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의 이런엔딩을 들으며 쓰게 된 글입니다. 같이 들으면서 읽으면 더 이입이 잘 되실 것 같아요.

팀록이 사귀고 있었다는 배경이 있습니다.






"팀장님 들어가보겠습니다."


"그래."


"야근하지 마시고 오늘은 꼭 들어가셔야합니다?"


"알았어."


들어가겠다고 했으면 빨리 들어가기나 할 것이지 퍽이나 그러시겠습니다~라는 찌릿한 시선을 보내며 문 앞에 버티고 서있는 제 팀원을 보자 괜스레 찝찝한 기분이 들어 한숨과 함께 짐을 정리했다.

별 수 없이 짐을 싸고 일어나니 어느덧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문 앞에서 손을 파닥이고있다. 그런 팀원을 보자 하루종일 울렁이던 속이 조금 가라앉는 기분이 들어 작게 웃자 동그래진 눈으로 눈치를 살피는 팀원의 표정이 보였다.

뭐가 그렇게 신기한지 흘끔거리며 작게 히죽이는 녀석이 알고있는 누군가와 겹쳐보여 가라앉은 속이 다시끔 울렁였다.


"팀장님! 들어가세요!"


"그래.."


 쓰디 쓴 커피의 향이 손끝에 베어가는 겨울이다. 상냥함이라곤 없는 쌀쌀맞은 상사일 자신에게도 살갑게 다가오는 팀원들이 어색해 뒷목을 쓸며 시선을 돌리길 일년이 되어간다. 어색하던 팀장님이라는 호칭도 서서히 적응되었고 헛발질하는 윗대가리들을 씹으며 쌓여가는 일을 처리하는 것도 익숙해졌다.

얕게 쌓인 눈을 구둣발로 헤치며 집 근처 편의점에 들러 작은 조각 케이크와 소주를 몇 병 계산했다.

익숙하게 넘겨주는 검은 봉투를 달랑이며 집으로 향하는 길, 비인지 눈인지 헷갈리는 잔눈이 흩날리다 서서히 눈이구나 싶은 굵은 눈발이 쏟아져내린다. 검은구두 속 발이 서서히 시려와 걸음을 빨리 했다.

짧은 네자릿수 번호를 치고 열린 문안은 어둡고 고요해 손을 뻗어 불을 밝혔다.

달칵이며 켜진 형광등 아래 텅빈 방안을 둘러보다 이미 젖어버린 옷부터 벗어 정리했다. 편안 옷으로 갈아입고 방금 사온 케잌과 소주병을 꺼내 한잔 두잔 마시며 술때문인지 울렁이는 눈가를 가만히 눌렀다.

소파에 기대있던 머리가 툭하고 굴러 서랍에 닿았다.

다시끔 울렁이는 속에 고개를 돌리자 아무것도 적힌 것 없는 휑한 달력이 눈에 들어온다.

아무것도 적은게 없음에도 눈에 박히는 오늘 날짜에 기어코 한방울의 울렁임이 흘러나왔다.

남은 울렁임을 술과 함께 삼키고 살짝 떨리는 손은 술때문이라고 되뇌이며 서랍을 열자 그 안에 담긴 한뼘크기의 작은 액자 한개가 눈에 들어왔다. 환하게 웃는 익숙한 얼굴들을 바라보다 멍해지는 기분으로 살며시 액자를 쓸어내리자 차가운 유리의 감촉이 정신을 깨웠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조심스럽게 액자를 다시 넣어두고 펼쳐놓은 술병과 안주거리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고 샤워를 했다. 차가워진 손 끝에 온기가 돌아오는걸 느끼며 가만히 눈을 감고 흐르는 물을 맞았다.

따끈한 김이 올라오는 머리를 털어내며 벌려놨던 조촐한 술자리를 뒤로하고 침대에 누웠다.

오늘은 자신의 첫 사랑이자 첫 연인이었던 이수혁의 생일이다.

그 사실을 머릿속으로 밀어넣으며 아무렇지 않은 하루를 보내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회사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그들의 기일과 달리 그들 개개인의 생일은 모르니까 괜찮으려 애쓰는 자신의 모습을 아무도 몰랐을 거라고 생각하며 제발 아무렇지 않았길 바라며 눈을 감았다.

시큰해지는 코끝에 괜히 인상을 찡그리며 베게에 얼굴을 파묻고 잠을 청했다.





소란스러운 사람들 사이에서 시선을 들자 그 곳엔 방금까지도 생각하고 있던 팀장의 모습이 보였다.

시끄럽던 주변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세상 모든 것이 무성 영화처럼 빛을 잃고 그 가운데 서 있는 단 한 명만이 살아있듯 생생하게 빛을 내며 제게 손을 흔들었다.


"록수야, 오랜만이다."


절로 숨이 멈췄다. 기억하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은 익숙한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고 성큼 다가갔다. 나는 분명 당신의 장례를 치뤘고 그 후 많은 시간을 혼자서 버텼는데 지금 당신이 눈 앞에 있을 수 가 없는데 분명 말이 안되는데 어쩌면 그 시간들이 다 꿈이었던게 아닐까 어쩌면 그 모든 것들이 다 지독한 악몽이었고 지금 내 앞에 있는 저 사람이 현실이지 않을까 터져나오는 울음을 막지 않으며 당장 저 사람을 손에 잡아야 안심할 것 같아서 내가 정말 무서운 꿈을 꿨다고 소리치고 싶었다.


"팀장... 팀장! 우리 XX구역에 가면 안돼요. 우리 이번엔 정말 가지말고! 우리 이번엔! 지금이라도! 안늦었어요! 우리 이번엔... 제발..."


깨어날까 무서워 차마 얼굴도 보지 못하고 옷깃만 부여잡고 소리치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익숙한 그 목소리로 그는 작게 웃었다.


"록수야, 우리 오랜만에 데이트나 할까? 내 생일이잖냐."


심장이 쿵하고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꿈이구나. 천천히 시선을 올려 팀장을 보자 여전히 서글서글한 그 표정으로 입꼬리를 올리며 빌어먹게도 다정하게 내 눈가를 쓸어주었다.


"록수야."


"팀장.."


"이제는 네가 팀장이잖냐."


작게 웃으며 하는 말에 울컥하고 다시 눈물이 흘렀다.


"누구덕분에 빌어먹을 팀장자리 달고 고생하고 있습니다."


"새끼.. 이제 직급 같다고 아주 맞먹네."


"알게 뭡니까. 왜 갑자기 나타나서, 왜 이제서야 나와선.."


"막내야. 너 워낙에 대충먹고 살길래 한 번 와봤다."


"누구때문인데..."


"록수야, 잘먹어야지. 잘먹고 잘자고 잘쉬고. 살아남는게 최고라고 했잖냐. 기왕 사는거 잘살아야하지 않겠냐? 응? 우리 록수, 너는 행복해야지."


"겨우 그런말 하러 온겁니까? 이 빌어먹을 이수혁 같으니.."


"록수야, 좀 더 시간이 지나면 분명 다 괜찮아 질거다. 네 탓이 아니야. 우리들 나름 잘 지내고 있어."


저 인간의 말을 멈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운 목소리가 계속 듣고 싶었지만 이어질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분명 말을 다 끝내면 사라져버릴 꿈이기에 차라리 말을 못하게 하면 더 오래 있어주지 않을까. 무슨 말을 할지 너무 뻔해서 원망이 튀어나갈 것 같았다.


"너는 충분히 행복해질 자격이 있어. 힘들었으니까 분명 너를 사랑하고 아껴줄 사람이 꼭.."


"이수혁!"


그 뻔하고 뻔한 말이 나오자 참지못하고 멱살을 잡았다.


"내가 당신 입으로 그런 말을 들어야해?"


"..."


"그 말이 더 아픈건 알기나해?! 내가 어떤 마음인지 당신이!"


"..."


"당신이 아냐고..."


"미안하다.. 곁에 있어주고 싶었는데 내가.. 나도.. 네 곁에.. 있고 싶었는데.."


"야... 이수혁..."


저 사람이 울음섞인 목소리를 내는건 처음 들었다. 죽는 순간까지도 사는게 최고라며 웃어주던 인간이 기어이 흘리는 슬픔에 다시끔 눈물이 흘러 넘쳤다.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이자 어느새 정리한건지 다정한 목소리로 기어이 말을 잇는다.


"하아.. 록수야 내가 곁에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사는게 쉽지가 않네.. 그래도말이다. 나는 네가 살아준게 기쁘다. 널 살릴 수 있어서 기뻤어."


목 안이 따가웠다. 지금 입을 열면 저 목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것 같아 숨을 참으며 천천히 얼굴을 들어 마주보자 여전히 다정한 표정으로 나를 보는 그가 보였다.


"팀장.. 내가 사랑받을 수 있을까요? 팀장말대로 나도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요?"


"새끼.. 당연한거 아니냐..."


"질투는... 안합니까?"


"당연히.. 하겠지... 그래도 말이야. 기왕사는거 신나게 살다와라. 한 80년 느긋이 인생 즐기고 와야 나랑도 신나게 지내지 않겠냐?"


"허.. 무슨 자신감입니까?"


"록수야, 나랑도 사랑해보자. 지금말고 아주 나중에 우리 둘이 같이 살자."


"정수놈이 조용히 놔둔답니까?"


"야, 말도마라 정수녀석 이미 우리 옆집 예약해놨다. 옆집 안비워주면 세들어서 들어올거라고 하더라."


"별수 없이 옆집은 내줘야겠네요."


"우리 앞집 뒷집 이미 다 정해졌다. 팀원들이 제비뽑기로 지들끼리 다 정했어."


"허.."


"그러니까 다른 생각 말고 해보고 싶은거 다 하고 맛있는것도 다 먹고 와라."


"기다려줄겁니까?"


"그래, 이 형님 믿지?"


"형님은 무슨.."


"이놈이!"


여전히 시원스럽고 거칠게 머리칼을 헤집는 손이 좋았다. 슬슬 끝이구나 라는 느낌이 들자 조금이라도 더 얼굴을 보고 싶어 쳐다보자 휘어지는 눈꼬리가 다정했고 얼굴을 감싸오는 손이 다정했다.

입술이 닿기까지 아주 조금


"록수야 다음에 만나면 우리 꼭 데이트 하는거다?"


"예, 고기먹으러가죠."


"그래, 너 먹고싶은거 내가 다 사줄테니 잘지내고 있어야한다."


"예."


조금은 거친 입술이 닿아오고 벌어진 입술사이의 뜨거운 숨이 섞여왔다. 눈물인지 모를 것의 약간의 짠맛을 남기며 그 품안의 온기를 기억하고 기록했다. 이 꿈에서 깨어도 절대로 잊지 않게, 잊을 수 없게.

사라져가는 꿈을 느끼며 조용히 깊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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