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내일 죽는다.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건 적어도 99개 정도는 될 줄 알았는데, 노트에 정리해놓고 보니 열 개가 전부였다는 충격만큼이나 눈앞에 있는 건 끔찍했다.

미친년. 지 젖은 왜 내놓고 다니는 거지. 그것도 대낮에 길거리에서.

내 표정을 발견했는지 너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너는 죽기 전까지 하고 싶은 건 아마 만 가지나 될 거라고 그랬다. 어떻게 하면 만 가지가 될 수 있는 건지. 처음엔 그게 궁금했지만, 나중에 이해가 됐다.

너는 그냥 오만가지를 하고 싶어 했다. 가령 물구나무서기로 자장면 먹기 같은 거 말이다. 너는 한 셋째 날부터 그게 하고 싶었다며 거실 벽에 등을 대고 물구나무서기를 하며 정말 자장면을 처먹었다.

나는 네가 지구 멸망 소식에 돌아버린 줄 알았다. 그렇게 생각할만한 게 너는 원래 강의실 맨 앞자리에 앉아 교수님의 목소리까지 녹음하여 강의를 듣던 애였으니까.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라 그냥 원래 미친년이었을 줄이야.

“옷 좀 입어.”

“이게 내 345번째였어.”

“다음엔 팬티 벗고 다니는 거겠네.”

“어. 맞다. 그게 한 400번대 됐던 것 같은데.”

진짜 미친 거 같다. 주위에 혹시 사람이 다니면 어쩌려고. 잠시 생각했다가 그만두었다.

사람들은 없다. 아마 집 속에 처박혀있거나 아니면 이미 목매달아 죽었을 게 분명했다. 나는 일주일이 지난 이후부터 바깥에서 사람을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 있긴 있었다. 웬 남자였는데. 나한테 찝쩍거리는 걸 보자마자 쟤가 머리를 두들겨 패 죽여버리고 말았다. 처음엔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에 손발을 덜덜 떨었지만, 곧 털고 일어섰다. 어차피 곧 죽게 생겼는데.

나는 너를 보았다. 진짜……너는 지구 멸망을 위해 태어난 사람 같다. 내 말에 너는 킥킥 웃어댔다. 좋은 뜻으로 한 말도 아닌데 너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나랑 네가 같이 다니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하고 싶은 게 겹쳤다. 나는 여자랑 섹스를 해보는 게 소원이었고 너는 하고 싶은 섹스만 아마 99가지쯤 될 거라고 그랬다. 99개는 뭐야. 허세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이었다. 우린 정말 쉴새 없이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했고, 점심에 했고, 저녁에 했고, 이야기하다가 했고, 길 한복판에서, 도서실에서, 마트에서, 차에서. 그냥 오만가지 장소에서 했다. 내가 이러다가 기빨려 죽는 거 아니냐고 했을 때 너는 말했다. 어차피 다 뒤질 건데 기빨려 뒤지나 그냥 뒤지나 뭐. 그래도 우린 같이 죽었으면 좋겠다. 너는 그딴 무드는 개좆만큼도 없는 소리를 했고 나는 그 말에 반했다.

나는 너의 노트를 흘긋 보았다. 빨간색으로 체크된 부분이 눈길이 끈다. 그 부분을 읽기 무섭게 표정이 찌푸려졌다. 아니, 미친년. 나무에 매달려서 섹스해보기는 뭐야. 진짜 미친 거 아니야. 네가 매미 새끼쯤 되냐고 내가 물으니 너는 또 웃는다.

내가 물었다. 만약 우리는 지구가 멸망하지 않고, 평소와 같았으면 어땠을까. 하고. 너는 답했다. 너와 같이 있는 지금이 평소라고.

“지랄하네. 너 또 이상한 짓 하려고 그러지.”

나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너는 분명 또 이상한 짓을 떠올렸을 테다. 가령 방금 내가 본 나무에 매달려서 섹스해보기 같은 거 말이다. 그거 하면 등가죽 다 벗겨질걸. 내 말에 너는 그건 아니란다. 그건 아니라면 또 뭔데. 뭐가 있는 건데. 너는 웃는다. 뭐가 있으면 어때. 어차피 다 뒤질걸.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차피 다 뒤지지. 너는 내 손을 잡아 이끌었다. 후덥지근한 차 속으로 엉거주춤 기어들어 갔다. 너는 내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 우리는 내일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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