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증인, 그랑 플라스 

두 번째 이야기


릴은 여전히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지배세력이 바뀐 도시라고 알려져 있다. 지난 글에서 릴이 신성 로마 제국의 카를로스 5세가 에스파냐 왕좌에 오르며 에스파냐 령 네덜란드의 부분이 됐다고 했다. 이 스페인 시기는 1665년 펠리페 4세의 사망으로 막을 내리게 되는데, 에스파냐의 프랑스인 사위인 루이 14세가 영토확장을 위해 에스파냐령 네덜란드를 침략하기 때문이다. 1667년에 루이 14세에게 점령당하며 릴은 드디어 프랑스가 된다.


릴을 프랑스 도시로 만들고자 큰 그림을 그리던 루이 14세 앞에 난관이 닥친다. 릴 주민들이 프랑스 왕을 그다지 반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플랑드르 백작의 지위를 가진 것도 아니면서 (플랑드르 백작의 종주가 프랑스 왕이긴 했다), 에스파냐 왕과는 달리 릴을 직접 통치하려하는 루이 14세와 그의 정책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에스파냐만큼 독실한 카톨릭 도시였던 릴은 낭트칙령으로 신교도들의 종교적 자유를 허락한 프랑스가 자신들의 종교적 풍경을 바꿀 것을 염려했다.


릴 주민들의 반발심 때문에 초기 프랑스 시기의 릴에는 순수한 프랑스 건축 양식이 아닌 전통적인 릴 양식에 프랑스 요소 몇 가지가 추가된 과도기적 릴-프랑스 스타일의 주택이 많이 세워지게 된다. 그랑플라스 한 켠에 1687년 세워진 이 세 주택이 이 시기의 양식을 잘 보여준다. 화려한 색 사용이나 다양한 부조는 릴 스타일이지만, 2층 높이의 길다란 벽돌 벽이나 벌레가 파먹은 것 같은 석회석 블록(bossage vermiculé)등은 프랑스 스타일이다.


루이 14세의 상징, 환하게 빛나는 햇살

스페인 승계 전쟁 중에 릴은 스페인과 홀란드에 점령당하며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불안한 시기를 보낸다. 1713년 스페인 승계 전쟁을 끝내기 위해 네덜란드의 위트레흐트에서 평화 조약을 체결하는데, 이때 릴은 드디어 정당한 프랑스 왕국의 도시로 인정받는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에게 점령당하는 것을 제외한다면, 이것으로 릴의 기나긴 정권 교체는 막을 내린다. 


그랑드 가르드의 발코니는 병사들이 릴 시민들을 감시하기에 완벽한 장소였다.

위트레흐트 조약 체결 3년 후, 그리고 루이 14세가 사망하고 2년 후 그랑드 가르드 Grande garde 파사드가 세워졌다. 프랑스 왕의 근위대 병사였던 이 건물은 전통적 릴의 색은 싹 벗어내고 무채색의 단정하고 우아한 프랑스 양식만을 남겨 릴이 전적으로 프랑스가 됐음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루이 14세의 사망 이후 세워졌지만 가장 위에 군림하는 건 여전히 그의 상징인 태양이다. 건물 양 옆으로 백합이 3개 있는 프랑스 왕국의 문장과 한 송이의 백합이 있는 릴의 문장이 나란히 놓인 것까지, 완벽한 프로파간다라고 할 수 있다.


고개를 돌려 릴 광장 한가운데를 보면 거대한 기둥이 서있다. 그 위로 체격이 좋은 여성의 동상이 올라가 있다. 자세히 보면 머리에는 성곽 모양의 관을 썼고 오른손에는 대포 심지에 불을 붙이는 막대기를 들고 있다. 

고전적인 튜닉 때문인지 이 여성을 릴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여신님'이라 불렀다. 그래서 이 기둥을 여신의 기둥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여신은 릴의 의인화(allégorie)이다. 이 기념비는 1792년에 신성 로마 제국군이 릴이 공격했을 때를 기념하고 있다.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고 몇 년 지나지 않아 프랑스는 신성 로마 제국을 비롯한 나라들에 전쟁을 선포하고, 프랑스 국경 지역은 제국군에게 점령당한다. 


Alcide라고 적힌 저 높은 건물 자리에 원래 Saint-Etienne 성당이 서 있었으나 폭격으로 전소했다.

그 중에서 릴은 11일간의 폭격에도 불구하고 항복하지 않아 국민공회에서 "릴과 그 주민들은 이 조국에 걸맞는다"라는 극찬까지 하게 만든 도시이다. 이 1792년 폭격에도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아주 많아서 나중에 따로 얘기해보고자 한다. 릴이 처음으로 프랑스인으로서 프랑스를 수호한 중요한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대략 50년 후인 1845년에 기념비가 세워진 것이다.

지금까지 릴의 17세기, 18세기, 19세기에 세워진 문화재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랑 플라스에는 20세기의 건물도 있다. 그랑드 가르드 바로 왼쪽에 계단식 박공과 21개의 도시의 문장으로 장식된 현대적 파사드가 있다. 이 지역의 유명한 일간지 '노르의 목소리 (라 보와 뒤 노르 La Voix du Nord)'의 본사다. 이 건물은 1936년에 건축됐는데 노르의 목소리는 1941년에 개간했다. 이 본사의 원 주인은 원래 또다른 유명 일간지 '노르의 메아리 (르 그랑 에꼬 뒤 노르 le Grand Echo du Nord)'였다. 이들은 제 2차 세계대전동안 릴이 나치 독일에 점령당했을때도 여전히 건재했는데, 나치 독일과 협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쟁이 끝난 후 노르의 메아리는 해체되고, 레지스탕의 지하신문이었던 노르의 목소리가 이 유명한 건물에 이사오게 된 것이다.

가운데 보이는 건물은 1630년대에 세워진 그랑플라스에서 가장 오래된 집이다.

이렇게 그랑 플라스의 역사적 건물들을 모두 돌아보았다. 브뤽셀의 그랑 플라스보단 덜 화려하지만, 릴의 그랑 플라스는 알면 알수록 많은 것이 보이는 곳이다. 지금 읽으신 이야기는 내가 실제로 릴 가이드로서 관광객에게 설명해주는 내용이다. 이 글만 잘 읽고 릴을 찾으셔도 홀로 많은 것을 보실 수 있을 것이다. 다음번엔 그랑 플라스 이곳 저곳의 디테일을 담은 아주 짧은 글을 가져오려 한다. 그럼 다음 릴 여행도 기대해 주시길 바란다.

PS. 릴에 폭염이 왔는데 사진은 크리스마스네요ㅋㅋㅋㅋㅋ 보시면서 시원함을 느끼셨길 바랍니다.


역사의 증인, 그랑 플라스 :: 두 번째 이야기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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