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잡아도 돼요?"



위원은 일일이 말하지 말고 마음대로 하라고 했지만 나는 여전히 조심스러웠다. 내가 손을 잡고 싶은만큼, 위원은 나를 안고 싶어질 게 분명한데도 위원은 내가 손을 잡아 달라고 할때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는 듯 내 손을 잡아주었다. 이 다정함에 기대고 싶어서, 나는 눈을 감았다. 



"왕, 자요?"

"아니요."

"키스하고 싶어요."



위원은 솔직했다.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까지 원하는지에 대한 구분이 명확해서 나는 조금 대답이 망설여졌다. 내가 무엇을 망설이는지 모를리가 없는 위원이 누워있는 내 옆으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보이는 부드러운 시선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키스까지만 할거에요. 그 이상은 안해요."

"......."

"싫으면 싫다고 하면 돼요. 억지로 할 필요는 없어요."



위원과의 키스는 좋았다. 위로와도 같았던 위원의 첫 키스와, 격정적이었던 두번째 키스도, 달콤하기만 하던 세번째 키스도, 또 그 다음도 모두 좋았다. 예밍과의 첫키스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간절하고 애달팠다. 예밍과의 첫날 밤은, 그 마지막 밤은 아프고 슬펐다. 나는 딱 하루만 욕심낼 수 있는 예밍과의 관계에 울면서 매달렸다. 아픈게 아니라 기뻐서 우는 거라는 내 거짓말을 예밍은 그대로 믿었다. 



"나는...당신하고 자고 싶다고 생각해요."

"....왕."

"언젠가는 꼭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아직은..아닌거죠."

"네."



단호한 내 대답에도 위원은 잡고 있던 손을 놓거나 나를 향한 따뜻한 시선을 돌리지는 않았다. 지금이라도 그와 키스를 하고 사랑을 나눌 수는 있었다. 만약 그가 그러기를 원한다면, 나는 그렇게 해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소중한 그의 마음을 아무렇게나 대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내게 진심인 것 만큼, 나도 진심으로 그에 대해 생각해주고 싶었다.



"그래도 괜찮으면, 위원. 키스해도 돼요?"

"이리 와요."



나는 고개를 돌려 나를 향해 팔을 뻗어 품을 내어주는 위원을 바라보았다. 평소에는 잠옷을 입지 않는다는 위원이 오늘 내 잠옷을 사면서 같은 걸로 골랐다는 파란색 잠옷을 입고, 따뜻하게 나를 바라봐주고, 선하게 웃고 있었다. 



"얼른."



몸을 앞으로 조금 움직이자 위원이 순식간에 내 앞으로 다가와 나를 품안으로 끌어당겼다. 갑갑할 정도로 세게 끌어안은 위원의 다정한 온기가 머리에 잠시 닿았다가, 내 이마에 닿았다가, 뺨으로 내려왔다. 눈물이 날 것 같다고 하면 위원은 내 눈가에 한참을 키스를 이어갔다. 눈물이 흐르면 위원의 입술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갔다. 



"가능하다면 나는 당신을 이렇게 작게 만들어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싶어요. 언제나 볼 수 있게. 언제나 입맞출 수 있게."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다니고 싶어요."

"손만?"

"아니요. 이렇게 날 안아주는 넓은 가슴도 있어야 해요."



조금 장난을 담은 대답에 위원의 낮은 웃음소리가 기분 좋게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위원을 올려다보자 이제는 눈물이 마른 눈가에, 뺨에, 입술에 여러번 입을 맞춰왔다. 그 부드러운 감촉에 기분이 좋아서 조금 졸린 것도 같았다. 손을 놓은 대신 그의 허리를 껴안고 있어서 등 뒤로 손을 꼼지락거리자 위원이 조금 더 길게 입술에 키스를 했다. 



"왕. 졸려요?"

"조금요."

"언젠가 그때가 오면,"



그때. 나는 위원이 말하는 그때가 언제가 될 지 알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당장 내일이 될 수도, 한달 후가 될 수도, 어쩌면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때가 되면, 나는 당신을 더 사랑하고 있을테고, 당신도 내게 온 걸 후회하지 않게 해줄게요."



그의 말에 다시 눈물이 솟았다. 나는 예밍을 사랑하는 걸 후회한 적이 없었다.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그를 사랑하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라서 그저 사랑하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아마 그래서 지금 위원도 나를 사랑하는 일 밖에는 할 수 있는게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자꾸 울어요. 위원의 다정한 목소리에 더 참기 힘든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의 뜨거운 입술이 내 눈물을 닦아주고 열이 오르는 눈가를 식혀주고, 내 뺨을 촉촉하게 적셔주듯 쓰다듬었다. 



"지금은 조금 더 짠 것 같아요. 아까는 달았는데."

"그게 뭐에요."

"정말, 당신의 눈물은 계속 다른 맛이 나요. 감정의 상태마다 눈물의 맛이 다르다고 한 걸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데.."



진지한 표정으로 내 눈물의 맛을 이야기하는 위원의 말에 웃음이 나왔다.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꾹꾹 눌러 닦고 고개를 들자 아쉬워하는 표정의 위원의 표정에 또 웃음이 나왔다. 위원의 길게 휘어지는 눈매가 기분 좋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키스.."



내가 키스해도 되냐는 말을 끝내기도 전에 위원이 나를 집어삼킬 것처럼 내 입술을 물었다. 조금 거칠게 느껴질 정도로 세게 잡아당겨진 입술 사이로 위원이 내 혀를 그의 입속으로 빨아들였다. 나를 꽉 끌어안고 있던 위원의 팔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가자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등 뒤로 잠옷 끝을 조금 잡아당기자 위원이 입술을 떼고 나를 내려다보았다.



"미안해요. 힘들었어요?"

"..조금만...천천히요."



천천히라는 내 말에 위원의 얼굴에 천천히 미소가 떠올랐다. 다정한 그 미소가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나는 고개를 들어 그의 입술에 내 입술을 맞대었다. 조금 전의 키스로 조금 촉촉해진 그의 입술의 부드러움이 좋았다. 천천히 내 입술을 핥는 느낌도, 따뜻하게 빨아당기는 느낌도 너무 좋았다. 내 뒷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손길이 좋았다. 내 등을 어루만져주는 손길이 좋았다. 눈을 감고 있는 얼굴 위로 위원의 입맞춤이 쏟아졌다. 그의 애정이 넘치고 흘러서 내 가슴 깊숙이 스며들어오는 기분이 들었다.



다물린 입술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하자 위원의 뜨거운 호흡이 입안으로 흘러들어왔다. 위원의 혀가 닿는 곳마다 핥아지고 빨아당겨졌다. 천천히 그의 움직임에 맞춰가는 나를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주고 있었다. 미끌거리는 느낌의 혀가 뒤엉키고 끈적한 소리가 호흡에 섞여 크게 들려왔다. 점점 열이 오르는 얼굴을 만져주는 손길에 잠깐 눈을 떴다 감았다. 내 모든 걸 삼켜버리고 싶은 듯 점점 더 초조하게 입안을 헤집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떨어지지 않고 오랫동안 키스를 했다. 이대로 잠이 들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부드러운 키스를 하다가도 어느새 힘이 빠진 나를 알아차리면 입안 구석구석이 다시 빨아당겨졌다. 숨이 차오르면 그는 내 얼굴 곳곳을 핥고 깨물다 다시 입술을 물었다. 



"그만 깨물어요."

"왜요. 아파요?"

"내일 일어나면 나 못 알아볼 것 같은데? 얼굴이 이상해져서."



위원이 어이없는 소리를 들었다는 듯 피식 웃으며 다시 내 턱을 깨물었다가 귀까지 혀를 내어 핥기 시작했다. 귓가에서 들리는 그 끈적한 소리가 너무나 자극적이어서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지금 당신이 얼마나 예쁜지, 사랑스러운지, 아무도 몰라야해요."



지금 말고 내일이요. 내 투덜거림에도 위원은 내 뺨을 핥고 물기를 계속했다. 아프지는 않으니까..  내가 체념한 듯 고개를 끄덕이자 다시 기분 좋은 위원의 웃음이 들려왔다. 



언제 그의 품안에서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게 잠이 든 나는 새벽에 눈을 떴을때 나를 바라보고 있는 위원과 눈이 마주쳤다. 어둠 속에서도 나를 보고 있던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내 눈꺼풀 위로 키스를 했다. 마치 내가 눈을 뜨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왜 안 자요..."

"당신이 눈을 떴을때 제일 처음 보이는 게 나였으면 해서."

"......"

"다시 자요. 깨워줄게요."

"아침에 내가 먼저 일어나서..."

"네."

"깨워...주려고 했어요."

"왜요."

"....키스...하....고 싶어서요...."



나는 다시 밀려드는 졸음에 다시 잠들어버릴 것처럼 온 몸에 힘이 풀렸다. 느릿하게, 제대로 문장을 완성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머릿속이 흐려졌다 맑아지기를 반복했다. 무거워서 들어지지 않는 눈꺼풀을 들어올리기를 포기한 내가 우물거리며 대답하자 한숨과도 같은 위원의 숨소리가 들렸다.



"손..."



손을 잡아달라고 하기도 전에 위원이 숨이 막힐 정도로 세게 나를 끌어안았다. 가슴이 닿고 배가 닿았다. 내 등 뒤로 둘러진 위원의 팔이 강하게 나를 조이며 껴안았다. 얼굴 위로 다시 쏟아지기 시작한 입맞춤에 나는 손을 잡아달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





함께 살기 시작한 후로 위원은 정말 매일 아침 나를 회사에 데려다주고, 저녁에 나를 데리러 오기를 반복했다. 함께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TV를 보거나 이야기를 하다가 같은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나를 데리러 오지 못하는 날에는 어김없이 그의 운전기사와 차를 보내 내가 집으로 오는 내내 나와 전화통화를 했다. 이런 나의 변화를 가장 먼저 눈치챈 건 웬웬이었다. 



"너 연애하지?"

"...왜?"

"다 보여. 매일 언제 사라졌는지도 모르게 사라지고. 저녁엔 연락도 안되고. 요새 살도 좀 찐 것 같은데?"



머쓱하게 웃는 내 반응을 긍정적으로 해석한 게 분명한 웬웬은 애인을 소개시켜 달라고 하루종일 졸라댔다. 얼굴을 볼때마다, 메신저로, 전화로 계속해서 졸라대는 웬웬에게 나는 무엇부터 말해야 하는지 망설여졌다. 웬웬이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되지는 않았다. 아마도, 웬웬은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른 성향인 건 알고 있었을 테니까. 고등학교 이후로 여자친구를 사귄 적도, 데이트를 한 적도 없는 걸 아는 웬웬은 언제부터인가 내게 누군가를 소개시켜 주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웬웬 몰래 서둘러 퇴근하려고 나선 나는 건물 입구에서 결국 웬웬에게 잡히고 말았다. 운전기사가 기다리는 게 보여서 어쩔 수 없이 나는 웬웬에게 붙잡힌 채 로비 구석으로 끌려갔다.



"좋은 사람이야?"

"응."



겨우 나를 붙잡아 놓고도 웬웬의 질문은 고작 하나였다. 좋은 사람. 위원은 좋은 사람이었다. 그의 다정함은 넘어진 나를 일으켜 세워주고 더러워진 무릎을 닦아주었다. 그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걷기 시작한 나는 다시 달릴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럼 됐어. 우리 예쁜 왕왕, 좋은 사람 만났으면 됐어."

"웬웬..."
"그래도 궁금하니까 다음에 꼭 한번 보여줘. 응?"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웬웬이 갑자기 나를 꽉 끌어안았다. 나보다 키가 작고 마른 웬웬이 왜인지 나를 품어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따뜻하게 나를 껴안았다. 고마워.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웬웬의 등을 토닥이며 나는 위원을 생각했다. 그에게 달려가 안고 싶었다. 보고 싶었다.






"웬웬."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몸이 굳었다. 웬웬 역시 나와 똑같이 놀란 표정으로 내 뒤를 쳐다보고 있었다. 천천히 뒤를 돌아본 내 눈 앞에 예밍이 서있었다. 어떻게...왜...여기에...



"왕이랑 할 얘기가 있어."

".....난 없어. 먼저 갈게. 웬웬, 내일 봐."



서둘러 돌아서서 나가가려는 팔이 붙잡혔다. 예밍이 내 손목을 잡고, 내 몸을 돌려세웠다. 그 차가운 얼굴에 얼어붙은 몸이 움직여지질 않았다. 왜 이렇게 말랐어, 양예밍. 왜 이렇게 낯설어... 두려웠다. 내가 모르는 사람이었다. 나는 이런 양예밍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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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Way가 거의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같이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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