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가 문을 닫고 선수들은 고객과 2차를 가거나, 혹은 남겨진 시간을 누리려 하나 둘 빠져나가고 있다. 아무개와 리크도 그중 하나였다. 리크와 아무개가 배정받은 룸에서 나와, 특유의 기름지고 매케한 냄새를 지나, 달걀썩는 내가 아직도 진동을 하고 있는 쓰레기통을 지나, 다시 아무개의 집으로 돌아가는 중 이었다.


 이미 해가 진 후, 시끌벅적한 번화가를 지나, 좁디 좁은 샛길로 길을 틀었을 때 쯤, 이번에 먼저 대화의 물꼬를 튼 것은, 예상외로 아무개였다.


“….아까 내가 이야기했던 선배 있잖아..”

“응? 그 인간 말종이라던 사람? 그사람이 왜?”


 기다렸다는 듯이 리크가 대답했다.

 자신을 간파 당한 것 같았기 때문일까. 아무개는 그것이 매우 아니꼽다는 듯이 뚱하게 그를 노려봤다.


“……..가끔은 그 선배를 보면 내가 겹쳐서 보여. 나도 방식이야 어찌됬건 같은 짓을 하고있는 거잖아? ”

“…그렇지.”

“난 그럴 때 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아. 내가 혐오하는 사람과 내 모습이 겹쳐서 보인다는건 결국엔 나를 혐오한다는 거니까.”


 리크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너 그 선배랑 제대로 이야기 해 본적 있어?”

“그거야 없지.”


당연한 이야기였다. 몇번 겉치례를 하기는 했지만 이 세상 그 누구도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 사람과 원하지도 않는 대화를 굳이 하려 들지는 않을 것이다. 거기에 리크는 이렇게 덛붙였다.


“한번 말해보면 느낌이 확 달라질걸? 넌 분명히 그 선배를 혐오하지만 너 자신 자체를 혐오하는건 아니잖아? 분명 사람은 각자의 역사가 있는 법이야. 길든,짧든,무겁든,가볍든, 그 사람에게는 또 그 사람만의 사연이 있는 법이라고.”


 아무개는 그 말을 듣고는 왠지모를 반감이 마음속에서 차오르는 것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럴까? 호스트바라는 직업은 생각보다 안일한 사람들이 많아. 그저 용돈벌이를 위해서 하는 사람들도 있고 재미로 뛰는 사람도 있을 정도야. 그런데도 그렇게 생각해?”


 리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물 흐르듯 자연스레 대화를 이어갔다.


“야- 너, 거울 본지 얼마나 됬어?”

“글쎄… 거울이야 오늘도 봤겠지. 근데 갑자기 그건 왜?”

“너같으면 재미로 그런 몰골이 될때까지 일 하겠어?”

“……...”

“그 선배도 같아. 만약 나 같았으면 가볍게 온 장소에서 그렇게 악착같이 돈을 모으지는 않았을거야.”


 할 말이 없었다.

 선배의 온몸에 풍기던 술냄새와 짙은 담배냄새가 떠올랐다.


“그 형… 보통 가게 몇시간 뛰더라?”

“오늘은 9시간이었어”


 리크가 바로 대답했다.

 아무개는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소리는 마치 마른 낙엽을 바스러트리는 듯이 건조하면서도, 또 미칠듯이 낭만적이었다.


“야, 무서운게 뭔줄 아냐?”

“..뭔데.”

“내가 하는 행동, 몸짓, 표정, 하나하나 전부 남한테만 보인다는 거야. 정작 너 자신은 그걸 알 턱이 없지. 그러니까 사람들은 자기 혐오에 빠지는거야. 자신의 모습이 추하든 여유가 넘치든 그 자체로는 바라보지 못하고, 남하고 비교만 할줄 알지, 정작 자기자신은 되돌아 보지 않고서 당장 눈에 보이는 남하고만 비교해대는거야. 그러니 자신이 못마땅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지. 봐, 여기저기 널린게 전부 다 더럽게 잘난 사람들이야.”

“그건 단순히 자기만족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무개가 말했다. 그러자, 리크는 어느샌가 손에 들려있던 검은 깃털 하나를 꺼내들고는 아무개에게 다짜고짜 건내며, 바람이 한 점 지나가는 순간에 다시 입을 열어,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런데 아무리 잘난 사람이어도 모든 인간은 이 굴레를 벗어날 수가 없어. 모든 인간에게 그 위가 있다고는 말 못해도, 모든 인간은 자신만의 이상이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니까. 나는 세상의 모든 인간은 결코 완벽할 수 없는 것은 쫓으며 평생을 살아간다고 생각하거든.”

“…….허탈하네.”

“아니.”


 그가 견고한 음성으로 답했다.


“절대로 허탈하거나 하지 않아. 사람의 인생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 평생 쫒는다고 해서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은 건 아니잖아. 그게 설령 어린아이의 고집 같은 것이라고 해도 말이야.”

“………….”


 리크가 싱긋 웃어보였다. 아무개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그 미소를 쳐다보지도 않고 리크가 방금 건낸 검은 깃털을 유심히 관찰했다.


“이게 왠거야?”

“아, 그냥 뭐. 까마귀가 흘리고 갔나보지. 그냥 예쁘길래 주워봤어. 맘에 안들면 버려도 돼. 아니, 것보다 세균도 많을 거고.”


 그는 들어 맞지도 않는 핑계를 마구 둘러댔다. 거짓말을 너무 못하네- 라고 생각하며 아무개는 깃털을 리크의 눈 앞에 내밀어 보였다.


“아닌 것 같은데? 이거 까마귀 깃털 아니지?”


 리크가 조금 당황한 듯 한차례 몸을 움찔 했다.


“아니 맞는데.”

“그럼 여기 이건 뭔데?”


 아무개가 당당히 내민 깃털의 끝자락에는 희미하게 흰색인 부분이 있었다. 그 새도 그랬다. 흑백은 물론이고 그 밖에도 이 세상 모든 빛이 그 새의 몸뚱이 한 자리에 다 모여있는 것 같았다. 은하수를 보는 것 같이 황홀한 그 새에게는 분명히 흑백의 깃털도 함께 있을 것이었다.


“그건 까치일수도 있고 또…”

“그 새지?”


 리크의 변명을 아무개는 사정없이 뚝 끊어버렸다.


“맞지? 대답해.”

  “….응”


아무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 모습으로 보건데, 어떤 질문을 하면 가장 효율적으로 많은 정보를 꾀어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듯 했다. 그리고 아무개가 입을 열었다.


“네 정체가 뭐야?”


아무개가 말했다. 리크는 다시한번 싱긋 웃어보였다.


“사실 그 깃털은 내가 처음 너를 만났을 때 건내줬어야 하는 거야. 사실 나도 그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누구씨가 실수를 하는 바람에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건 이번 일에 대한거.”


리크는 품속에서 태양처럼 노란 깃털 하나를 더 꺼내어서 먼저 건내준 깃털을 쥐고있지 않은 아무개의 반대쪽 손에 깃털을 쥐어주었다. 아무개가 그에 대해 뭔가 말하기도 전에 리크가 먼저 선수를 낚아채고는 말했다.


“축하해. 너는 이걸로 네가 저지른...아니 저지를 실패를 방금 하나 스쳐지나갔어. 나 때는 이렇게 관대하지 않았는데 말이야. 너, 이제보니 대단한데?”


 아무개는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아니, 이 상황에서 이해를 할 수 있다는 쪽이 오히려 이상했다.


“잠깐. 알아들을 수가 없네. 하나씩 이해할 수 있게 설명좀 해봐.”


 리크는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턱 밑으로 가져다 댔다. 검지는 첫 마디쯤을 미간에 걸치고 중지는 콧잔등에 얹은 채로 그 밑의 손가락들은 힘을 빼고 자연스레 두었다. 그가 입을 여는대에는 대략 수초 쯤의 텀이 필요했다.


“당장 알려줄 수는 없어. 하지만....그래. 네가 여섯번 째 깃털을 손에 쥐고 있을 때쯤 아마 모든 것을 알게되겠지.”

“여섯번째 깃털? 그건 어떡하면 얻을 수 있는건데?”


 리크가 고개를 저었다. 알려줄 수 없다는 의미였다. 그것을 아무개가 충분히 이해했음을 알면서도 그 위에 덧대어 그가 설명했다.


  “이쪽에도 사정이 조금 있어서 말이지.... 내가 그걸 그냥 말해버리면 오히려 깃털을 얻을 수 있는 타이밍이 없어져 버릴 수도 있어서, 정확히 뭐라고 말은 못해주겠다. 하지만 옆에서 귀띔은 해줄 수 있어. 지금 기세로 보면 절대로 실패할 일은 없으니까, 조금만 더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줄래?”


 아무개는 여전히 그의 짧은 웅변으로는 납득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리크의 룰 대로 따르기로 했다. 여섯번째 깃털을 손에 쥘 때 쯤이면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그의 말에 걸어보기로 한 것이다. 그에 아무개는 이렇게 말했다.


  “조만간 네 그 가면을 벗길 수 있는 날을 기대하고 있을께.”


 리크는 짧게 “그래”하고 대답할 뿐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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