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창궐한지 벌써 4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 나는 코로나에 두 번 걸렸고 아픈 몸보다도 지옥같은 격리 생활을 보냈다. 집돌이인 내가 산책을 꿈꾸게 만들다니 훌륭하다, 훌륭하다 코로나놈들. 


질병이 퍼진 아포칼립스 세계관이 아무리 잘 짜여졌다 한들 막상 닥친 현실 앞보다 더 무서울 수 있을까? 뉴스로 접한 사람들은 많겠지만 경제적으로 힘들어진 자영업 가게들이 늘어난 만큼 교인들이 빠져나가며 망하거나 사업 규모를 축소 시킨 교회들도 그만큼 늘었다. 교회의 목사, 전도사들이 모여 교회가 어떻게 변하고 사회에 수긍해야 하는지 논의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물론 그 중에는 세상에 환난이 도래했고 주님의 나라가 머지 않았다는 이상한 소리가 나오기도 했지만. 

그 논의 자체가 아주 무의미하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생산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나는 교회 자리에 심리 상담소를 놔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지만 어차피 한국에 교회가 사라질 것이 아니라면 사회 친화적인 모습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미 유럽은 종교에 세금을 부과하며 하나의 서비스 제공 업체로서 다루고 있다. 종교에 대한 접근이 달라진다면 분명 이후에는 보다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논의가 무색하게 종교에 대한 희열은 다양한 종말의 예언자들을 만들기도 한다. 비단 신천지가 아니더라도 이전부터 도를 믿으라거나 제사를 지내야 악운을 피해간다거나 휴거해서 천국가자는 사람들은 많았다. 코로나 전까지 이들은 일반 교인이든 종교를 믿지 않는 무종교인이든 신경쓸 이유가 없던 하나의 조롱 소재였다. 그것이 나의 목숨과 연관된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최소한 이들의 종교적 열의가 어느 수준인지 판단할 기준도 없었고 내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었다 한들 얼마나 위협이 되는지 계산을 할 척도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아주 먼 옛날 우리에게는 신천지 이전에 '도'가 있었다. 
이런 조잡함에도 넘어가는 세상에 신천지의 치밀함은 그야말로 만렙 무기가 아니었을까?
(Do you know '도'?)
(아 머야 꺼지세여)


코로나는 이런 기존의 모든 상식을 엎어버렸다. 코로나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질병이었고 이 질병을 종교의 힘으로 이겨내고자 진짜 이 사이비 종교를 계속 믿었던 이들이 신천지 교인이었다. 대구가 초토화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거나 직간접적 피해를 입었다. 사이비 종교에 대한 피해 기준이 사람들 머리에 각인된 순간인 것이다. 


공포심이든 혐오감이든 사람들은 신천지에 대한 엄청난 욕을 쏟아냈다. 아울러 이들이 고집하던 오프라인 집합 예배를 그대로 답습하던 다른 개신교 교회도 함께 비판 받았다. 신천지가 쏘아올린 이 공은 결국 기성 종교에 대한 무용론으로 번지고 전부 장사 접고 돌아가라는 본격적인 비판과 함께 범종교적인 위기의식을 불러 일으켰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인 무종교인 입장에서는 기성 종교와 신천지의 차이는 크지 않았다. 가정의 불화, 헌금을 비롯한 경제적 지원, 일부 단체장에 대한 신성화 및 숭배 등 그것이 얼마나 심하냐의 차이지 결국 근본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 시작을 공교롭게도 신천지가 끊었고 엄청난 스포트라이트와 함께 이들에 대한 비판과 분석이 시작되었다. 


저걸 왜 믿어? 바보야?


상당히 고약한 질문이긴 하다. 사실 무종교인 답지 않은 질문이기도 하다. 종교적 믿음을 제외한 자리에는 결과에 대한 원인 분석이 들어오기 마련이다. 그 모든 원인을 그들의 저렴한 지식 또는 정신적인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세상의 일이 그렇게 단순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다만 이 글에서는 저 단순한 의문이 들어오기 까지 어떠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 무종교인에 대한 입장을 대변해보고자 한다. 나나 다른 무종교인이 생각하는 결론은 하나다. 없는 줄 알면 믿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아버지 취미와 추천으로 다양한 역사를 지금도 공부하고 있다. 아버지는 집에 사회과부도 교과서를 두고 계속 읽으시고 평소 역사 다큐를 자주 시청하시거나 유튜브로 틀어 놓고 다니실 정도로 그 관심이 높으신 분이다. 나 역시 아버지를 따라 다양한 역사 지식들을 공부해왔고 그런 나에게 중동의 메소포타미아는 모든 역사의 원천이었다. 

메소포타미아 -> 페니키아 -> 그리스/로마 -> 유럽 으로 흘러가는 역사의 흐름을 살펴보면 종교는 그 안에서 꽤나 큰 맥락을 차지하고 있다. 문화의 흐름은 그들이 믿던 토착신의 믿음과 결을 함께 한다. 당시 중동에서 믿던 신은 바알을 비롯한 메소포타미아의 토착 신과 이후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게 되는 오리지널 버전의 신과 여신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양 때를 몰고 다니며 특이한 수염을 기르고 언어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던 유대의 야훼가 주류를 차지하기에는 너무나 강한 상대들이 많았다. 


아프로디테의 모티브가 된 이슈타르 여신은 현대에 와서 사랑과 풍요의 여신으로서 아주 예쁘게 꾸며지고 있다. 
(이것이 당신의 이슈타르입니다)
(뭐야 ㅅㅂ 돌려줘요)


그 기나긴 종교 주류 쟁탈전을 읽으며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공인, 교회의 세속화, 이후 니케아 공의회를 거쳐 현재의 기독교 경전이 완성되기까지의 정치적 판단을 알게 된다면 왠만한 사람들은 야훼라는 신을 하나의 신화 속 신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된다. 다분히 어떤 신들 중 유명한 신이 아닌 기나긴 역사를 통해 만들어진 신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고 이러한 과정은 마치 네오가 빨간약을 먹는 과정과 유사한 것이다. 

당신이 그리스 로마 신화를 만화책으로 읽었는데 갑자기 과거로 떨어져 헤라 여신의 제사를 제대로 지내지 못한 사람 목을 자르고 사지를 찢는 장면을 보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당신 입에서 바보들인가? 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우리가 그들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판단하지 못하는 일에서 발생하는 오류라고 할 수 있다. 같은 논리로 그들이 우리를 보기에 훨씬 더 바보같은 이교도들일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혹자는 얕은 지식으로 무언가 판단하기에는 아직 인간이 미숙한 존재라 할 수 있겠지만 얕은 지식으로 무언가 믿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것 만큼 코미디도 없을 것이다. 종교라는 것이 피장파장의 오류에 굉장히 취약한 것은 그것이 증명이 아닌 믿음의 단계에서 오랜 세월이 지나도 단 한 걸음도 진보하지 못했음을 시사한다. 종교에 대한 비판은 아니다. 다만 무언가를 믿을 때 사람은 그 믿음에 대한 내용을 계속 되짚어보는 것이 정신 건강에 더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어떤 신흥종교의 할아버지가 영생할 수 있다고 말하면 다시 생각해볼 여지는 생기지 않을까.


청년들이 많이 힘들다고 한다. 근데 그래서 종교에 의지한다기에는 같은 환경에서 자라도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청년들도 많았다. 같은 환경인데 그렇게나 다르다면 비판을 할 여지는 충분히 있다. 물론 과하면 좋지 않다지만. 

SAT 점수와 국력을 연관시킨 미국의 보고서는 이후 과학력 증진을 통해 미국이 달로 우주선을 쏘아보낼 수 있게 만들었다. 기초과학, 역사에 대한 지식이 중요한 것은 비단 국력만이 아닌 사람들 개개인에 대한 위협으로부터도 그들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들이 아주 바보였고 그래서 온전히 그들 탓이라는 것은 계속 말하지만 아니다. 다만 그들이 좀 더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 뒤에는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지식이 현대의 종교 권위에 너무나 짓눌려온 탓이 있다. 

본인의 삶이 힘들어 종교에 의지하는 것은 심리 안정적인 측면에서 분명한 효과가 있다. 다만 맹목적인 믿음이 그들을 구원해주지 않을 것이라 설명해주지 않는 세상이 결국 그들을 더 깊은 심연으로 가게 만드는 것은 문제가 있다. 제도권으로 들어와 통제 가능한 수준의 종교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면 신천지는 앞으로도 더 생겨난다. 믿음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본인이 무엇을 어떻게 믿는지에 대한 판단은 필요하다. 그 자의적인 판단 능력도 갖추지 못한 청년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다는걸까? 이거야 말로 사회적인 문제 아닐까?


끝으로 그들이 지금 당장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지내고 있다면 그들을 구원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본인 의지에 달려 있음을 말해주고 싶다. 사람이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사는 것은 믿음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시야가 좁은 것이다. 위기 상황일수록 사람은 더 좁게 생각한다고 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터널 효과라고 한다. 위기가 닥쳐올 수록 더 건강하게 사고하고 더 넓게 바라보자. 

2020.03 한국미소문학 등단 / 입시, 입사 지원 자기소개서 첨삭 문의는 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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