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벨이 울렸다. 이 집으로 이사 오면서 단 한 번도 울리지 않던 그 집 전화가 따르릉, 두어 번 소리를 내며 요란하게 울리다 끊어졌다. 신기한 일이었다. 설치한 이후로 누구에게도 집 전화번호를 알려준 적은 없었다. 누구에게도 전화번호를 알려주지도 않을 거면서 설치를 한 이유는 크게 없었다. 10년 전과 똑같은 전화번호로 등록을 한 건 누군가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기보다는 새로운 번호를 외우는 게 귀찮았을 뿐이었다. 누군가에게 이 모든 게 핑계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나가기 위해 의자에 잠시 걸어 뒀던 재킷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또 한 번 요란한 벨 소리로 시선을 빼앗겼다. 쉽게 끊어질 것처럼 보이지 않았기에 그 전화를 받아 들었다.


“여보세요.”


“……오랜만이야. 테디.”


내가 어떻게 그 목소리를 잊을 수 있을까. 갑자기 밀려오는 피곤함에 전화기를 통째로 들어 소파에 기대앉았다.


“엠마.”


“기억은 하나 봐.”


내가 너를 어떻게 잊겠어. 한숨이 짙어졌다. 마지막 기억이라고 한다면 한껏 들뜬 얼굴로 내게 청첩장을 줬던 네 모습이었다. 그 얇지도 않은 고급 종이 안쪽에는 ‘매튜 컬린’이란 글자가 엠마의 이름과 나란히 적혀 있었으니까. 엠마 뒤에 바로 컬린이 따라붙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순간 네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식장에 나타나는 상상을 했다. 네가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는다면 난 네 옆에 서 있기를 바랐다.


이기적이게도.


“잊을 리가.”


“잊을 리 없다?”


“내가 너를 어떻게 잊겠어. 엠마.”


애꿎은 전화기를 손끝으로 톡, 톡 치며 그녀의 목소리를 기다렸다.


“넌 내가 결혼을 한 게 잘못이라 생각해?”


“아니. 네가 행복하다면 잘못이 아니라 생각해.”


대화의 틈이 만들어낸 그 여백들이 ‘네가 나빴어’, ‘네가 잘못한 거야’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죄책감이 몰려왔다.


“넌 내 결혼이 행복했을 거 같아?”


그녀의 질문엔 몇 가지 오류가 있었지만, 굳이 되묻지 않았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네게 질문을 하겠어.


“응. 마지막으로 봤던 그 날의 넌 행복해 보였거든.”


행복 해 보였어? 그녀의 작은 실소가 귓가에 닿아 흩어졌다. 두 눈을 감고 숨을 고르며 내뱉었다.


“하나만 더 물어볼게. 결혼식엔 안 왔는데 그럼 장례식엔 올 거야?”


“장례식?”


“매튜가 죽었어.”


엠마의 목소리에 울음이 섞였다. 힘겹게 참아내고 있는 그 목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난 이어지는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올 거야?”


“갈게.”


“거짓말. 차라리 네가 안 왔으면 좋겠다고 하면?”


“내가 안 갔으면 해?”


“아니.”


“내가 갔으면 해?”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지만, 그녀는 고개를 끄덕거렸을 것이다.


“갈게.”


전화를 끊고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10년 만에 그녀와 마주한다. 내가 그의 장례식에 가는 게 옳은 가에 대한 문제보다 그녀를 만난다는 사실이 더 앞섰다. 엠마를 만난다. 그 사실만 기억하기로 했다. 얼굴을 쓸어내리며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는 차에 올라탔다.



그녀가 말한 장소의 문은 열려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건데 반가움보다도 충격이 더 앞섰다. 눈물로 얼룩진 얼굴로 나를 빤히 보다 손등으로 뺨을 닦았다. 화장과 피가 번져 더 엉망으로 얼룩지게 되었다.


“테디. 도와줘.”


엠마의 말에 따라 천천히 상황을 파악하며 그녀에게 걸어갔다. 바닥에는 매튜로 보이는 남자가 피를 뒤집어쓰고 쓰러져 있었고, 그의 앞에는 눈물로 얼룩진 얼굴로 앉아 있는 엠마는 양손 가득 피로 물든 손으로 그의 몸을 누르고 있었다. 그녀에게 걸어가려다 바닥엔 말라붙은 변색한 피가 신발 끝에 닿아 끈적한 소리를 냈다.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엠마.”


“도와줘.”


“신고는 했어? 누가 그런 거야.”


그녀는 시선을 피해 매튜를 쳐다보며 작게 흐느꼈다.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녀의 옆으로 걸어가 옆에 놓인 총을 들었다. 어쩌면 지금의 나는 악몽을 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악몽보다 더 심각한 현실과 마주하기가 벅차서. 총에서 총알을 빼내자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경쾌하기까지 했다.


“엠마. 어떻게 된 거야.”


“넌 늘 그랬듯이 묵묵하게 내 옆에서 도와주기만 하면 돼.”


떨리는 붉은 입술이 한 글자, 한 글자 말을 쏟아냈다. 도와주기만 하면 돼. 도와주기만 하면. 두려움과 흥분이 목소리에 섞여 나왔다. 난 그녀의 옆에 앉아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응. 늘 그랬듯이.”


그녀의 손이 매튜에게 떨어져 내 뺨을 감싼다. 따뜻한 그녀의 손이 닿는 동시에 비릿한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두 눈을 감고 그녀의 손에 기대었다. 너를 만난 순간부터 난 악몽 속에서 사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너와 같이 있을 수 있다면 악몽이라도 함께할 수밖에.


“테디. 난 너 없으면.”


“알아. 늦었어, 서두르자.”




시간은 초과해서 늦었지만... 그래도 끝냈다! 


17세 여고생, 트위터 합니다. 맞팔하실래요^///^?

PURE N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