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도 5월, 디페스타에서 판매된 회지로, 일부분의 문장이 수정되었습니다. 스토리가 변경된 점은 없습니다.




룬의 아이들 보리스 진네만 가족 이입 드림

1500원

 

주의. 본 회지는 한국과 비슷한 현대의 가상 국가를 배경으로 하며, 트라바체스를 배경으로 하지 않습니다.



 



대입 시험을 망친 날 저녁,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고생했어. 내가 나와 있느라 시험 날인데 챙기지도 못했네.”

“괜찮아, 내가 앤가. 이모랑 이모부 일은 저번부터 들었잖아요. 그거 잘 해결되는 게 더 좋은 거죠.”

-“그래. 시험은 어땠어?”

사근사근한 목소리가 굉장히 낯설었다. 그러나 그보다는 내가 해야 할 말에 더 신경이 쓰였다. 엄마가 자주 하던 말과 정반대의 소리를 해야 하므로.

“그, 음… 속이 안 좋아서, 좋진 않아요. 솔직히, 어, 재수…하고 싶은데….”

조심스레 말을 끝냈으나 엄마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웬만하면 재수하지 말자고 했으니 그럴 만도 하지. 나는 머리카락 끄트머리만 문질렀다.

긴 침묵 끝에 엄마가 생뚱맞은 소리를 늘어놓았다.

-“너 동생 있어도 집에서 공부할 수 있겠어?”

“동생?”

웬 동생? 난 외동인데.

-“예프넨이랑 보리스. 이제부터 우리랑 살 거야. 너 걔들 있는데 공부할 수 있겠어?”

“어?”

재수를 결심한 겨울, 사촌 동생들과 살게 되었다.


 


 


고개를 들자 굳게 닫힌 문이 보였다. 예프넨이 학교에 간 지 네 시간이 지났건만, 보리스는 방에서 한 번을 나오지 않았다. 슬슬 점심 먹을 시간인데. 나는 ‘12’를 향하는 시침을 보다 소파에서 일어났다.

보리스가 온 지 오늘로 한 달이던가.

나는 달력을 흘끔거리고 둘의 방 앞으로 갔다. 심호흡 끝에 문을 두드렸건만 안에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자는 건가? 아니면 책?

“보리스, 문 열어도 괜찮을까?”

답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정말 낮잠 자나? 보리스의 점심을 더 깊게 고민하기 전, 문이 열렸다. 좁은 틈새로 회청색 눈이 보였다. 문 뒤에 반쯤 숨은 모양이다.

“무슨 일로 부르셨어요?”

나는 한발 물러나 보리스와 눈높이를 맞췄다.

“이제 곧 점심이잖아.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보리스가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뭐든 괜찮아요.”

“특히 더 먹고 싶다거나, 이건 싫다거나 하는 건?”

“다 괜찮아요.”

보리스가 물러나는 게 보였다. 보통 일곱 살이 이렇게 말하던가? 나는 예프넨의 일곱 살과 아랫집 꼬마를 떠올렸다. 아무래도 이렇게 어른스럽진 않은데.

아니, 당장은 보리스가 더 중요하지. 보리스가 좋아할 만한 메뉴를 생각해보자. 예프넨이 옛날에 뭘 좋아했는지는…, 기억 안 나. 아랫집 꼬마가 좋아하는 걸 보리스도 좋아할까? 둘이 나이는 같은데….

나는 이제껏 해본 음식을 떠올리며 물었다.

“그러면 프리타타는 어때? 냉장고에 있는 야채랑 햄 넣어서. 혹시 뭐 알레르기 있는 거나, 먹기 싫은 재료 있을까?”

보리스는 고개만 저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보리스가 한 발 더 물러났다.

조리대에서 본 문은 다시 닫혀 있었다. 친해지면 좋을 텐데. 보리스는 언제쯤 날 편히 여길까? 나는 한숨 쉬며 재료를 준비했다.

소시지는… 평소보다 한 줌 더 넣을까? 치즈도 좀 더 넣고. 야채는… 크게 썰자. 싫으면 골라내기 편하게. 설탕…. 치즈를 넣는데 설탕까지 넣으면 과하겠지? 나는 눈대중으로 계량을 마치고 도마를 꺼냈다.

깨끗이 씻은 야채는 평소보다 더 크게 썰고, 소시지는 한입 크기로 썰었다. 빠르게 볶아낸 야채를 식히는 동안 스테인리스 볼에 달걀을 풀었다. 생크림을 넣어 부드러운 식감을 더하고, 오븐용 그릇에 옮겨 담았다.

나는 프리타타가 완성되는 동안 주변을 정리했다. 축축한 손은 대충 바지에 닦고 방문을 다시 두드렸다. 이번에는 조금 빨리 열렸다. 틈새는 여전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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