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차이 7살

* 막 쓰는 썰





윙은 처음으로 녤이 학교까지 데려다주는 게 싫었음. 너무 싫었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녤을 만날 생각에 베개 끌어안고 끙끙 소리까지 내면서 고민했음. 거짓말을 칠까. 1교시가 휴강이라고, 그래서 일찍 갈 필요가 없다고. 아니면 아프다고 할까. 아프다고 하면 걱정하겠지. 속절없이 시간은 흘렀고, 얼른 일어나지 못하겠냐는 엄마의 잔소리에 못 이겨 씻고 학교 갈 준비를 함. 애초에 거짓말이란 건 윙 엄마한테 통하지 않았음.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해서 결국 엄마한테 등짝 한 대 맞았음.

꾸역꾸역 집을 나오니 오늘만큼은 없었으면 하는 녤의 SUV가 집 앞에 서 있었음. 윙이 조수석에 타고 안전벨트를 매니 녤이 윙의 표정이 좋지 않은 걸 눈치 챔. 아침부터 표정이 와 그라노. 녤이 물어도 윙은 시선을 내리 깔고 쓸데없는 손장난만 할 뿐 대답해주지 않았음. 녤은 못내 신경쓰이는 눈치였지만 꼬치꼬치 물어볼 생각은 없는지 기어에 손을 올림. 출발하는 줄 알았음.

- 봐라. 출발할라카믄, 사이드 기어 풀고, 기어를 D에 놓고 출발하는기다. 지금 P에 놓은 거 보이제.

- 갑자기 왜?

- 갈키준댔잖아, 운전.

지훈이 인상을 찡그림. 운전같은 거 배우고 싶지 않았음. 배우고 싶었던 마음도 싹 사라졌음. 그런데 가르쳐주겠다니 하나도 듣고 싶지 않았음. 하지만 녤은 자꾸만 보라며 이것저것 가르쳐주기 시작함. 애초에 시동을 킬 땐 브레이크를 밟고 켜야 되고, 룸미러랑 사이드미러 조정하고, 안전벨트 매고.. 하나도 듣고 싶지 않아서 대충대충 끄덕이고 설렁설렁 듣고 있는데도 나긋나긋하고 천천히 설명해주는 녤의 낮은 목소리가 귀에 쏙쏙 들어왔음. 늦겠어, 빨리 출발하기나 해. 윙이 재촉하고 나서야 차가 출발함. 이래서 타고 싶지 않았는데. 윙은 학교에 도착할 때까지 녤한테 시선 한 번 안 주고 창 밖만 바라봄.


그날 저녁 윙은 기다렸음. 녤이 전화할 시간이 되었음. 녤이 저녁마다 전화했던 것이 끊긴 지 일주일이 다 되어갔고, 윙은 녤에게 전화가 오는 것이 완벽한 화해의 결말이라고 혼자 단정짓고 있었음. 그리고 이제까지 윙은 화해를 위해 정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음. 그러니까 이젠 녤이 다시 예전처럼 돌아올 거라고 믿고 있었음. 매일 노력했고, 매일 저녁 전화를 기다렸음. 하지만 녤한테 전화가 오지 않은 게 거의 일주일이 다 되어감. 오늘은 오겠지, 오늘은 전화해주겠지 하고 기다렸지만 원하는 전화는 오지 않았음.

시계를 확인함. 넬이 전화할 시간이 지나버림. 윙은 핸드폰을 침대 위로 집어던졌음. 오늘도 오지 않음. 엠티날 이후로 녤과 윙 사이에 벌어진 그 틈은 어떻게 해도 돌아오지 않는 것만 같았음. 솔직히 이 정도면 윙도 충분히 했다고 보는데, 도대체 왜 녤은 좀처럼 돌아와주지 않는지 모르겠음. 이제는 원망스럽기까지 했음.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어. 차라리 시간을 돌렸으면 좋겠어. 윙은 눈물이 나려는 걸 꾹 참았음.


내가 잘못했으니까. 그렇게 마음을 다잡음.아직 모자라다면 더 하면 되지. 윙은 집어던졌던 핸드폰을 들었음. 녤이 전화를 하지 않는다면 윙이 하면 될 일이었음. 간단한 일이었음. 윙은 녤의 번호를 찾아놓고는 심호흡을 한 번 함. 그러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왜 전화했냐고 물으면 자연스럽게 되받아칠 수십 가지의 대답을 생각했음. 

통화버튼을 누름. 신호음이 이어지는 게 그렇게 초조할 수가 없었음. 윙은 발을 탁탁탁 굴렀다가 손톱을 물어뜯었다가 했음. 신호음은 길게 이어졌고 끊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음. 바쁜가. 하지만 지금쯤이면 퇴근하고도 남았을 시간이었음. 시계를 다시 올려보는데 신호음이 끊김. 

[ 이게 누꼬, 우리 지훈이 아이가. ]

말꼬리가 늘어짐. 혀도 꼬인 거 같았음. 핸드폰에서 술냄새가 풍기는 기분이었음. 이 시간에 벌써 이렇게나 취했다고? 윙은 적잖이 당황했음. 녤은 술을 잘 마시는 편이었기 때문에 취하는 모습을 잘 볼 수 없었음. 몇 년을 함께 다닌 윙도 녤이 취한 모습을 보는 건 손에 꼽을 정도였음. 윙은 이제까지 생각했던 대사들을 머릿속에서 전부 지움.

- 취했어? 어디야?

꼭 늦게 들어오는 남편한테 전화하는 와이프의 대사 같아서 말해놓고도 머쓱했음. 녤이 어색하게 듣지 않기만을 바랐음. 

[ 맞다, 오랜만에 취했다. ]

말 끝에 바보같은 웃음 소리가 붙음. 목소리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걸 보니 비틀거리면서 걷고 있는 것 같았음. 갑자기 걱정이 됐음. 이러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혹시 차도로 나가기라도 하면 어쩌지. 윙은 외투를 걸어놓은 옷걸이를 쳐다봄. 지갑이 어딨더라.

- 어디냐니까?

[ 여기 어디냐믄.. 우리 지훈이 마음 속? ]

- 장난하냐.

윙이 쏘아붙이니 녤이 길바닥에서 엄청 크게 웃는 것 같았음. 주변이 시끄러웠음. 아무래도 안될 것 같아서 일어나 외투를 집어들었음. 지갑, 지갑이 어딨었지. 핸드폰을 어깨와 뺨 사이에 끼고 주머니를 뒤져 지갑을 찾았음.

[ 맞다, 내 우찌 니 마음 속에 있겠노. 있을 수 있었으믄 진작에 드갔지... ]

윙은 핸드폰을 고쳐 쥐었음. 방금 녤이 무슨 말을 했는지 잘 듣지 못했음. 뭐라고? 재차 물었지만 녤은 대답해주지 않았음. 

[ 아이다. 요새 술을 좀 많이 마셔서 근가, 헛소리를 자꾸 카네. ]

그러고보니 녤네 아주머니가 요새 녤이 거의 매일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온다고 했던게 기억났음. 마음 같아선 당장 녤네 회사를 찾아가 상사한테 따지고 싶었음. 회식 같은 건 그만하라고. 


윙이 침대에 가방을 전부 뒤집고 나서야 지갑을 찾음. 어디냐고 물으려는데 달각거리는 소리가 들렸음. 라이터 부싯돌이 마찰하는 소리였음. 담배 핀다. 녤이 입에 담배를 물고 라이터로 불을 붙이는 상상을 하니 긴장이 됐음. 엠티날 봤던 담배피우는 모습 때문인지, 녤의 방에 남아있던 담배 냄새 때문인지는 모르겠음. 담배를 빨아들이는 숨소리, 연기를 길게 내뱉는 숨소리가 들렸음. 

- ...어디야, 내가 갈게. 

[ 여가 어딘 줄 알고 온다 카나. ]

- 내가 못 갈 데에 있기라도 해?

[ 있으믄, 니가 우짤긴데. ]

니가 뭐라도 돼? 라고 힐난하는 것처럼 들렸음. 윙은 할 말을 찾지 못했음. 녤은 어른이었고, 어디에 있다한들 문제될 일은 거의 없었음. 윙이 뭐라고 할 입장도 아니었음. 그게 영 싫어서 인상을 팍 구기고 목소리를 높임.

- 아줌마한테 이른다!

[ 고작 그기가. ] 

녤이 또 웃음. 비웃는 것만 같았음. 꼭 어린애 놀리는 어른의 말투라 기분이 상했음. 가디건을 끼워입었음. 아무래도 녤을 데리러 가야할 것 같았음.

- 어딘지 빨랑 말해, 나가게.

[ 돼따, 오지 마라. 늦었다. ]

- 왜, 내가 거기 가는게 싫어?

[ ... ] 

녤이 대꾸를 안 함. 갑자기 대꾸를 안하니까 무서웠음. 무슨 사고가 난 건지, 아니면 정말 이상한 데에 있는 건지 겁이 났음. 핸드폰을 귀에 바짝 대고 무슨 소리가 나나 집중해서 들었음. 차소리, 지나가는 사람들이 웃는소리, 녤이 담배 연기를 내뿜는 숨결, 전부 들렸지만 위험한 건 아직 없는 것 같았음. 녤이 무슨 말이라도 해주길 기다렸음.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는 느낌이었음. 그리고 이 느낌은 요즘 넬을 대할 때마다 매일같이 느꼈음. 대답해. 무슨 말이라도 해. 제발. 윙은 속으로 빌고 또 빌었음.


[ ... 아이다. 안 싫다. ]

- ... 그럼 빨리 말해, 길바닥에서 나자빠지기 전에. 택시 타고 갈테니까.

[ 안 싫다.. 좋다. ]

녤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분명하게 들었음. 순간 잘못 들었나 싶었음.

[ 좋아서 미쳐불겄다... 우짜노.. ]

 툭, 윙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떨어짐. 녤의 목소리 끝이 떨렸음. 녤이 우는 것 같았음. 윙은 울지도 못하고 눈물만 뚝뚝 흘렸음. 커다란 눈에 쉴 새 없이 눈물이 차올랐음. 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고, 이해할 수도 없었지만 계속 눈물이 났음. 왜 이러는지 모르겠는데, 녤의 숨소리를 듣기만 해도 감정이 솟구쳤음. 입을 꾹 다물었음. 녤한테 울고 있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음. 숨도 죽였음. 팔로 젖은 눈을 가렸음. 

뚝, 전화가 끊김. 윙은 서둘러 다시 전화했지만 녤은 받지 않았음. 윙은 사색이 되어서는 핸드폰과 지갑만 들고 집을 뛰쳐나옴. 엄마가 어디가냐고 소리쳤지만 대답할 겨를이 없었음. 

그런데 막상 대문까지 나오고 보니 목적지를 정할 수가 없었음. 녤은 결국 주소를 말해주지 않고 끊어버렸음. 어떡하지, 어디로 가야하지. 찾아야 할 범위가 너무 넓었음. 녤의 회사 주변으로 가야할지, 아니면 이 동네 번화가로 가야할지 감을 잡지 못했음. 만약 찾으러 갔다가 엇갈리게 되면 그것도 낭패였음. 다시 전화를 걸어봤지만 전화는 여전히 끊긴 상태였음. 

발이 떨어지지 않았음.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는게 답이었음. 윙은 대문에 앉았음. 기다리기로 했음. 한 시간, 딱 한 시간만 기다렸다가 찾으러 나가기로 했음. 쓰러졌다면 누군가가 들고 있던 핸드폰으로 가장 최근에 통화했던 윙한테 전화를 해 올거고, 정신이 멀쩡하다면 택시를 타고 돌아올 거임. 만약 그렇지 않다면, 한 시간 후에 직접 찾으러 나가면 된다고 생각했음. 그렇게 합리화를 하면서 기다렸음. 밤이 되니 조금 쌀쌀해진 공기 탓에 얼굴이 눈물로 젖어 있는 걸 깨닫고 손등으로 닦았음. 아직도 녤의 떨리는 목소리가 생생했음. 


꼬박 한 시간을 앉아서 기다렸음. 쌀쌀한 기운에 가디건을 여몄음. 어디 갈 생각도 못하고 대문에 기대고만 있었음. 멍했음. 언제 오나, 하고 시간을 확인할 생각도 들지 않았음. 그러다가 골목에 차 한 대가 들어서는걸 발견함. 헤드라이트가 눈부셔 손으로 가리고 보니 택시였음. 윙은 벌떡 일어남. 

택시가 윙을 지나침. 윙은 그 택시가 녤네 집 앞에 설 때까지 기다렸음. 택시는 목적지를 찾는 듯 천천히 가다가 정말로 녤네 집 앞에서 멈춤. 윙이 천천히 그 쪽으로 걸었음. 뒷좌석에서 녤이 내리기 전까지는 아직 확신하지 못했음.

 뒷좌석 문이 열리고, 녤이 내림. 그제서야 윙은 뛰었음. 녤은 여전히 비틀거렸지만 쓰러지지는 않았음. 녤이 윙의 발소리를 들었음. 윙 쪽으로 고개를 듬. 윙이 멈췄음. 세 발자국 정도의 거리가 남아있었지만 더 가까이 갈 엄두가 나지 않았음. 녤을 마주하는게 어려웠음. 윙은 눈을 피했음. 그리고 묻지도 않은 변명을 하기 시작함.

- 찾으러 가려고, 했는데... 주소를 말 안해줬잖아. 어디로 가야할지,몰..라서.

- 맞나.

후우. 녤이 술에 취한 정신을 가다듬으려는 듯 숨을 깊게 내뱉었음. 그 숨결에서 담배냄새가 조금 끼쳐오는 것도 같았음. 윙은 기다렸음. 뭘 기다렸냐면, 아마 아까 녤이 했던 알 수 없는 말들에 대한 것들. 무슨 말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함. 온통 뒤죽박죽이어서, 녤이 어떤 실마리라도 줘야 엉킨 것들을 풀 수 있을 것 같았음. 그런데 녤은 말을 할 생각도, 집에 들어갈 기미도 없었음. 녤이 비틀거리다가 집 담벼락에 기대었음. 윙은 주먹을 꾹 쥐었음. 용기가 필요했음.

- 저기, 아까..

- 아까 전화했제.

- 어..

- 내가 무슨 말을 씨부러쌌던 것 같은데, 술에 취해가 기억이 한 개도 없다.

- 어?


윙은 상황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했음. 기껏해야 한 시간 전의 일이었음. 녤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윙한테 눈길 한 번 주지 않음. 거짓말이었음. 너무나도 눈에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지금 녤이 하고 있었음.

- 폰 보니까 니가 전화했다고 뜨드라. 정신이 없어가 몬 받았다.

- ..

- 미안타, 마이 기다렸제. 걱정핸나.

녤이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가고 싶어한다는 걸 알았음. 아까의 일을 입 밖으로 꺼내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 보였음. 녤은 나름 필사적으로 윙에게서 아까 일에 대한 어떠한 말도 나오지 않게 막고 있는 거였음. 술에 취해 흐릿한 정신으로 되지도 않는 거짓말을 하며 애쓰고 있었음. 윙은 입술을 깨물었다가 놓았음. 

- .. 당연히 걱정을 하지, 길바닥에서 퍼 자는 줄 알고..

- 맞나. 잘몬했다. 싸게 드가, 춥다. 아주머니 걱정하신다.

- .. 먼저 들어가. 들어가는 거 보고 갈게.

- 알았다. 

녤은 망설임없이 돌아섰음. 대문을 열고 현관문을 열 때까지 잠깐 스텝이 엉키긴 했지만 넘어지거나 하진 않았음. 집 안으로 들어가면서도 윙을 한 번 돌아보지 않음. 현관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힘. 윙은 뭐에 홀린 듯 제 집으로 돌아감.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방으로 뛰어들어가 침대에서 이불을 뒤집어씀. 

엉엉 울었음. 녤이 한 번 쳐다보지도 않은 건 정말이지 처음이었음. 일부러 윙을 무시한 거였음. 그게 서럽고 서러워서 울음이 터져버림. 정말 이런건 싫었음. 너무 싫어서 미칠 것만 같았음. 속이 배배꼬인 것 같았음. 괴로워 죽을 것 같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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