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CU:CA STUCKY 스팁버키 소설 개인지

◈ A5/156p/전연령가

◈ 16,000원

◈ 제 2회 동네 히어로 온리전(19.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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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히어로 수인 au 


SAMPLE




1



며칠째 노란 개는 그 자리에 있었다. 무너지고 방치된 지 꽤 되어 보이는 건물 벽에 기대서. 누군가 개를 버렸구나 생각했다. 개는 양 앞발에 턱을 올린 채 먼 곳을 보는 듯 했다. A국은 나날이 황폐해지고 있었고 시내에는 배급소를 설치한다는 소문도 돌고 있었다. 깨진 화염병과 부러진 깃발 같은 것이 발 어디에서나 채였다. 쿠데타와 내전 위험을 이유로 들어 UN과 미군이 개입한 후부터는 불안과 공포가 번져나가는 속도에 박차가 가해졌다. 제임스 뷰캐넌 “버키” 반즈는 미군 소속의 기계화보병이었고, 그를 포함한 하울링 코만도즈 팀은 그러한 A국의 불안정한 공기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개는 원래 덩치가 있을 만한 종이었지만 바짝 마른 탓인지 얇고 작았다. 털 색은 금갈색이었지만 때가 타고 꼬질꼬질해져서 더 어두운 색으로 보였다. 버키는 천천히 험비의 속도를 줄였다. 그 개에게 누군가가 식사를 챙겨주는 기색도 없었고 개 역시 차 소리가 들리면 움찔하긴 하지만 사람을 손을 타고 사랑받은 개가 그러하듯이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오거나 혹은 멀리 도망가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저 고개를 조금 갸웃하고 시선을 털털거리는 험비에 고정할 뿐이었다. 

“가브리엘 존스.”

조수석에 앉은 가브리엘 존스가 반사적으로 손가락을 총구에 가져다대며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왜요? 왜 멈춘 거예요?”

“나 이따 욕먹으면 같이 욕먹어줘!”

그리고 버키 반즈가 차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노란 개를 향해 일직선으로. 가브리엘은 그 뒤에 대고 비명을 질렀다.

“미쳤어!!!!! 여기 지뢰 발견된 데잖아!!!!!!!!”

일차적으로 지뢰는 모두 제거했다지만 아직 모를 일이다. 사제 폭탄은 오히려 그 뒤떨어진 기술 때문에 지뢰 제거기에 잘 걸리지 않았고, 불도저로도 건물을 밀어버리지 않는 이상 건물에 끼워져 있는 화염병 따위를 완전히 제거할 수 없었다. 

가브리엘이 덜덜 떨며 차에서 총구에 손가락을 끼우고 주위를 경계하는 중에 개와 인간은 그 위험한 곳에서 줄다리기로 사투를 벌였다. 자유의 억류와 보살핌의 유혹 기타 등등이 오가는 계약을 요약하자면, 결국 버키 반즈는 그 노란 개를 데리고 자신의 부대로 돌아와 자랑스럽게 내밀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가브리엘은 끝까지 자신은 조금도 도와주지 않았으며 오히려 미쳤다고 위험한 곳까지 달려나간 버키 반즈를 말렸다고 진술했지만, 어쨌든 꼬리를 빼는 개를 험비 뒷좌석에 태울 수 있게 도왔고 내릴 때도 개가 도망가지 못하게 은근슬쩍 가로막는 역할 정도는 하고 있었다. 

“어때, 여기서 키우자.”

전차 조종사 둘을 뺀 여섯의 하울링 코만도즈는 모두 모여서 버키와 노란 개를 번갈아 보았다. 노란 개는 떡진 털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으나 갈비뼈가 보일 정도로 앙상했다. 그러나 갑자기 끌려와 낯선 사람에게 (도망가지 못하게) 껴안겨 있는 것치고는 태도가 침착했고, 피부병이나 눈, 귀가 아픈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티모시 ‘덤덤’ 듀간은 멋지게 기른 콧수염 끝을 매만지며 개를 내려다보다가 버키를 향해 물었다.

“니 개는 키워봤냐?”

버키가 베시시 웃었다. “아니.”

“개가 뭐 먹는진 알아?”

“사료지?”

덤덤은 발작했다. 

“몬티, 안 되겠다! 이 새끼 완전 ‘밥주고 산책시키고 목욕시키고 제가 다 해줄게요!’하고 애완동물 키우자고 해놓고는 사흘도 안 되어서 엄마나 아빠한테 미루는 초등학생 같은 새끼야!”

이 기계화사단의 지휘관 노릇을 하고 있는 제임스 몽고메리 폴스워스, 몬티가 이 고자질(?)에 심각한 표정으로 덤덤을 바라보았다가 버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버키는 어디서건 잘 먹히는 강아지 같은 미소를 지으며 몬티를 올려다보았다. 

“난 개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이렇게 갈비뼈가 드러나는 건 상당히 굶주린 거지? 그런데도 이 개는 이 주 동안 똑같은 데서 가만히 있었다구, 불쌍하게도…….”

버키의 손이 부숭부숭하고 뻣뻣한 개의 털을 쓰다듬었다. 

“그런데도 처음엔 먹을 걸로도 통 안 꼬셔져서 고생했단 말야. 냄새를 아무리 풍기고 바닥에 놔봐도 안 먹고.”

“뭘 줬는데?”

“초콜릿 바.”

“미친 새끼야! 초콜릿 개가 안 먹은 거 맞아?”

덤덤이 그 큰 덩치로 달려들어 개의 주둥이를 잡으려고 했다. 도망갈 곳도 없이 버키에게 안긴 채로 덤덤에게 주둥이를 잡히자 개가 캥캥거리는 소리를 내며 몸을 말았다. 품안에서 개가 움츠러들자 버키가 깜짝 놀라 덤덤의 손목을 잡아챘다.

“안 먹었다니까. 왜 그래?”

옆에서 한 번이라도 개를 키워본 사람들은 가슴을 쓸어내렸고, 한 번도 개를 키워본 적 없는 가브리엘과 몬티, 버키만 덤덤이 뭔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돌아보았다.

“개한테 주면 안 되는 음식 맨 처음이 초콜릿이다, 멍청아!”

“엥…….”

“개한테는 독이라고! 양파! 초콜릿! 우유! 치즈! 마늘! 과일!”

버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가 웃었다.

“안 먹었어서 정말 다행이네, 그럼. 이젠 개사료만 줘야지. 몬티, 그럼 나 개 군의관한테 보여주고 올게. 덤덤도 같이 가자, 너 완전 개 잘 알잖아.”

그때까지 개만 빤히 보고 있던 몬티가 주머니에서 과자 하나를 깠다. 초콜릿이 코팅된 과자였다. 달착지근한 냄새가 확실히 풍기도록 몬티가 손을 뻗어 개 앞에 들이댔다. 덤덤이 인상을 썼지만 몬티는 태연했다. 개는 혀를 빼물고 헐떡거리다가 촉촉한 코를 내밀어 킁킁거렸지만 곧 별로 내키지 않는 듯 고개를 돌렸다. 

마침내 몬티가 과자를 개의 눈앞에서 치우며 말했다. 

“리트리버 피가 좀 섞인 것 같은데 먹을 것 앞에서도 너무 얌전하군. 혹시 수인 아냐?”

“오면서 귀 뒤 확인해봤는데 코드 없었고, 그리고 또 여기서는 수인은 귀 뚫어서 태그 달잖아.” 버키가 재빠르게 변호했다. “얘는 귀 양쪽 다 말끔해. 그냥 똑똑한 개야. 원래 주인이 잘 교육시킨 모양이지. 그치, 멍멍아?”

“그건 그렇지만…….”

덤덤이 못 미더워하며 개의 귀는 물론 몸 전체를 꼼꼼하게 뒤졌다. 수인임을 증명하는 어떤 것도 없었다. 버키가 말한 대로 귀가 뚫리지도 않았고, 귀 뒤도 코드를 없애기 위해 지진 흔적도 없었다. 그 외에 종종 수인 인권이 더욱더 떨어지는 곳에서 선택하는 낙인이나 상처도 없었다. 개는 내켜하지 않은 태도로 덤덤에게 앞발을 들려 몸을 맡기고 있다가 검사가 끝나자 재빠르게 네 발로 바닥을 디뎠다. 

수인은 전세계 어디에서나 강압적으로, 출생하자마자 태그를 붙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벗어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이미 내전 등으로 관리가 혼란스러운 상황이더라도, 수인은 따돌림이든 뭐든 눈에 뜨인다. 밀고되는 경우도 있다. 모든 인종을 막론하고 인간은 수인을 꺼려했기 때문에 사회에 쉽게 녹아들지 못했다. 인간의 모습과 짐승의 모습을 둘 다 자유자재로 선택할 수 있는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언제나 숭배와 박해의 대상이 되기 쉬운 조건이기 때문이다. 

허리띠에 노란 개를 느슨하게 묶어서 끌고 하울링 코만도즈 전원은 우르르 군의관을 찾았다. 일행의 후미에 있는 가브리엘이 몬티에게 물었다. 

“나도 뭐 데려오긴 했지만, 정말 키울 거야?”

“개 한 마리가 문제될 건 없어. 만약 문제 되면 버키를 족치면 되고.”

“과연, 그럼 되겠다.”

가브리엘은 납득했다. 대화가 모두 들렸기 때문에 버키는 일부러 뒤돌아보며 눈을 사납게 떴다. 몬티가 더 크게 말했다. 

“덩치가 저만하면 똥 진짜 크다. 네가 치우는 거야, 버키 반즈.”

“알아. 나도 그 뭐냐…… 뭐지? 시저 밀란의 도그 위스퍼러 시리즈 하나 정도는 봤단 말야.”

“한 시즌도 아니고 하나야? 너 뭘 믿고 개를 키우겠다고 데려왔냐?”

버키가 주먹을 꼭 쥐고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나의 동료들을 믿고!”

“가서 머리 박아, 새끼야.”

다들 낄낄거리며 웃었다. 버키는 괜스레 노란 개의 작은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정말인데.”

나이가 꽤 있는 군의관은 한참을 ‘나는 의사지 수의사가 아니야’라고 투덜대면서 개를 진찰했다. 옆에서 개를 잡기 위해 분투한 이야기를 영웅적으로 각색해 떠들어대는 버키를 제치고 덤덤이 벼룩이며 이, 그리고 기생충 약 따위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약을 이것저것 탔다. 몸무게는 형편없었다. 심장도 때때로 천명이 들려서, 타고난 심장병을 의심하게 했다. 혹시 모르기 때문에 개는 물론이고 개와 실랑이한 버키도 광견병 주사도 맞았다. 

“자세한 건 진짜 수의사를 찾아가보는 게 좋아. 아무튼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피부병은 없고, 영양실조 기미 보인다는 것, 그리고 개 천식은 있을 수 있으니까 주의하는 게 좋고, 지금 처방해줄 수 있는 약은 모두 몸무게에 비례해서 조금 써야 한다는 거다. 1/6. 할 수 있겠어?”

덤덤이 말했다. 

“용량은 제가 볼 수 있습니다.”

버키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병동에서 나오고 나서 버키는 감탄해서 덤덤의 어깨를 툭툭 쳤다.

“와, 의사보다 네가 개를 더 잘 아는 것 같애. 너 이제부터 개박사 해라. 티모시 덤덤 개박사 듀간!”

덤덤이 혀를 내둘렀다.

“나 쟤한테 총 한 방만 쏘고 제대하면 안 되냐?”

모두가(개만 빼고)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했다. 

“오발탄으로 인정해주지, 개박사.”

“아주 본 때를 보여주고 가라, 개박사!”

덤덤과 버키가 동시에 상처받은 시늉을 하며 가슴을 움켜잡았다. 

“니 새끼들 때문에 이름이 영국놈처럼 길어지네. 고맙다, 새끼들아.”

“날 위해 말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멤버들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덤덤이 곧 버키의 손에서 약봉투를 빼앗아들고 수돗가를 손가락질했다. 

“약은 내가 준비해둘 테니까 먼저 개부터 씻겨. 건물 안으로 그 꼴로는 못 들어오니까. 벼룩 있을 테니까 첨엔 가까이 가지 말고 물만 뿌리고.”

그 말에 개를 내려다본 버키는 역시 꼴이 말이 아니다 싶은지 후다닥 자기 부대 안으로 들어가 샴푸를 챙기고 수돗가로 향했다. 수도꼭지를 돌리자 곧 호스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며 콘크리트 위로 흘러 개수도랑으로 빠져나갔다. 노란 개는 얌전히 호스의 끝에서 분수처럼 솟아나오는 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얌전하네, 너.”

버키는 씩 웃으며 호스로 개 위에 물을 조심조심 뿌렸다. 덤덤이 하도 겁을 줬기 때문에 물을 뿌리기만 하면 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큰 벼룩이 저 노란 털 위에서 툭툭 뛰쳐 나오는 건가 하고 긴장했지만, 다행히 아무 것도 없었다. 

버키를 놀라게 한 것은 또 다른 것으로, 한참을 길거리에서 헤매고 다녔던 탓인지 뻣뻣하고 뭉친 털이 물을 미끄러뜨려서 한참을 호스를 붙들고 퍼부은 후에야 간신히 좀 물에 빠진 듯한 모양새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개의 몸을 흠뻑 적시고 흘러나온 물은 한동안 계속 시커먼 더러운 물이었다. 

“너 고생했구나.”

버키는 간단하게 말하곤 바지를 걷어올리고 샴푸 통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개 몸 위에 몇 번이고 펌프질해서 쭉쭉 짜면서 말했다. 

“여기서 살아도 된다고 했으니까 이제 너라고 부르지 말고 이름 지어줘야지. 뭐가 좋을까……. 털이 노란 색이니까 그런 이름이 좋을까? 뭐라고 하지, 그, 옐로우 스톤? B, B, B, 벨라? 배일리?”

샴푸 반 통은 쓰고 나서야 개에게서 거품이 났다. 버키는 계속해서 서투른 솜씨로 개를 문질렀고, 개는 참을성 있게 버키의 손길을 견뎠다. 

“‘캡틴 마블’도 좋을 것 같은데 여기가 군대라서 캡틴 소리 한 번만 하면 죄다 뒤돌아서 볼 거라서 무섭다. 그건 사양이지, 응.”

“멍!”

“그리고 나도 아직 대위가 아닌데 널 대위 달아줄 수는 없잖아. 나중에 내가 별 달면 너도 캡틴 정도는 시켜줄게.”

마치 개가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콧방귀를 뀌었다. 눈을 동그랗게 뜬 버키가 보자 개는 몇 번 더 킁킁하면서 콧방귀를 뀌다가 고개를 세게 털었다. 

“푸압!”

바짝 붙어있던 버키가 덩달아 거품과 물세례를 받았다. 개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킁 하고 세게 코를 풀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고개를 들었다. 

“코에 물이라도 들어간 거야?”

물론 대답은 없었다. 버키는 낄낄거리며 손으로 개의 코를 닦아주려다가 거품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호스에 손을 가져다댔다. 하루종일 햇빛을 받은 물탱크의 물은 따뜻하고 미지근했다. 손의 거품을 닦아낸 버키가 개의 코를 엄지손가락으로 문질렀다. 검은 코는 미지근한 물보다도 더 따뜻하고 촉촉했다. 손가락에 콧물이 조금 묻어난 것 같기도 했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감기 아냐? 아까 의사가 그런 말은 안 했는데.”

개는 상냥하게 코를 버키의 걷어올린 맨 무릎과 정강이에 문질렀다. 버키에게는 낯선 감각이었다. 말 못하는 짐승이 표현하는 친애의 감각. 개는 인간의 체온보다도 뜨겁고, 또 그러면서도 매끈한 코는 약간 차가웠다. 동시에 갈비뼈가 뻐근해질 정도로 그 안이 감정으로 부풀어올랐다. 

그동안 눈은 종종 마주쳤다. 그러나 실제로 이토록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 말과 행동을 바로 곁에서 본 순간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단 둘이 남은 것도. 개와 실랑이를 했을 때조차도 가브리엘이 있었고, 돌아온 후에는 하울링 코만도즈의 멤버가 이 사태가 어떻게 되나 보려고 졸래졸래 쫓아다녔다. 그러니 낯을 익히기 위한 단 둘의 시간은 지금이 처음이었다. 그럼에도 벌써부터 사랑받고 있다. 사랑하고 있다. 경이로울 정도로. 

버키는 쪼그려 앉아서 개의 정수리에 손을 얹고 쓰다듬었다. 개가 물에 젖은 속눈썹을 느리게 깜빡였다. 잠그지 않은 수도에서 물이 계속 흘러나왔고 버키는 씩 웃으며 다시 개 위에 물을 끼얹었다. 개는 고개를 외로 꼬며 시커매진 거품이 물에 쓸려내려가는 것을 참았다. 

“스티브는 어때?”

개가 고개를 갸웃하며 짙은 노란 색의 귀를 펄럭거렸다. 버키는 조심스럽게 그 펄럭거리는 귀를 만지작거렸다. 귀끝까지 따뜻한 혈액이 도는 것이 느껴졌다.

“좋지? 개 이름보단 사람 이름 같지만.”

물론 그것은 버키만이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커다란 흰 수건을 등허리에 얹어 양옆으로 늘어뜨려 골든 리트리버가 아니라 아프간하운드처럼 보이는 개와 함께 나온 버키가 이제부터 개 이름을 스티브라 부르겠다 밝히자 하울링 코만도즈의 의견 역시 그랬다. 

“글쎄, 개 이름은 사람으로 정하네. 사람 이름은 개 같은데.”

버키는 가볍게 그 말을 한 제임스 모리타를 노려보았다. 모리타가 이어서 말했다. 

“차라리 그럼 제임스로 하지 그랬어? 그럼 제임스만 넷인데. 제임스 한 명 더 데려와서 드라마 찍고 틴초이스 나가면 되겠다. 딱 맞잖아, 개 한 마리, 동양인 한 명, 백인 두 명, 이제 흑인만 데려오면 되겠네.”

자크 데르니에가 옆에서 낄낄거렸다. 

“그 드라마에서 누가 ‘제임스, 여기서 똥 싸지 말라고 했지!’, ‘제임스가 카펫에 오줌을 싸서 범벅이 됐잖아. 더럽게!’ 이런 거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 나머지 넷이 부끄러워하는 역할이냐?”

“그래, 여기 부대 안에 분명히 스티브 어쩌구가 있어서 우리가 ‘스티브, 제발 벼룩약 좀 먹자, 응?! 너한테 벼룩 생긴다고!’ 이러면 걔 엄청 상처받을 걸.”

몬티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노트북을 켜고 테이블에 앉았다. 모두가 이것저것 다른 이름을 의견으로 냈다. 개중에는 버키로 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인간 버키가 재빠르게 묵사발을 냈다. 버키 혼자 이름을 생각했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이름이 나왔다. 아폴로, 에이스, 에디, 발레리, 스펜서, 스피릿, 로건, 레이저, 라떼, 캐쳐, 브리, 버즈, 칠리, 쿠퍼, 키바, 기타 등등……. 그랬는데도 딱히 이거다 싶은 게 없었다. 

몬티가 노트북을 한 손에 들고 개 이름을 짓느라 정신없는 하울링 코만도즈의 원 안으로 들어왔다. 

“정말 놀랄 만한 일인데.” 몬티가 정말 신기하다는 투로 말했다. “‘스티브’가 이 부대에 한 명도 없어.”

“말도 안 돼!”

“진짜 없어? 진짜? 말이 되냐? 여기 부대에 사람이 몇인데 그 중에 스티브가 없는 게 말이 돼?”

당황해서 모두 우르르 ‘스티브’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러 몬티의 곁에 모였다. 버키도 잠시 놀랐다. 자신의 이름인 제임스나 스티브나 흔하고 무난한 이름, 베스트셀러는 될 수 없어도 시간이 흐른다 해도 언제나 스테디셀러로 남는 미국인의 가장 친근하고 무난한 이름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여기 주둔해 있는 보병사단에서 한 명도 없다니! 이건 사람 이름에 구애받지 않고 “아하하, 너 말고 개 스티브 말한 거야.”라는 변명도 없이 마음껏 개를 스티브라고 부르며 아무데나 똥싸지 말라고 소리지를 수 있는, 인생에 얼마 오지 않을 기회였다. 

“이건 어쩔 수 없다. 스티브로 해야겠어.”

버키는 완전히 진지해져서 그렇게 말했다. 이전까지 여러 가지 이름이 나왔고 꽤 좋아 보이는 이름 역시도 많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었다. ‘스티브’가 한 명도 없는 것은 기적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스티브가 너무 사람 이름 같다며 찜짐해 했던 팀원들도 마침내 밝혀진 진실(?)에 반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럼 스티브로!”

“스티브!”

만세삼창하듯이 스티브의 이름을 부른 팀원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깔깔 웃었다. 



*



스티브는 군대에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적응했다. 하루이틀은 헤맸지만 한 번 경험한 일은 잊어버리는 일도 없었고 배변을 아무데서나 보는 일도 없었다. 군대 특성상 정해진 행동반경에 매일 같이 똑같은 생활을 하기 때문에 더욱 적응하기 편했다. 몇 번 실수는 있었고 대대장에게 금방 들키긴 했지만 그도 외국에 주둔한 병사들의 외로움을 감안해 눈감아주며 넘어갔다. 일종의 애착인형처럼. 

눈치 빠르게 스티브는 대대 훈련일 때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체력 단련 등의 소규모 훈련일 때는 같이 뛰거나 운동기구를 자기도 드는 시늉을 했다. 특히 아침의 파 트렉 훈련은 각 팀마다 하기 때문에 스티브 역시 낯가리지 않고 제재도 없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하울링 코만도즈의 원성을 샀다. 스티브가 참가하자 전체적인 속력과 회전속도가 높아져서 훈련시키는 입장에서는 고효율에 감탄하게 되지만, 스티브와 같이 뛰는 팀은 딱 죽을 맛이었던 것이다.

훈련이 끝난 뒤 모두 후들거리는 다리를 어떻게든 꽉 잡아서 샤워까지는 마치고 탈의실에서 널부러졌다. 샤워실에서 죽지는 말자는 것이 제일 먼저 버키가 지옥에서 끓는 듯한 신음을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가 계속해서 끙끙낑낑 소리를 내며 티셔츠를 입고 다리에 바지를 끼워넣자, 가브리엘이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이게 다 병장님 때문이라구요.”

“내가 뭘?” 

버키는 뭔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투로 대꾸하며 가브리엘을 돌아보았다. 가브리엘은 꼼짝도 하지 않고 벤치 위에 엎드린 채로 입으로만 쫑알거렸다. 

“스티브한테 같이 뛰자고 하면 당연히 이렇게 되지……. 인간이 어떻게 개를 이겨……. 인간은 너무 연약해. 죽어요…….”

숨쉬기도 힘들다면서 한탄하는 것은 구구절절 길었다. 버키는 탈의실 가운데에 예쁘게 앞발을 모으고 앉아있는 스티브를 바라보았다. 인간들을 모두 지쳐 널부러지게 한 스티브는 누가 20km쯤 뛰었냐는 듯 말짱하게 혀를 내밀고 헥헥거리다가 버키와 눈이 마주치자 방긋 웃었다. 버키도 따라서 헤헤 웃고 근엄하게 가브리엘에게 충고했다. 

“어쨌든 우리 체력에 도움이 되잖아. 나중에 완전군장행군(loaded march)할 때 한 등급 업 될 걸?”

그 말에 그전까진 입을 다물고 있던 팀원들도 일제히 우우 소리를 냈다. 그 때 등급 상승하기보다 먼저 죽겠다는 야유였다. 버키는 깔깔깔 웃으며 주방으로 향했다. “가자, 고기 먹자!” 스티브가 활기찬 소리로 응답하곤 그 뒤로 쫄래쫄래 따라갔다. 

꼬박꼬박 식사가 잘 나오는 식당도 있으니 직접 요리를 해서 먹을 수 있는 주방은 거의 쓰이지 않았는데, 스티브를 데려온 이후 버키 반즈는 매일 같이 이용하고 있었다. 냉장고를 열자 PX에서 사온 냉동식품과 간식거리 외에도 버키의 월급을 털어 사온 생고기가 종류별로 가득 들어 있었다. 버키는 익숙한 솜씨로 쇠고기를 꺼내서 프라이팬에 구웠다. 스티브 전용 접시는 큰 사발에 가까웠는데, 버키는 구워낸 고기를 그릇에 놓고 물그릇도 가득 채웠다. 스티브가 가까이 다가와서 고기를 코로 킁킁거렸다. 소금 후추와 같은 것은 무엇이든 뿌리면 안 된다고 해서 버키도 그대로 구워 주기만 했는데, 그런데도 고기가 구워지는 냄새는 제법 그럴듯 했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하다못해 소금이라도 쳐야 먹을 만 해지겠지만.

모리타가 버키 뒤를 따라 간신히 옷을 입고 주방으로 와서 버키와 스티브와 쇠고기를 번갈아 보며 코를 벌름거렸다. 그가 분쇄 커피 봉지를 찢고 커피 메이커에 채워넣으며 말했다.

“인간한테보다 지극정성이다, 버키 반즈. 전엔 샤워 끝나면 두 시간은 죽겠다고 늘어져 있었으면서.”

“야, 솔직히 넌 고기 먹고 싶으면 네가 먹고 싶다고 말할 수 있고 알아서 사먹을 수 있는데, 개는 못 그러잖아. 얼마나 고기가 먹고 싶은지 말도 못하는데 당연히 말 할 줄 아는 쪽이 힘들더라도 알아서 챙겨줘야지.”

버키가 프라이팬에 또 고기를 올렸다. 

“게다가 스티브는 그냥 서 있기만 했는데도 갈비뼈가 다 드러나잖아. 고기 많이 먹어야 돼. 영양제도 많이 먹어야 돼.”

모리타가 커피 메이커에 물을 넣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처음에야 갈비뼈가 드러나긴 했지, 근데 그렇게 먹이고 운동시키니까 개가 두 달만에 무럭무럭 자란 정도가 아니라 불끈불끈한 근육질이 됐잖아. 니가 지금 만지는 건 갈비뼈가 아니라 근육이다, 야.”

“이렇게 쪼끄만데 무슨 소리야.”

“눈 멀었어?”

모리타가 가당치 않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버키의 눈에는 정말 작고 귀엽게만 보였기 때문에, 버키는 콧방귀를 뀌었다. 스티브가 아무리 털에 윤기가 자르르 돌고, 덩치가 좋아지고, 뼈가 보이던 갈비엔 살과 근육이 균형잡히게 올라와서 푹신푹신해져도 마찬가지였다. 덩치가 좋은 리트리버 피가 있는데다 버키뿐만 아니라 하울링 코만도즈의 관심과 고기를 한 몸에 받으며 자란 탓에 이제 두 다리로 똑바로 서면 180cm를 넘는 버키와도 비슷할 것 같은데 무슨 망발이냐 싶지만, 요컨대 이것은 손주를 맞이한 할머니의 심정이었다. 

“이렇게 요정처럼 작은데!”

“푸웁!”

모리타는 어디서 웃음을 참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아서 고개를 홱 돌렸지만, 주방엔 여전히 두 사람과 한 마리 뿐이었다. 버키는 웃음기 없이 요정 운운한 뒤 정색하고 있었으므로 모리타는 인상을 쓰며 주변을 둘러봤다가 스티브를 내려다보았다. 스티브는 쇠고기 덩어리를 한 입에 삼키고 열심히 씹고 있었다. 

“지금 나 스티브가 날 비웃은 기분이 들어.”

이번엔 버키가 정말로 웃음을 터트렸다.

“야, 어쩐 일이야. 너한테도 드디어 분위기를 읽을 수 있는 날이 오는구나.”

“아니! 진짜 소리내서 웃는 소리를 들었다고. 넌 아니니까 스티브밖에 없잖아!”

“진짜 어쩜 개소리를…….”

버키가 고기를 스티브의 접시에 덜어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모리타는 억울해서 펄쩍 뛸 지경이었다. 모리타가 이를 갈고 있을 때, 주방으로 다른 팀의 앨런이 불쑥 고개를 들이밀어 소리쳤다.

“반즈 병장! 중대장이 찾습니다! 제대 면담이니까 퇴근 전에 오라고 하셨습니다!”

“알았어, 바로 가볼게.”

버키가 대답하고 프라이팬을 싱크대에 넣었다. 그는 물을 틀어 프라이팬을 대충 씻어내며 한숨을 쉬었다. 스티브는 고기를 입에 가득 문 채로 질겅거리면서 버키의 눈치를 살폈다. 방금 전까지 기분 좋게 농담하던 버키 반즈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대신 피곤함을 가득 떠안은 파병 군인인 버키 반즈가 서 있었다. 

“모리타, 스팁이 다 먹으면 그냥 싱크대에 접시 넣어줘. 내가 다녀와서 치울게. 부탁해”

“그 정도는 말 안해도 알아, 짜샤.” 모리타가 사이를 두고 덧붙였다. “제대 면담가는 거면서 뭐 그렇게 기운이 없냐?”

“아무리 좋은 말이래도 상사 만나러 가는데 기분이 좋겠어?”

손을 깨끗이 씻은 버키 반즈가 옷매무새를 고치고 앨런을 따라 나갔다. 스티브가 따라가고 싶어하는 눈치로 고개를 두리번거리다가 모리타가 자신을 응시하고 있자 귀와 꼬리를 푹 수그려 시무룩한 속내를 드러내며 엉덩이를 바닥에 붙였다. 

모리타가 느릿느릿한 목소리로 스티브를 칭찬했다. 

“잘했다, 스티브. 따라 갔으면 큰일 났어. 넌 꼭 갈 수 있는 곳과 가면 안 되는 곳을 잘 구별하는 것 같단 말야.”

스티브의 촉촉한 두 눈동자가 정처없이 떨렸지만, 고개를 숙이고 접시를 핥는 시늉을 하고 있어서 모리타는 알아보지 못했다. 



*



퇴근 후, 하울링 코만도즈의 멤버들은 제각각 세탁기를 돌린다 어쩐다 한 뒤로 데이 룸에 모였다. 버키는 소파에 파묻히다시피 깊이 앉아서 제대 관련 서류를 읽고 있었다. 

티비를 보며 스티브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던 덤덤이 물었다. 

“제대할 때 스티브는 어떻게 할 거야?”

“가능하면……, 내가 데려갔으면 좋겠는데.”

자신이 데려왔지만 하울링 코만도즈 전원이 키우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버키는 대답 후에 조심스럽게 멤버들을 살펴보았다. 

스티브가 자신의 이야기인 줄은 알았는지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고, 다른 멤버들은 아쉬워하는 얼굴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덤덤조차도. 결국 주인은 버키 반즈였다. 정작 버키 자신은 다 같이 키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고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었지만 그 중에서도 버키 반즈의 콩깍지와 지극정성은 아무도 못 따라갔다. 

덤덤이 브러쉬와 테이프를 가지고 와서 천천히 스티브를 빗기기 시작하며 말했다. 스티브의 꼬리가 붕붕붕 돌았다. 

“그래, 스티브하고 같이 미국으로 가면 좋긴 한데. 너는 제대니까 군 비행기 타고 갈 거 아냐?”

“나도 같이 그냥 민간 비행기 타고 갈까?”

“그 돈 아껴서 개집이나 하나 사줘. 얘는 공짜로 A국까지 와가지고 비행기값도 모르네. 차라리 하루 이틀 휴가 받아서 이쪽 공항에서 네가 스티브 비행기 표랑 서류 작업 해서 비행기 태우고, 반대편에서 가족이 나와서 받아주게 해. 개 한 마리면 그렇게 부담 안 돼. 집 어디야?”

버키가 끙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를 긁으며 대답했다.

“가족 없는데. 결혼도 안했고.”

기혼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하울링 코만도즈 멤버들 사이에서 ‘아, 어쩐지 전혀 얘길 안하더라.’ 하는 기류가 짧게 스쳐지나갔다. 

“이혼한 전 아내도 없어? 애도?”

“없어.”

덤덤이 브러시에서 털뭉텅이를 떼서 옆에 쌓으며 말했다.

“그럼 거꾸로 우리가 보내주고 네가 미국 쪽 공항에서 스티브를 받아야지.”

“으, 집 아직 구하질 않았는데……. 빨리 알아봐야지.”

“어디로?”

“일단 생각하고는 있는 게, 뉴욕……”

모리타가 비분강개해서 외쳤다. 

“미쳤냐? 쥐꼬리만한 월급 받고 뭘 생각하는 거야?! 물려받은 유산 있어? 아니지, 유산이 있으면 군대를 안 왔지! 미쳤어?”

“……부근의 뉴어크 생각하고 있거든. 야, 나도 뉴욕 살아봐서 거기 집값 미친 건 알아! 아파트나 룸쉐어도 좋지만 스티브 있으면 단독 주택이 괜찮을 것 같고.”

“제대하면 무슨 일하려고?”

“컨블 대령이 줄 대주겠다고 해서 컨트럭터 아래에서 배관 담당 인터뷰 하기로 했어. 그쪽 라이센스 가지고 있거든. 포크레인 라이센스도 있고. 아직 제대까지 몇 달 남았으니까 그동안 집 알아보고 인터뷰 날짜 잡아놓고 하면 돼.”

몬티가 아쉬운 투로 말했다. 

“대령이 줄을 대준다고 해도 그럼 군인 쪽이 아니라 그 배관 라이센스 때문인 거네. 그런 일자리면 그냥 군대에서 말뚝 박아. 그냥 보병도 아니고 특수로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교육 수료한 게 아깝다. 시험 몇 개를 통과한 건데…….”

“대학 등록금 때문에 급해서 들어왔지 취향엔 안 맞는 것 같애.”

가브리엘이 혀를 찼다. 

“취향 같은 소리를 하시네요.”

“취향은 중요해! 난 머리는 좀 길러야겠어.”

버키는 딱 잘라서 대꾸하고 자신의 머리를 손으로 슥슥 쓸었다. 미군 표준으로 짧게 잘린 머리가 손바닥 안에서 까슬까슬했다. 

덤덤이 스티브를 빗어서 나온 노란 털로 뭉치를 만들어서 버키에게 던졌다. 버키는 웃으며 그 털뭉치에 맞고 난 뒤에 집어들었다. 털뭉치는 부슬부슬하고 컸으며, 긴 털의 끝은 바랜 밀색이었지만 안쪽은 그보다 조금 더 진해서 언뜻 갈색처럼 보일 정도였다. 털은 매끈한 윤기가 흘렀다. 처음 노란 개를 만졌을 때 뻣뻣하고 꼬질꼬질했던 그 느낌이 손안에서는 이렇게 생생했지만 스티브는 사랑 받은 만큼 달라져 있었다. 덤덤은 버키를 보지도 않고 스티브만을 내려다보고 계속해서 빗질하며 비장하게 말했다. 

“넌 고생해도 되지만 스티브는 고생시키지 마라.”

“역시 우리 티모시 덤덤 개박사 듀간!”

모리타가 크게 웃었다. 뒤이어 버키가 자기도 걱정해보라며 징징거리는 시늉을 했는데, 덤덤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네가 맨날 말하잖아, 말할 줄 아는 쪽이 말할 줄 모르는 개를 먼저 챙겨줘야지 않냐고. 24시간 이상을 좁은 데서 비행기 타고 가야 하는 데다 생활 환경이 너 때문에 바뀌는 건데 스티브한테 그 고생을 시키고 데려갔으면서 또 고생을 시키면…….”

덤덤이 불끈 주먹을 쥐었다. 옆에서 턱을 괴고 버키가 덤으로 가져온 필라델피아와 뉴저지 부동산 정보지를 뒤지고 있던 자크가 말했다.

“일단 페이스북에 매일 사진 올려.”

“그래!”

“매일 올려!”

이구동성으로 하울링 코만도즈가 소리쳤다. 스티브가 멤버들을 둘러보며 난처한 듯이 컹컹거렸다. 덤덤이 스티브의 목을 끌어안으며 귓가에 작게 말했다. 

“으이구, 스티브, 쉿. 넌 걱정하지 말고 무슨 일이 생기면 무조건 버키를 탓해. 이렇게 말해도 넌 버키 반즈를 하나도 원망하지 않겠지만……. 그리고 버키랑 잘 놀아줘. 알겠지? 저렇게 사람 좋아하면서 어떻게 지금까지 결혼을 안했나 몰라.”

스티브는 마치 그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덤덤이 일어나며 스티브의 머리를 크게 쓰다듬었다. 덤덤이 떨어지자 모리타가 얼른 스티브를 끌어안고 베개처럼 소파에서 길게 드러누웠고, 가브리엘은 소파 아래의 카펫에 다리를 펴고 앉아서 스티브의 머리에 자기 머리를 기댔다. 완전히 데이 룸의 아이돌, 누구라도 손을 대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성의 아이템(?)이 된 스티브는 끄응 소리를 내긴 했지만 얌전히 누워 있었다. 

가브리엘이 마른 저킨을 손바닥에 올려 스티브의 입 앞에 대주며 누구에게랄 것 없이 말했다. 

“동물 말을 할 줄 아는 수인이 있음 좋을 텐데. 그럼 비행기 같은 걸 주인과 떨어져서 탈 때도 수인이 개나 고양이 안심시켜주면 훨씬 마음이 놓일 거 아녜요. 비행기 갈아탈 때도 편하지 않겠어요? ‘뉴저지 뉴어크 공항 가는 분, 여기서 갈아타세요!’”

집을 찾는다며 버키에게 노트북을 빼앗긴 몬티가 대답했다.

“모습이 동물의 모습인 거지 정신이 동물인 건 아니라서, 간단하게 바디 랭귀지로 통하는 부분은 있는데 결국 그 이상은 동물 무리에서 직접 배워야 한대. 그리고 인간의 언어하고도 많이 달라서 그렇게 뉴어크 뭐시기 해봤자 개들은 모른다던데. 수인이 애완동물 가까이 있는 걸 싫어하는 주인이 더 많은 것도 있고.”

“고등학교 동창 중에 수인이 있었는데, 걔는 그런 질문을 받는 것도 싫어했어. 수인 모습도 전혀 안 했어.” 버키는 그렇게 말하곤 노트북 화면을 가리켰다. “이 집 어때? 이천육백 달러인데 주택 이층을 다 쓸 수 있고 앞뜰과 뒤뜰 다 있어!”

“신혼집 찾지 말고. 아냐, 신혼집이어도 이건 부담되는데?”

“플랫 아닌 걸로 찾으니까 이게 제일 먼저 나와서 그냥 보는 거야. 좋긴 좋다. 와, 이건 완전 깔끔하다. 앞마당 넓고 바베큐 할 만한 장소도 있어. 예약하면 내일 찾아가서 볼 수도 있다는군.”

자크가 인터뷰를 따는 것처럼 마이크를 버키 앞에 대주는 시늉을 하며 물었다.

“현실은?”

“예…… 바베큐고 뭐고 개 튜브 수영장이라도 놓으면 되고요……, 가능하면 오백 달러 안쪽입니다.”

자크가 인터뷰이를 잘못 선택한 인터뷰어의 표정으로 가상의 마이크를 치웠다. 

“아무리 그래도 그 아래는 너무 했다. 창고에서 살 셈이야?”

“그게 무리인 건 알아. 그냥 희망사항이었다구. 음…… 팔백 달러 선에서는 있을까?”

“있을까…….”

물론 찾을 수 없었다. 해외에서, 그것도 관사가 주는 안락함을 누리던 군인들은 갑자기 미국 월세의 찬물을 맞고 제각각 울었다. 그들이 매일 같이 싸구려 호텔이냐며 욕하던 배럭이 공짜이기 때문에 따스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만 것이다. 그나마 결혼을 하고 부인과 아이가 따로 집을 꾸리고 있는 모리타와 몬티는 그 월세의 찬물을 대강은 알고 있었다. 

버키는 일단 조건을 이리저리 바꿔가며 검색해보다가 갑자기 자신은 디트로이트가 좋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디트로이트면 비슷한 조건에 조금 낡아 보이긴 해도 확실히 단독 주택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일자리 주선을 해주겠다는 컨블 대령이 뉴저지 쪽 라인이고, 디트로이트에서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겠냐는 주변의 걱정으로 결국 뉴저지를 하염없이 헤매기 시작했다. 

자크가 하우스 쉐어 메이트를 구하는 란을 펼쳐주며 말했다. 

“단독주택은 집어치우고, 버키, 일단 텀을 짧게 잡고 일자리 잡으면 그 담에 수입에 맞춰서 하우스 쉐어 할 사람 구해. 안 그러면 못 살겠네. 근데 이럴 바엔 애인이랑 사는 게 최곤데.”

버키는 애인과 같이 사는 문제는 진지하게 고려해 볼 수 있지만 일단 스티브와 함께 사회 적응이 먼저라고 대꾸했다. 몬티가 혀를 찼다.

“저거 봐라, 애인 못 사귄다는 소린 안 하네.”

취침 시간이 가까워지자 배럭 다른 층에서도 하나둘씩 불이 꺼지고, 버키도 시계를 보곤 상담 약속이 있다며 자리에서 먼저 일어났다. 스티브는 버키가 자리에서 떠난 뒤로도 한동안 하울링 코만도즈와 영화를 보거나 간식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시계를 보고는 버키의 방문 앞으로 향했다. 그 안에서는 낮게 얘기하는 두 사람의 소리가 들렸다. 스티브는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앞발은 똑바로 세워 자리에 앉아서 조금 기다렸다가 노크하듯이 멍멍거렸다. 

“잠깐만.”

문 저편에서 양해를 구하는 버키의 목소리와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스티브는 똑바로 자세를 유지하며 꼼짝도 하지 않았지만 꼬리는 풍차처럼 홰홰 돌고 있었다. 

곧 문이 열리고 버키가 고개를 빼꼼하게 내밀었다. 

“들어와.”

스티브가 몸을 일으키고 킁킁거리며 문 안쪽을 향해 기웃거렸다. 문앞에서 머뭇거리는 스티브를 본 상담자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쇠 테이블에는 펜과 여기저기 표시된 자료들이 흩어져 있었다. 상담자는 서류를 그러모아 정리하며 인사했다.

“안녕, 스티브! 이제 자려고 온 거야? 들어와, 들어와. 난 이제 나갈 거니까.”

그가 스티브를 보며 미소를 짓고는 다시 버키를 향해 정중하게 인사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병장님.”

그를 배웅하고 문을 닫은 버키는 기지개를 쭉 펴고는 침대에 털썩 앉았다. 

“몇 시야? 벌써 열 시네. 잘 시간에 딱 맞춰 왔구나, 스티브. 아님 잘 시간인 걸 알고 온 거야?”

버키가 팔을 뻗어 스티브를 껴안았다. 스티브의 꼬리가 큰 빗자루처럼 바닥을 쓸듯이 흔들렸다. 

“딴 애들이랑 그렇게 잘 놀고도 잠은 나랑 자러 온단 말이지. 딴 애들은 침대 안 올려주는데 내가 침대에 올려줘서 그런 거 아냐?” 

스티브가 맞다는 듯이 컹컹거렸다. 거의 사람 말소리처럼 웅얼웅얼대는 투에 버키는 웃음을 터트렸다. 

“아까 걔도 뭐라는 줄 알아? 한참 얘기하고 있었는데 열 시 다 됐다고, 신데렐라 요정 대모 올 시간이라잖아. 왜 요정 대모라고 부르냐니까 아무리 열 내며 얘기하고 있어도 열시 종 올리러 네가 오면 마법이 풀려서 자러 가야 된다고 해서 네가 신데렐라 요정 대모래.”

버키는 스티브의 털이 부숭부숭한 뒷목에 코를 박고 작게 심호흡했다. 털이 푹신푹신했다. 버키는 한참을 그렇게 스티브를 끌어안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이제 스티비 치카치카하고 자야지.” 

스티브는 치카치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고개를 뺐지만 버키는 단호하게 칫솔과 치약을 가지고 왔다. 십 분을 넘게 실랑이하며 양치질을 끝내고 나자 스티브는 투덜거리고 버키를 보기도 싫다는 양 고개를 돌리고 앉긴 했지만 그래도 버키가 이불을 펴고 침대 위에 올라가자, 자신도 자연스럽게 침대 위로 올라가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갔다. 

버키는 베개의 왼쪽을 베고 누워서 스티브를 끌어올렸다. 스티브는 마치 사람처럼 베개에 머리를 얹고 이불을 덮고는 옆으로 누웠다. 크긴 하지만 베개 하나를 쓰고 있었으므로 둘은 가까웠다. 버키의 들숨에 부숭부숭한 스티브의 금색 털이 코끝과 입술을 간지럽힐 정도로 가까이 밀려왔다가 따뜻한 날숨과 함께 살짝 밀려났다. 온기가 없던 이불 안쪽이 순식간에 둘의 체온으로 따뜻하게 덥혀졌다. 

버키가 늘어진 스티브의 귀 한쪽을 들어올려 입술로 콕콕 간지럽히고 속삭였다. 

“칫솔질은 꼭 하랬단 말야. 아직도 삐져있을 거야?”

귀에 바로 속삭여 귀안쪽이 간질간질해진 스티브가 푸르르 몸을 떨었다. 버키는 스티브 쪽으로 완전히 몸을 돌리고 그를 끌어안았다. 콩깍지는 여전히 버키 반즈의 현실을 왜곡시켜 스티브가 요정처럼 작고 귀엽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어쨌거나 스티브는 팔을 둘렀을 때 갈비뼈 위에 얇은 거죽 한 장과 거친 털만 붙어있는 것이 아니라 두터운 근육과 살이 붙어 있었고 잘 먹고 운동도 부지런히 한 덕분에 덩치도 두 배는 커졌다. 

“너 또 털쪘어. 푹신해졌네.”

아니다, 근육이었다. 어쨌거나 버키는 스티브를 끌어안은 채로 그의 정수리에 턱을 올렸다가 뺨을 붙여봤다가 팔을 크게 올렸다가 내렸다 하며 편한 자세를 찾았다. 마침내 버키가 편하게 스티브의 촉촉한 코에 자신의 코를 가볍게 가져다대며 작게 하품을 하고 눈을 감았다. 

그러나 잠이 쉽게 오지 않는지 숨소리는 여전히 깨어 있었다. 버키가 졸음으로 반쯤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빨리 제대하고 싶다. 이것저것 사야 할 것도 많아지고 생각할 것도 많아지지만 그래도…….”

스티브가 촉촉한 검은 코를 버키의 코에 문댔다. 

“넌 어때? 군대가 좋아? 다른 사람들도 다 군인이니까 말은 못했지만 난 총드는 것도 무서워. 파병도……. 이게 정말로 이 나라를 위한 일이 맞는 건지 의심스러워. 미군이 안 오는 게 오히려 나은 거 아니었을까?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버키는 말을 잇지 못하고 스티브를 한층 더 꼭 껴안으며 뺨을 맞댔다. 스티브가 앞발로 버키의 등을 두드리는 시늉을 했다. 이 어색한 포옹에도 버키는 마음이 풀렸는지 가슴에서 올라오는 높은 한숨을 쉬고 자신도 스티브의 어깨 어림과 등을 두드리고 쓰다듬었다. 

버키는 스티브를 껴안은 채 억지로 잠을 청했다. 집을 어디에 얻어야 할 지, 직장은 제대로 구할 수 있을지, 또 제대하고 나서 꼭 사야 할 목록들, 하다못해 인터넷 선을 연결하는 일이나 자동차, 군 보험은 끝이니 새로 보험에 등록해야 한다는 일로 머리가 복잡했지만 옆에서 도롱도롱 규칙적으로 숨을 내쉬는 스티브를 따라 숨을 쉬다 보니 금세 잠으로 빠져들었다. 






MCU:CA STUC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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