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 기억은 대략 중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끔찍하게 나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나의 성장 과정에서 내가 가장 갈망한 것은 나 스스로가 나 자신을 이해하고 나를 받아 들이는 일이었다. 뻔한 말을 쓰자면 사춘기였다. 그 때에 나는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서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던졌다. 어두운 방 안에서, 스탠드 불빛만을 켜 놓고, 눈 앞에 하얀 종이 하나만 펼쳐 둔 채로, 나의 '싫은' 부분을 찾아 종이를 빼곡히 채워 내려갔다. 종이가 모자를 정도로 싫은 나를, 나는 앞으로 수십 년의 남은 인생을, 끔찍하게 싫은 채로 데리고 살아야만 하는 거였다. 그거야말로 가장 끔찍한 일이었겠지. 그래서 내가 찾아 낸 답은 그랬다. 이런 내게도 분명 좋아하거나 잘 하는 일이 있겠지. 아니면 자신 있는 일이라거나. 그렇다면 그걸 하는 내가 되자. 좋아하고 잘 하는 걸 하고 있는 나라면, 이런 나라도 조금 쯤은 좋아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그 다음으로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내가 잘 하거나 좋아하는 일을 찾는 거였다. 사실은 그것만으로는 완성되지 않았다. 좋아하는 걸 찾아 낸 후에도 '정말로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나는 늘 금방 포기해 버리는 사람인데,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같은 엄청난 불안감에 차마 '이걸 하고 싶다'고 입 밖으로 꺼내어 말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사실은, 죽고 싶었는데 죽고 싶지 않았다. 이 세상을 앞으로 수십 년을 더, 살아갈 자신이 없었는데 그렇다고 애써 '죽는 것'을 선택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럴 용기도 없었고 그럼으로써 주변인들이 내가 그만큼 괴로웠더라는 걸 알게 되는 것도 싫었다. 그러니 그냥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스르륵 사라져버리기를 원했었다. 그러니까, 공기 같은 게 되고 싶었다.


 며칠 전에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의 나는, 내가 만들어 내는 것들이 너무 만족스럽고 좋은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사실은 예전에도 나는 내가 만들어 내는 것들을 좋아했었는데, 그렇다면 그 때의 나는 정말로 나를 싫어 했던 게 맞을까? 하고. 나는 아주 아주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 했고, 책 속의 세계를 사랑했다. 그러니 거기에서 얻은 언어들로 내 세계를 표현 하는 것이 가능했다. 글 쓰기를 좋아하고 잘 하는 어린이였다. 그렇게 쓴 글은 사실, 그 누구보다 내 마음에 가장 강하게 와 닿는 글이었다. 나 스스로가 너무나 싫어 싫은 점들을 종이에 빼곡히 채워 내려가던 그 시절에도, 나는 끊임없이 무언가의 언어로 내가 매 순간 느낀 감각, 매 시간 떠오른 생각들을 노트 한 권에 가득히 채워 나갔다. 모든 걸 기록하고 싶었다. 내가 느끼고 생각한 그 모든 것들을. 아주 작은 종이 쪼가리에도 내가 문득 떠올라 적은 문장이 있으면, 버리지 못하고 모았다. 아무튼 끊임없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그 흔적들을 모아 두었다. 기록으로써 남겨 두고, 내가 다시 꺼내어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게끔 하고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꿈은 당연히 헛된 거였고, 불가능한 거였다. 모든 순간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도, 그 기록을 전부 보관하고 있겠다는 것도. 그래서 나는 이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다. 흘러 가 버리는 조각들이 아니라 정제된 형태로 이 시간에 새겨 둔다. 그리고 반 정도만 농담을 섞어 나는 나를 가리켜 '천재'라 말하곤 웃는다. 근데 정말이지, 나는 내 세계를 표현 해 내는 데에 아주 능숙한 사람이고, 그 결과물 또한 내 세계의 표현물로써 훌륭한 걸. 그리고 정말로 십 년을 훨씬 넘는 시간 동안, 나는 진짜로 내가 표현해 낸 나의 세계들을 사랑해 왔는 걸. 내가 스스로를 천재라고 생각하는 건 그야 말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부분이 달라지긴 했지만, 그 마음만은 아주 아주 오래도록 익숙한 걸.

 그 때와 달라지지 않은 게 있다면, 나는 나의 언어를 끊임없이 찾아 모으고 나 스스로에 대해 깊게 탐색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정말 그랬다면, 계속 그래 왔다면, 나는 역시 그 때에도 나를 싫어하는 게 절대 아니었던 게 아닐까? 그랬을 리가 없던 게 아닐까?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았을까? 끊임없이 나를 살펴 보고, 그 안으로 빠져 들고, 나를 표현 하고, 그 표현해 낸 것들을 내가 그 어느 누구보다도 깊게 사랑했더라면 말이다.



 그리고 정말로 그렇다면, 그런 나를 내가 싫어한다고 착각하게 만든 건 과연 누구였을까. 대체 누가, 내 세상을 부정하고 그걸 '틀린 것'이라 손가락질 하며, 틀린 답이니까 고쳐야 한다는 말을 끊임없이 들려줬던걸까. 그저 좀 다른 것일 뿐이라고, 절대 나쁜 게 아니라고, 그런 말을 들려주지 못했던 사람은 대체 나에게 왜 그랬던 걸까. 나는 대체 왜, 스물 여러 해를 살고도 '왜 나는 평범한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가지 못해 혼자 이러고 있지?'하며 자책 했었던 걸까.


 요즘은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주변 온갖 곳의 사진을 찍으며 생각한다. 역시나 나는, 내 시선이 닿는 모든 것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하던 사람에서 한 발자국도 변하지 않았다는 걸. 일상이 흘러 가는 공간과 그 시간 속에서 굳이 프레임에 담아 기록으로 남겨 놓고 싶은 것을 기어코 찾아 내고 나면, 그야 내 일상을, 그리고 나를 도저히 사랑하지 않을 자신이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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