다. 고작 천 잡아당겨졌기 때문에. 날 지켰다. 너는 네 짐승 날 건드릴 동안 뭘 했나. 왜 네 짐승이 내게 접근하는 것 막아서지 않고 허용했고, 왜 내가 네 짐승을 해치지 않을 거라 확신했나. 고작 네 자주 가는 곳에서 빈번히 마주쳤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신뢰했는가. 움켜쥔 손에 힘을 주었다.


"나약한 실패자."


그러니 잃는 것이다. 반복하는 것이다. 기대의 초점이 남에게 가있고 남을 믿으니까.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걸 내 숨통 움켜쥔 네 흉 가득한 손이 증명하고 있는데도, 너는 배우는 게 없고.


"무엇도 지키지 못하는."


네 그 우둔함이 너무나 짜증스러워서.


"세 번째 상실."


낭비한 호흡 헐떡이면서 부러 웃었다. 당신 이제는 알아라. 타인의 가변성에 기대지마.

확신은 오직 스스로에게만 하는 것이다.


자신을 향하던 핏대 선 당신의 시선이 어느 순간 당신과 자신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붉은 가림천에 옮겨갔다. 그걸 봤다. 네가 제 멱 쥐어틀었던 것처럼 천을 쥐어뜯으려 하자 반격이 아닌 앞쪽으로 쏟아지는 삿갓부터 붙잡았다. 끌려가는 건 멈췄으나 네 당기는 힘을 버티지 못한 우산살이 되려 우지끈 부러졌고 시선 흠칫 흔들렸다. 또다시 자신 원망하는 소리를 하며 물기와 노기 섞인 숨 뱉던 네가 주먹 치켜들 때까지도 제 손에 무기 들려있지 않았다. 네 손 쥐어뜯을 때 들었어야 했다. 급하게 아래로 향한 손이 허리춤에 닿기 전 고개가 꺾였다.

옷소매로 가면을 가리며 뒤늦게 검 뽑아들었으나 너는 이미 자신 등지고 절뚝이며 골목 안쪽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뒷모습 주시하다가, 이내 자세를 풀고 팔을 내린다. 네 처량한 발걸음 잡지 않는다. 머리 꼭대기에서 미끄러진 하얀 우산을 다시 똑바로 얹는다. 붉은 우산으로 완전히 감싸고 있는 옆면과 달리 뚫린 위쪽 공간 사이로 드러났던 머리카락이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감과 함께 모습 감춘다.

옷깃을 가다듬고 삐뚤어진 가면의 각도를 맞춘다. 눈구멍 시야 앞으로 붉은 가림막 돌아온다. 불과 몇 분 전만 해도 몸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기만 했던 길게 늘어틀어진 붉은 움직임. 멈춰서 그것을 가만히 응시한다. 네 말이 맞다. 너무 길었다. 하늘거리는 머리들을 움켜쥐고 주저 없이 잘라버린다. 붉은 천들이 목 잘린 시체처럼 바닥에 떨어진다. 진작 이랬어야 했는데. 그래야 개나 소나 장난감인 줄 알며 잡아당기려 하지 않았을 텐데. 내려다보다 검 끝을 떨군다. 그 어떠한 투지 보이지 않는다. 쉬고 싶었다.

칼을 검집에 집어넣고 제게 달린 모든 방울 뜯어낸다. 이 모습으로 더 돌아다닐 수 없었다. 가면은 우그러졌고 홧김에 자른 천은 너덜거렸으며 삿갓은 부서졌다. 꼴사나운 행색. 이 으득이며 뜯겨 나온 수족들을 쓰레기 틈으로 던지자 단말마의 비명 내지르고 죽는다. 가던 길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몸을 돌린다. 서쪽으로 향하는 걸음은 어떠한 소리도 나지 않았으며 그늘 밑으로 몸을 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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