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챈(강혜원X이채연)/조최(조유리X최예나)/딤님(김채원X김민주)

-채원이는 혜원,채연, 예나와 동갑인 설정입니다.

-화 마다 주요 커플링이 달라집니다.









동방을 가장 먼저 빠져나온 예나와 유리는 자주 가던 경양식 음식점에서 간단하게 끼니를 때운 후, 예나 취향의 감성 카페로 와 간단한 디저트를 주문했다. 유리는 도대체 이런 가성비 떨어지는 카페를 왜 오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저 예나가 좋다니 졸졸 따라왔다. 자그마치 칠천 팔백원 짜리 바닐라 라떼 사진을 마구 찍어대던 예나가 문득, 지금쯤 둘이 있을 것이 분명한 채연과 혜원을 떠올렸다. 


“둘은 뭐하고있으려나”


“둘? 아, 채연선배랑 혜원선배요?”


“엉. 야, 아무래도 있잖아”


“네?”


예나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그들을 향한 감상을 내놓았다.


“싸운 것 같지? 둘이.”


이게 무슨 소리람. 유리는 예나가 정말 눈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분위기만 어색하다 뿐이지 분명히 유리는 보았다. 혜원을 보는 채연의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아직 채연의 성향에 대해 잘 모르니 어떤 마음으로 좋아하는 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우정이든 사랑이든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것 만큼은 유리는 호언장담하고 있었다. 물론 입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그건 절대 아닐걸, 장담해요. 채연선배가 혜원선배를 얼마나 아끼는데. 무슨 일이 생긴거면, 혜원선배가 먼저 피한게 아닐까요.”


“아냐”


“뭐가요?”


“니가 그러니까 거기까지인거야.”


“그러니까 뭐가요.”


“강혜원이 이채연 얼마나 좋아하는데. 진짜 좋아해. 좀 오래 봐야 알 수 있어서 아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오죽했으면 강혜원 전남친 중에 이채연 질투한 놈도 있었을 정도야.”


“에엑, 거짓말.”


“진짜야! 이채연 전화 한통에 자리 박차고 일어난다고 엄청 툴툴댔었어. 그때 나랑 김채원이랑 얼마나 웃었는데.”


오, 이건 예상 못했는데. 유리는 잠시 고민했다. 뭐, 이래봤자 둘 중 한명이라도 우정인 이상 절대 성립될 수 없는 관계다. 더 이상 자기가 낄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 유리는 생각을 접어두고, 눈 앞의 예나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바닐라 라떼를 호록 마시는 예나의 모습이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지, 진짜.


“움, 어쨌거나 둘이 붙여놨으니 지금쯤이면 화해를 하든 지지고 볶든 결판이 났겠지.”


“그럼 다행이고요”


예나는 잠시 뭔가를 떠올리는 듯 싶더니, 그들의 만남에 대해 늘어놓기 시작했다.


“으음, 걔네는 말이야. 만남에 굴곡이 없었어. 어색한 환영회에서 만난 반가운 상대였던 데다가, 이채연 성격 알잖아. 주변사람 엄청 챙기는거. 강혜원도 그런 채연이 엄청 좋아해서 둘이 정말 죽고 못살았는데.”


말끝을 흐린 예나는,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얼른 풀렸으면 좋겠다-라며 중얼거렸다. 굴곡이라. 유리는 만남에 있어서의 굴곡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순탄치 못한 만남, 그런것일까.


“언니, 우리는요?”


“우리가 뭐?”


“우리는 어땠는데요? 굴곡.”


“…말이라고 하냐?”


“…”


예나는 무슨 말을 하려는건지, 피식 웃으며 뜸을 들였다.


“너 존나 재수없었어”


“언니도요”


.

.

.


때는 몇 달 전 3월에 있었던 신입생 환영회. 원체 낯을 가리는데다가 말수도 적은 유리는, 귀여운 외모에 이끌려 말을 걸어오는 몇 명의 동기와 선배들을 모두 퇴짜놓았다. 아, 집에 가고싶다. 유일하게 아는 사람인 고등학교 동창 민주는, 오늘 몸살이 나 환영회에 오지 못했다. 믿고있던 하나의 등불이 꺼지고, 유리는 괜히 소주만 홀짝거리며 빠져나갈 핑계거리를 찾고있었다. 차피 기숙사 통금도 있으니까.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룸메이트도 궁금하고. 눈치보다 도망가야겠다- 하고 생각하다가, 중앙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그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야아!!! 신입생드을!! 장기자랑좀 해봐라아-!!”


‘우와아-!!’


저건 또 뭐야. 웬 꼰대가 있어. 요즘 시대에 무슨 장기자랑이야 진짜. 유리는 속으로 욕짓거리를 뱉다가, 진짜 도망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예나 선배님! 1학년들만 하기에는 조금 부끄럽지 말입니다!!!”


그새 친해진 듯 한 남자 후배 한명이 깍듯한 말투를 흉내내며 장기자랑 빌런인 여자에게 말했다. 저사람 이름이 예나야? 아니, 그게 중요한게 아니지. 자리를 떠야해. 진짜 장기자랑을 하게될지도 몰라. 유리는 가방을 챙기며 주변 눈치를 슬슬 봤다. 


“그래애~? 그럼 야 2학년! 너네도 다같이 해!”


‘그래 다같이 하자! 야 다해 다!’


자기들도 하겠다는거 보니 꼰대는 아닌가보네, 그냥 술취한 주정뱅이인가보다, 하고 유리는 생각했다. 선배들도 한다는데 도망가는 것은 찍히기 딱 좋다는 것 정도는 유리도 알고있었다. 일단 도망 계획은 접어두고, 유리는 고민했다. 차피 뽑기로 하는거니까, 뭐. 지금 1, 2학년 다 합치면 몇십명이 넘는데. 설마 걸리겠어- 하고 자신의 이름을 쓴 쪽지를 선배가 내민 봉투 안으로 집어넣었다. 우리 테이블을 마지막으로 쪽지를 걷은 후, 뽑기가 시작됐다.


“자 그럼 남자는- 이민준? 이민준! 민준이 어디앉아있냐!”


구석 테이블에서 와아- 하고 여기있어요 여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호명된 이민준이라는 남자가 머쓱하게 일어나서는 중앙테이블로 걸어나가 선배들과 몇마디 말을 나누는 듯 했다. 꽤 친근하게 말을 섞는걸 보니 2학년 선배인 듯 했다. 


“그럼 여자 뽑는다!”


예나라는 선배가 호들갑을 떨며 봉투 안의 쪽지를 휘젓고는, 하나를 꺼내어 쓰여진 이름을 읽었다.


에이, 설마.


“유리! 조유리! 야아, 유리 어딨냐!”



시발


좆같네그냥아까나갈걸왜꾸역꾸역여기앉아있겠다고무리수를쳐둔건지집에보내줘악마새끼들아


유리의 머릿속에서 한순간 험한 말들이 오갔지만, 정작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와, 니가 조유리야? 엄청 귀엽게 생겼네! 여기로 나와봐!”


예나는 신이 난 듯 유리를 향해 손짓했다. 유리는 그대로 굳어서, 어떻게 해야할지 머리를 굴렸다. 선택지는 두 개. 죽기보다 싫어하는 ‘남 앞에 나서기’ 를 초면인 사람들 앞에서 하기, 아니면 안한다고 버티고 갑분싸만들어서 선배들에게 찍히기. 어느쪽이든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하지만 유리는 골라야만 했다. 빨리와! 하고 재촉하는 선배들의 모습에 유리가 고른 선택지는,


-벌컥벌컥


맥주잔에 소주를 가득 담아 그대로 원샷. 


“벌주는 이걸로 할게요”


벙찐 표정이 꽤 우스웠다. 선배들도 다같이 참여한 장기자랑에서 내빼려면 이정도는 마셔야한다고 생각한 유리는, 자신의 주량을 믿고 그렇게 소주를 들이켰다. 놀란 선배들이 어..어.. 하는 사이, 다른 선배 한 명이 분위기를 수습했다.


“그래~혼자 하기에는 좀 부담스럽지! 그거 마셨으면 됐어 안해도 돼! 야 민준아 너 빨리 해라! 이런건 선배가 보여줘야 하지 않겠냐~”


선배는 그만 앉아도 된다는 신호를 유리에게 보내고는, 노래를 부르려고 준비하는 이민준이라는 남자에게 눈길을 돌렸다. 


넘어갔다.


유리는 그만 다리가 풀려, 자리에 털썩-소리가 나게 앉았다. 그제야 아까 들이킨 소주 기운이 올라오는 듯 했다. 욱.. 속쓰려. 짜증이 날대로 난 유리는 정말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먹고는, 주변을 살폈다. 모두 노래하는 남자에게 시선이 집중되어있…에엑. 


눈이 마주쳤다. 


유리를 못마땅하게 쳐다보는 예나와. 예나는 ‘흥’ 하고 유리의 눈을 피했다. 


유리는 이제 진절머리가 났다. 빨리 돌아가서 쉬고싶었다. 유리는 누가 쳐다보든 말든 가방과 옷가지를 챙겨 호프집을 뛰쳐나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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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유리는 눈을 비비며 이제는 꽤 적응이 된 기숙사 천장을 바라봤다. 언제 잠든건지. 씻고 바로 뻗었나보다. 대충 기억을 되짚어보고는 몸을 일으켰다.


“야, 조유리”


“으악!”


유리는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까무러칠 뻔 했다. 그도 그럴것이, 어제까지만 해도 룸메이트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럼 이 사람이 내 룸메인건가? 잠시만, 어디서 본 것 같은…


“헉!”


유리는 상대를 알아보고는 입을 막았다. 어제 그 장기자랑 빌런, 예나선배였다. 


“너 나 기억하지?”


“…네”


예나는 여전히 못마땅한 얼굴로 유리를 보며 말했다. 유리는 순간 자퇴를 고민했지만, 아무래도 무리수인 것 같아 생각 저편에 묻었다.


그 때 부터 잠에서 깬지 얼마 안되어 눈도 제대로 못뜬 유리를 향한 예나의 잔소리가 시작됐다. 너는 분위기를 못읽냐, 선배들도 다 하는데 왜 분위기를 그렇게 만드냐, 하기 싫었으면 그냥 벌주 마시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하고 마셨으면 사람들도 안놀라고 그냥 넘어갔을 텐데 그게 그렇게 어렵냐…


유리는 짜증이 날 법도 했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예나는 복슬복슬 핑크색 오리 기모 잠옷을 입고 그런 장황한 연설을 하고 있던 것이다. 유리는 듣는둥 마는둥, 예나의 잠옷을 구경하며 오리그림의 개수를 세고 있었다. 그러다 그만 정신줄을 놓아버린 유리는, “야, 내 말 듣고있어?” 라는 예나의 질문에, “오리!” 하고 대답해버린다.


아 


시발


쪽팔려… 


자신이 무슨 말을 한지 인지한 유리는, 창피해서 얼굴이 붉어졌다. 진짜 개또라이라고 생각하겠지, 젠장. ‘엥?오리?무슨 오리?’ 하고 황당한 얼굴을 하고 물어보는 예나에게, 될대로 돼라, 식으로 유리는 대답했다.

“그, 오리, 잠옷에 오리그림이 귀여워서요”


창피해서 죽을 것 같았다. 이 선배 성격에 마구 놀려댈 거라고 생각한 유리는 대답을 기다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유리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앗, 그치! 귀엽지!”


“예?”


엄한 얼굴로 연설을 늘어놓던 아까의 꼰대는 어디가고, 화색이 되어 예나는 자신의 잠옷을 칭찬하기 시작했다. 언제 어디서 샀는데, 핑크색도 예쁜데다가 오리도 귀여워서 너무 마음에 든다, 근데 김채원은 유치하다고 꼽줬다, 김채원은 얼굴은 예쁜데 성격이 더럽다, 역시 날 챙겨주는건 이채연밖에 없는 것 같다, 강혜원도 귀엽다고 해줬는데…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흐름에, 유리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조유리 너 마음에 든다! 내 잠옷의 귀여움을 알아주다니! 나랑 친하게 지내자!”


하며 손을 내밀어 유리에게 악수를 청했다. 유리는 잠시 어버버하다가, 룸메 선배랑 잘 지내서 나쁠 것은 없으니 결국 잘됐다, 라고 생각하며 내민 손을 맞잡았다.


“저도 잘 부탁드려요”


.

.

.


유리는 레즈비언이었다. 어쩌면 바이일지도 몰랐지만. 하지만 남자는 좋아해 본 적이 없으니 일단 유리는 자기 자신을 레즈비언이라고 칭했다. 그것도 꽤 취향이 까다로운 레즈비언. 유리는 자기 자신의 매력을 잘 알고있었다. 얼굴도 귀여운 편이고, 낯을 가리기는 해도 친해지고 나면 성별을 불문하고 유리를 좋아했다. 툭툭 내뱉는 사투리 섞인 무심한 말투에는 애정이 섞여있었고, 그게 귀여운 얼굴과 합을 이루며 말로 다 표현해내지 못할 매력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이렇게 유리의 매력을 설명하는 이유는, 유리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함이다.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이 다가오고, 다가오고 나면 자신을 좋아해주는 사람이 생긴다. 그래서 취향도 더욱 까다로워지고, 그러다 보니 자신이 먼저 누군가를 좋아해 볼 기회가 적었다. 그래서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일방적인 감정-짝사랑-이라는 것에 면역이 없었다. 그리고 그 일방적인 감정으로 열병을 앓게한 상대가 바보 같은 룸메 최예나 선배인 것을 알아차렸을 때, 유리는 접시물에 코박고 죽고싶었다. 조유리 자존심에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정이라는 것은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눈에 안보이면 정이 사라질까도 싶었지만, 둘은 룸메이트였다.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가 없었다. 유리의 열병은 나날이 심해져갔다. 덮으려 하면 솟구쳐 올라오고, 지우려하면 더욱 짙어져 왔다. 밀려오는 감정들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이런저런 생각들에 잠을 통 자지 못했던 유리는, 수면향초를 사와 이거라도 켜두고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유리는 옆방에서 라이터를 빌려오는 길에 울리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유리야! 집이야? 밥 먹었어? 안먹었으면 치킨 포장해서 가려고!]


전화를 받자마자 할말을 쏟아내는 예나가 귀여워서, 유리는 큭큭 웃었다. 라이터로 향초에 불을 붙이며 유리가 대답했다.


“네 언니, 안먹었어요. 포장해오시면 같이.. 으악!”


불 붙인 향초를 방안으로 가져가려고 향초를 든 순간, 녹아 떨어진 촛농에 손가락을 데었다. 뜨거움에 순간 놀라 향초를 떨어트린 유리는 왁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전화는 그대로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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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타이밍이다. 모든 상황이 잘 맞아떨어질 때 비로소, 악연이 생기든 기회가 생기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타이밍들이 지독한 클리셰를 만들어낸다. 유리의 전화가 끊어진 그 때, 예나는 마침 치킨집 텔레비전 뉴스로 생중계되는 강도사건 보도를 보고있었다. 그리고 유리는 그을린 바닥을 치우느라 ‘언ㄴ니 별일아니니까 걱정ㅁ아여’ 하고 대충 친 문자가 전송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유리는 데인 손가락을 반창고로 감고는, 부러진 향초를 마저 치웠다. 

같은 시각, 예나는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질질 끌며 기숙사로 내달리고 있었다.


발이 따끔거리는 것을 보니 바닥으로 떨어진 향초가 발등을 스친 모양이었다. 유리는 쯧-하고 혀를 찼다. 아까 썼던 연고를 다시 꺼내려고 찬장을 열었을 때 도어락 소리가 들렸다.


-띠…띡…띠…띠... [비밀번호가 틀렸습니다.]


-띡….띠……띠…띡… [비밀번호가 틀렸습니다.]


유리는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예나언니일텐데 도어락 비밀번호를 자꾸 틀린다. 현관문의 작은 렌즈로 밖을 내다보니 예나가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유리는 문을 열고 예나를 맞이했다.


“언니 비밀번호를 왜이렇게…”


틀려요, 하고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던 것은, 눈물과 땀으로 범벅이 된 예나의 얼굴 때문이었다. 유리는 순간 몸이 굳었다. 뭐지, 무슨일 있나, 괴한이 쫓아왔나.


“뭐… 무슨… 얼굴이 왜그래요 언니…?”


유리는 더듬거리며 사정을 물었다.


유리의 얼굴을 확인하자 다리가 풀렸는지 현관에서 신발도 벗지 않은 채, 예나는 그대로 주저 앉았다.


“너…너…너…”


어딜 보는건지 예나는 유리를 차마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허공을 향해 단어들을 날렸다.


“언니 왜그래요, 무슨일 있었어요?”


유리는 걱정되서 미칠 것 같았다. 오는 길에 험한 일이라도 당한걸까. 빨리 예나가 대답을 해주길 바랐다.


“너… 비명…. 비명지르고 전화 끊겨서…너…”


예나는 주저앉은 채로 얼굴을 두 손바닥에 묻고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걱,정,했잖아아….”


유리는 그제야 모든 상황을 이해했다. 그 모든 일련의 상황이 이어져서, 이 사단을 만들어낸 것이다. 유리는 금방이라도 경기를 일으킬 것 같은 예나를 진정시켰다. 언니 그게 아니고, 향초가 떨어져서, 네, 전화는 일부러 안받은게 아니라…


울음을 그친 예나는 유리의 부축을 받아 몸을 일으켰다. 힘이 풀린 다리는 쉽게 몸을 지탱하지 못했고, 예나는 유리의 품으로 그대로 쓰러졌다. 


“…언니”


유리는 예나가 사랑스러워서 죽을 것 같았다. 나를 걱정하는 것도, 그것 때문에 운 것도. 누구 때문에 이렇게 참고 있는데 품에 안겨버리면 나더러 어쩌라는건지. 유리는 이성의 끈을 간신히 붙잡고 있었다.


“걱정했어, 유리야. 너 잘못될까봐”


유리의 가슴팍에서 예나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평소의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가 아닌, 울어서 잔뜩 잠긴 목소리가 유리에게 닿았다. 


유리는 순간의 감정을 이겨 낼 수 없었다.


“…언니”


유리는 그대로 예나에게 입을 맞췄다. 촉, 하고 가볍게 맞닿았다가 떨어졌다. 유리는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예나의 표정을 볼 자신이 없어서, 눈을 질끈 감았다.


“유리야, 눈 떠봐”


먹먹한 목소리로 예나가 유리를 불렀다.


“안뜰래요”


“떠봐”


예나의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이 잠겨왔다.


“싫어요…”


“나 봐봐, 유리야”


예나는 다시 눈물을 터뜨리며, 자신을 보라고 말했다. 


그 말에 유리는 천천히 눈을 떴다. 울고있는 예나의 부탁을 도저히 거절할 방도가 없었다. 예나와 눈이 마주치자 유리는 가슴속에 묻었던 말들을 쏟아냈다. 마치 터진 둑과 같았다.


“언니, 좋아해요. 좋아서 죽을 것 같아요. 미안해요 언니, 이렇게 말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좀 더 언니 마음을 확인하고 고백하려고 했어요. 진도도 천천히 나가려고 했어요. 멋대로 입맞춰서 미안해요 언니. 나 싫어하지 말아주세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언니…”


미안하다는 말을 끝으로 유리는 울음을 터뜨렸다. 예나를 품에 안은 채로, 미안한다, 좋아한다, 이러려고 했던건 아니다, 라며 했던 말을 반복했다. 


유리의 말이 멈춘 것은, 예나가 유리에게 입을 맞췄을 때 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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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현재


유리는 삐진 얼굴로 꿍얼거리며 예나에게 물었다.


“…재수없는 것 뿐이었어요?”


“그리고 또”


“또?”


“매력적이었지. 나도 모르게 홀릴만큼”


그제야 유리는 뿌듯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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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야, 난 아직도 가끔 생각해. 그날 내가 그런 뉴스를 보지 않았더라면, 네가 내게 문자를 제대로 보냈더라면, 니가 향초를 떨어트리지 않았더라면… 지금 우리의 관계는 달라졌을까. 

나 있잖아, 그 때 그 치킨집에서 우리 방까지 뛰어온 그 기억이 통째로 날아가있어. 무슨 정신으로 뛰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미칠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던 것만 생생해. 그러고 나서 니가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는, 참, 뭐랄까, 아직도 그 감정을 설명하기가 힘들어. 그만큼 니가 소중했다는 것을 깨닫고, 각별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그리고… 사랑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 모든 감정이 한번에 벅차올라 그렇게 정신이 없었던 것 같아. 


그런데말이야, 그 모든 사건들이 이런 기회를 만들어준 걸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기회가 그 뿐이었다고는 생각하지도 않아. 이것저것 타이밍이 잘 맞기는 했지만 그게 아니었어도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것은 언젠가 깨달았을 거야. 너는 그만큼 매력적인 사람이니까, 누가 널 좋아하지 않고 배기겠어. 기회가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너에게 고백했을거야. 나 원래 직진녀잖아. 알지?


나보다 더 어른스러운 내 동생, 내 후배, 내 애인, 조유리. 너의 낮은 목소리도, 무심한 사투리도, 나에게 지어주는 미소도, 모두 좋아해. 하나도 빠짐없이 사랑해. 몇 번을 물어도 내 대답은 같아. 미칠 듯이 매력적이야, 조유리. 네 곁에 있게 해줘서 고마워. 



그들의 고백법 (2) fin.




아이즈원에 꽤나 진심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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