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전, 지민은 잔뜩 부은 눈을 억지로 떴다. 어제 윤기와 퍼마신 술이 또 과했다. 속은 쓰리고 목은 깔깔하다. 아……, 죽겠네. 그나마 다행인 건 근무 당번이 아니어서 주말 이틀을 내리 쉴 수 있다는 거다. 사회부 때는 일요일에도 무조건 근무였는데, 이런 면에서 문화부는 참 좋은 부서다.


지민은 베개에 얼굴을 파묻으며 다시 눈을 감았다. 주말 동안만이라도 푹 쉬고 싶었다. 그동안 못 본 책이라도 읽으면서 혼란한 정신을 다스릴 필요가 있었다. 지난 한 주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실감이 나지 않을 만큼, 머릿속이 복잡했다.


정오가 가까워 일어난 지민은 해장라면을 끓이며 아예 휴대폰을 꺼둘까 잠시 고민했다. 혹시나 정국으로부터 연락이 오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 탓이다.


그러나 기자에게 휴대폰을 끄는 건 휴가 때가 아니면 용납이 되지 않는 일. 어쩔 수 없이 내버려 두었지만 신경이 쓰여 괴로웠다. 간헐적으로 띠링- 띠링- 폰이 울릴 때마다 지민은 저도 모르게 긴장하며 가자미눈으로 액정을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를 반긴 건 스팸 문자들. 결국 지민은 휴대폰을 베개 밑으로 밀어 넣은 뒤에야 책을 펼쳐 들 수 있었다.


 






트러블메이커 

Trouble Maker

-06-







일요일 오후, 지민은 기어이 읽던 책을 손에서 내려놓았다. 양성애자로 유명한 ‘프레디 머큐리’에 관한 책이었는데, 글자들이 도통 눈에 들어오질 않아 진도가 나가지를 않았다. 평소에는 잘 켜지도 않던 TV를 켠 뒤 리모컨을 들고 무의미하게 채널을 돌렸다. 멍하니 리모컨 버튼을 누르는데 갑자기 화면에 전정국 얼굴이 잡혀 소스라치게 놀랐다.


허, 씨발, 놀래라. 리모컨 던질 뻔.

그가 주연을 맡았던 드라마가 재방송 중인 모양이었다. 몇 년 전에 찍은 작품인지, 다소 앳된 얼굴이 화면을 가득 메웠다.

아, 저 얼굴 참… 안 보고 싶은데…….


지민은 저도 모르게 집중해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평소 드라마를 전혀 보지 않는 지민이지만 아는 얼굴이 나와서 그런지 생각보다 재밌었다.

그렇지, 저런 감정을 잡을 때는 저런 눈빛이었지. 맞아, 저런 상황에서 웃을 때는 저런 식으로… 어느새 그의 연기에 빠져들어 드라마에 몰입했다.


대본 연습을 할 때도 느낀 거지만 전정국은 연기를 참 잘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제의 키스와 그 짓(…)도 연기였던 건가 하는 의문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전정국은 전부 연기한 건데, 나 혼자 너무 진지해져서 삽질하고 있는 거 아니야? 근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연기야?


아무 생각 없이 쉬려했건만, 자꾸만 이어지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리고 그 모든 생각의 귀결은 전정국이다.

전정국도 바이인 걸까? 것도 아님 혹시 게이? 그동안 스캔들은 없었나?

휴대폰을 들어 초록창을 검색해본다. 토독 토독, 검색어는 ‘전정국 스캔들’. 딱히 스캔들이라고 할 만한 것도 나오질 않는다. 갈수록 혼란만 가중된다. 이쯤 되니 그의 멱살이라도 잡고 짤짤 흔들면서 따져 묻고 싶다. 너 이 자식, 대체 나한테 왜 그랬어? 어? 내가 만만해? ……씨발.


주말 내내 그에게서는 아무런 연락도 오질 않았다. 이제 지민은 연락이 오기를 바라는지, 연락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지조차 헷갈리는 지경이다.







***








항상 그렇지만 직장인에게 주말은 너무 짧기만 하다. 실제로 주중에 비해 주말이 짧아 그런 거라고, 언젠가 누가 존나 맞는 소리를 한 게 기억났다. 그래, 누가 모르냐? 그러니까 좀 길게 늘려주면 안 되냐는 거지! 어쨌거나 대부분의 직장인들에게 월요일은 헬이다. 특히 월요일은 매주 한 번 하는 부서 회의가 있는 날이라 지민도 꾸역꾸역 회사로 기어들어가야 했다.


마감을 마치고 회의 장소로 가니 맞은편에 윤기가 털썩 앉는다. 그제도 본 얼굴인데 괜히 반가워 웃음이 났다. 윤기도 그런 저를 보며 피식 웃는다. 잘 쉬었냐? …네(니요). 선배.


“주요 일정들부터 얘기하고, 다들 기획 아이템 내놔봐.”


최 부장의 말이 떨어지자 짬순으로 발제가 시작됐다. 지민도 기획 아이템을 만들어내려 종일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며 부지런히 취재했지만 그다지 소득은 없었다.


“특별한 일정은 없고요, K팝 특집으로 아이돌 기획사 대표 릴레이 인터뷰를 해보면 어떨까요.”


최 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쁘지 않네. 준비해 봐. 그러더니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지민에게 휘휘 손짓했다.


“아, 박지민. 너 이번에 방송대상 받은 김석진 알지? 국내 매체 몇 개만 불러서 라운드테이블 인터뷰 진행한다더라. 그거 좀 알아봐.”

“네…?”

“듣기로 A일보랑 C일보가 이미 붙은 모양이더라고. 뭐 하냐, A랑 C가 다 쓰는데, 우리만 안 쓰면 시말서 감이야.”

“아, 넵.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일반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연예기획사 홍보팀들은 매체들을 관리할 때 나름의 서열을 매긴다. 방송, 신문, 잡지를 포함해 온갖 인터넷 매체들이 넘쳐나는 요즘 같은 상황에 모든 매체들을 전부 관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보통 종이신문의 경우에는 종합지 A, B, C를 가장 우선으로 묶고, 경제지 D, E를 그 다음 순으로 묶는다. 라운드테이블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면 A, B, C를 같이 부르거나 거기에 경제지 D, E를 엮어서 하는 식이다. A, B, C와 D, E는 서로가 경쟁 관계여서 대부분 같이 진행해야 탈이 적다. 어디 하나를 빼놓으면 빠진 쪽에서 난리를 칠 것이 자명하니까.


종합지인 B일보의 경우 가장 중요한 일과 중 하나가 아침저녁으로 경쟁사인 A와 C에 나온 기사들을 체크하는 것이다. A나 C에 [단독] 타이틀이 붙은 기사만 나와도 데스크들이 담당 기자에게 당장 확인하라고 들들 볶는 게 일상인데, A와 C에는 동일한 기사가 나왔는데 B에만 없는 일이 발생한다면? 그건 그야말로 담당 기자가 경을 칠 ‘낙종’이다.


지민은 사태의 심각성을 즉각 인지했다. A와 C가 모두 김석진의 인터뷰를 동시에 쓰는데 우리 신문에만 그의 인터뷰가 없다면, 그건……, 정말 최악이다.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발생하는 거다. 등골이 다 서늘했다.


헌데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김석진의 기획사로부터 인터뷰와 관련된 연락을 받은 적이 없었다. 어떻게 우리만 쏙 빼놓고 라운드테이블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지? 이건 B일보를 엿 먹이는 짓이나 다름없다. 지민은 회의가 끝나자마자 화를 가라앉히며 김석진의 기획사로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B일보 박지민 기자입니다. 홍보실장님이시죠? 이번 주에 김석진 씨 라운드테이블 인터뷰를 진행하신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제가 연락을 못 받아서요. 저희만 빠진 이유가 있습니까?”

[아……, 박 기자님, 안녕하세요. 정말 죄송합니다. 먼저 연락을 드렸어야 하는데. 그게, 저희가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고요. 사정이 좀 있었습니다.]

“기왕 인터뷰하시는 거, 여러 매체에서 같이 나가면 좋을 텐데요. 저희만 배제하신 게 좀 이해가 안 되는데요.”

[맞습니다. 당연히 그렇죠. 그런데 석진 씨가 직접 매체들을 골랐어요. 꼭 A와 C하고만 하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네? 김석진 씨가 직접이요?”


헐, 이건 또 무슨 경우야.

지민의 미간이 좁혀졌다.


[설득은 해보겠습니다만, 아시다시피 제가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정말 죄송합니다.]


황당하기 짝이 없다. 홍보실장의 말대로라면 김석진이 일부러 B일보를 제쳤다는 건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경험상 이럴 때는 세게 나가야 한다. 지민은 거의 반 협박이나 다름없는 으름장을 놨다.


“아니, 이건 저희 B일보를 무시하시는 거라고 밖에는 해석이 안 되는데요. 아실만한 분이 왜 이러십니까. 괜찮으시겠어요?”


니네 지금 나랑 싸우자는 거냐? 언론사랑 싸움 붙어봐야 좋을 게 하나 없다는 걸, 홍보실장 씩이나 돼서 모르는 거야? 라는 의미다. 보통은 이 정도로 얘기하면 알아먹고 한 수 접고 들어오는 게 정상인데.


[무시라뇨,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정말 너무너무 죄송하네요. 이건 석진 씨 본인의 의사라……. 저희가 뭐라고 말해도 석진 씨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쩔 수가 없어요. 다른 걸로 만회하면 안 되겠습니까. 박 기자님, 한 번만 봐주세요.]


……안 통하네.

와, 씨,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어?!

홍보실장의 목소리가 거의 울먹임에 가깝다. 거짓말은 아닌 모양이다.


“아무리 그래도요. 한 번만 더 설득해봐 주세요.”

[네, 꼭 그럴게요. 박 기자님께서 이해 좀 해주세요. 저희 출입 맡게 되시고 제가 한 번도 인사 못 드린 거 같은데, 조만간에 식사 한 번 하시죠.]

“알겠습니다. 여하튼 저는 꼭 인터뷰해야 합니다. 저희만 빼놓으시는 건 이해할 수 없어요. 이런 식으로 일처리 하시면 되게 섭섭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저도 정말 곤란하네요. 제가 다시 한 번 말씀드려볼게요.]


……존나 빡친다.

수화기 너머 그의 목소리로 짐작건대 성사될 분위기가 아니다. 정말 김석진에게 말을 꺼내보기는 할까 하는 의문이 드는 정도. 이대로라면 절대 긍정적인 답변이 돌아올 리 없다.


대체 이 바닥에서 홍보실이 하는 일이 뭐야?! 연예계에서 톱스타들의 파워는 생각보다 훨씬 더 큰 모양이다. 대형 기획사 홍보실장이 이렇게 쩔쩔맬 정도라니. 이러면 김석진 본인에게 연락을 해보는 수밖에 없다는 건데……. 김석진은 뭔데(실제로도 지민은 그가 누군지 잘 모른다) 왜 우리만 쏙 빼놓고 인터뷰를 한다고 지랄이야!


지민이 손톱을 까득까득 물어뜯었다.

그냥 세게 물먹고 치울까. 아, 더 이상 사내에서 낙종의 아이콘으로 찍힐 수는 없는데…….

더군다나 최 부장이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모르고 당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쳐도 알고 당하는 것은 스스로가 병신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꼴 밖에 안 된다. 최 부장 스타일상 반까이할 것을 찾아오라고 엄청나게 쪼아댈 게 분명했다. 정치부 짬밥이 긴 그는 스트레이트 거리가 거의 없는 문화부에서마저 단독을 요구하는 걸로 유명한 데스크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아, 씨발. 뭐 이렇게 되는 게 없어.


심각해진 지민이 초록창을 열어 김석진의 최근 기사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어라? 전정국이랑 같이 드라마를 찍었었네?




드라마 끝난 후 더욱 애틋해진 전정국과 김석진 “또 같이 했으면…” [티브이스타]

김석진, 태국 4000팬 홀렸다…전정국 특별손님 의리 [데일리뉴]

김석진, 바쁜 일정에도 ‘전정국 팬미팅’ 참석 [스타투마로우]




심지어…… 친하잖아…???



띠링-

[전정국: 8시. 집. 오후 6:45]


때마침 울린 문자 알림음. 타이밍 한 번 기가 막힌다.

이 자식은 진짜…….


폰을 들고 망설이던 지민이 가방을 챙겨들고 서둘러 회사를 빠져 나왔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 얼굴을 다시 볼 자신이 없었는데 이제는 그런 것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상황이 급박했다. 택시를 잡는 지민의 눈에 결의가 스쳤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했다.







***






“안녕… 하세요.”


어느새 익숙해진 정국의 집 현관을 들어서며 지민이 꾸벅 목례를 했다. 초인종을 누르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심호흡을 했던가. 예상대로 개뻘쭘하다. 으윽, 눈을 못 마주치겠어.


“약속시간보다 빨리 오셨네요.”

“아, 그, 근처에 있었거든요.”

“앉으세요.”


어기적어기적. 어색하게 걸어 들어가 늘 앉던 자리에 얌전히 착석했다. 저도 모르게 자세가 매우 공손해진다. 블루그레이빛의 마약 소파. 며칠 전, 바로 이 소파에서…… 불현듯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장면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러니까, 여기, 누워가지고, 내가, 전정국이랑 키…스하고…… 그러고……그걸……!


우아아악! 생각하지 말자. 생각하지 말자. 생각하니까 다시 뛰쳐나가고 싶어진다. 지민이 휙휙 고개를 도리질 쳤다. 아냐, 지민아,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 일도 없었어. 이너피스, 이너피스, 이너피스.


“왜 그러세요?‘

“네? 아, 아뇨, 아뇨, 아무것도…….”


주스를 내온 정국이 맞은편에 앉으며 그런 지민을 의아하게 봤다. 잔을 건네며 여상스레 물었다.


“주말 잘 보내셨어요? 별일 없으셨죠?”


존나 태연하게 묻네. 별일 있었잖아, 너랑 나 사이에. 덕분에 내 주말은 완전 엉망진창이었거든.


“네, 뭐…, 그렇죠.”

“솔직히 안 오실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셔서 좀 놀랐네요.”


나도 안 오고 싶었는데…….


“왜요? 제가 안 올 거라고 생각하신 이유라도?”

“그날, 그렇게 황급히 도망가셔서.”


피식.


또, 또, 저렇게 웃는다. 빈정대는 정국의 말투를 읽은 지민의 입 꼬리가 꿈틀대며 올라갔다. 화를 누르려 어금니를 세게 물었다.


“즌쯔로, 집에 급한 일이 생각나서 간 건데요.”

“아……, 얼마나 급한 일이셨기에?”

“가, 가스 불을……, 켜놓고 나온 게 생각나서…….”


푸웁-


나 거짓말 왜 이렇게 못하니. 너무 정론직필(正論直筆)만 추구하고 살았나 봐.


“큭큭, 아 진짜, 괜찮았어요? 아니, 집에 불난 건 아니죠?”

“네……. 다행히도.”

“다행이다 정말, 큭큭큭-”


정국이 정말 재미있다는 듯 웃고 있다. 지민이 무릎 위에 올려둔 양 주먹을 꽉 힘주어 쥐었다.


“어쨌거나 저는 그날 일, 신경 안 씁니다. 정국 씨도 신경 쓰지 마시고 없었던 일로 해요. 수, 술기운에 둘 다 몰입이 좀 과했던 것 같은데……. 술이 참, 문제라니까요. 아하하.”

“흐음, 그렇게 생각하시는구나.”


뭐, 그럼 씨발, 어떻게 생각해야 되는데? 존나 신경 쓰여서 주말 내내 정신 못 차렸다고, 그렇게 말할 수는 없잖니? 덕분에 내가 바이라는 걸 알게 돼서 고맙다고 절이라도 하리? 응?

애써 사건을 무마하고 있건만 정국의 반응이 영 마뜩찮다.


“그래요, 그럼. 박 기자님이 그게 편하시면.”

“......네.”

“대본 연습, 할까요?”

“……네.”



이번 대본은 다행히 전과 달리(?) 무난한 씬들이 이어졌다. 아, 근데 얘네 좀 가슴 아프다. 지민은 대본을 읽으면서 괜히 진한과 주영의 감정에 이입이 되는 것 같았다. 정말로 하다 보니 느는 건지, 대사를 읽는 것도 아주 약간, 아주 야아아악간 자연스러워졌다.


내가 바이라는 걸 자각해서 그런 걸까, 얘네 감정선도 조금 알 것 같네. 남자들끼리의 로맨스가 어째 애틋하기까지 하다. 진한이 주영이, 이 불쌍한 녀석들…….


“오늘은 이만하죠. 수고하셨어요.”


한 시간쯤 했을까. 정국이 깔끔하게 연습을 마무리한다. 지민이 마른 입술을 축였다. 이제 본론을 꺼낼 차례다.


“저, 정국 씨 그때 저한테 하신 말 기억하시죠?”

“무슨 말이요?”

“취재……, 막히는 거 있으면 도와주신다고 하셨던 거.”

“아아, 물론이죠. 왜요? 뭐, 문제라도 있으세요?”


기분 탓인가. 정국의 눈이 묘하게 반짝이는 것 같다.


“그, 김석진 씨 아시죠? 친한 사이신 것 같던데…….”

“석진이 형이요? 완전 친하죠. 작년에 드라마 같이 찍었어요.”

“아, 그…, 그분이 이번에 방송대상 받으셔서 제가 인터뷰를 좀 하고 싶은데……, 연결을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그런 건 기획사 통해서 요청하시는 게 빠르지 않아요?”


그게 안 되니까 너한테 얘기하지 않겠니.


“무슨 이유인지 거절을 당해서요. 하하…….”

“아아, 석진이 형이 좀 까다로운 편이라서. 잠시만요.”


곧바로 폰을 든 정국이 통화 버튼을 누른다. 응? 지금 바로 전화하는 거야? 진짜로?

정국이 통화 모드를 스피커폰 모드로 돌렸다. 뚜- 뚜- 신호음이 울린다. 긴장한 지민이 꿀꺽 침을 삼켰다.


[응 정국아, 형이야.]

“어, 형, 바빠요?”

[아냐, 무슨 일이야?]

“형, 인터뷰 하나만 해줘요.”

[응? 인터뷰?]

“내가 잘 아는 기자님이 계신데, 형 인터뷰가 하고 싶으시대. B일보.”

[아, 나 안 그래도 A일보랑 C일보랑 이미 약속이 돼 있어. B일보는 좀…….]

“내가 이런 부탁 잘 안 하는 거 알잖아요.”

[그러게, 네가 웬일이냐. 근데 이제 와서 말 바꾸면 내가 다른 기자님들 뵐 면목이 없는데.]

“형…, 해줄 거죠?”

[……음, 알았다. 네가 이렇게까지 얘기하는데. 형이 우리 정국이 부탁은 들어줘야지.]

“후후, 고마워요. 곧 술 한잔해요.”


헐? 대박! 이렇게 쉽게 승낙을 한다고?


정국을 향한 지민의 눈빛이 의심에서 존경으로 바뀐 건 한순간이었다. 전정국 너 이제 보니까 내 구세주구나? 내 인생을 망치러 온 줄 알았더니! 와, 네가 이렇게 쓸모가 있네, 진짜 대박.


“들었죠? 내일 연락해 봐요. 석진이 형 개인 연락처도 줄까요?”

“네?! 완전 감사하죠, 그럼!”


싱긋. 정국이 웃는다.

갑자기 재수 없기만 하던 그의 미소가 겁나 사랑스러워 보인다. 정국이 문자로 김석진의 연락처를 넘겨주었다. 띠링- 문자를 확인한 지민의 표정이 환해졌다.


“고맙습니다!”

“별말씀을요. 이런 부탁은 뭐 얼마든지. 앞으로도 대본 연습 꼬박꼬박 오시고요.”

“아, 그럼요, 그럼요.”


정국이 기뻐하는 지민을 향해 미소 짓는다. 눈을 가득 접은 지민이 해사하게 마주 웃었다.

그래, 드디어 네가 밥값을 하는구나, 전정국. 이제야 너한테 만들어 먹인 김치볶음밥이 아깝지가 않다.







***







그 시각.


폰을 내려놓은 석진이 배를 잡고 자지러지기 시작했다. 끅끅끅! 석진이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옆에 있던 매니저의 팔뚝을 팡팡 친다. 매니저는 그런 석진을 몹시 이상하게 쳐다봤다. 아오- 형님 아파요, 하면서.


“큭큭, 동철아, 김 실장님한테 전화해서 모레 라운드테이블 인터뷰에 B일보도 넣어달라고 말씀 좀 드려.”

“예??? 형님이 B일보랑은 절대로 안 하신다면서요.”

“아흐, 그냥 그런 줄 알고 다시 한다고 해. 큭큭.”


뭔 변덕이 죽 끓듯 하네……. 매니저가 속으로 투덜거림을 삼키며 홍보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석진은 그런 매니저를 보며 여전히 끅끅대며 웃는 중이다. 통화 중에 웃음이 터지려는 걸 참아내느라 혼신의 힘을 짜냈다.

아, 사극 연기할 때보다 더 힘들었어. 전정국 이 자식은 도대체 뭘 꾸미는 데 나한테 이런 걸 다 시켜. 간만에 겁나 웃었네.

눈가의 눈물을 훔쳐낸 석진이 며칠 전 정국과의 통화를 떠올렸다.



[형, 이번에 라운드테이블 인터뷰한다고 했죠? 그때 B일보만 빼고 한다고 해줘요.]

“왜? 그럼 홍보팀에서 난리칠 텐데. 나 또라이라고 욕먹어.”

[일단 무조건 B랑은 안 한다고 해. A랑 C만 한다고.]

“아니……, 이유나 좀 알자?”

[나중에 설명해줄게요. 한 턱 크게 쏠 테니까.]

“나 진짜 비싼 거 먹는다?”

[응, 원하는 대로.]

“콜.”











후원, 구독, 댓글, 하트... 전부 너무 감사드려요♡

 과분해서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ㅠㅠ




Rubi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