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지는 글입니다. 


분명히 감당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재현의 집착은 처음엔 조심스러웠다. 제가 사자라는 걸 알고 기절까지 한 여주한테 처음부터 본모습을 보여줄 순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재현씨! 저 오늘 학교 일찍 끝나요!"


아직 대학생(졸업반이긴 하지만)인 여주와 회사에서 꽤나 높은 직책을 맡고 있는 재현의 생활패턴은 비슷한듯 달랐다. 오전 수업 없이 1시 첫수업, 5시에 마지막 수업인 여주와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해야 하는 재현과는 하루를 보내는 방식 자체가 달랐지.

여주는 이제 다신 없을 마지막 대학생활을 조금 더 알차게 보내려고 했다. 그때는 재현의 집에서 살거라고도 생각을 안했기에 당연하게 취업을 준비해야했지.


"끝나고 뭐해요?"

"저 오늘 학회 있고 스터티도 하나 있어서 8시쯤에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요!"


취업 준비생들은 생각보다 바빴다. 이력서에 조금이라도 글자수를 채워넣으려면 당연히 바쁘게 살아야 했으니까... 하지만 인생이 사자수저인 재현은 그걸 잘 이해하지 못했다. 회사에 들어가는 건 재현에게는 밥먹는 것보다 쉬운 일이었거든.


"여주씨 학회랑 스터디에 어떤 사람들 있는지 다 알아봐."


자긴 학회랑 스터디 따위 해본 적도 없지만 거기가 생각보다 정분이 많이 난다는 건 알고 있었다. 여주가 가끔 쫑알쫑알 자기 친구가 스터디에서 남자친구를 사귄다는 소리를 하는 걸 다 기억하고 있었거든. 재현은 여주 한정으로 모든 걸 기억하고 있었다. 



재현의 비서는 그 어떤 일처리보다 여주씨 관련 일처리가 가장 빨라야 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뭐... 눈치가 그 무엇보다 빠르다는 여우 수인이었으니까. 사실 재현에게 지금 가장 큰 도움을 주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브리핑 하겠습니다. 학회는 여학생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아마 과 내에서 여학생들끼리 하는 학회로 추정됩니다. 다들 4학년이라 이력서에 한 줄 더 쓰는 걸 목표로 공모전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그건 좀.. 괜찮네. 다음."

"스터디는... 남학생 4명 여학생 두명입니다."


".... 더 해봐."

"에브리타임에서 익명으로 모집한거라 성별을 알 수가 없었던걸로 보입니다. 찾아본 결과 수인은 없고 남학생 4명 전부 군대를 제대한 2학년 학생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주씨랑 개인적인 연락은?"

"카카오톡은 단톡방에서만 얘기하는 중입니다. 개인적으로 연락을 한 학생은 아직 없습니다. 다만..."


"다만?"

"스터디의 한 남학생이 여주씨에게 조금 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학생의 개인 톡을 해킹해본 결과 여주씨에게 관심이 있다며 스터디 가기 전에 빡세게 꾸며야 한다는 내용의 톡을 보낸 정황을 포착했습니다. 물론... 일단 외모가 별로라 여주씨는 아무 관심도 없어보이시지만.. 어떡할까요?"


"내가 오늘 해결할게. 오늘 스터디 장소 찍어서 보내놔."


재현은 누구든 여주 옆에 있는 사람이 거슬렸다. 성별과 나이를 막론하고 말이지.. 그래도 여주의 사회생활을 아예 막을 생각은 없었다. 아 물론 이건 대학교 때까지만이었지. 1년도 안남은 대학생활을 지금이라도 그만두게 하고 싶지만 여주가 원하니까... 조금 사린거지. 

여주의 몸에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의 체취가 묻어있는 게 매일같이 거슬려 꼭 여주가 조수석에 앉는 동시에 제 페로몬으로 샤워를 시켜버리지만 아직 각인도 하지 않은 인간에게 그 페로몬 샤워가 오래 갈 리가 없었다.


"저 눈깔을... 진짜 뽑아버려야 되는데."


스터디는 학교 근처에 있는 한 카페에서 하곤 했다. 오늘은 운이 좋은건지 좋지 않은건지 통유리로 된 카페 1층에서 하는 바람에 재현의 눈에 총 5명의 인간들이 들어왔지. 어색해보이는 여자는 논외. 여주는 자격증 시험 스터디에서 딱 공부만 할 생각이었는데, 사적으로 말을 거는 남자들이 약간 불편해보였다. 


"여주씨는 주량이 어떻게 돼요?"

"네? 아... 저는 술 안마셔요."

"와.. 저 술 안마시는 사람 좋아하는데ㅎㅎ"


어쩌라고... 물어본 적도 없는데 니가 내 취향이야~ 라는 말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남학생에 여주가 어색하게 썩소를 날렸지. 존나... 티엠아이시네요..

그리고 재현은 사자였다. 귀가 진짜 좋다는 소리다. 물론 개과동물만큼 귀가 발달한 건 아니지만 이정도 거리에서 들리는 대화는 전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지금 핸들을 쥔 손이 정말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물론 여주가 처신을 못했다는 게 아니다. 여주는 완벽했다. 하지만 여주가 처신을 어떻게 하던 재현은 그냥 저 옆에 자기가 없고, 저 사람들이 여주 옆에 있다는 그 사실 하나가 빡치는거다. 대화는 두번째고.. 의미없는 싼마이 플러팅에 헛웃음이 나긴 했지만 저딴걸로 넘어가는 사람이 절대 아닌 걸 알아서 그런 건 걱정하지 않았다.


"안되겠네."


여주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는 걸 보고 결국 문을 열고 나왔다. 이쯤 참았으면 꽤 많이 참았다고 생각했지.


"안녕하세요."


누가봐도 성공한 직장인..? 좀 높은 사람의 포스에 다들 누구지...? 하고 눈치를 보는 동안 여주는 갑자기 등장한 재현에 놀랍고 또 반가웠다. 데리러 올거라는 건 알았는데 장소도 알려주지 않았기에 어떻게 왔지? 싶기도 했고 멋있는 재현이 조금 자랑스럽기도 했거든.


"어? 재현씨!"


"여주씨랑 8시에 약속에 있어서 제가 못참고 먼저 들어왔어요. 저는 옆에 앉아있을게요. 하던거 마저 하세요."


30분 정도 남은 스터디 시간을 다 지켜보겠다는 말에 남자들은 침을 꿀떡 삼켰다. 아... 왠지 모르게 위압감이 장난 아니었다. 왜지... 왜 손이 이렇게 떨리지...

특히 아까 싼마이 플러팅을 날리던 그 남학생은 자꾸만 마주치는 시선에 입술이 바짝바짝 말랐다. 왠지 모르게 오금이 저려왔거든.


"ㅇ...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요?"


아직 7시 40분. 20분이나 더 남은 스터디 시간에 신경쓰지 말라며 어깨를 으쓱해보이는 재현. 하지만 자기들도 가봐야 한다며 부리나케 달아나버린 남학생들에 스터디는 예상보다 좀 일찍 끝났다. 여학생도 인사를 꾸벅하고 가버리고 입이 귀에 걸린 여주만 재현의 자켓 소매를 꼭 잡고 있었지.


"어떻게 알았어요 나 여기 있는거?"


"나 분명 말했는데 사자라고."

"헐.. 그럼 혹시 막... 육감? 이런걸로 찾으러 온건가?"


"육감 없어도 오감만으로 여주씨 찾아요."


자연스럽게 여주의 가방을 가져가더니 한손으로 여주의 어깨를 감싸고 카페를 빠져나온다. 물론 여주의 몸에 묻은 다른 이들의 체취를 감식하고 제 냄새로 덮어버리기 위한 행동이었지에 이런 거 하나하나가 여주에게는 설렘으로 다가왔다.

사자.. 그래.. 어떻게 이 넓은 세상에 인간만 살겠어...? 나도 모르게 뱀파이어도 있고 막.. 귀신도 있겠지? 수인이 뭐 대수야? 동물도 있고 인간도 있으면 동물반 인간반도 있어야지.. 

재현과 지내는 시간이 늘어갈 수록 여주의 머릿속에서는 사자 수인에 대한 합리화가 착착 진행됐다. 그 후로 단 한번도 사자인 재현의 모습을 본 적 없는 것도 있고, 재현은 여주에게 그 어떤 헷갈림도 무서움도 준 적이 없었거든. 그동안 학교에 깔리고 깔린 하남자만 보다가 이런 남자를 보니 그깟 종이 대수겠냐 싶었다. 


그게 여주가 사자의 입으로 직접 걸어들어가게 된 계기였다.




쿠키(현재 여주와 재현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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