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김독자는 제멋대로다. 언제나 너를 위한다는 같잖은 소리를 하며, 의사는 묻지도 않고 구원을 행한다. 시체 특유의 창백한 피부로 관 속에 누워있는 김독자는 이미 유중혁에게 있어서 너무나 익숙한 장면이 되었다. 그가 살아 돌아올 거라고. 정확한 믿음의 근거조차 없다. 단지 저번에도 그랬으니까. 그는 언제나 제멋대로 나를 떠나고 또 돌아오니까. 그럴 때면 느껴지는 답답한 불안은 정말이지 이제 지긋지긋했다.


'중혁아, 우리는 세계를 구할 수 있다. 알지?'


하지만 우습게도 유중혁은 그를 놓을 수 없었다. 얇게 접히는 눈꼬리와 흰 얼굴. 마음을 읽은 것처럼 때맞춰 나온 문장. 김독자는 언제나 그랬다. 마치 속을 읽는 것처럼 불안해하고 있자면 다가와서 툭, 등을 밀친다. 조금의 장난기가 서린 웃음과, 중혁아. 부드러운 음색이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인 김독자를 놓을 수 없게 한다. 중혁아. 그에게 그렇게 불릴 때면 평화롭던 이전이 생각난다. 사랑했던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자잘한 일상들.

유중혁은 짙은 피로감이 드리운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흐린 하늘과 반짝거리는 성좌들. 그 속에 구원의 마왕은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옆에 놓여있던 검을 단단하게 붙든 유중혁은 조금 구겨진 코트 자락을 털어내며 허공에 뜬 메시지를 바라봤다.


[성좌, '구원의 마왕'은 <스타 스트림>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너를 놓을 수는 없다.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라. 김독자.

결국 유중혁은 이름 세 글자에 제멋대로인 구원에게 묶였다.


-


"중혁아. 잘 지냈어?"


하하. 표정이 무섭네. 하얀 코트 자락에 눈이 부셨다. 너. 성큼 다가가니 저도 제 잘못을 알기는 하는지 슬쩍 뒷걸음질을 친다. 그 모습을 보는데 왠지 모르게 창백한 꼴로 관 속에 눕혀있던 김독자가 생각이 나서 기분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김독자. 유중혁은 뒤를 향하려는 어깨를 붙들고 얼굴을 살폈다. 피로와 고통이 스며든 얼굴. 하지만 얼굴색만은 여전히 얄미울 정도로 허여멀건 했다.

유중혁의 커다란 손이 제 얼굴을 붙잡고 있는 것이 불편했는지 기다란 속눈썹이 빠르게 깜박거렸다. 저, 중혁아? 김독자는 무언가 찔리는 게 있거나 잘못한 일이 있으면 유중혁을 그렇게 불렀다. 마치 유중혁이 그 이름에 꽁꽁 묶여버린 것을 아는 사람처럼.


"왜 그래.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어?"


근데 이거 어쩌지. 형은 조금 피곤한데. 어린아이를 달래는 투. 그래놓고는 눈을 꾹 감는다. 아마 유중혁이 그에게 주먹을 날릴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유중혁은 주먹을 조금 더 꽉 쥘 뿐 어떠한 행위도 하지 않았다. 이제는 유중혁도 김독자를 이렇게 대해서는 도저히 붙잡아 둘 수 없는 것을 알아서 그랬다. 김독자. 벌써 몇 번째로 이름만 부르는 것인지. 하지만 제가 중혁아. 그 세 글자에 묶여버린 것처럼 그도 제 입에서 나오는 김독자에 묶이길 바랐다.


"너는 언제나 제멋대로다."


누가 마음대로 너를 희생하라 했지? 동료랍시고 다가와 놓고는, 지금을 살아가라 죽지도 못하게 막아놓고는, 김독자는 금세 유중혁에게서 벗어났다. 지금까지 총 두 번의 죽음과 수많은 이들의 죽음. 한 번 더 내가 죽더라도 네가 또 있을까? 1회차에도, 2회차에도 없던 주제에 갑자기 나타나고. 너가 정말로 죽어버리면 다시는 너를 만날 방법도 없으면서. 그러면 나는 너를 내 기억 속에서만 찾아야 하는데.

김독자. 너를 묶어놓아야 할까. 아니면 차라리 그냥 내 손으로 너의 목숨을 끊어줘야 할까. 너는, 어떻게 하면 그 빌어먹을 구원을 멈출 수 있을까.


"중혁아."


나는 안 죽어. '우린' 세계를 구할 수 있다. 알지? 또. 또다. 끝없이 이어지던 생각들이 김독자의 말 한마디에 뚝 끊겼다. 어깨에 가볍게 닿은 주먹이 유중혁의 의식을 위로 끌어올렸다.


"...개소리"


하하. 우리 중혁이도 참. 빙글빙글 웃는 낯이 예전보다는 덜 재수 없어 보였다. 아니, 조금은 괜찮게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제정신이 아니기는 하군. 유중혁은 그 능글거리는 낯짝을 보고도 저 녀석의 얼굴이 조금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래 너는 죽지 않을 거다. 죽어서는 안 된다. 다음 회차에 네가 없을 수도 있다고, 그런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존재하는 이상 김독자는 죽을 수 없었다. 덤으로, 내 눈을 이렇게 만들어놓은 이상 김독자는 이 세상 어디로도 도망갈 수 없었다. 유중혁은 꽉 붙들고 있던 김독자의 어깨를 놓아주며 입꼬리를 조금 올렸다.


"아니."


아주 잘 알고 있다. 우린 세계를 구할 수 있다. 아닌가? 유중혁의 입에서 나온 문장에 크게 뜨인 눈이 유중혁의 잘난 얼굴을 비췄다. 뭐, 뭐 지금 유중혁이 뭐라고. 혼란스러운 얼굴을 보자니 묘한 만족감이 가슴을 채웠다. 김독자가 열심히 저를 놀려먹을 때는 이런 기분이었겠군. 싶기도 했다.


"우리 중혁이는 이럴 애가 아닌데...?"


어어, 아니. 유중혁은 잔뜩 당황해서 주위를 둘러보는 김독자를 어깨 위로 들어 올렸다. 잠깐만 중혁아. 야, 유중혁!


"잘못한 주제에 말이 많군."


너는 일단 조금 벌을 받을 필요가 있다. 어디 한번 네가 아끼던 꼬맹이들에게 꽁꽁 둘러싸여 보라지. 버둥거리는 몸을 꽉 붙잡고 걸으며 유중혁은 김독자를 제대로 묶어둘 방법들을 하나, 둘 떠올렸다. 일단은, 좋은 방법이 생각날 때까지는 건방진 꼬맹이들한테 이 녀석을 맡겨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동안은 가만히 있도록."


몸을 내려놓자마자 달려드는 꼬맹이들이 조금 거슬리기는 했지만 일단 유중혁은 얌전히 물러났다. 이 모든 것은 완벽하게 김독자를 제 옆에 묶어두기 위해서. 어쩐지 조금 웃음이 날 것 같았다.


-

요새 전독시가 유명하다길래 봤는데 너무... 너무라 급하게 연성... 중혁이 캐붕이 조금 있지만 그래도 도저히 안쓸수가 없어서ㅠㅠㅠ

애들아... 너네는 너네 둘만 모르는 연애를 하고 있어ㅠㅠ 

@cu0907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