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룩, 코피가 흐른다.

미지근하고 짭잘한 맛, 영서는 입으로 들어오는 피 맛을 굳이 거부하지 않았다.

의자에 축 늘어져 앉은 영서는 허리를 굽혀 컴퓨터 전원을 눌렀다.

- 선생님, 요즘은 밤에 잠이 안 와요. 가슴이 두근거려서 눈을 감기 힘들어요. 

자판을 두드리자 영서의 얼굴에 금이 간다. 울긋불긋 빨간 꽃들이 피어난다.

폭력의 자음은 생각보다 요란하지 않았다.

- 누구나 그럴 수 있다면서요. 잘못한 게 없다고 하셨잖아요. 그럼 누가 나쁜건가요. 저는 피해자도 가해자도 될 수 없나요? 저는 왜 이렇게 상처받고 아픈건가요? 그렇게 보지 마세요.

자판을 두드릴 때마다 영서의 얼굴이 뒤틀린다.

온점을 찍을 때 입술이 붓는가 싶더니 여섯 번째 문장에서 기어코 터졌다. 투둑. 또다시 코피가 흐른다.

- 분명 제 이야기인데, 선생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다 남 일처럼 들려요. 그래서 저는 저번 주보다 더 나아졌나요. 제가 여기서 어떻게 더 솔직해질 수 있을까요. 왜 제 말을 따라하세요, 왜 저를 그런 눈으로 보시는건데요?

영서, 스스로에게 솔직하기란 참으로 잔인했다.

- 오늘은 여기까지 하면 안 될까요? 대답을 안하면 안 될까요?

영서는 잠깐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내렸다.
화면 하나를 두고 묘한 기류가 흐른다.

-  지금은.. 전부 말할 수가 없어서 그래요, 그냥 제가 숨어있고 싶어서 그래요. 제 문제에요. 그냥 제가 잘못했다고 말씀해주세요. 그래야 제 마음이 편해요. 편해지고 싶어서 그래요.

- 선생님, 저는 정말 모르겠어요. 한 발걸음을 뗄 때마다 제 몸만 한 문을 마주하는 것 같아요. 힘을 조금만 더 주면 열 수 있을 것 같은데, 손이 너무 미끄러워서 열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 죄송해요, 말씀하시는 내용을 잘 모르겠어요.

영서는 노트북을 닫았다.

"……. 선생님 저는요, 아마도 이미 정답을 알아요. 사실 이 시간은 무의미해요. 전 그냥 다정한 말을 듣고 싶은 거예요. 저는 그저 선생님이 저를 더 불쌍히 여기시고 저를 안아주시길 바라요. 단지 선생님이 제 아픔에 인상을 찡그리고 눈물을 훔치시길 바라는 거예요."

영서는 노트북을 열었다.


상담이 끝났다. 영서는 손을 들어 제 얼굴을 더듬어 보았다. 터진 입술도, 금간 얼굴도 없었다. 다만 코에서 턱으로 코피가 말라붙은 흔적만이 남아있었다. 영서는 고개를 내려 자신의 몸을 찬찬히 확인했다. 아픈 곳도 이상한 곳도 없었다. 영서는 마른 코피를 닦아내며 깨진 모니터에 비친 제 얼굴에 대고 다음 상담 시간이 언제인지 물었다.

1:11에서 1:12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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