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06 쩜오온에서 판매되었던 뉴트민호 회지 '필사의 기록' 초판본입니다.

이후 리메이크 된 글이 통판 예정에 있습니다.


01.


시작이 함께였으니, 끝도 함께여야지.

 

문장에 붉은 줄을 그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글자를 오래 읽으면 눈에 성에가 낀 것처럼 희뿌옇게 보였다. 처음에는 눈이 침침한 정도였는데 이제는 글자 하나하나를 집중해서 들여다보지 않으면 읽을 수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점점 시력이 나빠지는 것을 선명하게 느꼈지만, 그는 안경이나 렌즈를 낄 생각이 없었다.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완강히 맨눈을 고수했다. 글을 읽을 때 눈과 종이 사이에 다른 게 있으면 거슬린다고 말했다.

“너 그러다 정말 다쳐.”

자꾸만 눈을 문지르는 그에게 알비가 따뜻한 캔커피 하나를 책상 위에 놓아주며 걱정스레 말을 건넸다.

“알비, 내 몸은 내가 알아서 해.”

그는 눈조차 떼지 않고 대꾸했다. 알비는 그가 들고 있는 책의 제목을 힐긋 보곤 자리로 돌아가 종이뭉치를 정리했다.

도무지 손에 들고 놓을 생각이 없어 보이는 책에는 그가 손수 써넣은 동그라미와 밑줄이 드문드문 보였다. 가끔은 기울어진 필기체로 쓰인 붉은 글자가 문단 아래 깨알같이 자리했다. 표지엔 흔한 그림도 제목도 없고 오로지 무채색의 단순한 배경과 민호, 라는 이름만 씌어 있다.

 

*

 

뉴트는 편집자였다.

 

처음부터 편집자가 되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의 회사를 다니기 전엔 다른 회사들에 비해 벌이가 조금 더 좋은 회사에서 고만고만한 일들을 하며 보냈다. 그는 침착하고 업무를 처리하는 요령이 좋아서 사람들에게 쉽게 인정받았다. 특히 신입사원을 교육하는 일이 탁월했는데, 어떤 까다로운 신입이 들어오더라도 그가 맡으면 하루 안에 회사의 구조를 모두 파악하고, 사흘 안에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학습했다.

업무만큼 인간관계에서도 냉철했다. 해야 할 일을 끝내면 외투를 챙겨 빠르게 회사에서 모습을 감추고 집으로 돌아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길 좋아했다. 남에게 상냥하게 대하지만 사람 대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소양일 뿐, 다른 어떤 의미도 두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친절하지만 호의일 뿐이다. 누구와도 깊어지지 않는다. 그의 행동은 가끔 기이할 정도로 사람과 거리를 두려는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몸에 밴 습관이었기에 스스로는 그걸 몰랐다.

가장 잘 드러나는 예는 회식이었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소가 싫다, 추태를 보이고 싶지 않다,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 눈치가 보인다, 이런 특별한 이유가 있지도 않으면서 그는 회식이 싫었다. 대부분 몸이 좋지 않거나 급한 일이 있다는 핑계로 교묘하게 빠졌지만, 신입생 환영식이나 은근한 눈치를 주던 상사의 압박이 있으면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안타깝게도 그간 뉴트가 다녔던 회사는 모두 기이할 정도로 술자리가 많았다. 그는 몸이 안 좋다는 둥, 개인적으로 급한 볼일이 있다는 둥 몇 번은 자연스럽게 넘기곤 했지만 상관이 오늘은 절대 빠지지 말라며 압박을 주거나 신입이 들어와 축하하는 등 빠지기 곤란한 자리를 만들면 가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런 날이면 뉴트는 속으로는 술에 환장한 사람들이라고 욕을 하면서 겉으로만 빙긋 웃었다.

 

머리가 깨지겠군.

정확히 1년 전 그날, 아침부터 숙취해소제를 두 병째 들이켰다. 딱히 전날 과음을 했거나 속이 메스꺼운 건 아니었다. 그날따라 유독 신입의 업무처리가 더뎌 마음에 들지 않았고, 거기에 지쳐 심신이 피곤했으니 목을 넘어가는 싸한 냄새에 조금이나마 속이 뚫리기 바랐다. 겸사겸사 옆에 있는 상사에게 눈치를 줄 셈이었다. 물론 눈치가 맹한 상사는 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혼자 시시덕거리기에 바빴다.

피곤한 눈을 비비며 뉴트는 체력이 떨어졌나, 하고 중얼거렸다. 운동을 하려거든 회사보다 술집에 가까운 체육관을 알아보는 게 더 빠르겠다며 인터넷을 뒤적이던 때 메신저가 울렸다.

 

 

*

 

알비와 뉴트는 카페에서 만났다. 간단한 안부를 주고받은 뒤 알비가 많이 힘들었다는 말로 먼저 운을 떼면서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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