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마치고 아이니의 상태를 확인하니 열이 내려 있었다. 


해열제가 잘 들은 모양이네.



"아이니?! 울어요?"



어두워서 잘 몰랐는데 아이니의 뺨이 물로 젖어있었다. 


땀은 아닌 것 같은데...



"슬프잖아요. 


그렇게 힘들게 자랐는데, 마지막에 자신이 죽을 곳으로 생각한 것이 결국 태어난 마을이라니. 


심지어 거기에서 환영을 받지도 못했고..."



"어... 다른 사람들 이야기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당신이 말하니 굉장히 이상하네요."



데렉은 머리를 긁적였다. 


객관적으로 니스보다 훨씬 불행했던 아이니가 그렇게 말하니까 굉장히 이상하네.



"대장..."



천막을 걷고 들어온 건 헨릭이었다. 


그런데...



"너는 또 왜 울고 있어?!"



심지어 헨릭은 데렉보다 나이가 많다. 


사냥대의 대표로서 지휘하기 위해 반말을 쓰던 것이 습관이 되어서 그 이후로도 반말을 하는 건데...



'아니 나보다 연장자가 왜 울고 있냐고.'



"니스에게 그런 사정이 있는 줄은 몰랐소..."



데렉은 눈물을 닦을 생각도 없어 보이는 헨릭의 태도에 이마를 짚고, 천장에 가려 보이지도 않을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하여튼 마법사라는 것들은 쓸데없이 감수성만 높아서는... 


나와요, 아이니. 걸을 수 있죠?"



"네? 네."



갑자기 돌변한 데렉의 태도에 놀란 아이니가 적당히 괜찮아진 몸을 일으켰다. 


데렉은 짜증 섞인 몸짓으로 점심이 담긴 그릇을 들고 있는 헨릭의 옆을 지나 천막을 걷고 나갔는데...



"어이구. 여기도 울음바다네."



괴수의 피로 피칠갑을 한 남자 셋이 불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아니 그... 수프가 매워서..."



구라치지마, 임마. 


마늘이나 고추 같은거 갖고 있지도 않았잖아. 


후추는 당연히 고급품이라 없을 거고.



"어머니 생각이 나서..."



너도 거짓말이 많이 늘었구나. 


어머니도 마법사라 세계 곳곳을 여행한다고, 자유롭게 살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했던 사람이.



"에헤이. 빗방울이에요, 빗방울."



필립... 요즘 습도가 낮아서 새벽에 이슬도 잘 없던데. 


하늘에 검은 구름도 없는데 뭔 비야. 


그리고 비가 오면 밖에서 점심을 먹겠니.



데렉이 한숨을 쉬고 있었더니 뒤쪽에서 천막을 걷는 소리가 들렸다.



"헨릭, 당신이 뜬 수프는 너무 짤 것 같으니까, 환자에게는 못 줄거야."



"아."



눈물 때문에 수프가 접시에서 넘치고 있었다. 


고기랑 빵도 들어간 수프인데... 아깝다.



"천막이 너무 얇은거 아냐?"



큰 목소리로 말한 것도 아닌데, 아무리 모닥불이랑 천막이랑 가까웠다고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잘 들리나. 


본의 아니게 니스의 사생활을 다 떠벌리고 다닌 꼴이 되었다. 


아이니는 니스를 본 적도 없으니 딱히 알려줘도 상관 없겠다 싶어서 알려준 거지만...



"네 명이서 들고 다닐 수 있는... 무게여야 하니까요."



아직도 훌쩍거리는 필립이 데렉의 질문에 간신히 대답했다. 


데렉은 왠지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만 울고 밥 먹자..."










"조심히 가요, 대장. 다음에 봅시다."



메데인 마을에서 필립일행과는 헤어지기로 했다. 


이 근방에서 괴수 사냥을 계속 하는 마법사들과 같이 다닐 수는 없었다. 


아이니도 찬 바람을 맞아서 건강이 안 좋아지기도 했고, 본격적으로 전투 마법을 익히는 것도 생각해 볼 문제였으니까.



게다가 저쪽은 의뢰를 완수하기 위해 학파로 가야하니, 얀센 학파에 들어가 있지 않은 데렉과 아이니는 들어가기가 힘들 거다.



"그래, 필립. 조심하고."



결국 가벼운 악수를 하고, 며칠동안 같이 지냈던 일행을 떠나보냈다.



"조, 조심히... 가세요."



아이니도 마지막에는 그나마 경계심이 풀렸는지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 모습이 기특한지 떠나가는 마법사들은 웃으며 인사해주었다.



"자, 그럼... 숙소부터 정해볼까요?"



아마 수프가 맛있는 여관이어야 하겠지. 


여기까지 오는 며칠 동안 아이니는 같은 식사에 물려서 조금 불만인 눈치였다. 


그리고 혹시 모를 때를 대비해서 식량도 남겨야 하니 양껏 먹을 수도 없었고.



"그래요. 다리도 아프니까 빨리 정해요."



천천히 걸었다고는 하지만 며칠 동안이나 남자들 속도에 맞춰서 걸었으니 아이니가 피곤한 것도 당연했다. 


상처를 걱정해서 나중에는 데렉이 업고 다니기는 했지만, 그래도 체력 소모가 컸겠지.



메데인 마을은 그렇게 커다란 마을은 아니었다. 


정말 뼛속까지 농촌이라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조용하고 한가로운 마을이었다. 


특히 추수가 끝나고 눈이 오기 전의 지금 시기는 아마 1년 중에서 가장 한가한 시기일 것이다.



그렇다보니 여관도 텅텅 비어 있었고, 여행자처럼 보이자 자신들의 집에서 묵으라며 민박을 권하기도 했다. 


나쁠 것은 없지만 아무래도 마법사인 것이 들키면 안 될 테니까 가능하면 여관방을 빌리기로 했다.



"와아 푹신한 침대에요."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마을에서 겨울 옷을 구하고, 빨리 오기 위해 강행군을 했으니 아이니에게는 꽤나 힘들었겠지. 


그래서 좀 비싼 방으로 잡았더니 솜이 들어간 침대가 나왔다. 


깔끔해보이는 방이고, 시트에도 얼룩이 있지는 않았으니 벌레나 위생상태를 걱정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잠깐 쉬고 있을래요? 


견과류랑 두고 갈테니까 먹고 싶으면 먹고요."



아이니가 침대 위에 누워서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기에, 그냥 두고 나가기로 했다.



"어디 가요?"



데렉이 건네준 견과류 봉투를 꼭 끌어안은 아이니가 올려다보며 말했다. 


작은 동물이 먹을 것을 끌어안고 있는 것 같아서 귀엽네.



"연락소에요. 아마 집에서 편지를 보냈을 거에요."



엘무트 마을에서 편지를 보낸 지도 꽤 되었고, 다음 목적지를 메데인 마을이라고 적어두었으니 운이 좋다면 연락소에 편지가 닿아 있을지도 몰랐다.



"네. 잘 갔다 와요."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는 아이니가 한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손목의 상처는 그나마 이제 좀 아물어서 쇠독이 오른 흔적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아무나 열어주면 안돼요."



"저는 애가 아니에요."



그런 인사를 주고 받은 데렉은 피식 웃으며 여관 밖으로 나왔다.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으니, 연락소를 들렀다가 마을을 한 번 둘러볼 생각이었다. 


처음 와 보는 마을이지만, 계획도시보다는 자연발생된 도시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기는 했다. 


길이 구불구불하고, 상하수도가 제대로 매설되지 않아 가끔씩 발에 채이곤 했으니까.



혹시라도 이상한 낌새가 보인다면 이전처럼 발을 들이기 전에 아이니를 데리고 피신하는 게 낫겠지.



"피알라... 잠시만요. 왔던 편지가 있는데. 기다려주실래요?"



작은 아이가 모자를 쓰고 가게 안쪽으로 달려갔다. 


연락소에서 접객과 심부름을 담당하는 아이겠지. 


안쪽에서는 정신없이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으니, 잠깐 기다리면 편지를 받을 수 있게 될 것 같았다.



'메데인... 메데인... 찾았다.'



연락소 벽에 걸린 커다란 지도를 보며 다음 마을과 길을 생각했다. 


아주 정밀하지는 않지만, 적당히 어디쯤에 숲이 있고 강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으니 이 정도면 충분하다.



편지를 받고, 답장을 쓰고 나서 다음 마을로 가면 되려나. 


다음 마을은... 아마 람트니일 것 같았다.



'가능하면 피해서 가고 싶은데...'



교회가 깊게 뿌리내린 지역이라고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북방 원정에 군대도 보내는 곳이니, 숨막힐 정도로 교회가 깊게 파고들어 있겠지.



그러고 보면 엘무트 마을도, 여기도 교회 교구로 편입되어 있기는 했다. 


마법사 학파의 분점이 있기도 했지만, 교회의 영향권이기도 했다. 


아마 둘의 충돌을 생각하면 이 마을이 가장 최전선이겠지.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편지는 두 통이네요."



심부름꾼 아이가 접객용 미소를 띠며 말했다.



"얼마 전에 도착한 거에요?"



"한 2주일 정도 되었네요."



일단 여기에서 피알라 본가까지 편지를 보내면... 


답장을 받는 데에 2주 정도를 생각하면 되는 거겠지. 


그럼 다음 목적지인 람트니 마을로 답장을 보내달라고 편지를 쓰면 되겠네.



"전달 고맙습니다. 며칠 후에는 편지를 보내러 올게요."



대금을 치른 데렉은 밖으로 나오려다가, 벤치에 앉아 편지를 꺼냈다.



'왜 두 통이야?'



편지 묶음이 두 개 였다. 


하나는 피알라 가문의 인장이 찍혀 있으니 부모님이 보낸 것이 맞을 텐데, 이쪽은 누구지.



급하게 연락을 할 사람이 있나 머릿속으로 뒤져보았지만 딱히 짚히는 부분이 없었다. 



여러 학파를 떠돌아 다녔지만 전부 도제 계급이었으니 데렉이 없다고 해서 연락까지 할 사람은 없었다. 


도제 하나가 없다고 찾아야 할 정도로 손이 부족한 학파는 학파로서의 자격이 없지.



사냥대 사람들은 급하게 연락할 일이 있을까 싶었다. 


피알라 분가에서 계속 모집하는 사냥대도 있었고. 


그래도... 간단한 안부 인사 정도라면 있을 수 있겠지. 


바로 직전에 만났던 필립처럼 다들 얼굴 붉히지 않고 잘 지냈으니까.



교회에서 연락이 올 일은 없을 것 같았다. 


피알라 가문은 교회와 연결되는 끈이 많기는 했지만, 데렉 개인과 연결되는 사람은 암브로시오 사제가 유일했다. 


아니면 몇 다리나 걸쳐서 연락을 했을 텐데, 굳이 데렉을 찾을 이유가 있을 것 같지는 않고.



다른 마법사 가문... 이면 가능성은 있지. 


다만 아이니를 구하는 과정에서 마법사들과 교회가 충돌했고, 그 한가운데에 데렉과 아이니가 있었다. 


진상조사라도 있을 법 한데...



'일단 열어보자.'



손님용 벤치는 아무도 없었으니, 데렉이 앉아있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은 없었다.



[안녕, 데렉. 네 덕분에 살아있는 니스야.]



아... 그래. 


니스에게 헤어질 때 피알라 집안에 연락을 보내면 전달이 될 거라고 말했었지. 


그래서 피알라 본가를 거쳐 데렉에게 전달이 된 것 같았다.



[나는 지금 북쪽 지방에 있어. 


피알라 지방에도 들러서 용의 소체를 모두 처분하고 왔더니 돈이 남네. 


온천이라고 따뜻한 물이 나오는 곳인데, 돈을 펑펑 쓰면서 이 곳에서 겨울을 날 것 같아.]



잘 됐네. 


사냥대에 있던 초창기 인원이었고, 데렉도 많이 챙겨주었으니 돈은 썩어날 정도로 있겠지. 


이번 겨울 정도가 아니라 그 마을에서 정착해서 검소하게 살 수 있을 정도는 될 것이다.



[인생을 돌아보니 고통 뿐이었던 것 같아서, 이제는 조금 돌아다니면서 편하게 살아보려고. 


학회에서는 제명처리 안 할테니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오라고 하더라.]



죽기 직전 까지 갔으니 학회나 일이나 연구나... 


그런 것이 무슨 소용인가 싶겠지. 


데렉도 이해할 만 했다. 


하루 내내 지식을 쌓아올리기 위해 연구와 논문을 탐독하고, 조금이라도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내기 위해 파고드는 그 생활을 겪어보았으니까.



[그래. 네 말을 한 번 믿어 볼게. 



나에게 주어진 행복과 아름다움에 집중하고, 고난이라는 담금질을 피하지 않으면서.



아픔도, 즐거움도 안고 살아가 볼게. 


고통의 깊이를 알아야 행복의 높이를 알 거라고 믿어보기로 했어.]



그건... 참 다행이다 싶었다. 


혹시 아직도 죽을 곳을 찾아다니는 것이 아닐까 걱정했는데.



[고마워. 너를 만난 건 내 인생에 몇 없는 행운이었던 것 같아.]



요즘 참 고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 것 같았다. 


필립도 그렇고, 니스도 그렇고.



[그 때는 돌려주지 못한 말을 돌려줄게. 


나도 네가 행복해지기를 바래.



그리고 가능하면 소중한 사람을 만들어봐. 


나는 되지 못했던 그 자리에 누군가가 있으면... 


사는 것이 좀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글쎄, 모르겠어. 아이니시스는... 소중하긴 하지. 


하지만 딱 거기까지야. 


네가 있었던 자리 보다 더 가까워질 수 있을까?



[친애를 담아, 당신의 친구 니스 그레타가.]



데렉은 씁쓸하게 웃으며 편지를 품에 집어넣으려다가, 뒷면에 적힌 것을 보고 뒤로 돌려서 글자를 읽었다. 


잠깐 목이 몰라서 가죽 수통을 입에 물었다.



[추신 : 여자 마법사가 자신의 고향을 소개하는 건 친구 이상의 깊은 관계를 갖자는 소리야. 


고리타분한 사람들은 청혼으로 생각할 걸?]



"푸헙!"



편지가 젖지 않게 하려고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야 했다. 


그러고도 한참동안 얼굴이 새빨개져서 기침을 연달아 했다.

clorantz@naver.com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장현우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