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네이밍 + 리메이크 

* 본 글은 특정 종교에 대한 부정적 묘사가 있으므로 주의 하시기 바랍니다.




 뷔의 집안은 신을 믿고 살았다. 그렇다고해서 그가 신실하다는 건 아니다. 뷔는 신을 믿지 않았고 목사인 아버지는 그를 불순하다 말했다. 신을 믿어야 행복하다며, 말하는 아버지는 사람을 힘들게 한다. 강요받는 믿음이, 신으로 시작해 신으로 끝나는 삶이 끔찍한 줄도 모른채. 

 아버지가 신에게 바치는 사랑을 반이라도 줬다면 이렇게 괴롭진 않았을 텐데. 그랬다면 내면의 결핍을 느끼고 제 몸을 바닥으로 떨어트리는 일도 없었을 텐데. 다락방 창문을 통해 떨어진 그를 살려준 것은 커다란 나무였지만, 아버지는 신의 은총이라 말했다. 

 뷔는 아버지를 포기하기로 마음 먹었다. 미쳐가는 아버지를 보기가 괴로워 기숙사 학교의 팜플렛을 건넸고, 그는 말없이 다른 팜플렛을 내밀었다. 어디든 상관 없어, 그곳으로 가기로 했다. 아버지의 얼굴을, 신을 사랑하는 얼굴을 보지않으면 좋았다. 

 어머니의 슬픈 얼굴을 모른 척 하며 떠나는 그림자에게 아버지는 중얼거렸다.

  

  "얘야, 너는 네 형처럼 되면 안된다."


 악마의 이름은 아버지의 이름이겠지. 아버지는 신이 그렇게 좋을까. 견고한 십자가 앞에서 발기하는 것처럼 기도하는 그는 죽을 때 까지 신과 섹스할 인간이다. 신의 사랑을 전도하면 가족은 고독에게 방치하는 그. 모순적인 사람이라 욕하고 헐뜯어도 나아지는 건 없었다. 가족들과 멀어져 오로지 혼자가 되었기에 평온을 얻었다. 그 평화를 아버지 생각으로 버리기엔 시간이 아까우니 신경쓰지 않으려 한다.  

 다만, 발끝에 몰리는 벌레들을 밟으며 신을 모독하는 작은 행위는 유일한 낙이었다.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비밀스러운 행위. 


 

God bless me



  "뷔, 저기 봐."


 바닥을 뚫어질 듯 바라보던 뷔가 S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S의 손가락 끝에는 그가 서 있었다. 누군가 했더니. 이 학교의 자랑스러운 인물이자 모든 이들의 선망의 대상인 그. 검은 베스트와 새하얀 셔츠, 그리고 부드러운 갈색 머리카락. 전형적인 잘난 외모를 가진 진을 S는 좋아했다. 다른 이들도 그를 좋아하긴 마찬가지였지만 뷔는 그가 기이했다. 

 타인의 시선을 받은 인간이라면 으레 부끄러워하거나, 자만심에 빠지거나, 괴로워할텐데 그는 그러지 않는다. 고고하게, 그렇지만 친절한 정체 모를 모습에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 그를 관찰하여도 보이지 않는 저 부조리가 뷔는 궁금했다. 조화롭지만, 타인과 선을 유지하는 절대적인 태도가 뷔를 감탄하게 했다. 학교의 왕처럼 군림해도 그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진은 특별한 것 같아."

  "특이한게 아니고?"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있어. 그게 너무 멋있지 않니?"


 특이하다. 진에 대해서 물어보면 뷔는 이렇게 말했다. 황홀한 표정을 짓는 S를 보며 뷔는 다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안쓰러운 S. 진과 친해지기 위해서 했던 S의 노력을 알고있는 뷔였다. 잔인하지만, 그가 진이랑 친해질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굳이 입 밖으로 꺼내 그를 비참하게 만들고 싶지 않기에 조용히 있었다. 


  "난 진이랑 너랑 친해졌으면 좋겠어."

  "왜?"


S의 말에 뷔가 미간을 찌푸렸다.


  "아름다운 둘이 만나면 얼마나 좋겠어. 난 너랑 친구가 됐을 때 무척이나 기뻤는걸? 그건 진도 마찬가지일거야." 


 뷔는 답할 수 없었다. 생각해본적도 없는 전제였다. 굳이 말한다면 진이랑 친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물이 다르다. 그뿐이었다. 


  "고마워 S. 그리고 넌 진이랑 친해질 수 있을거야 분명히."


 친해지기는 개뿔. S의 생각이 바보같지만 굳이 떠들진 않았다. 

 뷔가 그에게 해주는 말은 항상 같았다. 가식이 양껏 담은 말을 S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베시시 웃곤한다. 아마도 다시 꿈에 부풀어 그와 친구가 되는 미래를 상상하겠지.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도 모른 채. 그의 환상이 깨져 절망하지 않기를 바랐다. 

 뷔는 고개를 들어 다시 진을 바라봤다. 알 수 없는 인간. 진에 대해서 뚜렷하게 말할 수 없다. 복합적인 감정과 형언할 수 없는 말들이 섞이며 진이라는 존재를 만들어낼거라고 뷔는 생각한다. 사람이지만, 사람이 아닌. 낯선 존재처럼 느껴진다. 

 결국 뷔는 다시 고개를 내렸다. 발치에 있는 벌레들에게 시선을 모아 밟았다. 역시 이 짓이 가장 재밌었다. 진도, S도 모르는 비밀스러운 행위이기에. 



•۰•



 

 뷔는 교정 벤치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넓은 잔디에서 놀고 있는 학생들과 높은 갈색 건물을 지나다니는 발소리. 모든 게 맞물려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줬다. 이런게 평화라고 뷔는 생각했다. 아버지가 없어 나올 수 있는 풍경이자 안식. 


  "뷔, 무슨 책 읽어?"


 누군가 말을 걸어 책에서 눈을 뗐다. S인가 싶지만 목소리가 달랐다. 고개를 들자 보이는 건 단정하게 웃음을 짓고 검은 베스트와 새하얀 셔츠를 입은 진이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상대에게 당황한 뷔가 미간을 찌푸렸다.

  

  "세잌스피어..."

  "재밌는 거 읽네. 옆에 앉아도 돼?"


 대답을 듣지 않은 채 진은 옆자리에 앉으며 미소를 지었다. 왜 왔지. 뷔는 의문을 가지며 그의 옆모습을 바라봤다. 깨끗하고 단정한 그의 얼굴엔 평소에 있는 타인과의 선은 보이지 않았다. 


  "뷔, 남자와의 정사를 어떻게 생각해?"

  "뭐?"

  "남자랑 섹스하는 거."


 부끄러움은 전혀 보이지 않는 목소리롤, 마치 아침 식사를 묻는 것 처럼 그는 말하고 있었다. 금욕적이고 그런 것 따위 모르는 잘생긴 샌님처럼 생긴 주제에. 죄악이라고 일컫는 동성애를 말하는 그에게 뭐라고 답해야할지 뷔는 알지 못했다. 결국 입을 다물고 대답하기를 거부했다. 진은 어깨를 들썩이며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었다.


  "여기 애들 중에도 분명히 한 애들이 있을거야."

  "왜 나한테 그런말을 해?"


 진이 하는 말, 모든 걸 뷔는 이해하지 못했다. 섹스, 정사. 단어로는 알고 있지만, 상상해보지 못한. 심지어 사내와의 결합을 감히 떠올리지 못했다. 진과 이런 이야기를 나눌만큼의 거리가 있는 상대도 아니기에 뷔는 진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눈에 띄게 당황한 표정에 웃는 진의 모습에 뷔는 기이함을 느꼈다. 

  

  "너라면 가능할 것 같아.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야."

  "너랑 섹스하고 싶다고."


 진은 담담하게 말 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짓단을 털었다. 뷔에게 손을 흔들고 저 멀리 걸어갔다. 쟤가 뭐라고 한거지. 뷔는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진이 했던 말을 곱씹었다. 섹스, 너랑. 교미하고 싶음을 저렇게 대놓고 말하다니. 말의 의미는 정확하게 전달되었지만, 왜라는 의문을 감출 순 없었다. 

 진이 지나갈때마다 파도처럼 인파가 갈라졌다. 그리고 뷔를 보며 수군대고 있었다. 뷔가 진과 대화를 나눈 걸 보고 몇몇 아이들이 찾아와 물었지만 뷔는 입을 열지 않았다. 충격을 받아 굳어진 몸을 S가 부르지 않았다면 아마도 계속 앉아있을게 분명했다.

 당황한 모습으로 걸어가는 뷔의 머릿 속은 혼돈이었다. 진의 말로 인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뷔의 일상은 확실히 달라졌다. 정신을 차리지 못해 S는 물론, 다른 학생들, 선생까지 한 소리를 할 정도였다. 그 변화한 일상을 보며 진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 비웃었겠지. 오직 뷔만 아는 진의 은근한 시선은 마치 온 몸을 애무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딘가에 말할 수 없는, 원하지 않던 비밀스럽게 얽히게 된 순간이 사람을 힘들게 했다. 


  발 끝에서부터 들끓는 감정을 뭐라 정의할 수 있을까. 


 생각에 잠겨서 파묻힐때 까지 진은 뷔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아주 많이, 자주, 오랫동안. 타인에게 절대 침범하지 못하게 하는 영역을 스스로 뷔에게 주었다. 차마 거절할 수 도 그렇다고 좋아할 수도 없는 뷔는 난감하기 그지 없었다. 

  누군가의 질투, 누군가의 선망. 누군가의 조롱. 짧은 시간 안에 이 모든 걸 감내해야 했던 뷔는 지치고 있었다. S가 언제 친해진 거냐고 질투를 드러낼 때마다 뷔는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지만 그는 믿지 않았다. 조금씩 일그러져가는 S의 표정을 보며 뷔는 슬퍼했다. 안타까운 S의 질투는 생각보다 힘들게 다가왔다. 그래서 진을 피하지만 그럴 수록 그는 더 다가와 괴롭게 만들었다.


  "재밌잖아, 왜 피해."


이 한마디 말로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왜 그러는거야?"

  "하고 싶으니까. 네가 취향이라서."


 점점 더 지쳐 생각이 한계 끝으로 몰린 순간, 뷔는 진에게 따졌지만 대답은 간단했다. 한밤 중, 뷔를 불러 함께 달을 보자는 로맨틱함을 가진 것 치고는 꽤나 직설적인 감정이었다. 생각할 가치도 없는 그런 마음. 뷔는 미간을 찌푸렸다. 


   "나랑 섹스하는 게 싫어?"


진의 질문에 뷔는 고개를 저었다.


   "죄악이잖아."

   "성경에서나 그렇지. 넌 네 아버지도, 신도 싫어하면서 잘만 따르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아버지의 대한 마음을, 신의 대한 마음을 꿰뚫어버린 그의 말에 저절로 얼굴이 굳어졌다. 비밀이었는데 들켜버렸다. 


   "생각해봐. 신이 하지 말라는 짓을 할 때가 가장 짜릿한 법인데."

   "...궤변이야."

   "그 또한 신의 뜻에 반하는 행위지."


 그 말에 뷔는 눈을 감았다. 무엇을 말하는지 곱씹고, 곱씹어 더 곱씹는다. 그 순간, 진이 다가와 뷔의 팔을 잡으며 속삭인다. 


   "재밌으면 됐지."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힘이, 열기는 뷔를 전율케 했다. 형언할 수 없었던 들끓는 감정이 욕망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걸 그때 깨닫게 되었다. 신을 등지고 아버지에게 모욕을 줄 수 있는 장난같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쾌감. 그저 욕구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동물적인 감각. 성경에는 없는 그런 오묘한 것들. 

 두렵지만 끌린다. 무서웠지만 나쁘지 않았다. 너와 나 사이에 사랑은 존재하지 않으니, 그 또한 신이 말하는 말씀에 맞지 않겠지. 

  

  "괜찮니?"

 

 뷔는 고개를 끄덕인다. 허락이 떨어지자 진이 다가와 입술에 입을 맞추고, 몸을 더듬어간다. 정신이 희미해지며,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의 기도드리는 목소리, 분노한 말, 그리고 진의 미소. 숨이 가빠와 얄팍하게 신음을 뱉으며 그가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신은 존재할까?"


뷔의 물음에 진은 고개를 저었다.

 

  "신 따위 좆까라 그래."


 그 순간 뷔가 본 것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보여줬던 그림. 신의 마지막 만찬이 그려져있는 그림에 질척한 그림자가 덮어진다. 뷔는 혼절하듯 정액을 뿜어내고, 진을 바라본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그는 이전까지 볼 수 없던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보여주고 있었다.


  "재밌다."

 그 한 마디가 완벽하게 들렸다. 

 



•۰•


  

 그날 이후 그와의 관계를 이름 내릴 수는 없었다. 연인도 아닌, 그렇다고해서 완전한 타인은 아닌. 그의 영역안에 발을 들이민 뷔는 모든 이들의 부러움을 샀다. 누구는 어울린다며, 누구는 분수에 안 맞는다며 말하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뷔는 진을 여전히 특이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S와는 사이가 멀어졌지만, 자연스러운 일이라 여길 수 밖에 없었다. 

 달이 모습을 감춘 기숙사, 아무도 없는 삭막한 교실, 차가운 호수 앞 풀숲, 어디서든 틈만나면 서로는 섹스를 했다. 하루, 하루. 기간이 늘어나 들키고 말았지만. 꼬리가 길어 잡혀버렸다. 몸을 섞는 행위를 안타깝게도 S에게 들켜버렸다. 그는 경악으로 물든 얼굴을 하며 뷔를 비난했다. 그대로 선생에게 달려가 죄를 고해버린 S는 질투가 가득한 시선이었다.


  "넌 누구한테 질투하는거야?"


 뷔가 묻자, S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난 그런적이 없다고. 

 진이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뷔는 학교에서 쫒겨났다. 분노한 얼굴로 뷔를 데리러 온 아버지의 손은 매서웠다. 아버지는 신의 벌이 있을 거라며 입을 열어 말한다.


  "기도하면 된다. 기도하면 용서해주실거야."


 뷔의 손목을 잡고 강제로 무릎을 꿇린 채 신에게 간증하는 아버지를 보며 느끼는 감정은 단 하나뿐이다.


  "신 따위 좆까라 그래요. 아버지."


 뷔는 죽는다면 이런 것일까 하는 아픔을 느끼며, 어두컴컴한 다락방에 갇히게 되었다. 그곳, 어린 날 뷔가 죽음을 기도했던 그곳이었다. 무심도 하시지. 역시나 아버지는 신이 전부였다. 귓가엔 성가가 들리고 성경의 페이지들은 찢어진 채 눈처럼 흩날려져 있었다. 몸이 아팠다. 이대로 성격에 파묻혀 죽지는 않을까 두려웠다. 신으로 끝내는 삶은 싫었다. 

 그가 보고 싶었다. 고통같은 시간 속에서 뷔는 진의 잔상을 찾아냈다. 아버지는 그를 죄라고 말했지만, 뷔는 그렇게 생각치 않았다. 그가 그리운건지. 그 자체가 그리운건지. 아니면 몸이 그리운건지. 뚜렷하게 말할 수 없지만 뷔는 그가 너무 보고싶었다. 몸을 섞고 함께 있고 싶었다.

 아름다운 결속이 이대로 끊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눈을 감고 그를 그려내며 그를 뒤쫒는다. 신음을 내뱉으며 그의 대한 생각으로 얄팍한 목숨을 이어나갈 때, 소리가 들렸다.


  "뷔, 구하러 왔어."


 뷔를 살려줬던 나무 위에서, 진은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한다. 달에 비추는 얼굴이 낭만적이었기에, 어째서 닫혀있는 창문 사이로 그의 목소리는 뚜렷하게 들리는 지 중요하지 않았다. 진은 손을 내민다. 굳게 닫혀있던 창문은 어느새 활짝 열려 잇었고, 높디 높은 다락방이 이제는 두렵지 않았다. 뷔는 눈을 다시 감았다 뜬다. 고통, 불안은 없어지고 이제 행복이 남아있을 것이다. 

 뷔는 진에게 손을 내민다. 

 

 


Boy Meets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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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법 검사는 나중에..^^;

봐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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