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으로 이러는 애가 아니다. 그것도 같이 기뻐했던 순간을 없던 일로 치부한다는 건 나조차도 부정하겠단 소리였으니까 다급히 옷을 챙겨서 나갔다. 황욱희와 그렇게 처음 술자리를 가지게 됐다.

 

“정우. 그동안 나 왜 피했어.”

“자리 앉자마자 무슨 소리야. 안 피했어.”

“거짓말.”

 

살짝 눈을 흘기더니 술을 마시는데 이런 건 역시 익숙하지가 않았다. 한순간에 몸이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고 맛도 없었다. 이런 걸 그동안 마시고 다녔구나. 정작 중요한 건 풀지 않은 채 대화의 겉면만을 핥았다. 집으로 가는 길에서는 서로 알딸딸한 정도만을 안고 갔다.

 

“너는 나 안 보고 대학교 가서 보려고 했어?”

“아니야.”

“야. 김정우. 계속 거짓말 하지 마.”

“... 거짓말 안 했어.”

 

“지금부터 하는 말에 거짓말 한 번이라도 하면 우리 끝이야.”

 

얘가 왜 이럴까. 안 부리던 떼를 쓰고. 당황스러운 눈은 안 보이는 건지 중얼거리며 말을 했다. 처음에는 게임하고 지냈다고 했지. 무슨 게임. 이 정도였는데 재밌었냐는 말에 망설이다 나도 대답을 했다.

 

“아니.”

“재미없었어?”

“응.”

 

옆에서 봐도 입꼬리가 올라간 것을 보니 거짓이어도 넘어갔었을 거 같은 태도다.

 

“정우야. 너 나 아직도 좋아해?”

 

…‥?

 

“무슨 소리야.”

“아직도 좋아하냐고.”

 

“.... 좋아한 적 없어.”

“진짜?”

“응. 우리 친구잖아.”

“거짓말.”

 

“너 나 좋아하잖아.”

 

황욱희가 웃었다. 내 빨개진 귀를 쓰다듬으며.

 

“안 좋아한다니까.”

 

“거짓말 하라고 했는데. 나 대학교 자퇴한다?”

 

몸이 덜덜 떨렸다. 알딸딸한 것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어떻게 알았을까, 티가 났던 걸까. 이걸 왜 묻는 걸까. 같은 학교 가서 게이 새끼라고 소문내기 전에 마음 접으라고? 아니, 아니. 황욱희는 그럴 애가 아니다. 친구로 보냈던 시간이 있는데 그런 파렴치한 짓을 할 사람이 아니다. 그러면 내가 좋아하는 게 기분이 나빴던 걸까.

 

“…좋아... 해. 미안해. 접을게.”

 

목소리도 떨렸다. 죄인이 된 기분이다.

 

“나도.”

 

이제는 취해서 헛소리도 들리나 보다. 날 경멸스럽게 볼 욱희가 무섭다. 고개를 더 푹 숙였다. 쪽팔리게 눈물이 나오는 것도 같다. 자꾸 흐릿해지는 시야에 눈을 깜빡여봤지만 손을 썼다간 우는 걸 들킬 거다. 욱희가 용서해주면 좋겠다.

 

“정우야, 좋아해.”

 

잘못 들은 게 아닌 것 같다. 근데 분명 울고 있을 거 같아서 물기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제대로 듣고 있는 게 맞아?”

“응. 고개 좀 들어봐.”

“싫어. 이 상태로 말해.”

 

“하아. 김정우. 나 찰 거면 계속 고개 숙이고 있고 사귈 거면 고개 들어.”

 

“들고 싶은데 쪽팔려.”

 

욱희의 차가운 손끝이 시야에 잡힌다. 이내 눈에 맺힌 방울을 닦더니 이제 됐지? 말하는 목소리가 다정하다.

 

“눈 부었을 거 아니야.”

 

“그럼 이리 오면 사귀는 거로 알게.”

 

황욱희가 팔을 벌리고 있다. 꿈에 그리던 모습으로. 둘 다 밖에 있었던 탓에 옷조차 냉기가 느껴졌다. 맞닿은 몸에 체온보다는 묵직함이란 느낌이 더 크게 와닿았지만, 이렇게 황욱희와 나는 사귀게 됐다.

계속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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