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났을 때 뒤처리는 말끔하게 되어 있었다. 둔부에도 찝찝함이 느껴지지 않는 거로 봐선 양예밍이 손가락까지 넣어 다 처리한 모양이었다. 몸에 뜨끈함이 돌아 손으로 더듬거려보니 아랫배와 허리 부근에 핫팩이 붙어있었다. 허리야 그렇다 치지만 아랫배엔 왜? 인터넷에서 본 바로는 안에다 사정했을 때 배탈 날 우려가 있다는 거 같은데, 콘돔도 끼고 있었고 딱히 안에 사정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정성스레 핫팩까지 붙여준 거 보면 신부 하나 잘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어찌 됐든 역할이 바뀌긴 했지만.. 


아─.. 


"으아아아악!!!" 


순간 그에게 매달려 마구 울던 게 생각나 베개에 얼굴을 박고 소리쳤다. 미쳤어 야오왕, 미쳤어!! 그제야 그에게 이상하다며 애원하고 떼 피운 게 떠올랐다. 


'예밍아!! 아읏, 아!!! 예, 밍아.. 이상해. 이, ㅅ,해!! 제발..!' 


제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올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여자와의 관계에서 미미한 신음을 내긴 했지만, 저가 안았던 그녀들처럼 교성을 낼 줄이야. 젠장, 미쳤어! 미쳤어 정말!! 


"왕아!!?" 


제 외침을 듣고 놀란 양예밍이 쏜살같이 올라왔다. 출근한 줄 알았더니 아직 집에 있었구나.. 다급한 얼굴로 절 바라보는 양예밍을 보자니 얼굴이 더 달아올라 그의 면상에 베개를 집어 던졌다. 양예밍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떨어진 베개를 집어 들고 제게 다가왔다. 부끄러워 침대에 다시 고개를 파묻었다. 


"왕아, 아파..?
약..이라도 발라줄까? 상처는 안 났던데.. 부어서 따가워?"


축 늘어진 눈으로 저를 걱정스럽게 쳐다보며 한다는 말이 '부어서 따가워?'라니. 설마설마했는데.. 뒷처리 하며 제 둔부를 자세히 봤을 그를 생각하니 도저히 그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다. 양예밍이 제 맨 등허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래도 반응이 없자 더 심각한 목소리로, 왕아 나 좀 봐. 하고 제 팔을 잡아 일으킨다. 힘을 주며 그에게 쓸려가지 않으려 하자 단호하게 제 이름을 불렀다. 


"야오왕." 


단호한 그의 목소리 끝에 떨림이 느껴졌다. 저 비관론자가 또 무슨 생각을 하는지 걱정돼 뭉그적거리며 일어나 앉았다. 고개를 살짝 들어 바라본 그의 표정이 딱 제 예상이 맞아떨어진 듯했다. 눈썹은 잔뜩 구겨지고, 그의 치아 사이에 끼인 아랫입술이 아파 보였다. 


"없던 일로 하자는 말 하지 마.." 


역시.. 


"양예밍." 


이번엔 저가 그를 단호하게 불렀다.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한숨이 나왔다. 제 한숨에 흠칫거리는 저 덩치가 애처로웠다. 


"사라지지 못 하게 울어서라도 붙잡을 거라던 너,
어디 갔어." 


오래전 도망치려는 제게 했던 그의 말. 그도 생각났는지 슬프도록 희미한 웃음을 짓는다. 그의 눈물에 약한 제 마음을 파고들어서라도 도망가지 못하게 하겠다던 양예밍이었다. 그때 그 패기 어디 갔냐고. 말을 이으며 꼼지락거리는 그의 손을 잡았다. 떨어진 시선을 천천히 들어 제 눈을 마주쳐 온다. 


"부끄러워서.. 그랬어. 어제 일 생각나서.
이런 말 좀 하게 하지 마! 창피해서 네 얼굴을 못 보겠다고..!!"


투정 부리 듯 말했지만 제 손은 그의 손에 부드러운 꾹꾹이를 하고 있었다. 그제야 안심이 되었는지 깊은 한숨을 내쉰 양예밍이 보조개 움푹 패이도록 예쁘게 웃는다. 왕아- 하고 저를 끌어안는다. 허리가 아파 앓는 소리가 나왔다. 미안하다며 제 허리를 매만져 준다. 


생각해보니, 그의 고백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걸로 말꼬리 잡고 늘어질 줄 알았는데 여전히 양예밍은 자신이 없나 보다. 그에게 몸까지 허락한 마당에 더 이상 그를 거부할 리 없다는 걸 알면서 또 저렇게 한걸음 물러선다. 왜 그 고백에 대답하지 못했더라... 


좋아한다는 게 뭐지. 











저와 양예밍은 몸의 상성이 잘 맞는 모양이다. 매번 그에게 안길 때마다 뜨거워지는 걸 보면. 이제 어느 정도 여유를 갖는 양예밍과는 달리 저는 여전히 부끄러워 그를 잘 보지 못했다. 쾌감에 어쩌지 못해 그에게 안길 때는 울며불며 매달리는데 다음날 되면 그게 그렇게 부끄러웠다. 첫날 사정 후 울다 잠든 게 자존심 상했는지, 이후 그런 일은 없었지만 강약을 조절하기 시작한 그 때문에 정신 못 차리는 건 저였다. 아.. 남자로서의 자존심이 뭉개진다, 뭉개져.. 저만 열을 올리는 거 같아 화가 났다가도 그가 절정에 도달할 때의 표정이 떠올라 후훗거리며 웃었다. 


"뭐가 그렇게 웃긴 거야?" 


"으앗!!" 


뒤에서 불쑥 얼굴 하나가 나타났다.


"양예밍!! 사람 놀래키지 말랬지!!" 


살짝 그러쥔 주먹으로 아프지 않게 그의 등을 때렸다. 정원 산책 중에 틈만 나면 이렇게 놀라게 하는 통에 혼이 쏙 빠진다. 미안하다며 제 허리에 팔을 두르고 제 오른쪽 이마에 그의 이마를 꽁- 하고 가져다 댄다. 요즘 부쩍 많이 웃게 된 양예밍은 별채 밖에서도 사람들 아랑곳 않고 저를 만져온다. 물론 수위 높은 터치는 아니지만 아직 집안사람들의 시선이 익숙치 않은 저는 늘 얼굴이 달아올랐다. 두른 팔을 좀 더 뻗어 제 배를 쓰다듬는다. 


"배는?" 


"안 아파.." 


지난번 쓰던 젤이 복통을 일으키는 거 같았다. 사람마다 알레르기 반응이 다르니 저는 몰랐지만, 양예밍의 핫팩을 붙여주는 행동은 선견지명이었던 것인가. 핫팩 붙이기를 그만두자 바로 복통이 몰려왔다. 그걸 본 양예밍이 걱정스런 눈으로 요상한 젤을 하나 사 왔다. 천연 오가닉 성분으로 만들어진 젤이라는데, 세상에 별게 다 파네. 그리고 어제가 그걸 처음 사용해 본 날이었다. 더워서 핫팩 붙이고 자기 싫다 했더니 제 투정에 끝내 진 양예밍이 잠들기 직전까지 제 배를 계속 쓸어주었다. 아침에 늦잠 잔 그가 급하게 출근하고, 이리 몰래 나타나 제 배가 걱정되어 물어온 거다. 안 아프다는 제 대답에 기분 좋게 웃는 그가 제 귀에 속삭였다. 


"천연 성분이라더니 우리 낭군 몸에 잘 받나 보다." 


말을 마친 그가 제 허벅지 안쪽으로 손을 넣어 스윽- 하고 엉덩이골을 타고 위로 쓸어 올렸다. 


"ㅇ, 양예밍!!" 


화들짝 놀라 주위를 살폈다. 미쳤어!! 우리 지금 밖이잖아! 하고 펄쩍펄쩍 뛰자, 어때 아무도 없는데. 하고 능글맞게 웃는다. 저 도망갈까 전전긍긍하던 양예밍은 어디 간 건지.. 어휴, 내가 말을 말자. 하고 그에게서 돌아서는데 제 팔을 잡아끌었다. 


"키스해주고 가." 


"저녁에 퇴근하면."


매몰차게 그의 얼굴을 손으로 밀었다. 뒤에서 치- 하는 소리가 들린다. 씨익 하고 제 입술 끝이 올라갔다. 때마침 저 멀리서 유가 형의 품에 안겨 저를 불렀다. '유야~' 하고 그에게 다가ㅅ─ 


── !!!

".. 으응!" 


양예밍이 팔을 확 잡아끌어 제 입에 입술 박치기를 했다. 이 미친놈이.. 형이랑 유가 보고 있는데!! 한술 더 떠 혀까지 밀어 넣는다. 하는 짓이 괘씸해 살짝 그의 혀를 물었다. 읏, 하고 울상 지으며 그의 얼굴이 멀어졌다. 화가 난 건 아니지만 무척 화난 것처럼 그를 쏘아봤다. 사과할 줄 알았던 그의 입에선 생각지도 못한 말이 나왔다. 


"유한테 선전포고.
유랑 있으면 나는 신경도 안 쓰잖아." 


기가 찼다. 아직 기저귀 차는 아이랑 너가 비교 대상이 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너 당분간 외부 스킨십 금지야.
안 지키면 섹스 없을 줄 알아.." 


양예밍의 눈썹이 찌그러지며, 왕아.. 하고 애처롭게 저를 불러온다. 흥- 하고 뒤돌아 유에게 달려갔다. 형도 저와 양예밍을 보고 놀랐는지 유는 울고불고 난린데 멍한 표정에 턱이 빠져있었다. 


"너희..." 


".. 몰라!!" 


형에게서 우는 유를 빼앗아 안고 냅다 본채로 달렸다.











".. 한 방 먹었네.." 


저 먼발치에서 야오왕과 양예밍을 보고 장귀가 중얼거렸다. 집안 규율이라 해서 명목상 이름만 올린 '남자 신부'인 줄 알았더니. 뭐야.. 둘이 진짜 그렇고 그런 사이야? 양예밍이 야오왕에게 집착하는 건 쥬얼리 샵에서 본 순간 알았지만, 키스까지 하는 사인 줄 몰랐다.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한 제 착오였다. 자신의 목적이 딴 데 있다 해도 이건 생각해 본 적 없는 시나리오였다. 


"생각보다 복잡해졌어." 


"뭐가 말입니까?" 


── !!! 


낮게 읊조리는 소리에 페이가 나타나 물었다. 혼자 있다고만 생각했던 장귀가 놀라 페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언제 온 거냐는 페이의 물음에 방금 막 왔다고 둘러댔다. 페이가 눈 크기를 좁히며 장귀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뭐가 복잡해졌냐고 다시 묻는 페이의 말에 장귀가 목을 가다듬고 말을 둘러댔다. 페이가 이해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자 멋쩍게 웃으며 야오왕 찾으러 가겠다고 본채로 향했다. 페이는 그런 장귀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보고 서 있었다. 장귀의 모습이 그의 시야에서 사라지자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2 조직회 상황 좀 보고 해.
그리고 3, 4 조직회 간부들도 소집하고. 이번에 있을 행사 때문이니까." 


페이의 미간이 꿈틀댄다.

 










가뜩이나 요즘 더 끈덕지게 달라붙는 장귀 때문에 짜증 나 죽겠는데, 짜증 나는 일이 하나 더 늘었다. 고문 변호사로 조직에 자주 드나드는 여자, 빙빙라. 변호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법 공부한 양예밍과 계속 붙어있는 건 알겠는데 짜증 나는 건 짜증 나는 거다. 처음엔 이러지 않았다. 누가 봐도 딱 제 스타일인 여자가 정장 차림으로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데 누가 안 좋아하겠어. 자기 커리어도 있고 나잇대도 저보다 살짝 연상인 그녀가 제법 마음에 들었다. 물론 사심으로라기보단 우러르는 마음으로. 하지만 이것도 그녀가 전화 통화 하는 걸 듣기 전까지의 이야기다. 


별채 뒤쪽으로 아주 큰 나무가 하나 있다. 누군가 여기까지 오기에는 본채와 거리가 꽤 되었다. 사람도 잘 드나들지 않는데다 날씨도 따뜻해진 요즘 저는 그 나무 그늘 밑이 참 좋았다. 그날도 어김없이 그 밑에 앉아 눈을 감고 낮잠을 청했다. 이내 말소리에 눈을 떴다. 빙빙라의 목소리였다. 통화하는 모양인데 굳이 이 먼 곳까지 와서? 괜히 호기심이 일어 숨죽이고 그녀의 통화를 엿들었다. 


"금세 넘어올 것도 같아. 나이가 어리긴 한데, 행동 보면 또 그렇지만도 않다니까." 


응..? 


"삼남으로 호적에 올려져 있으니 결혼하면 뭐라도 떨어지겠지." 


양예밍 얘긴가. 가만히 듣고 있자니 그녀는 노골적으로 양예밍을 노리고 있었다. 행실 보고 올곧은 여잔 줄 알았더니 그렇지만도 않았다. 통화 속 상대가 누군지는 몰라도 사적인 것까지 다 말하는 사이 같았다. 양예밍의 허벅지를 만져봤다느니, 그의 팔뚝에 슬쩍 가슴을 대고 문댔다느니. 들으면 들을수록 기분 나빴다. 양예밍을 건드린다는 자체가 짜증 났다. 더불어 꼬리 치는 빙빙라의 방식이 무엇보다도 제일 역겨웠다. 


그 이후 이상하게도 양예밍과 그녀가 함께 있는 장면이 눈에 많이 띄었다. 더 기가 차는 건 그녀의 행동 변화였다. 천박한 소릴 하던 그때와는 달리 양예밍에게 치근덕대는 그녀는 아주 우아했다. 그녀에게 젠틀하게 미소짓고 행동하는 양예밍에게도 그저 화가 날 뿐이었다.


"왜 이렇게.. 짜증 나는 거야.."


히히덕거리는 그 둘을 더는 보기 싫어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멀리서나마 야오왕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던 양예밍이 사라지는 그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표정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눈을 못 떼고 그가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던 양예밍에게 빙빙라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형하고 사이 좋은가 봐요. 걱정되면 잠깐 다녀와요. 이거 제가 마무리 지어 놓을게요."


요즘 기분 나빠 보이는 날이 많아 걱정됐다. 머리라도 쓰다듬으면 저리 가라고 밀어내기 바빴다. 그런 그가 오늘따라 더 안 좋아 보이는 걸 보니 저가 더 안절부절못했다. 빙빙라의 선의에 고맙다고 짧게 말하고 별채로 향했다. 






잘 보지도 않는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을 틀어놓고 멍하니 있는 야오왕이 보였다. '왕아-' 그의 이름을 부르며 옆에 털썩하고 앉자, 인기척에 놀란 그가 동그란 눈으로 저를 쳐다봤다. 


"언제 왔어?"


사람 들어오는 것도 모를 정도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던 거야.. 불안하다. 그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저를 향해 그가 입을 열었다. 


"... 지금 하는 일.. 언제 끝나?"


평소라면 잘 묻지도 않을 질문에, 왜? 라는 눈빛을 보냈다. 지난 2주 동안 잘 웃지도, 저에게 기대오지도 않았다. 멍하니 있는 날도 많아지고 잘 보지도 않는 TV 채널을 틀어 놓는다거나 이렇게 그 답지도 않은 질문을 물어오곤 했다. 


"아직도 그 여자 싫어?"


갑자기 이상하게 행동하는 야오왕 때문에 한밤중에 물었다. 자기 전에 품에 안으려 하면 발버둥 치며 멀게 눕던 그에게 화가 나 왜 그러는 거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저를 질려 하는 걸까 봐, 몸을 섞은 게 후회된다고 할까 봐 무서웠다. 제 질문에 그는, 빙빙라 씨 싫어.. 라고 답했다. 그 여자가 우리 조직을 위해서 일하는 게 싫다고 했다. 이유 없이 사람 싫어할 그가 아니기에 어딘가에서 무슨 소릴 들었겠거니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싫어할 줄 몰랐다. 


"싫어.."


아이처럼 고집 피우는 야오왕을 품에 끌어안고 등을 토닥였다.


"이번 행사 끝나면 다신 안 볼 사람이잖아."


그제야 제 등을 꼬옥 감싸 안는다.







몸이 통하면 마음이 통하느니라. 그러니 너희도 곧 통하리라. - 드봉봉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 아이들 소로소로 달곰해 지지 않나옄? 전 달달을 지향합니다!! 계속 내리는 차가운 눈 샛끼를 뚫고 배포 전 조심히 다녀오셔요!!! 저는 지방 촌구석에서 트윗 후기나 기다리고 있으렵니다(운다.. 

'남자 신부'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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