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의 스토리이며 알페스 없습니다

*제 글에 문제될 게 있으면 친절히 알려주세요



어느 작은 인형공방의 붉은 오르골은 깨져 버렸다. 오르골은 자신의 파편과 눈앞의 토끼를 번갈아 쳐다봤다.

 정신이 희미해지며, 오르골은 어느 기억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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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골도 평범하던 시절이 있었다. 생김새는 준수했지만 무미건조한 노래 탓에 그 역시 다른 인형들과 다를 것 없는 일상을 보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르골은 유리 어항에서 노래를 부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허나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실망스런 목소리에 노래를 그치려던 찰나, 그의 눈에는 공방 한구석에 처박혀 먼지가 쌓인 인형의 공간이 보였다. 자신의 주인조차 신경쓰지 않은 듯한 모습에 약간의 호기심이 발동한 오르골은 그날 밤에 몰래 그 정체를 확인하기로 결정했다.

 모든 이들이 잠든 시각, 오르골은 조심히 유리 어항을 나서며 방치된 인형의 공간으로 향했다. 공간에 발을 들이자, 새하얗게 신전처럼 꾸며진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물론 먼지에 가려져 폐허처럼 보였지만 말이다. 스산할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 신전의 모습에 오르골은 등을 돌리려 했지만, 곧 다시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노래...?"

신전의 한가운데에서 노랫소리가 들렸다. 오르골은 홀린 듯이 노랫소리의 근원을 찾으러 신전의 중앙으로 움직였다.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선율이 오르골을 감싸고 지나갔다. 그렇게 노래에 이끌려 마침내 신전의 중심에 도착한 오르골은 노랫소리의 주인을 마주하게 되었다.

"어... 여기서 뭐하세요..?"

"...뭐야..?"

바닥에 쓰러진 듯 누운 채 긴 흑발에 가려진 금빛 눈으로 자신을 흘긋 쳐다보는 인형이었다.


오르골은 쓰러져 있던 인형을 부축해 벽에 기대 앉혔다. 부축을 해야 했던 이유는 인형의 다리가 성치 않아서였다. 그 인형은 편히 벽에 기댄 뒤 안도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도와줘서 고마워. 덕분에 좀 편하네."

"네, 근데..."

"내가 누구냐고? 난 그냥 공방에서 만들어진 인형이다만?"

그런 대답을 원한 게 아니라고 답하기도 전에 그 인형이 오르골의 말을 가로챘다.

"근데 너, 오르골이지? 그런 것 치고는 노래가 영 그렇다?"

"아니, 들어보기라도 하셨어요?"

"당연하지. 맨날 부르잖아."

오르골이 미처 무어라고 반박하기도 전에 그 인형은 말을 끊고는 제멋대로 말했다.

"오르골이라면 적어도 이 정도는 돼야지."

인형은 그렇게 말하고는 등 뒤의 천사 날개를 펼쳤다. 녹아내려 뒤틀린 날개가 흉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름답고도 슬픈 선율이 조용한 공간을 조금씩 채우더니, 이내 공기를 타고 흐르며 듣는 이로 하여금 전율을 느끼게 만들었다. 오르골은 저도 모르게 가만히 그 노래를 감상하고 있었다. 인정하긴 싫었지만, 이 인형의 노래는 자신의 것보다 몇 배는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노랫소리는 점점 작아지더니 사라져 버렸다.

"자, 이 정도는 해야 네 주인에게 예쁨받든 하지."

"그쪽도 오르골인 건가요?"

"아니? 난 그냥 장식으로 쓰라고 만든 인형인데?"

"근데 갑자기 이러시는 이유가 뭔데요? 다짜고짜 자랑이라도 하는 겁니까?"

"그런 건 아니야. 다만 너에게 제안을 하나 하고 싶은데... 내가 네게 노래를 가르치면 어떨까?"

"왜 제가 그걸..."

평소 같았다면 오르골은 당장 등을 돌리고 이곳을 떠났겠지만, 인형이 이어가는 말에 그는 떠날 수 없었다.

"너도 불안하잖아. 언제든 주인의 마음이 떠날 것 같아서. 그러니까 차라리 네가 꼭대기에 올라가서, 절대 버려지지 않도록 하는 거야. 절대 너한테 대가를 바라는 건 아니야. 단지 널 돕는 거지."

그의 말은 솔깃하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그가 왠지 절박해 보였기에, 결국 오르골은 그의 손을 잡기로 했다.


그 뒤로 밤마다 공방에는 둘의 노랫소리가 작게 퍼졌다. 한밤에 오르골이 몰래 천사 인형의 공간에 찾아가 그에게 가르침을 받는 나날이 반복되었다.

 문득 오르골은 자신의 선생이 공방에서 잊힌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어느 날 그에게 넌지시 질문을 던졌고,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만들어질 때 어딘가 잘못된 건지, 다리를 움직이질 못했어. 실패작인 셈이지. 그래서 그냥 이렇게 처박힌 거고, 다리가 이 모양이니까 마음대로 다니지도 못하고 수명만 깎았지, 뭐."

"그럼 제가 주인님께 부탁을 드려 볼까요..?"

"안 그래도 지금은 날개까지 다 비틀어졌는데 네 주인이 날 봐줄 것 같냐?"

오르골은 퉁명스레 대꾸하는 제 선생의 목소리에서 어째서인지 슬픔을 느꼈다. 하지만 더 물어볼 용기도 없었기에 둘은 마저 노래를 불렀다. 선생이 먼저 노래를 부르면 그에 맞춰 오르골이 화답하는 식으로 둘의 선율은 깊은 밤의 공방에 울려퍼졌다.

 그렇게 몇 번의 밤이 흐르고 나니, 놀랍게도 오르골의 노래는 이전보다 아름다워져 있었다. 처음엔 그에게 시선도 주지 않던 주인이 이젠 그의 노래에 발걸음을 멈출 정도로. 한껏 자신감에 찬 오르골은 그날 밤 다른 때보다 더 일찍 그의 선생을 찾아갔다.

"선생님, 선생님!"

"...아, 왔구나...."

오늘따라 유난히 기운 없이 벽에 등을 기댄 그의 모습에 오르골은 기쁨을 거두고는 천천히 선생에게 다가갔다.

"어디 불편하세요..?"

"조금..? 아무래도 오늘은 노래 가르쳐주기 힘들 거 같은데 먼저 가라."

"그럼 오늘은 말동무라도 되어 드릴까요?"

"굳이 그럴 것까지는.... 헉..!"

천사 인형은 갑작스레 가슴을 부여잡고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오르골이 그에게 걱정스레 다가가자, 인형의 눈에 선명한 공포가 서려 있는 걸 보고야 말았다. 선생은 고통스런 모습으로 오르골의 팔을 부여잡았다. 그는 힘겹게 고개를 들고는 제자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선생님..?"

"잘 들어. 절대 나처럼 되면 안 돼."

"네?"

"나는 원래 이랬지만, 너는 아니야. 그러니까 반드시 붙잡아. 그 사람의 관심이 떠나지 않도록 하라고. 너만큼은 절대 버려지면 안 돼, 절대..."

오르골은 오직 공포에만 사로잡혀 말을 내뱉는 제 선생의 떨리는 어깨에 손을 살짝 얹었다. 조금 뒤 선생은 천천히 제정신을 되찾은 듯 했다.

"괜찮으세요?"

"미안... 괜히 이상한 말들을 뱉어서 걱정하게 만들었네. 이젠 괜찮아."

"안 괜찮아 보이는데요..."

"정말 괜찮으니까 돌아가도 돼. 노래는 조만간 또 가르쳐 줄게."

결국 그날 밤, 오르골은 선생을 남겨둔 채 도로 자신의 어항으로 향했다. 돌아가면서도 몇 번이고 뒤돌며 걱정스레 자신의 선생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붙잡으며 울부짖듯이 외치던 모습이 오르골의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리고 그날 밤이 둘의 마지막 만남이 되고 말았다.


오르골이 다시 찾아왔을 때, 천사 인형은 어디에도 없었고, 바닥에 떨어진 밀랍 깃털들만 있었다. 그러나 오르골은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아주 잘 알았다. 오르골은 그 깃털들을 손에 쥔 채 소리 없이 슬프게 흐느꼈다. 참으로 허무하고도 고통스러웠다.

.

.

삶의 마지막 순간으로 돌아온 오르골은 그때와 같은 눈물을 흘렸다. 그러고는 토끼 인형조차 듣지 못할 정도로 작게 중얼거렸다.

"저, 그래도 버려지지 않았어요, 선생님... 다행이죠..?"

오르골의 노랫소리는 멈추고 말았다.




여긴 또 어디인가 나는 또 누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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