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거 주의


진짜 많은 일을 해냈다. 

구멍난 신발도 일년여만에 드디어 수선맡겼고, 하루동안 무려 세번 외출을 했다. 오전에는 친구 생일용 케이크를 찾으러나가는 김에 또다른 친구와의 점심약속을 클리어했다. 진이 다 빠진 채 짐을 두고 다시 나가 친구들의 생일선물을 샀다. 직원이 나를 너무 초조하게 만들어서 귀가 윙윙거리고 힘이풀려서 가게에 주저앉아버렸다. 친구가 날 끌고나가 아무데나 앉혀놓고 내가 찍어놓은 선물을 대신 결제해서 나와줬다. 그리고 병원에서 약을먹고 쓰러져있다가 심기일전 씻고 짐을 싸서 또 다른 친구들과의 약속에 나갔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는 구하고싶던 신발을 아주 마음에드는 조건에 직거래까지 했다.
일주일만에 내 방을 정리하고, 옷을 걸고, 청소기도 돌리고, 버려야할 것을 싹싹 모아 분리수거까지 끝냈다. 방에 누워 내친 김에 핸드폰 정리도 했다. 지워야 하는 사진들을 미련 없이 지우고, 그다음에는 카톡방과 연락처 정리를 했다. 오잉. 초등학생 시절 문제의 그 친구 번호가 아직도 있었다. 특이한 이름이라 가명을 뭐라고 붙여야 할지 모르겠다. Y로 하자.
물론 그 번호는 지금 번호가 아닐 것이다. 내 카톡에 그 친구로 추정되는 사람조차 보이지 않으니까. 그 친구와의 일을 얼마 전에 누구와 통화하다 언급한 적이 있었다. 나는 기분이 좋고 빨리 뭐든 치워버리고 싶다. 핸드폰에 저장된 Y의 연락처명은 '?' 였다. 지금부터 주절주절하는 이야기는 길고 듣기싫은 내용일 거다. 

모든 학교가 그러하듯 내가 나온 학교에는 특이한 친구들이 많았다. 오늘따라 까르띠에 목걸이가 내 목을 조인다 ... < 이런 친구가 정말로 현실에 존재했다! 부모님이 자주 학교에 왔으면 좋겠어서 자주 말썽을 피웠고, 부모님이 지갑에 넣어준 수표도 다 부질없다며 그걸로 종이비행기를 접어 운동장에 날려보내는 아이가 우리 반에 있었다니까요. 그런 학교였다. 그런 애들이 반마다 한둘 있었다. 내가 살던 동네는 학교가 초밀집된 동네여서, 그 자그마한 동네 안에 학교만 6개가 있었다. 그래서 같은 초등학교 출신은 그대로 고등학교까지 가는 루트였다. 나는 그 동네에 초등학교 3학년 때 편승했다. Y와 짝꿍이 된건 4학년 때의 일이다. 

그 나이는 남자여자 체급차가 없고, 그래서 그 때의 나는 안면을 후려갈기거나 머리채를 휘어잡거나 정강이를 까는 식으로 Y보다 우위에 있었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덤볐다. 우리는 티키타카가 잘 맞는, 표면 상의 앙숙 정도였다. 6학년 때 또다시 같은 반에 배정되었으나, 상황은 많이 바뀌어있었다. 나혼자 까무잡잡하고 깡마른 여자애였고 그 애는 악바리깡다구와 더러운 인상으로 툭하면 싸움질을 했다. 공공연하게 삥을 뜯고 다녔다. 눈가에는 어디서 얻었는지 모를 흉터가 그새 생겼다. 중학생들이 학교에 와서 Y를 불러냈다. 
소문에 의하면 Y는 좀 잘 사는 집 아이라고 했다. 그건 사실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으나, 별로 아버지답지 않은 아버지를 가지고 있는 건 확실했다. 어떤 부자 친구의 지갑이 없어졌고, 그 아이는 Y가 범인이라고 확신했다. 소문을 확인하기 위해 양측 부모님이 소환되었다. 나는 그때 교무실 안에서 화분에 물을 주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뛰어온 Y의 아버지는 그대로 Y의 따귀부터 때렸다. 그 애는 뒷짐을 지고 묵묵히 맞았다. 

여자아이들 모두가 Y를 기피했지만, 나는 그 애가 심하게 다혈질일 뿐 나쁜 애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지갑은 아마 Y가 훔친 게 아닐 거라고 말하고 다녔다. 내가 아는 Y는 남의 지갑을 훔치느니 정면에서 삥을 뜯을 남자애였다. 어떤 사람을 판가름하는 정보는 때로 단편적 요소만으로 충분해지기도 한다. 역시 초딩 때, 한 바가지머리 남학생이 있었다. 전교에서 나만 그 남자애와 놀았고, 내가 없을 때면 바가지는 어디선가 괴롭힘당했다. 어느 날 반에 들어갔을 때, 나는 Y가 교실 뒤 쓰레기통 옆에서 바가지에게 가드를 올리는 법을 알려주는 걸 봤다. Y는 이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사내새끼가 가오가 있지." 그래서 나는 이걸로만 Y를 판단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중학교 1학년이 되었을때도 우리는 같은반이었고, 상황은 더 바뀌어 있었다. 나는 피부만 좀 하얘졌다뿐 여전히 깡마르고 작은 찐따였고, 나같은 애들이랑 놀았다. 하지만 Y는 말그대로 리터럴리 일진짱이었다. 수금의 스케일은 대대적으로 발전했으며 담배는 예사였다. 복도를 걸으면 덩치큰 남자애들과 치마가 속바지길이만한 여자애들이 걔한테 깍듯이 인사를 하더라. 나는 이제 그 애와 말도 못붙이는 지경이 되었다. 우리는 노는 물이 달랐고 애초에 친구도 아니었고 서로의 머리끄덩이나 당기는 사이였으니. 하지만 희한한 건, 그 애는 중학교에 가서도, 침을 찍찍뱉는 쫄바지 남중생들을 대엿씩 달고 걸어오면서도 나에게 손인사를 했다는 거다. 덕분에 걔가 달고다니던 따까리들은 한동안 내가 뭐라도 되는 포지션인 줄 알고 Y없이도 나에게 폴더인사를 날렸다. 내 찐따친구들은 킬킬 웃으면서 그 무리를 '인사맨'이라 칭했다. 알슈야 저기봐! 인사맨이 온다!

2학년이 되었고 나는 지속적인 성폭력때문에 학교생활이 너무너무나 고달파졌다. 같은 반에 어떤 미친 1년꿇은 남자가 있었는데 진짜 지랄맞은 인간이라 아무도 제지를 못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내가 타겟이 됐고(이런 일에 이유가 어딨나!) 나는 매일 학교가는 게 힘이 들었다. 꽤 큰일이었다. 졸업할 때 자기가 잘못했다는 장문의 문자를 자기손으로 나한테 보낼 정도였으면 큰일이었겠지? 다들 조심스레 묻어주기만을 원했고, 나는 아직까지도 소주병파편에 얼굴이 찢어졌으면서 에...합의할게요...라고 하는 띨빵휴먼이니 그때도 분명 에...그렇게 할게요...라고 했을 것이다. 그 가해자는 지금 경찰준비를 한다고 들었다. 끼룩끼룩 아무튼간에.

학교에서 그 남자를 마주칠 때마다 눈 앞이 하얘졌고, 반에 들어가면 그 사람이 자리에 없기를 빌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냥, 이정도면 그리 큰 일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그당시에는 다들 여학생들 옷갈아입는거 구경하고, 복도에 누워서 치마 속을 구경하고 그랬으니. 그냥 심한 장난인 것 같기도 했다. 그 남자는 수틀리면 아무나 잡아팼고 수업 중에 선생들 얼굴에 침을 뱉으며 싸우는 새끼인데, 그는 나를 때린 적이 없었으니까. 그냥 사람들 앞에서 무릎 위에 좀 앉히고 치마 속에 손 좀 넣는 정도였고 어떤 날에는 하교를 늦게늦게 시키는 정도였으니, 그래도 날 협박하고 때리지는 않았으니 괜찮은 거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전혀 괜찮지 않았다. 알지도못하는 남학생들에게 내내 듣지 않아도 되었을 호칭으로 불려서, 나는 하마터면 내 이름도 까먹을 뻔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모든게 딱 끊겼다. Y였다. 문제의 가해자와 Y는 둘 다 학교에서 한따까리 거하게 하는 놈들이었고 다만 노는 파가 달랐을 뿐이었다 물론 학교의 메인은 Y였고... 어디까지 어떻게 듣게 된 건지는 모르겠으나 그 애가 뭔가 한마디 한걸로 안다. 모든게 강약약강이었음을... 머지않아 Y가ㅋㅋㅋ그 장면이 아직도 기억난다. Y가 양손을 주머니에 넣고, 내 반 앞문을 꽝 밀었다. 녀석...피대신 럽실소가 몸속에서 흐르고 있었던 걸까? 알슈 어딨냐? 하길래 나는 호달달 종잇장처럼 앞문으로 나갔다. 그때 Y는 윙크를 빵 날리더니, 오빠 멋있지? 했다ㅋ 아정말 싫다... 

멋은 좆도없었지만 엄청 고마웠지 뭐. 선생님도 못 도와준걸 해준건데. 정말로 우리는 친구사이도 뭣도 아니었다. 단둘이 이야기해본 적도 한 번 없는데 뭘까...? 사람간의 연을 중시하는 놈인가? 한번 주먹좀 주고받은 사이끼리는 뭔가 무언의 관계가 형성되는 건가? 피에 인소가 흐르는 놈답게 의리는 영원하다 이거야? 아무튼 Y는 한방에 나를 도와줬다. 
그 뒤로 Y는 용무가 있을 때만 가끔, 헐레벌떡 우리 반에 뛰어와 나를 불러댔다. 나 한번만 도와주라. 옆학교 내 친구 남소 받을 생각없냐? 같은 말이나 해댔지만. 그애는 아주 스무스하게 나의 지갑을 열었다. 야 나 이번 달 돈이 덜 모였다. 돕고 살자 친구야! 넌 내가 특별히 배춧잎은 안 받을게. 얼떨떨하게 매번 돈을 줬다. 하지만 한 번도 억지로 준 적 없었다. 오히려 좀 웃겼고 기꺼이 삥을 뜯겼다. 선배들한테 상납해야 하는 날이 다가오면 더 신경질적으로 돌아다녔지만, 그 때도 내가 나 돈없어! 한마디 하면 눈알을 부라리거나 침을 찍 뱉기는 해도 암말없이 휘적휘적 돌아갔다. 

학생 주제에 빤짝빤짝한 시계를 차고 다니고, 뒤에 패거리를 열댓명쯤 달고다니던 Y는 결국 졸업만 겨우겨우 하고는 같은 동네 고등학교 노선에서 이탈하여 대안학교로 사라졌다. 거기서 자퇴를 했다고 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무려 트위치 스트리머와 사귄댄다. 아 웃긴 인간. Y의 번호를 언제 받았나 생각해보니, 윙크를 빵 하고 날릴 때였다. 그 때 걔가 "나 번호 바꿨음 어쩌구" 하길래 나 원래 너 번호 없었는데...했더니 몹시 발끈해했다. 그길로 걔가 핸드폰을 가져가 번호를 찍어줬던 거였다. 

전국 모든 중학교가 이랬는지 주변에 좀 물어보고 싶다. 이게 중학생들의 일상다반사였는지. 같은 중학교애들이 내 친구관계의 전부였고, 선생님들은 허구한날 "너네들은 말야 완전 범생이인 거야. 다른 지역가면 이정도는 축에도 못껴요 애송이애새끼들아 다엎드려"라고 했기 때문에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중학교시절 이야기를 지금의 친구들한테 꺼내지는 못했다. 위에 했던 이야기를 순화된 버전말고 제대로 들은 사람은 한 명밖에 없다. 근데 이제는 속에서 내보낼 때가 된 것 같다. 심장이 좀 벌렁대기는 해도 괜찮다. 다만 궁금하다. 

당사자도 못느낀, 베인줄도 몰랐던 상처가 알게모르게 내 언행을 제약하면서 그렇게 평생을 따라붙었다. 동창들을 만나고 싶다. 그때 날 손가락질했던 동급생은 나의 또다른 절친에게는 착하고 건실한 영화감독 지망생으로 기억된다. 그에게는 내가 어떻게 남아있을지가 궁금하다. 그 때를 기억하는지. 내 생각을 한 적 있는지. 나만 기억한다면 그건 너무 억울하다. 너무 억울해서 아무나 붙잡고 지랄하고싶다. 너 나 기억해? 나 걔잖아. 그때 넌 어디서 날 보고있었어? 하긴 기억하기에는 너무 사소한 일이지?

아직도 중학생들에게는 똑같은 풍경이 반복되고 있을까? 내가 학교다니던 때보다 더 심할까? 아직도 내가 나온 학교에서는 담장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체육창고 안 농구코트 앞에서 누군가 두들겨맞고 그 반대쪽 뜀틀 뒤 초록매트에는 누군가가 눕혀지고 있을까? 그러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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