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나비처럼 내리는 겨울이었다.

 나는 철문의 스물여섯 걸음 밖에서 담배를 피웠다.   

  

 나의 취미는 타인에게 감정을 선사하는 것, 즉 작곡을 하는 것이었다. 돈이 되는 건 아니니 직업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나에게 비를 대입해 열두 마리 나비를 날게 한다. 좋아하는 건 사운드 클라우드 삼 분 이십오 초. 이름은 거문고 금, 아름다울 의에 아름다울 미를 쓴다. 아름답기만 한 삶이라니 얼마나 지루한가. 의미 없는 의미라는 이름이다. 


 그 이름은 이미 죽은 할아버지가 지어준 것이라고 했다. 어떤 의미의 이름을 지어줄까 고민하다 그냥 의미가 되었다고 한다. 아름다울 의, 아름다울 미는 그 후 끼워 맞춘 것이 분명하다.

 

 어머니가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고 바로 직후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 설명이 할아버지를 가리키는 마지막 말이었다. 할아버지가 무엇 때문에 명을 달리한 건지도 모르고 사진도 한 장 남아있지 않아 나는 내 이름을 지어준 이의 생이 어땠는지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고 나조차도 아무렇지 않았다.


 아직 머리가 덜 자랐을 때의 나는 시영 아파트 101동 206호에 살았다. 아버지는 항상 알코올에 절어 있었고 어머니는 내가 학교에 가있을 동안 볼펜을 조립했다. 학교를 다녀오면 아버지는 집에 없었고 어머니는 나를 등지고 베란다의 산을 바라보며 담배를 태웠다. 어린 내가 엄마를 부르면 엄마는 담뱃불을 끄고 뒤돌아 보며 담뱃갑을 숨겼다. 창문을 통해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옆집이 또 부부 싸움을 했나 보다. 경찰은 우리 집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아버지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집에 들어왔는데 들어오는 족족 어머니와 다투었다. 그러했으므로 나는 아버지가 집에 오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차라리 죽어버려서 학교를 빠질 수 있게라도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머리통 속이 새하얗던 어린 나는 어머니에게 왜 아버지에게서 도망치지 않느냐 물었는데 어머니는 그렇게 살면서도 아버지가 자신의 구원이자 행복이라고 했다. 그 말을 했던 그날 새벽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유리잔으로 머리를 가격 당해 피를 흘렸다. 겨우 여덟 살이었던 나는 흰 수건으로 어머니의 머리를 꽉 눌러 감싸 안았다. 흰 수건이 순식간에 빨갛게 물들었고 나는 울음이 나왔으므로 그냥 엉엉 울었다. 붉은 피 위로 둥근 눈물이 떨어졌다. 어머니는 공허한 눈으로 현관문을 박차고 나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 구원자는 피를 나게 하지 않아. 나의 덜 길들여진 입술은 어머니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었으나 눈물에 막혀 차마 말하지 못했다.

 

 나는 집에서 일곱 정거장이 걸리는 중학교에 입학했다. 교복을 무상으로 물려받았는데 사이즈가 커 치마가 종아리까지 내려왔다. 집에 들어가기 싫었기에 늦은 저녁까지 학교 도서관에 있는 일이 잦았다. 사서 선생님의 목소리가 듣기 좋았던 것 같다. 선생님은 나에게 고전 소설을 추천해주셨다.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그 책들을 빌렸던 그날 봄에는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개나리가 펴있는 강가 벤치에 앉아 하얀 달과 노란 달을 봤다. 달이 조명이 되어주는 어두운 강에서 책 세 권을 한가하게 읽었고 달이 해로 바뀌는 것을 봤다. 푸르게 동이 트는 것을 멍하니 보고 있던 나는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치마 아래로 연한 빛의 바람이 들어와 다리가 시려웠다. 봄바람에 기침을 하며 지나가는 차들을 눈으로 좇았다. 이른 아침의 공기가 피부에 생경하게 닿았다. 


 학교가 끝나고 돌아가자 아파트 현관 앞에 경찰이 몇 명 서 있었다. 어머니가 실종 신고를 했다고 한다. 집으로 들어가자 어머니는 볼펜 조립을 하고 있었고 재떨이에서는 미처 꺼지지 못한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어머니는 내 얼굴을 보자 얼굴에 경련이 일 정도로 서럽게 우셨고 나는 이상하게도 그 모든 상황이 아무렇지 않았다. 


 열다섯의 나에게 국어 선생님은 글에 재능이 있다 하였고 음악 선생님은 음악을 해보지 않겠냐고 권유하셨다. 그 당시의 나는 내가 정말로 재능 있는 향후의 음악가일 줄로만 알았다. 취미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했다. 정확히는 한 달 동안 했다. 의미 없다. 삶에 의미가 없다. 내 삶에 내가 없다.


 열여섯의 마지막까지 미친 예술가의 꿈을 갖고 있는 미친 인간이었던 나는 엉망진창의 성적으로 여자상업고등학교에 입학한다. 줄여서 여상, 나처럼 엉망진창의 성적을 가진 애들이 가는 학교다. 


 선생님 상업고등학교에는 실용음악과나 문예 창작과는 없나요?


 못 버티고 열일곱, 그러니까 고등 일 학년 때 자퇴를 했다. 이미 죽은 술에 취한 아버지가 내 정수리에 대고 말했다. 음악은 천재들이나 하는 거다, 그것도 특출나게 미친 천재들! 


 아버지 저는 천재는 아니지만 멍청하게 미쳐있기는 한데 어떻게 안 될까요.


 아버지는 내가 열여덟 꽃 같은, 아니 좆 같은 나이일 때 뇌수막염으로 죽었다. 이미 죽은 어머니가 아버지의 흰 꽃밭 앞에서 엉엉 울었다. 너는 아비가 죽었는데 눈물도 안 나오냐 통곡했다. 


 하지만 아버지, 죽는 건 천재들, 그중에서도 특출나게 미친 천재들이나 하는 건데요. 


 나는 장례식장의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냈다. 말리는 어른들이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이게 옳은 거구나 싶었다. 술이 식도로 넘어가자 그제서야 눈물이 나왔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일체 아니었으며 어머니의 가엾음 덕분에 눈물이 나왔다. 어머니가 불쌍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사진 앞에서 잠이 들어 계셨다. 울다 지쳐 쓰러지신 것 같았다. 밖으로 나가 검은 달을 봤다. 진드기 같은 바람이 부는 가을이었다. 먼지 때문에 피부가 끈적거렸다. 문득 아버지가 왜 죽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뇌수막염으로 죽었다는 것은 안다. 세상이 왜 죽게 했을까, 왜 이제야 죽였을까 하는 의문에 더 가까웠다.)


 학교를 끝낸 후 하루하루 같은 날을 보냈다. 그때 가장 많은 글과 가장 많은 곡을 썼던 것 같다. 슬프게도 지금은 그 시절에 내가 썼던 멜로디나 가사 따위가 단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어머니는 볼펜 조립을 그만 두시고 육 미리 담배를 하루에 한 갑씩 피웠다. 눈이 벌처럼 내리는 겨울이었다. 저러다간 폐암으로 죽겠다 싶었다. 아르바이트도 해봤지만 카운터 앞에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일을 잘 안 나갔다는 뜻이다. 의미가 있어야 할 곳에 의미가 없었다.


 어머니는 내가 스무 살, 좆같음이 만개했을 때 안방에서 목을 매 죽었다. 일을 마치고 일 미리 담배를 여섯 개비 피우고 돌아갔을 때의 일이었다. 현관문을 열자 어머니가 허공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가 이해하려 눈알을 굴리다 곧 입을 틀어막았다. 악취가 거미처럼 기는 여름이었다. 어머니가 죽은 날 점심으로는 깡통 번데기를 씹었다.


 하지만 어머니 죽는 건......

 

 구역질을 참으며 뒤돌아 나온다. 무작정 역으로 달려가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싣는다. 잔고가 이천이백 원 남았다. 서울 가서 뭐 하지. 서울에 가서 서울을 가지. 터널 안에서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덜렁거리는 어머니와 쓰러지는 아버지가 신기루처럼 보였다. 승무원에게 흡연실이 있냐고 물었다. 터무니없는 질문이었다. 변기에 위액을 역류시키고 내려보낸다. 문 앞 승객에게 흡연실을 아냐고 묻는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나의 소재가 되었다. 사람들은 나의 우울을 끔찍하게 좋아한다. 가히 절망적이다. 아버지는 음표가, 어머니는 글자가 되었다. (아아, 살아있음이 곧 죽음과 같아라...) 어머니의 장례는 인터넷으로 치러졌다. 사운드 클라우드 삼 분 이십오 초. 오직 최윤자 씨만을 위한 추모곡이다. 


 서울역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입을 헹군다. 찬물만 나오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무슨 의미인지는 정확히 몰랐지만 의미가 의미를 모르는 일이야 처음부터 빈번했다. 


 서울역 대합실에서 잠을 잔다. 역 주변 모텔이 외상이 될 리가 없다. 이천 씨발 이백 원을 품고 있는 카드를 빤히 바라보다 도로 집어넣는다. 웃음이 나왔으므로 그냥 웃는다. 의미의 웃음에는 의미가 없다. 


 그릇을 씻어내는 일이야말로 정말이지 의미가 없었지만 그릇 앞에는 항상 의미가 있었다. 서울의 낡은 식당에 취직해 하루 종일 그릇만 씻어댔다. 흰 그릇이 반짝거리는 게 꼴사나웠다. 주방 이모는 어린 년이 고생한다고 험담 같은 덕담을 했다. 늙은 년이 더 고생하시잖아요 같은 말은 차마 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나의 과거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그냥 다 죽었겠거니 하는 것 같았다. 공교롭게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정말로 다 죽어버렸기 때문에. 나 또한 그 누구의 과거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냥 다 죽었겠거니 했다. 


 나의 취미는 타인에게 감정을 선사하는 것, 즉 그릇을 씻는 것이다. 돈이 벌리니 직업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때쯤 나는 음과는 전혀 동떨어진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릇들이 차라리 음악가에 가까웠다, 걔들은 서로 부딪혀서 무슨 소리라도 만들어 내니까. 


 서빙을 하는 언니는 원래 다방에서 일하던 사람이라고 했다. 사실 나이는 이모인데 얼굴이 언니였다. 홀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으면 음식 앞에서 담배 좀 피우지 말라고 꾸지람을 줬으면서 본인은 주방에서 줄담배를 피웠다. 담뱃재가 싱크대 속의 그릇 안에 떨어져 있는 것을 볼 때면 기분이 영 꺼림칙했다. 이름에 화 자가 들어가는 게 처음에는 꽃 화 자인가 싶었는데 성질이 불같아 이름의 화가 불 화 자일 거라고 생각을 고쳤다.


 정화 언니는 가끔씩 정체 모를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멍청한 나는 그냥 이름 모를 일제 담배인가 싶었는데 나눠펴보니 그게 아니었다. 


"언니 이런 건 어디서 구했어요?"

"아니 아들이......"


 정화 언니는 아들이라는 말을 얼버무리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들이라니 여러모로 망한 인생인 것 같았다. 남편이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내 인생보다 망한 것 같아 흡족했다. 웃음이 나와서 웃었다. 정화 언니도 웃었다. 울어도 되는데. 정화 언니와 나는 한참을 웃어댔다. 주방 이모가 미친년들 벌써 노망이 들었나 말하며 같이 웃었다. 웃고 있었지만 행복하지는 않았다. 처음부터 나는 행복하지도 않고 불행하지도 않고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았다. 


 식당이 단속에 걸렸다. 어젯밤 술을 한 바가지씩 마시고 간 세 명이 사실 미성년자였고 걔들이 경찰에 찔렀다는 거다. 주방 이모가 뭐 그런 놈들이 있냐고 노발대발 화를 냈고 나는 라이터에 기름이 떨어져 가스레인지로 불을 붙이고 있었다. 그때 조사 차 경찰이 들이닥쳤다. 어린 시절이 처음으로 떠올랐다. 열네 살의 봄 아파트 현관, 의미 다녀왔냐고 물으며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울던 어머니의 얼굴. 착잡함에 찌든 연기를 내뿜는다. 정화 언니는 그날 출근을 하지 않았다.


 몽롱하여 내가 몇 년을 살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한계까지 미친 인간이었던 나는 엉망진창의 인생으로 여자교도소에 입소한다. 줄여서 여옥, 나처럼 엉망진창의 인생을 가진 애들이 가는 학교다.


 교도소에 갇힌 몇 년 동안 단 한 명도 면회를 오지 않았다. 다 죽었기 때문이다. 나는 문득 내가 죽였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다 죽였던가,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그 외의 모든 사람들을. 아침에 눈을 뜨면 내 몸이 지금 깬 건지 아직 꿈 속인 건지 살아있는 건지 죽어있는 건지 죽어가는 건지 분간이 잘 안 갔다. 작은방에 단 하나 있는 텔레비전의 화면처럼 삶이 어지럽게 깜빡거렸다. 내가 그들을 죽였나? 방구석에 오도카니 앉아서 세상의 모든 타살들을 기억하며 시간을 보냈다. 


 세금으로 만들어진 밥을 퍼먹으면서 생각했다. 살아감은 죽어감과 동의어이다. 나는 죽기 위해 태어난 존재인가 하는 문장이 물음표와 함께 눈 앞에 떠오른다. 생이라는 것은 절망에 가깝다. 어머니도 의자를 차기 전 이런 생각을 했을까 궁금해졌다. 웃음이 나왔다. 입을 틀어막고 웃고 싶은 만큼 웃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는 아직 매달려 계실까. 그 자리에서 먹은 것을 모두 게워냈다. 잉태라는 것은 저주에 가깝다.


 해를 세는 것을 포기하기 직전 출소 통보를 받았다. 의미 없던 세상에 의미가 생긴다. 하지만 자의적으로 거부하기로 한다. 무의미로 살아가겠다 다짐한다. 나, 비非가 되기로 한다. 세상을 비하는 것이 되기로 한다. 


 의미의 세계는 죽었고 의미 또한 그러할 것이며 그에겐 영원히 그 누구도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비가 나, 비처럼 내리는 겨울이었다.

 나는 철문의 스물여섯 걸음 밖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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