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린 소서리스 모험가, 이름 고정. 호감도 애정 단계 이후. 중요한 스포일러는 없음.


  실리안 폐하께서 왕의 기사님의 침실로 향할 때에는 모른 척해 드릴 것.

  왕성의 사용인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진 약속이었다. 방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발칙한 상상을 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그것을 의식해서인지 언제나 그의 체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차라리 어서 당당히 왕비로 맞이하시면 좋을 텐데. 모두가 속삭였다. 옆에서 보고 있으면 서로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모를 수 없었다. 어질고 좋은 군주와 현명하고 용감한 기사,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미한은 왕비 후보를 찾아야 한다며 애달파하고 있었지만, 사용인들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그저 미래의 왕비님을 코앞에 두고 알아보지 못하는 이를 안타깝게 생각할 뿐.


  오늘도 그런 하루였다. 메리안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실리안의 발걸음이 향하는 목적지를 알아차리자마자 고개를 돌려 모른 척하거나 거미 새끼처럼 흩어져 버렸고, 멋쩍은 기분으로 복도를 지나 방문 앞에 선 실리안이 입을 열었다.

  "……왕의 기사는 안에 있나?"
  "예, 폐하. 기다리고 계십니다."
  "고맙군."

  노크는 필요 없었다. 기다리고 있었던 시아라가 인기척이 나자마자 반가운 얼굴로 문을 열어주었기 때문이었다.

  "어서 와, 실리안."
  "……시아라."

  어느새 고개를 숙이며 물러난 메리안을 뒤로 한 두 사람은 벽난로 앞의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석 달만에 겨우 이루어진 만남이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요즘 실리안이 지나치게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자, 시아라는 세계를 바삐 돌아다니는 와중에도 얼굴을 보러 오지 않을 수 없었다.


  "만나고 싶었어."

  요즘 무리하고 있지는 않아? 잘 지냈어? 마음에 있던 모든 걱정을 삼키고 꺼낸 말은 결국 그 한마디뿐이었다. 걱정만큼이나 컸던 그리움을 내보이는 건 쉬운 일이었으니까.

  그러자 옆에서 놀란 것처럼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리더니 대답 대신 조용히 머리를 기대어 왔다. 기울어진 몸을 따라 부드러운 금발이 찰랑거리면서 시아라의 어깨를 간지럽혔다. 의외로 서투른 사람이었다. 그런 면이 사랑스럽기도 했지만. 콩하고 아프지 않게 머리를 기울여 마주 댄 시아라는 아무 말 없이 그저 가만히 체온을 나누어 주었다. 실리안이 잠깐이라도 쉴 수 있다면 그걸로 족했다.


  서로의 숨소리와 천천히 타들어 가는 장작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고요한 공간에서, 실리안은 작지만 감정이 담뿍 실린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도 마침 자네가 그리웠던 차였어."

  그리고 나서 나직한 웃음소리와 함께 다정한 눈빛으로 옆을 바라보았다. 소중한 이와 함께 찾아온 휴식이 기꺼웠다. 어디에서 소식을 들은 건지는 몰라도 내심 걱정이 많았겠지. 시선이 마주치자, 눈에 띄게 안심한 얼굴을 하는 것을 보고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걱정을 끼친 것 같군. 그럼 오랜만에 자네의 얼굴도 보았으니 이만 돌아가 보겠네."
  "잘 가, 실리안."

  말과는 달리 일어나지 못하고 미적거리던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맑은 웃음소리가 그치자 정다운 눈빛이, 서로의 손가락이, 이내 뜨거운 숨이 찰나 간 얽혔다 떨어졌다.


  새빨간 얼굴로 후다닥 일어난 시아라의 손을 꼭 잡은 채 문 앞까지 함께 걸어온 실리안이 만족한 표정으로 손을 놓고 몸을 돌렸다.

  "잘 있게, 시아라."
  "……으응, 실리안도. 건강 조심하도록 해."

  고개를 끄덕이더니 금세 왕의 얼굴로 돌아와 문을 나서는 실리안의 뒤에서 시아라가 미소 지으며 작게 손을 흔들었다. 그가 방문을 닫는 그 순간까지 줄곧, 좋아하는 사람을 향한 마음을 모두 담아서.


*

  왕의 기사의 침실에 다녀온 뒤 한결 나아진 얼굴로 돌아온 실리안을 보고 성의 사용인들은 안도하면서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 성내의 그 암묵적인 약속은 역시 왕의 기사님이 왕비가 되시는 그날까지, 어쩌면 그 뒤에도 줄곧 지켜져야 할 것 같다고 말이다.


드림러. 글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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