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사원의 으슥한 복도에서, 난데없이 등은 복도 벽으로 가로막히고 앞은 커다란 옛 파다완 놈으로 가로막히게 된 오비완 케노비가 생각했다. 끙- 하고 곤란함이 묻어나는 소리를 내는데도 멀대같이 커다란 파다완 녀석은 도무지가 요지부동이었다. 뭐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이러는 건지. 저를 벽에다 밀어붙인 버르장머리 없는 제자의 얼굴을 흘끗 올려다본 오비완은 말 그대로 서슬 퍼런- 그러나 뜨거움이 적나라한 눈빛에 황급히 눈을 내리깔았다.

아나킨. 눈 좀 그렇게 뜨지 마. 너 그럴 때마다 정말 부담스럽단다.

평소처럼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어쩐지 숨이 막히는 기분에 지금은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네고시에이터라는 별명이 무색하군, 속으로 스스로를 빈정거리며 오비완은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청회색 눈을 데구르르 굴렸다. 장난하지 말라며 손바닥으로 옛 제자를 슬쩍 밀어보았지만 지나치게 잘 자라버린 어린 파다완의 몸은 스승의 저항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몸을 비틀어 빠져나가려고 하면 막아버리고. 그나저나 이 녀석은 언제 이렇게 스승보다 커버린 거야. 분명 처음 만났을 때는 한심하고 불쌍하고 조그마한 생명체였는데. 성장기에 접어들며 갑자기 얼데란의 나무마냥 쑥쑥 자라더니, 저와 키가 같아진 때가 벌써 열다섯 때였는지 열여섯 때였는지-


“오비완. 제 앞에서 다른 생각 하지 마세요.”


…다른 생각이라도 안 하면 못 견딜 것 같아서 그랬던 건데. 미디클로리언 수치가 높으면 독심술도 가능한 건가? 포스의 힘으로? 멍한 궁금증이 고개를 들었으나 오비완이 그걸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네가 비켜주면 나도 다른 생각을 안 할 것 같구나. 옛 파다완아.”

“제 말에 답을 해주시면 저도 비킬 것 같네요, 마스터.”


제 말투를 따라 하며 불퉁하게 답하는 것에 기가 찼다. 오비완은 새파란 나이트를 곱지 않은 눈빛으로 흘겨보았다가 금빛 도는 갈색 고수머리와 깊고 푸른 눈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떨리는 눈을 사선으로 내렸다. 평정을 유지하고 싶었는데 목소리가 한심할 정도로 떨렸다.


“나는, 아무 말도 못 들었어.”

“사랑한다고 했잖아요.”


저렇게 대놓고 다시 말할 줄이야. 오비완은 어릴 적부터 화술에는 큰 재능이 없었던 주제에, 이젠 부끄러움까지 집어 던져버린 듯한 제자 때문에 눈을 질끈 감았다. 내가 얘를 잘못 길렀나. 나름 저도 스승으로서 모든 걸 바쳐 기른다고 기른 거긴 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나.”

“다시 설명해드려요?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오비완 케노비를 사랑한다고요. 좋아해요. 마스터랑 같이 있고 싶고, 키스하고 싶고, 안고 싶고, 섹스하고 싶고-”

“그만!”


늙은 마스터를 놀리면 못 쓴다, 어린 파다완아. 나이트가 됐다고 해서 옛 스승을 놀려도 되는 건 아니야! 온 얼굴이 장밋빛으로 화르륵 달아오른 오비완이 그답지 않게 허둥대며 빽 소리를 질렀지만 아나킨은 여전히 철벽같은 태도로 사납게 제 마스터를 내려다보기만 했다. 오비완은 이제 거의 현기증이 이는 것을 느끼며 제 미간을 꾹꾹 눌렀다. 스승이 감당 못 할 혼란으로 동요를 겪거나 말거나, 한창 불같은 나이인 스물두 살의 젊은 나이트는 이글거리는 푸른 눈으로 저보다 자그마한 마스터를 내려다보았다.


“마스터야말로 저를 놀리시네요. 제가 이런 걸로 장난할 사람처럼 보여요?”


그래요 뭐, 제가 가끔 마스터 말을 잘 안 듣긴 했지만, 마스터가 절 그런 사람으로 기르지 않았다는 건 마스터가 더 잘 아시잖아요. 진심이라고 느끼실 때까지 말씀드릴게요. 사랑해요. 오비완 케노비. 나의 마스터. 제가 당신을 원하고 있어요. 당신 이외엔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요.

낯 간지러운 고백이었다. 직설적이고, 상대방이 말할 틈은 주지도 않고, 파다완 시절 교양 수업에선 졸았는지 대체가 흔한 미사여구조차 없는. -그러나 그래서 더 묵직한 진심이 느껴지는. 고백도 꼭 저같이 하는 녀석이군. 그렇게 생각하며 오비완은 이제 최후의 수단을 써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상처야 조금 받겠지만 그래도 이 상황을 모면할 수만 있다면 최악의 선택은 아니지 않을까. 이 망할 고백을 더 듣고 있다간 도저히 수습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치달을 거라고, 지난 몇십 년 동안 쌓아온 직감과 포스가 속삭이고 있었다. 멍청한 옛 파다완 녀석의 입을 막지 않으면 다시는 평소처럼 돌아가지 못할 거야.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게 다 망가지고 말 거야. 저 녀석이 먼저 무너지든, 아니면 제가 먼저 무너지든. 

그러나 포스를 사용해 옛 파다완을 멀찍이 날려버리겠다는-오비완은 가능하다면 아나킨이 벽에 머리를 처박고 기절해서 지금의 기억을 모조리 잊을 정도의 강도가 좋겠다고 생각했다-오비완의 계획은 짐짓 엄한 소리를 내며 그와 시선을 맞추는 푸른 눈의 미인에게 저지당했다. 기다란 흉터가 세로로 가로지르는 예쁜 눈썹이 심기 불편하게 찌푸려지는 게 보였다.


“포스로 밀어낼 생각은 하지도 마세요. 그러면 저도 똑같이 할 거니까.”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왜요?”

“끝이 좋을 리가 없어. 코드를 어겼을 때 일어나는 건 비극밖에 없어.”


제다이가 사랑을? 그것도 심지어 같은 제다이와? 비참해지거나, 아니면 타락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 뻔했다. …그것도 이미 한쪽의 애착이 위험 수위를 넘길랑말랑 아슬아슬하게 건드리고 있는 수준이라면. 아나킨 스카이워커, 나는 자신이 없어. 몇 년간 겨우 평정심을 가장해 꾹꾹 눌러놓았던 이 감정을 터트릴 자신이.


“이러지 않는 쪽이야말로 더 비극적일걸요.”


그런데 왜 너는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건지.


“왜 모르는 척해요? 제가 다른 제다이들이랑 다른 건 예전부터 아셨잖아요.”


이미 벽에다 양팔을 짚어 마스터를 제 품에 가두듯 한 채로 아나킨은 고개를 숙였다. 입술이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 호흡의 온도가 생생하게 느껴지는 거리감에 오비완은 애꿎은 제 입술만 꾹 물었다.


“제 인생은요, 당신 곁에 있을 때만 좋았어요. 오비완 케노비 옆에 있을 때만 아나킨 스카이워커는 아프지 않았다고요. 멍청한 선택을 하지도 않았고.”

“아나킨, 제발…. 이건 미친 짓이야.”

“미친 짓이요?”


오비완은 아나킨이 되묻는 것에 곧 옛 제자가 화를 낼 거라 생각하고 긴장했지만, 잠시 후에 제 귓가를 간지럽히는 건 노성도 한숨도 아니었다. 오히려 어느 맑은 날의 태양처럼 따뜻하고 청명한, 가볍고 부드러운 웃음소리. 오비완은 긴장했던 청회색 눈을 들어 올리고 그제까지 열심히도 피해 다녔던 아나킨의 시선과 눈을 맞췄다. 그리고 저를 기다리고 있던 선연한 푸른빛과 마주한다.


“오비완.”


아. 정말 저 눈. 너무 부담스러운데. 피하고 싶은데. 오비완 케노비는 질리도록 아름다운 벽안으로부터 도망가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한 번 홀려버린 정신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이런 게 미친 짓이라면요, 저는 왜 지금 이 순간 그 어느 때보다 세상이 또렷하게 보일까요.”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제가 뭘 원하는지, 그리고 또 뭘 해야 하는지. 당신과 함께할 때면 모든 게 명확해져요. 항상 어렵고 흐렸던 세상이 당신 곁에선 선명해져요. 모든 게 이해가 돼요. 아프지도 않고 혼란스럽지도 않아요. 저를 불안하게 만드는 모든 것들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늘 괴로웠는데, 당신의 눈을 보면 그 안에 답이 있다는 걸 깨달아요.


“이래도 이 감정이 비극이고 미친 짓이에요?”


대답해 봐요, 오비완. 당신은 답을 알고 있어요. 살그머니 속삭이는 음성에 내면의 무언가가 결국 툭,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건 추락일 텐데. 너와 나 모두의 추락일 텐데. 한 번 떨어지고 나면 다시는 예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갈 수 없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오비완은 주저하는 자신에게 서서히 가까워지는 옛 파다완을 밀어내지 못한다. 욕정을 숨길 생각조차 하지 않는 푸른 눈이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오비완 케노비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감는다. 이윽고 입술이 맞닿는다. 데일 듯한 온도에 놀라 숨을 집어삼키면 입술이 열린 틈을 놓치지 않고 뜨거운 혀가 안을 헤집고 들어와 녹진하게 엉켰다. 익숙하지 않은 키스에 서툴게 호흡하자 파다완의 단단한 두 팔이 저를 달래듯이 감싸 안았다.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온기 속에서 오비완 케노비는 결국 인정한다. 뜨겁고 조급한 입술이 제게 포개어졌을 때, 저의 세상도 고통 없이 명확해졌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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