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주원: 전교 1등
서이연: 전교 301등 (총 학생 수 320)

성적표가 나온 날, 이연이는 퉁퉁 부은 눈을 한 채 화장실에서 나왔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간 늦은 오후... 교실에 아무도 남지 않을 때까지 펑펑 운 이연이 조심스레 교실 안으로 발을 디뎠어요.

열심히 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왜 성적은 항상 그대로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번엔 3등 올랐으니 다행인걸까요...

그런데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교실 맨 뒷자리, 커다란 인영이 앉아있습니다.

차주원이네요... 항상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교내 유명인입니다.

아직 울음기를 떨치지 못한 얼굴이 부끄러워진 이연이 조심스레 가방을 챙기기 시작합니다.

이때까지 말한번 제대로 해본 적 없는 어색한 사인데, 이런 모습을 보이긴 싫어요. 빨리 나가야겠어요.

그런데 의자를 끄는 소리가 나더니, 차주원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 같아요. 콧물이 흐르는 게 느껴져요. 휴지도 없는데...

"서이연."

기어코 차주원이 자신을 부릅니다. 등을 돌리고 있던 이연은 조심스레 고개를 틀어요.

"왜에......"

물기를 담은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흘러나왔어요.

차주원은 이연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줍니다. 올망한 눈망울로 차주원을 가만히 바라보던 이연이 손수건을 받아듭니다. 눈물 조금과 콧물을 닦아냈어요.

"성적때문에 운 거야?"

"......"

"열심히했잖아, 너."

"......"

낮은 목소리가 귓가를 울립니다.


네, 이연이는 열심히 했습니다. 그리고 그걸 알아주는 사람이 평소에 친하지도 않았던 차주원인게 이상하면서도, 위로가 돼요.

"응... 나 열심히 했어... 흐으..."

주원의 말에 눈물이 터져버린 이연이... 손수건에 얼굴을 묻고 웁니다. 이연의 작은 몸이 흐느낌으로 떨리는 걸 착잡하게 내려다보는 주원...

"이번 주말에 같이 공부할래?"

"흐으... 나 이제, 공부 안 할거야..."

"내가 가르쳐줄게."

"해도, 소용없어... 흐으..."


주원은 이연의 어깨 위에 살짝 손을 얹습니다. 얼굴을 가까이 대니 순한 살내음이 맡아져요. 


"이제 그만 울어. 응?"

"흐으으... 열심, 히, 했는데..."

"같이 아이스크림 먹으러 갈래?"

"...내가, 애야?"


서투른 위로를 건네는 차주원의 말에, 이연이 손수건에 묻고있던 얼굴을 들었어요. 동갑인데 왜 애취급을 하는 건지... 눈이 마주치니 차주원이 살짝 웃고 있어요.

곧은 콧대와 호선을 그리는 입꼬리가,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검은 눈동자와 무섭도록 잘 어울려요.


순식간에 화르륵 타오르는 얼굴에, 이연의 흐느낌도 멈춥니다. 부끄러워서 시선을 마주하기가 힘들어요.


"네가, 사 주는 거야?"

"응. 맛있는 아이스크림 사 줄게."

"이번주는, 아직 용돈 못 받아서... 다음엔 내가 사 줄게."

"다음? 그래 그럼."


순식간에 다음 약속까지 잡혀 기분이 좋은 주원. 조심스레 손을 들어 이연이 눈물을 닦아줍니다. 엄지 아래 닿는 하얀 피부는 처음 느껴보는 보드라움이었어요. 항상 상상만하던 살결이었는데, 실제로 만져보니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말랑말랑했어요.


그날, 차주원은 오랫동안 마음을 키워온 첫사랑에게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듬뿍 먹여주었답니다...














Ongri Ddu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