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제와 무관한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W. 재재








"정국아~ 어때? 재밌겠지?"





정국이의 교육을 언어교육에 주를 두고 있다고 다른 교육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중고등학생들처럼 교과교육을 하는 것도 아니니 한 번에 여러가지를 충분히 교육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체육수업을 할 때 정말 신체만 발달을 하나? 절대 그렇지않다. 사회성도 기르고, 조절력도 기르고, 참을성도 배우는 것이다.





정국이는 향이 강한 음식을 매우 싫어했다. 상추나 브로콜리 등의 종류는 잘 먹는 편이 되었지만 깻잎이나 고수, 오이는 아주 싫어했다. 피 질질흐르는 생고기도 잘 먹으면서 도대체 향이 강한 풀떼기는 왜 못먹는지 태형이에겐 항상 의문이었다. 태형은 정국이 좋아하는 여러종류의 고기와 빵 등을 작은 정육면체 모양으로 잘라 예쁘게 상에 놓아두었다. 물론 그 중간에는 오이도 같은 모양으로 잘라 사이에 껴두었다. 분홍색, 갈색, 아이보리색, 초록색 형형색색의 먹거리들이 정국의 눈앞에 펼쳐졌다.





"이거봐 정국아. 너는 후각에 예민하니까 냄새도 맡아보고 만져봐도 돼."


"어때, 고기냄새 나지?"


"나는 먹어봐야겠다. 정국이도 먹을래?"





태형이 중간에 있는 빵을 하나 집어 자신의 입 속에 넣었다. 우물거리는 태형을 바라보던 정국은 킁킁거리고 냄새를 맡더니 고기를 잡고 입으로 쏙 집어넣었다. 다 먹어도 돼 정국아. 태형이 말하는 동안 태형의 얼굴을 바라본 정국은 태형의 말이 떨어지자 곧바로 음식들을 입에 넣었다. 맛있게 먹고있는 정국이를 보고 흐뭇하기를 잠시, 상을 바라보자 초록색의 오이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모습을 보고 태형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쩐지 그동안 편식교정이 쉽다했더니.. 전혀 안쉽네. 태형은 덩그러니 놓여있는 오이와 정국이를 시무룩하게 바라보았다.





"정국아.. 오이 한 번만 먹어줄래..?"





태형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말에 정국은 휙하고 고개를 틀었다. 태형은 그런 정국의 태도에 놀라 눈을 번쩍 뜨며 정국이에게 다가갔다. 정국아! 너 지금.. 내 말 알아들은거야? 응? 진짜 진짜로?? 단어로 말한거 아니고 문장인데 알아들었어?? 정국아! 정국의 볼을 부여잡고 저돌적으로 다가오는 태형에 정국은 벙쪄있다가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 태형은 정국이 문장을 알아들었다는 기쁨에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정국의 입술이며 볼이며 쪽쪽 뽀뽀를 해댔다.





"다들 봤죠? 응? 응? 우리 정국이가 문장으로 된 말을 알아듣는거 봤죠!!" - 태형


"야 우리집 개도 말은 척척 잘 알아들어." - 윤기


"단어를 알아들은거랑 문장을 알아들은건 많이 다르죠. 태형씨가 뭐 특별한 행동을 한 것도 아닌데 알아들은듯한 행동을 취했다면 한 번 확인해볼 필요가 있겠어요." - 호석


"크으- 역시 호석씨가 뭘 좀 안다니까. 이제 정국이는 짐승의 타이틀에서 벗어났어요 형." - 태형


"....." - 윤기


"근데 원래 정국이 말 알아듣지 않았어?" - 지민


"원래는 단어만 알아들었지. 제스처랑. 진짜 강아지들처럼." - 태형


"근데 방금은 문장으로 말했고, 제스처도 없었는데 말을 알아들은듯이 행동을 했다?" - 지민


"그렇지." - 태형


"오... 진짜면 발달이 엄청 빠른건데." - 지민


"빠른 정도냐? 메스컴에 실어도 될 정도야. 언어 민감기 지난 야생아, 불과 일년만에 언어터득! 교육자는 누구? 크흐흐" - 태형


"좋단다." - 윤기





윤기의 시비에도 태형은 아랑곳하지 않고 기쁜 마음을 떠들어댔다. 진짜 5년도 안돼서 초등학생정도 어휘력을 가지면 어쩌지? 지금도 벌써 이런데! 야야, 아서라, 그건 진짜 꿈이다. 그래, 꿈이잖아요 꿈! 솔직히 이정도 발달속도면 완전히 불가능한 것도 아닌거 같은데. 그래도 5년동안 초등학생은 너무 빠르다. 초등학생은 몰라도 유아정도 어휘력이면 가능할지도 모르죠.





태형의 성취감은 지금 정수리 끝까지 올라가다 못해 뚫고 나올 지경이었다. 그동안 야생아들 사례를 보면 이 정도까지 성공한 사례도 없었는데 그걸 불과 몇달만에 해냈으니 뿌듯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심지어 스트레스 지수도 낮고, 애교까지 넘치니 아주 그냥 정국이를 업고다니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러니 미국에서 정국이랑 나를 노리는 거겠지 싶으면서도 한국어와 이 연구소에 익숙해진 정국이를 필두로 빠져나갈 핑계거리를 몇 개 만들어뒀으니 일단 그 생각은 미뤄두었다.




*




"사과가 쿵! 그 때 두더지가 나타나서 사각사각사각..."


"커다란 사자와 곰이 날름 날름 와사삭 와사삭..."





정국과 태형은 의성어 의태어가 가득 담긴 책을 읽으며 한가로운 낮을 보내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금방 올것처럼 협박질을 하다가 가더니 코빼기도 안보이고, 정국이도 잘먹고 잘싸고 잘 씻... 고..? 아무튼 스트레스 없이 잘 지내고 있으니 나름 평화로이 지내고 있었다. 태형도 일에 익숙해져 정국이와 지내는 날들이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정국과 함께 있는 것이 더 편해 정국이와 떨어져 방에서 서류작업을 하고 있을 때 더욱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당연했고, 집에 가서도 정국이를 보겠다며 서둘러 출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국은 음식이 나오는 책을 좋아했다. 정확히 말하면 음식그림이 나오는 동화책. 그리고 동물들 사진이 나오는 책도 좋아했다. 야생에 살 때 보았던 동물들이 나오면 손으로 가리키며 태형을 들 뜬 표정으로 바라보곤 했다. 안다는걸 알려주고 싶은건가. 오늘은 동물 사진은 아니지만 동물 그림과 음식 그림이 나온 '사과가 쿵!' 동화를 보았다. 이왕 흔한 과일이 나오는 동화를 본 김에 진짜 사과를 가져와 놀아도 보고 간식으로 먹어도 본 후에 역시나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길로 정국이와 산책을 나갔다. 그런데 이러한 평화로운 날들에 너무 익숙해져 있던 탓일까.





"정.. 정국이가 없어졌어요! 분명 제 옆 나무에서 냄새 맡고 있었는데..!"


[뭐? 언제 없어졌는데!]


"책 보다가 고개를 돌렸는데.. 없어졌어요. 제 잘못이에요. 정국이 잘못되면.."


[잘못 안돼, 다른 사람들이 잘못될까봐 걱정이다.]


"그래도.."


[야생에서 살던 애야. 살아남는건 걱정하지마. 너 없어져서 공격성 보일 수도 있으니까 얼른 찾아!]


"공격성은 없을텐데.."


[그건 익숙한 환경일 때 그렇고! 정신안차려?!]


"죄송해요.."


[연구원들, 보조원들 다 불러서 연구실 근처랑 산책로, 그 주변 다 찾으라고 해볼테니까 너는 지금 있는 곳 근처 뒤지고 있어.]


"네.. 죄송해요."





태형은 전화를 서둘러 끊고는 공원을 샅샅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산책로부터 시작해서 구석진 풀숲까지 정국이 가봤던 곳, 가보지 않았던 곳 전부 살피며 돌아다녔다. 풀과 나무들 사이사이를 돌아다닌 덕분에 태형의 옷은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그럼에도 태형은 그런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도 않는지 정국을 외치며 뛰어다닐 뿐이었다.





"죄송한데 혹시 키는 이만하고, 얼굴은 이제 애기 같은데 막 남자답기도 하고, 말 못하고, 어, 또.. 아! 검정색 트레이닝복에 흰색 무지티 입은 그.. 몸 좋은 20대 초반 남자 못보셨나요?"


"네..? 20대 초반의 몸 좋은 남자요..?"


"네, 네. 아니, 걔가 길 잃어버린게 처음이라.. 제 옆을 떠나지 않는 앤데.."


"어.. 못본 것 같아요."


"아...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땀을 뻘뻘흘리는 수상한 남성이 말을 버벅대며 20대의 남자를 찾는 황당한 상황에도 커플은 간절하게 부탁하는 태형의 모습에 대답을 해주었다. 황당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면서도 태형에게 원하는 답을 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든 커플은 죄송하다고 사과하며 저 멀리 사라졌다. 태형은 지금 자신의 꼴이 어떤지 살필 시간도 없었다. 해가지고 어둑어둑 해져서도 정국이를 찾지도, 찾았다는 연락도 오지 않았다. 배고플텐데.. 나 없다고 사람들 피해 구석에서 쪼그리고 앉아있는건 아닌지, 혼자 경계하면서 신경 곤두선 채로 돌아다니는건 아닌지 태형은 걱정이 태산이었다.





"공원 전체를 풀숲이며 나무 위며 하나하나 샅샅이 뒤져봤는데 안보였어요. 다른 데는 어때요?"


[연구실 근처도, 평소 자주 가던 산책로도, 그 주변 전부 사람들 풀어서 찾아 봤는데 안보여.]


"연구실로 돌아가진 않았을까요?"


[연구실에도 몇 명 사람 있는데 안왔대.]


"하..."


[일단 오늘은 거기서 퇴근해. 내일 다시 찾아보자. 너무 늦었어. 벌써 새벽이 다 됐어.]


"....."





태형은 전화를 끊고 한숨을 내쉬었다. 정국이가 없어졌는데 어떻게 퇴근을 해. 전부 내 탓이야. 수준이 영유아 수준이라는걸 까먹고 있었어. 눈을 떼고 있으면 안되는 거였는데. 입맛도 까다로워져서 풀이나 생고기도 안먹을텐데. 이러다 진짜 정국이 잘못되면.. 점점 안좋은 생각으로 가는 통에 태형은 고개를 휙휙 젓고는 정신을 다잡았다. 정신차려 김태형. 어딘가에 있어. 빨리 찾자. 빨리.. 정국이도 날 찾고 있을거야.





"흐윽.. 정국아아..!"


"형이 잘못했어! 빨리 나와..! 이제 흡.. 정국이 너한테 시선 안 뗄게.. 응? 으흑.."





찾아도 찾아도 나오질 않고, 불러도 불러도 대답없는 정국이에 태형은 줄줄 눈물을 흘리며 비틀비틀 거리를 걸었다. 풀숲을 계속 돌아다닌 덕분에 나뭇가지에 옷이 찢기고, 얼굴도 몸도 작은 상처로 가득한 태형은 정국의 걱정에 따가움도 피곤함도 허기도 느끼지 못했다. 다른 사람이 보면 기겁을 할 몰골이었지만 태형 자신의 모습따위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태형은 혹시나 내 목소리를 듣고 오지 않을까 정국이를 수도 없이 외쳐대며 하염없이 길을 걸었다. 결국 힘이 풀려 길바닥에 쓰러진 태형은 일어나려 몇 번씩이나 시도했지만 온 몸에 힘이 빠져 풀썩풀썩 계속해서 쓰러졌다. 태형은 도저히 안되겠는지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지민아..."


[어, 태형아 괜찮아? 지금 집이지? 밥은 먹었고? 밥을 먹어야 내일 또 찾지.]


"나 좀 데리러와.. 못 일어나겠어.."


[뭐? 너 어딘데!]


"여기.. 아.. 여기가 어디지.. 여기가 어딜까.. 정국이도 이런 낯선 곳에서 헤메고 있겠지..? 흐윽.."


[정신차리고! 주변에 있는 건물 아무거나 말해봐.]


"흐.. 주변에.. 몰라.. 그냥, 아, 고물상같이 보이는 데가 있어. 어두워서 맞는지는 모르겠는데.."


[고물상? 또, 또 뭐 없어? 나 지금 나가고 있어. 걱정마.]


"몰라.. 가로등도 켜졌다 꺼졌다.. 주변엔 다 풀밭이라 건물도 없고.. 엄청 큰 나무도 있어."


[풀밭..? 고물상? 아.. 여긴가.]


"...흑."


[고물상이라고 치니까 딱 하나 나오네.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데, 맞지?]


"몰라.. 나도 모르겠어."


[어떻게 그렇게 멀리갔어! 거길 걸어서 간거야?]


"응.. 정국이 찾다보니까.."


[하.. 전화 끊지말고 거기서 움직이지도 말고 가만히 기다려.]


"응... 미안해. 흐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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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민이 같은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는 태형이는 증말.. 성공한 인생 크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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