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우히로 전력 60분 '반지'로 참여했습니다.






미하마 코우지는 며칠 째 고민 중이었다.



이 반지를 어떻게 전해 주어야 하지?



야외에서 벌이는 이벤트는 공인으로서 너무 위험했고, 그렇다고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하며 내미는 단골 선물처럼 건네 주고 싶지도 않았다. 코우지는 자신의 기타 케이스 안쪽 포켓에 담긴 반지 케이스를 꺼내 만지작거렸다.


히로의 반지 사이즈는 전부터 알고 있었다. 코우지의 새끼 손가락 사이즈에 맞추면 얼추 히로의 약지에 들어맞았다. 언젠가 티비 프로그램에서 연인들의 날을 맞아 귀금속 가게들이 즐비한 거리의 연인들과 인터뷰를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오버레 세 사람도 각자 반지를 손가락에 끼워보았다. 코우지의 손가락은 기타 때문인지 뼈마디가 굵고 길쭉해서 셋 중 가장 사이즈가 컸다. 키처럼 손가락 굵기도 코우지, 히로, 카즈키 순이었다. 히로의 것은 새끼손가락에라도 끼울 수 있었지만, 카즈키의 약지에 맞는 반지는 코우지의 새끼 손가락 두 번째 마디에서 턱하니 걸렸다. 나중에 애인과 함께 오면 할인해 주겠다는 가게 주인의 말에 다 같이 웃었었다.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불현 듯 그 기억이 되살아나 덕분에 코우지는 고생하지 않고 빠르게 반지를 고를 수 있었다. 그 때 촬영하며 들렀던 가게가 어디인지 기억나지 않아서, 히로와 함께가지도 않았기 때문에, 혹시 쓸데없는 스캔들이라도 날까 안경부터 마스크, 모자까지 중무장을 하고 나갔기에 별다른 할인을 받을 수는 없었지만 케이스에 담긴 반지를 볼 때마다 뿌듯함이 차올랐다.


히로와 사귀게 된 것이 졸업한 뒤로 꼬박 5년. 룸 셰어라는 허울 좋은 핑계로 동거를 한 것은 2년째에 접어들었다.



‘안정기라고 해야 하나…….’



코우지는 반지를 만지작대며 생각했다. 사이가 나빠진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요 즈음은 기억에 강렬히 남을 만한 에피소드가 적었다. 의식하지는 않았는데 그것도 이 충동의 원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히로의 생일이라거나, 만난 지 며칠 째 되는 날이라거나 그런 거창한 날은 아니었다. 그저 해마다 돌아오는, 따뜻하게 불어오는 봄바람을 타고 여기저기서 연인들을 위한 광고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기였다. 그런 것들은 코우지의 마음도 쉽게 뒤흔들었다. 때마침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곡들도 전부 로맨스를 주제로 한 것이어서 악상이며 가사가 술술 떠올랐다. 그럴 즈음 뉴스를 보기 위해 클릭한 웹페이지에서 쥬얼리 광고가 팝업으로 떴다. 평소라면 조금 신경질적으로 창을 닫고 말았을 텐데 특별 세일 문구 아래로 늘어 선 여러 디자인의 반지가 코우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문득 히로에게 반지가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돌이라는 이유로 여태 액세서리에 큰 관심을 주지 않았던 것이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홀린 듯이 여러 사이트를 둘러보다가 성에 차지 않아 직접 반지 한 쌍을 사온 것이 며칠 전. 다시 처음의 문제로 돌아와 코우지의 고민은 이 반지를 히로에게 어떻게 전해줄 것인지였다. 기념일이 아니니 명분이 없었고, 프러포즈를 이렇게 충동적으로 하고 싶지는 않았다. 코우지가 머릿속으로 그리는 완벽한 프러포즈는 불쑥 반지를 사고 나서 결정하는 것으로 시작해서는 안되었다. 우선 히로와 해외에서 일주일 정도 보낼 연휴 계획을 잡고 이국적인 풍경 아래에서…….



“코우지, 집에 있었어?”

“어, 어?!”



코우지가 언제가 될지 모를 프러포즈 계획을 머릿속으로 다시 그리는 사이 작업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히로였다. 코우지는 반지 케이스를 황급히 밀어 넣었다. 오전부터 스케줄이 있다고 해서 늦게 돌아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금방 끝난 모양이었다.



“현관에서부터 불렀는데 대답이 없길래, 없는 줄 알았지.”

“아, 좀 생각 하느라.”

“마감이 곧이랬던가. 힘들겠네~”

“꼭 그렇지도 않아.”

“하핫, 역시 코우지다워. 난 오늘 스케줄 다 끝났으니까 방해 안하고 쉬고 있을게. 저녁 같이 먹자.”



히로는 코우지를 방해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문가에서 얼굴만 내비치고는 문을 닫았다. 모처럼 히로도 집에 있는데 작업 때문에 같이 쉴 수 없다니, 코우지는 좀 억울한 기분이 되었다. 히로의 말대로 저녁시간을 사수하기 위해 코우지는 기타를 내려놓고 컴퓨터 화면에 집중했다.




***




정신을 차리니 5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코우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주 쓰는 채소와 조미료 몇 가지가 거의 다 떨어졌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저녁시간을 맞추려면 지금 빠르게 마트에 다녀오는 편이 좋았다. 코우지는 몇 시간 만에 작업실 문을 열었다. 집안이 조용하다 했더니 히로는 소파에서 구겨진 자세로 잠들어 있었다. 콘솔 게임기 전원이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보니 게임을 하다가 잠든 것 같았다. 산책 겸 같이 나갔다 오자고 할 생각이었던 코우지는  시무룩해졌다. 그러나 그것도 찰나였다. 히로가 잠든 사이 서프라이즈 메뉴를 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는데 반지가 생각났다. 평소처럼 히로가 일과에 지친 저녁이 아니니 오늘이야 말로 반지를 건네기 좋은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지를 생각하니 조금 전까지 아쉬움 가득하던 코우지의 눈에 의욕이 번뜩였다. 히로가 깨지 않도록 얇은 담요를 덮어주고 코우지는 현관을 나섰다. 가장 빠른 시간 내에 그럴 듯하게 내 보일 수 있는 요리를 생각하느라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코우지가 집에 도착했을 때는 조금 어둡던 집 안의 불이 켜져 있었다. 히로가 일어난 것이다.



“다녀왔습니다. 일어났어, 히로?”

“응, 깨우지 그랬어……. 나도 모르게 자버려 가지고.”

“후후, 저녁까지 다 만든 다음에 깨우려고 했는데 들켜버렸네.”

“그럼 그 때까지 주방 안보고 얌전히 있을게.”

“나야 고맙지.”



코우지는 웃으며 마트 봉지를 싱크대 옆에 내려놓았다. 전채부터 풀코스로 만들기에는 시간이 부족해서 계란과 토마토를 프렌치식으로 간단히 조리하고 간장에 졸여 구운 고기로 덮밥을 만들었다.


거의 준비되어 갈 즈음 코우지는 잠시 식히며 작업실로 들어갔다. 미리 반지를 꺼내놓기 위해서였다. 사각형 모양의 케이스를 찾아 코우지는 기타 케이스의 포켓 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음?”



평소라면 손이 주머니 바닥에 닿기 전에 만져졌을 케이스가 없었다. 코우지는 포켓을 다른 손으로 제대로 벌리고 한 손을 더 깊숙하게 밀어 넣었다. 이어폰 줄이 손에 걸릴 뿐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순간 코우지의 등 뒤에서 소름이 쫙 돋았다.


어디서 잃어버린 거지? 황급히 의자를 뒤로 밀고 악보나 다른 자료들을 들춰 보아도 남색의 반지 케이스는 보이지 않았다. 장을 보러 나가기 전까지 봤으니 그 이후에 떨어뜨렸을 텐데  크지 않은 방의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코우지는 기타 케이스를 3번 쯤 더 열어 보고, 책상 아래까지 기어들어가 보았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형광등 아래서 반짝이던 반지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히로에게 주었어야 했는데, 순간적으로 눈물이 비어져 나올 뻔한 것을 코우지는 애써 눌러 참았다.



“코우지?”



작업실 밖에서 히로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보니 저녁 준비를 하다가 들어온 참이었다. 원래 히로의 것이 되었어야 할 반지를 잃어버렸다는 말은 할 수 없으니 코우지는 기분 전환을 위해 숨을 깊이 내쉬었다. 그래도 눈치 빠른 히로의 앞에서 우울한 기분을 전부 숨길 수는 없을 테지만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았다.


거실에서는 히로가 식탁에 코우지가 거의 다 완성해 놓았던 음식을 내려놓고 있었다. 코우지의 자리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놓으면서 히로가 코우지의 표정을 살폈다.



“무슨 일 있어?”

“으응, 아니. 뭘 좀 찾느라…….”

“뭔데? 찾았어?”

“그냥……. 좀, 있었어.”



코우지가 말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 챈 히로는 조용히 젓가락을 들었다. 잘 먹겠습니다, 코우지의 예상과 달리 꽤 조용한 식사가 이어졌다. 히로는 평소처럼 이따금 요리가 맛있다고 감탄했지만 코우지의 신경이 온통 사라진 반지 케이스에 사로 잡혀 있었다. 기타 포켓은 깊어서 빠질 리가 없는데, 사실 제대로 넣지 않고, 옆에 흘린 게 아닐까. 작업실 바닥을 전부 치워볼까……. 생각에 빠진 와중에 젓가락질만 빨라져 평소보다 빠르게 식사가 끝나가고 있었다.



“저기 코우지…….”

“아, 응? 입에는 잘 맞아?”

“그야 당연하지. 아니, 그런데 밥 이야기가 아니고…….”



히로가 조용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히로의 밥그릇도 거의 비어있었다. 코우지는 히로가 일부러 저녁 전까지 집중하라고 배려해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식사 내내 히로를 신경쓰지 못한 것이 뒤늦게 미안했다. 코우지가 여전히 시무룩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자, 히로는 한 손을 바지 주머니 안에 넣었다.



“혹시 코우지가 찾는 거……. 이거야?”



히로가 바지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오는 네모난 상자였다. 남색 반지케이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코우지는 당황스런 눈으로 히로를 바라보았다.



“일어나니까 코우지가 없어서…… 작업실에 갔다가 기타를 넘어뜨렸었거든…….”



기타가 넘어지면서 제대로 덮개가 닫히지 않은 포켓에서 상자가 굴러 나온 모양이었다.  코우지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케이스만 보아도 히로가 내용물을 모를 리가 없었다.



“저기…… 미안.”



히로가 코우지의 눈치를 살피며 케이스를 코우지의 쪽으로 밀었다. 겨우 한 뼘 앞에 그토록 찾던 반지가 있었지만 코우지는 손을 뻗을 기운조차 없었다.



“코우지는 근사하게 주고 싶었던 거지?”



코우지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이 히로가 말했다. 원하면 못본 척해주겠다는 뒤의 말이 코우지를 더 슬프게 했다. 코우지는 도리질 치며 팔을 뻗었다. 뚜껑을 열자 이런 와중에도 반지는 은은하게 고급스러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코우지는 히로를 마주보고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옆 자리로 가 앉았다.



“미안, 히로. 나중엔 진짜 감동하게 해줄게.”

“아니, 난 지금도 정말 좋은걸.”



히로는 마냥 행복한 표정으로 코우지를 바라보았다. 내내 어수선하고 풀죽어 있던 코우지를 귀여워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 히로 덕분에 오히려 기분이 한결 나아진 코우지는 손바닥을 내보인 채로 손을 올렸다. 그러자 히로가 마치 강아지처럼 그 위로 자신의 손을 올렸다. 반지를 끼기 쉽도록 손가락을 벌린 모양새였다. 코우지는 웃음 대신 긴장이 풀리는 긴 숨을 내쉬며 반지를 꺼냈다.



“밖에서 하고 다니지 않아도 되니까, 가지고만 있어 줘. 나랑 이어져 있다는 표시로.”



반지는 예상대로 히로의 약지에 정확히 맞았다. 히로의 피부색과도 잘 어울렸다. 그저 얇은 액세서리를 하나 주었을 뿐인데, 히로가 자신의 연인이라는 것이 여실히 와 닿았다.



“코우지는 욕심이 너무 없네.”



히로가 코우지에게 나직이 속삭였다. 뒤이어 코우지 건? 하고 묻는 말에 코우지는 가려져 있던 목걸이를 옷 위로 꺼냈다. 오버 더 레인보우 펜던트 옆에 히로와 같은 디자인의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히로는 팬던트와 반지를 손바닥 위에 올려 놓고 엄지로 몇 번 쓸어보더니 코우지의 목 뒤로 손을 둘러 목걸이를 끌렀다. 히로의 체향이 훅 끼쳤다. 갑자기 가까워진 상체에 코우지는 긴장으로 목덜미가 뻣뻣해졌다. 코우지의 턱 밑에서 잠깐 히로의 머리카락이 흔들리다가 멀어졌다. 히로는 목걸이 줄에서 반지만 따로 빼 내어 코우지의 약지에 마찬가지로 끼웠다.



“자, 이제 정말로 이어져 있는 거야.”

“히로…….”



천연덕스럽게 덧붙이는 히로의 말에 코우지가 탄식했다. 여태 머리로만 고민하던 자신이 바보 같았다. 코우지가 히로를 꽉 끌어안자, 히로가 그 허리를 조심조심 쓸어주었다. 코우지는 히로를 꽉 끌어안고 온 몸으로 히로를 느꼈다. 태연한 척 하는 히로 역시 등 뒤로 두른 자신의 손가락에 끼고 있는 은색 반지에게서 시선을 뗄 줄을 몰랐다.



“난 코우지 덕분에 매일 행복해.”



히로가 말했다. 히로와 맞닿은 몸에서 히로가 말할 때의 울림이 느껴지는 감각이 좋았다.



“나도야. ……사랑해, 히로.”



코우지가 히로를 끌어 안고 있던 팔에서 힘을 풀어 입술에 가볍게 키스하며 이야기 했다. 히로를 껴안고 있던 손을 히로와 얽자 그 사이에서 반지끼리 부딪치는 것이 느껴졌다. 그 생소한 감각이 좋아 코우지는 일부러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손가락을 다른 방향으로 얽고 풀었다.





--

오타쿠입니다

이다강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