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마지막 퇴근길은 간단했다. 나를 제외하고는 달리 깊게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이 없었던 곽아론에게 마지막은 그저 가볍게 서로 인사를 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어쨌든 한 종류의 이별이었음에도 사람들의 얼굴은 평소와 조금도 다름없었다. 평범하고 여상한 얼굴 속에 그 누구도 슬퍼하거나 아쉬워하지 않았다. 쌓아온 서사가 없기에 이별의 순간도 얕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저 어색하기만 한 순간이 어서 빨리 끝났으면 하는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차마 바라볼 수가 없어 그저 묵묵히 애꿎은 곽아론의 재킷 끝 어느 즈음에 시선을 던져두었다.


“이렇게 같이 퇴근하는 것도 마지막이네.”

“차도 뺏겼나 봐요, 버스를 타자고 하는 거 보니.”


그렇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곽아론을 나는 그저 바라만 보았다. 나를 향해 짧게 눈인사를 하고 다시 제 텅 빈 방으로 돌아가는 뒷모습을 빤하게 응시하던 나는 곧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모두들 순식간에 흩어져 일상으로 돌아가 버리는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당장 내일이면 곽아론을 보지 못하는데 그것에 대해 잠깐이라고 곱씹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쌓여 있는 일거리를 뒤적이며 한숨을 내쉬고, 곽아론과 인사를 하느라 받지 못한 전화를 다시 거는 사람들은 마냥 각자의 시간 속에서 분주했다.


“내가 차가 없으니 매력이 줄어들어요?”

“그럴게 뭐가 있어요, 어차피 회사 차였는데.”

“.....”


그 사람들의 일상에 어쩌면 단 한 번도 속해보지 못했던 것인지도 몰랐다. 몇 달을 함께 지내는 동안 사람들은 단 한 번도 곽아론을 제 시간 속에 끌어들인 적이 없었는지도 몰랐다. 아니,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돌아가도 그만인 사람, 기타 등등으로 남아버릴 이방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곽아론과의 이별이 슬플 리가 없었다. 앞으로 며칠은, 아니 그보다 더 길게 슬플지도 모르는 내 마음을 알아 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냥, 사무실도 사라지고 집도 없고 차도 없고.”

“.....”

“되게 뭐가 많았던 것 같은데 순식간에 다 사라져 버리니까.”

“.....”

“너무 이상해서요.”

“.....”


뒤숭숭한 마음을 어쩔 수가 없었다. 일이 특별히 많았다기보다 도무지 집중을 할 수가 없어 해야 할 일을 시간 내에 끝내지 못한 나는 퇴근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보며 이내 느리게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끝나면 연락해요, 기다릴게요. 그런 나를 알기라도 하는 듯 미리 보내 놓은 메시지를 빤히 바라보던 나는 곧 살며시 입술을 깨물었다.


“진짜 아무것도 안 남는 게, 되게 허무해서.”

“.....”

“본부장님은 한국에 아무것도 없구나 싶어서.”

“......”


굳이 끝내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오늘 하면 좋지만, 내일 해도 당장 큰일이 나지는 않는 일을 나는 그 메시지를 받고도 한참을 더 바라만 보고 있었다. 30분이 지나고, 한 시간이 지나고. 더 이상은 내가 안 되겠다 느꼈을 때 텅 빈 사무실을 박차고 나가자마자 벽에 기대 서있던 몸이 나를 향해 돌아섰다. 가자, 데려다줄게요.


“내가 왜 아무것도 없어.”

“...뭐가 있는데요, 그럼.”

“최민기가 있잖아.”

“.....”

“그럼 다 있는 거 아니에요?”


오늘은 버스 타고 갈래요? 주차장 대신 로비의 버튼을 누르는 곽아론을 의아하게 바라보자 나를 향해 물어왔다. 그리고 대답 대신 내 손을 잡아오는 곽아론을 나는 굳이 뿌리치지 않고 얌전히 따라 걸었다.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되게 대단한 사람 같고 좋네요.”

“되게 대단한 사람 맞는데.”

“증거도 없이 입으로만 그렇게 말하면.”

“.....”

“내가 믿을 것 같아요?”

“응.”


그렇게 단호하게 대답을 하면 내가 또 아니라고 말하긴 뭐하다는 듯 입을 꾹 다물자, 곽아론의 입술이 슬쩍 말려 올라간다. 퇴근 시간을 조금 넘긴 시간이었지만 서울을 가로지르는 버스 안은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각자의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의 얼굴은 각자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아무도 무엇이라 말하지 않지만, 누구나 무슨 이야기는 하나씩 품고 있어 침묵은 소란스럽고 수다스러웠다. 그 광경을 가만히 앉은 채 바라보고 있던 나는 곧 슬그머니 내 손을 붙잡아오는 곽아론을 향해 살며시 고개를 돌렸다.


“.....”

“.....”


각자의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벅찬 사람들은 다른 누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우리의 이야기를 매일 보는 지루한 풍경에서 더듬고 있던 나는 곧 내 손을 붙잡고 있는 곽아론의 손을 더욱 꽉 붙잡았다.


“생각보다 가까워요, 회사에서 최민기씨 집까지.”

“...네?”

“차보다는 버스가 조금 더 오래 걸리고.”

“.....”


붙잡은 손을 놓지는 않았다. 얼마 남지 않은 페이지였다. 내 이야기의 끝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지나간 페이지보다 남은 것이 훨씬 적었다. 그 속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까지 끼워 넣을 여력은 없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저 한 순간 가십이고 말 이야기가, 우리에게는 어쩌면 전부일 수도 있어서 버스에서 내린 후에도 손을 꼭 붙잡고 있던 나는 골목에 들어서자 느리게 입을 여는 곽아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었어요, 최민기씨랑.”

“.....”

“내일부턴 이렇게 못하니까.”

“.....”


생각해보면 새삼스러운 것이었다. 이곳으로 이사를 오고, 회사를 다니며 매일 같이 오가던 길에, 그 풍경이 쓰는 이야기에 곽아론은 없었다. 나와 비슷한 피곤한 얼굴을 하고, 나와 비슷하게 지쳐 또 다시 살아야 할 내일보다는 당장의 오늘의 휴식을 갈망하는 사람들만이 있었을 뿐이다.


“1초라도 오래 같이 있고 싶어서.”

“.....”

“그래서 일부러 최민기씨 피곤하게 했어.”

“.....”

“미안해요.”


그 평범한 이야기 속에 끼어든 것은 곽아론이었다. 매일같이 혼자 타던 버스에 함께 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혼자 걷던 골목을 같이 걷는 기억을 갑작스레 끼어들어 만들어 버린 곽아론을 가만히 바라보던 나는 이내 걷던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곽아론 쪽으로 돌아섰다.


“뭐가 그렇게 자꾸 미안해요.”

“....”

“미안하다는 말, 고맙다는 말 그런 말 말구.”

“....”

“우리 다른 말해요, 지금 하지 않으면 후회 할 것 같은 말.”

“....”


차로 데려다 줬으면 훨씬 빠르고 편했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렇게 하기엔 우리가 가진 시간이 너무 빨리 소멸 되는 것 같은 느낌에 겁이 났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함께 하지 않으면 아무리 길어도 의미 없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은 그 마음을 모르지 않아 나는 괜찮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남은 시간 동안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보고 싶은 것만 봐요.”

“.....”

“이거 하면 상대방이 싫어할까봐 주저하지도 말고, 걱정하지도 말고.”

“.....”

“배려하지도 말고 그냥, 하고 싶은 대로.”

“.....”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으니까.”


이렇게 말을 한다고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곽아론은 나를 붙잡고 숨을 죽여 한참을 울었다. 끝내 아무 말도 없는 나를 다그치지도 않고 그저 저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인 듯 눈물을 삼켜 낸 곽아론은 곧 긴 숨과 함께 가볍게 웃으며 나를 향해 중얼거렸다.


“그래서 최민기씨는 하고 싶은 게 뭔데.”

“.....”

“나는 말했으니까 이번엔 최민기씨가 말해요.”

“.....”

“내가 해줬으면 좋겠는 거, 나랑 하고 싶은 거.”


안 해줘도 돼요. 신경 쓰지 말아요. 결국 그 말을 하며 부담마저 눈물과 함께 제 몫으로 감당해버린 얼굴을 빤하게 바라보던 나는 곧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붙잡고 있는 곽아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안 가면 안돼요?”

“.....”


사람들 누구도 곽아론을 중심에 두지 않았다는 것이 서러웠다. 기타 등등으로 남아버릴 이 사람에 대한 기억이 오롯이 나에게만 남는다는 것이 나는 괜스레 슬펐다. 그래서 뒤숭숭했던 마음은 사실 그보다 더 큰 것을 끌어안고 있었다.


“..안 가면 안돼요?”

“최민기.”


무슨 말이라도 해보라는 듯, 그럼 다 들어주겠다는 듯 서있던 곽아론이 손이 힘없이 나에게서 멀어졌다. 나를 놓았다기보다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말에 나를 놓쳐버린 손이 갈 곳을 모르고 허공에 놓여있었다. 그 손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던 나는 곧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미국 가지 말란 말이 아니에요.”

“.....”

“나 그 말은 못해요.”

“.....”


크게 놀란 눈이 나를 보며 정신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기대와 혼란이 뒤섞인 눈을 빤하게 바라보던 나는 곧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본부장님 붙잡고 싶어요. 가지 말라고 하고 싶어요.”

“.....”

“나랑 같이 있자고, 여기서 나랑 같이 살자고 하고 싶은데.”

“.....”

“그건, 월권이에요.”


곽아론은 내게 무얼 바란 적이 없었다. 결코 길지 않은 시간, 갑작스레 끼어들어 내 이야기의 페이지를 가득 채우면서도 내게 바란 적이 없었던 사람이 처음으로 꺼낸 이야기를 나는 차마 내 페이지에 온전히 적지 못했다. 그렇게 해주겠다 말을 할 수가 없어서,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한 채 같이 울어주지도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려 나는 좀처럼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본부장님한테 가지 말라는 말을 하면 본부장님은 거절을 해야 해요.”

“.....”

“안 갈 수 없으니까, 가야하니까.”

“.....”

“그럼 나한테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뿐이잖아요.”

“.....”

“미안하다는 말.”


해달라는 것이 그것 하난데, 그것이 내가 가장 할 수 없는 일이라서 결국 해주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려 콕콕 가슴을 찔렀다.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떠올려도 그것들이 모두 곽아론이 원하는 것일지에 대한 확신이 없어 내 선택지에서는 자꾸만 밀려났다.


“본부장님이 또 나한테 미안하게 만들 권리는 없어요, 나한테.”

“.....”

“그러니까 저 그 말은 안 할 거예요.”

“.....”

“대신, 나랑 같이 있어요. 미국 가기 전까지.”


그래서 난 차라리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선택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으니, 내가 하고 싶은 걸 함께 해달라고. 참으로 마지막까지 이기적인 선택이지만.


“서울에 남은 거 나 밖에 없으니까.”

“.....”

“그 동안만 나랑 있어요.”

“.....”

“가지 말고.”


남은 시간을 오롯이 달라는 말을 하는 나를 곽아론은 그저 빤하게 바라보았다. 싫다는 말도, 그래도 그 말을 해달라는 말도 없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곽아론이 천천히 잠시 놓았던 손을 붙잡아 나를 제 품 안에 끌어안았다.


“최민기 진짜 말 안 듣는구나.”

“.....”
“신경 쓰지 말라니까, 신경 쓰고 있었어.”

“.....”


어슴푸레 쏟아지는 가로등 불빛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 그림자의 길이만큼의 애정 어린 목소리로 나를 달래는 음성에 나는 크게 숨을 내쉬었다. 토닥토닥 내 등을 두드리며 내 숨과 비슷한 것을 뱉어 낸 곽아론이 이내 천천히 나를 놓아주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할게요.”

“.....”

“신경 쓰게 해서 미안해요.”

“.....”

“절대 최민기 부담주려고 한 말 아니야.”

“.....”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못 견딜 것 같아서 그랬어.”


바람이 흔들고 간 머리칼을 가만히 정리하는 손이 한참을 그 주변을 머뭇거렸다. 그 때의 감정을 되새기듯 잠시 말을 멈추고 마른 입술을 깨물었다 놓은 곽아론의 손이 곧 내 얼굴을 가만히 감싸 쥐었다.


“나중에 후회 할 것 같았어, 당신한테 붙잡아 달라 말해보지 못한 걸.”
“.....”

“그게 다예요. 나도 안 된다는 거 알아.”

“.....”

“그나저나 이 작은 머리로 신경 쓰느라 되게 힘들었겠네? 우리 민기.”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듯 내 얼굴을 엄지손가락으로 가볍게 쓸며 중얼거린 곽아론의 표정이 곧 금세 장난스럽게 바뀌었다. 그 얼굴을 빤하게 바라보고 있던 나는 입술을 잔뜩 동그랗게 만들어 내밀고 있다 곧 내 얼굴을 쓰다듬는 손을 그대로 붙잡아 내렸다.


“그래서 해줄 거예요, 말 거예요.”

“뭘.”

“나랑 같이 있어주는 거.”

“....”

“대답 안했잖아.”


내 행동에 잠시 의아해졌던 얼굴이 곧 가볍게 풀어진다. 그리고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 나를 향해 한 발 가까이 다가선다.


“그게 대답이 필요한 질문이 아닐 텐데.”
“....”

“그래도 내 대답이 듣고 싶어?”

“네.”


그럼 어쩔 수 없다는 듯 완전히 내게 다가선 곽아론의 팔이 나를 다시 제 품 안에 가두었다. 그리고 곧 느리게 입을 열었다.


“그럼 일단 키스부터.”

“여기에서?”

“집까지.”

“.....”


한적한 골목은 모두의 숨이 멎은 것만 같았다. 아무도 우리의 이야기에 끼어들 수 없을 것처럼 잔잔한 고요가 전부였다. 할 수 있는 것이 이것 뿐 이라는 게 다행인지 아닌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이 연애가 모두 끝나고 나야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돌아서는 순간, 지금 이 골목의 풍경이 만들어 낸 이야기를 회상하며 그때의 나는 그랬었다고 말 할 수 있을 뿐이었다. 당장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남은 시간, 남은 순간 그 모든 페이지에 곽아론과 나의 이름을 적는 것, 그뿐이었다.









야속하다 생각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당장 곽아론이 쓰던 본부장실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누군가 다시 와서 쓰기 전까지는 그 전의 쓸모였던 기획본부회의실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을 그 곳은 바람 냄새와 내려앉은 먼지가 그곳이 누군가의 손길이 닿은 순간은 반짝거렸다는 것을 알려 줄 뿐이었다. 그 공간의 허탈함에 묻혀 마냥 감상에 빠져 있을 시간조차 나에겐 허락 되지 않았다. 하루는 정신없이 흘러갔다. 알람이 울리는 시간에 맞춰 일어나 출근을 하고 회사에 도착해 정신없이 지내다 보면 밥을 먹으라 아우성이었다. 밥을 먹고 또 잠깐 한 눈을 팔고 보면 시간은 듬성 잘려 나가 있기 마련이었다. 나이를 먹으면 원래 시간이라는 게 그렇게 빠르게 가는 법이라고, 시간이 왜 이렇게 잘 가냐 혼잣말처럼 한탄한 말에 누군가 갈 날짜만 받아 놓은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어, 나 지금 이제 내려요. 배고프다.”


그런 시간도 붙잡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해요? 의미 없는 물음인 것을 알면서도, 나는 모든 걸 다 해탈한 것처럼 중얼거리는 아무개에게 물을 뻔 했다. 무엇에라도 의지해 방법을 알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다.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별 앞에 사람은 한없이 유약해졌다.


“먹고 싶은 거? 엄청 많은데? 아, 잠깐 나 교통카드 좀.”


그러다 금세 차분해지는 마음은 다시 현실을 보라 아우성쳤다. 그렇게 자꾸 무의미한 것을 돌아볼 시간이 없다고, 눈앞의 사람을 보라 내 고개를 돌리는 소리에 돌아보면 그곳에는 아직 곽아론이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뜰 때, 그리고 집에 돌아와 문을 열면 거짓말처럼 곽아론이 있었다.


“오랜만에 본부장님이 해주는 스테이크 먹고 싶다.”


내려야 할 곳이 다가오는 것을 확인하고 미리 선 채로 내릴 순간을 기다리던 나는, 곧 들고 있던 휴대전화를 툭 눌러 찍고 서서히 멈춰 열린 문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제 막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한 하늘 아래 불어오는 바람은 제법 쌀쌀했다.


“나 스테이크 해 줄..”

“....”

“본부장님?”

“.....”


그 바람 속으로 들어서며 반사적으로 몸을 살짝 움츠린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손에 든 휴대전화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를 향해 성큼성큼 걷던 나는 횡단보도 건너편에 서있는 얼굴에 그대로 들고 있던 것을 끌어내렸다.


“뭐예요, 왜 나와 있어요?”

“왜긴, 최민기 데리러 나왔지.”

“내가 언제 올 줄 알고.”

“오늘 안에는 오겠지 싶어서.”


시간이 더 빠르게 흐르는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나이를 먹은 내가, 이제 시작한 연애를 조금 더 열심히 하고 싶어 최대한 야근을 줄이려 안간힘을 썼다. 그래봐야 나약한 내가 눈치껏 정시에 퇴근 하는 일은 일주일에 두 번이면 많았지만, 어쨌든 일을 다 끝냈다는 핑계거리라도 만들어야 했다. 너 그러다 쓰러져, 쉬엄쉬엄 해. 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마냥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알 정도로 최선을 다했지만 두 번을 뺀 나머지는 당연하게 야근이었다.


“데리러 나오란 말도 안했는데.”

“그래서 더 데리러 나오고 싶던데.”

“뭐야, 청개구리야?”

“청개구리? 갑자기? 나 개구리 닮았어?”


그런 소리는 처음 듣는다는 듯 의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곽아론을 향해 아니 그게 아니라 하고 설명을 하려다 나는 그냥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버렸다. 안 닮았어요, 개구리. 그것보단 잘생겼어. 그 말에 그제야 안심하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는 얼굴을 힐끗 바라 본 나는 이내 곽아론의 셔츠 소매 끝만 붙잡았다.


“손 잡고 싶은데, 아직은 좀 밝다.”

“.....”

“야근 하고 오면 어두워서 손 잡고 걸어도 되는데.”

“그래서 야근만 하면 데리러 나오라고 했구나? 다 그런 마음으로.”

“그럼 안 돼요? 내꺼 내가 잡겠다는데.”


그리고 내가 손만 잡아도 다른 거 하고 싶어서 안절부절 하는 게 누군데.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자격이나 있냐는 듯 뻔뻔하게 중얼거리자 곧 하, 하는 짧은 헛웃음이 들려온다. 왜요, 뭐 내가 틀린 말 했어? 난 뭐 그렇게 되게 바란 적 없거든요. 억울하면 변명 해보시든가. 그런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곽아론이 곧 뭐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건 몰랐네, 넌 되게 바란 적 없다는 거.”

“난 그런 거 밝히는 사람은 아니라서.”

“알았어요, 그럼 앞으로는 너 하자는 대로 할게.”

“...뭘요?”

“너 바란 적 없다며. 그럼 손만 잡고 아무것도 안하는 걸로.”

“왜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가는데?”


아니요, 이봐요. 나는 언제나 네가 원하는 대로만 하는 사람이라는 듯 대꾸를 하고 먼저 마트 안으로 걸음을 옮기는 곽아론의 뒤통수를 가만히 바라보던 나는 곧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있는 대로 콧방귀를 끼고는 그 뒤를 따라 걸었다. 사람이 또 뭐 그렇게 냉큼 나를 위하냐? 본인 생각도 좀 하고 그래야지.


“스테이크면 돼?”

“뭐 다른 것도 해주려고 했어요?”

“원래 준비 된 게 있긴 했는데, 별로 안 좋아 할 것 같아서.”

“뭔데요.”

“나.”

“아, 진짜. 아직도 그걸 마음에 담아뒀냐?”


벤댕이 소갈딱지도 그것보다는 크겠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자 곧 곽아론이 웃으며 사온 것을 꺼내 놓고 나를 바라보다 곧 그대로 돌아섰다.


“쉬고 있어, 금방이면 돼.”

“.....”


막 옷을 갈아입고 나온 나는 당연히 익숙하게 내 부엌에 선 뒷모습을 가만히 선 채로 바라보았다. 마치 원래부터 이곳에 존재했던 사람처럼 곽아론은 내 공간에 아무런 위화감 없이 스며들었다. 짐이라곤 옷과 서류가 전부였다. 그것도 미리 보낼 것은 보내버린 탓에 거의 몸만 옮겨 온 것이나 다름이 없이 내 공간으로 들어온 첫날, 비밀번호를 누르려던 손이 머뭇거리다 누른 초인종에 곽아론이 그대로 문을 열고 나타났다.


“왜, 뭐 필요해?

“본부장님.”

“뭐야, 왜.”

“...그냥요, 좋아서.”


머뭇거리던 손이 무색하게, 혹시나 곽아론이 나타나지 않을까 걱정한 마음이 쑥스럽게 당연하다는 듯 나타난 얼굴처럼 익숙하게 부엌에 서있는 곽아론의 뒷모습을 빤하게 바라보던 나는 이내 터벅터벅 걸음을 옮겨 그 등을 가만히 끌어안았다.


“어, 이래도 오늘 메뉴에 나는 없는데?”

“상관없어요. 보기만 해도 좋으니까.”

“......”

“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너무 좋으니까.”

“......”


그런 나에게 등을 내준 채 장난스럽게 중얼거리던 곽아론이 곧 그대로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더 해보라는 듯, 얼마든지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듯 바라보는 얼굴에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1초도 안 쉬고 일했어요, 야근 안하고 집에 오려고.”

“야근 안하면 손 못 잡고 오는데도?”

“대신 이렇게 더 많이 있을 수 있잖아. 손 보다 더 좋은 거, 더 진한 거 하면서.”

“바란 적 없다더니.”

“사람은 욕심의 동물이라, 바라면 바랄수록 더 바라게 되니까.”

“.....”


그런 나를 여과 없이 오롯하게 바라보는 시선은 애정 뿐이었다. 그 눈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던 나는 곧 곽아론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보고 싶었어요, 오늘도.”

“나도.”


그리고 이번에 다시 다가오는 것은 곽아론이 먼저였다. 불이 환하게 밝았지만 아무 상관없었다. 내 공간이고, 우리의 공간인 이 곳에서 내가 다가오는 곽아론을 밀어 낼 이유는 아무것도 없었다. 가볍게 입술을 머금었다 멀어지는 곽아론을 난 그래서 단숨에 더 붙들었다. 멀어지지 못하도록 완전히 끌어안은 입술이 한참이나 서로에게 머물렀다. 보여줄 수 없는 마음의 낙인이었다. 절대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이 흘러 우리가 비록 떨어져 있어야 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이 마음은 흘러가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 그리고 맹세였다.


“사랑해요, 오늘도.”

“나도.”


우리에게 남은 시간, 단 하루였다.






잘 지내보기로 했다.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며 지내보자 했지만, 허락된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기에 우린 그냥 잘 지내자라는 말을 했다. 어떻게 지내는 것이 잘 지내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슬퍼만 하다가 보낼 수는 없다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평소엔 그냥 틀어 놓는 의미 없는 드라마도 우리에겐 같이 본 첫 번째 드라마였고, 곽아론의 핑계를 대고 바꾼 똑같은 모양의 색만 다른 칫솔도 또 하나의 잘 지내는 방법이었다. 혼자 눕던 침대에 베개가 하나 더 놓인 것도, 내 것이 아닌 옷이 건조대에 걸려 있는 것도 우리에겐 이 시간을 잘 견디는 의미 있는 것들이었다.


“근데 바쁘다며 연차 내도 괜찮아?”

“뭐 어쩔 건데요, 내가 쓸 거 쓴다는데.”

“그러다 잘리면 어떡해.”

“잘리면 잘리는 거지.”

“에이, 안되지. 비행기 티켓 사야 하잖아.”


너 내일 쉰다며. 무슨 뜬금없이 수요일에 쉬고 난리야. 나를 향해 물어오는 주석 선배를 향해 나는 건조하고 덤덤하게 대답했다. 헤어지러 가야 해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얼굴을 구기며 나를 바라보는 선배를 향해 나는 더 이상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좀 사서 보내줄 생각은 못 하나 봐요.”

“그래도 돼? 그럼 잘려도 돼.”

“되긴 뭐가 돼.”

“내가 보내줄게, 민기야.”


헛소리 하지 말라는 듯 침대에 누워,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확인하고 있는 곽아론을 빤히 바라보았다. 언제까지 거기 있을 건데. 빨리 내 옆으로 오라는 듯 투정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손에 든 패드를 바라보고 있던 시선이 내게로 옮겨온다. 그리고는 그대로 몸을 일으켜 걸음을 옮긴 곽아론이 곧 침대 헤드에 기대앉았다.


“뭔데 그걸 그렇게 내 얼굴 보는 것처럼 봐요.”

“보고 싶어?”

“좋은 거면.”


최민기, 질투해? 그러면서도 손에서 놓지 못하는 것을 힐끔거리며 묻는 나를 보며 슬쩍 미소를 흘린 곽아론이 곧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내 앞으로 내밀었다. 네모난 화면 속엔 어느 도시의 아침이 있었다.


“내 회사 앞.”

“....”

“내가 출근 할 때 쯤 시간이에요.”

“....”

“사람들 되게 많지? 여기가 회사들이 많거든.”


누운 채로 가만히 사진을 바라보던 나는 그것을 받아 들고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그런 내 허리를 감싸 제 품안에 가두듯 끌어안은 곽아론이 곧 자유로운 손으로 내가 들고 있는 것의 화면을 손가락으로 밀어 넘겼다.


“아, 여긴 내가 보통 일하는 사무실. 미국에선 혼자 쓰지 않고 같이 썼어요.”

“....”

“여기 얘가 이 사진을 찍어 보내 준 내 가장 친한 친구.”

“.....”


작년에 결혼한 그 친구예요. 그리고 이 사람은 한국으로 따지면 나 같은 사람? 본부장. 곽아론의 손에 따라 움직이는 사진 속엔 곽아론의 미국에서의 하루가 그대로 담겨 있었다. 자주 가는 카페와, 즐겨 먹었던 멕시칸 음식점까지 담겨 있는 사진들을 가만히 바라보던 나는 곧 어, 여기는 하며 조금 높아지는 목소리에 같이 집중을 했다.


“내가 말한 꽃집.”

“아, 여기구나.”

“꽃집 주인 마리, 마리가 들고 있는 게 내가 말한 장미.”

“.....”

“예쁘지, 너 닮아서.”


장미는 분홍색이었다. 그것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중년의 여인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던 나는 곧 그 사진 곁에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곽아론의 얼굴을 겹쳐보았다. 완전한 상상이 아닌 현실일 그 순간을 떠올리다 문득 울컥 물덩이 같은 것이 치밀어 오르는 느낌에 나는 살짝 시선을 틀었다.


“여기는 우리 집으로 가는 길.”

“.....”

“어두워요. 가로등이 많이 없어.”

“.....”

“보통 나는 이렇게 해가 완전히 지고 어두워지면 돌아가.”

“.....”


텅 빈 어두운 거리를 찍은 사진 위엔 아무도 없었다. 덩그러니 놓여 있는 그 공간에 곽아론을 세워보기도 전 나는 먼저 말을 꺼내는 목소리에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


“파혼은 아니었어. 소문처럼, 누군가랑 결혼을 하려고 한 적은 없었어.”

“네?”

“내가 누군가와 결혼을 하길 바라는 사람은 있었어요.”

“.....”

“꼭 해야 한다면 그 사람이랑 해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은 했어.”

“......”


언젠가 흥밋거리로 누군가 꺼냈던 이야기를 떠올린 나는 곧 작게 탄성을 터트리고는 이내 다시 눈앞의 쓸쓸한 거리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이지만 나를 위해 꺼낸 것이 분명한 이야기는 거리만큼 쓸쓸했다.


“그런데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았어요.”

“.....”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하지 않을 것 같았어.”

“......”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게 어느 순간부터는 너무 어려운 게 되어버려서.”

“......”

“나는 늘 어려운 상대만 사랑했으니까.”


곽아론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지 않았다. 나 역시 그랬다. 나와 같은 남자를 좋아한다는 것부터가 우리에게 편한 상대는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래서 선뜻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 어려웠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끝이라는 것에 그렇게 더 예민했는지도 모른다. 시작하기가 너무나 어려워서, 마음이 닿는 것이 너무나 힘들고 어려워서. 그렇게 어렵게 닿은 마음이 겨우 시작한 사랑이 끝이라는 실패로 결론 나는 것이 나는 못 견디게 힘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길을 손 잡고 함께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을.”

“.....”

“꼭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

“.....”

“혼자 걸으면서.”

“.....”

“그게 네가 됐고.”


사진 위에 홀로 서있는 곽아론을 겹쳐 보던 나는 곧 조심스레 그 옆에 함께 걷는 나를 떠올렸다. 나보다 한 발 앞서 걷던 곽아론이 나를 돌아보고, 곧 가만히 손을 붙잡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길을 분홍 장미를 들고 나는 그렇게 걸어가고 있었다.


“내일 공항은 혼자 갈게.”

“....”

“너 혼자 돌아가는 거 보기 싫어.”

“그치만.”

“이건 양보 못해.”

“.....”


그러다 곧 까맣게 변해 버린 화면 위에 나타난 지금의 내 얼굴을 본 나는 그제야 들리는 목소리에 그대로 고개를 휙 돌렸다. 부러 쉰다고 까지 했는데 그럴 순 없다는 듯 몸을 벌떡 일으키는 나를 향해 단호하게 중얼거린 곽아론이 이내 나를 품안에 가만히 끌어안았다.


“민기야.”

“......”

“돌아올게.”

“.....”

“약속해.”

“.....”

“그러니까 기다려줘.”


터무니없는 말이었다. 얼마가 걸릴지 알 수도 없는 기약 없는 약속을 그 누구보다 자신 있게 하는 곽아론의 말에 나는 선뜻 그러겠다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품에 안긴 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곧 그 다음 말에 그대로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내일이 안 오면 좋겠다.”

“.....”

“오늘이 끝이면 좋겠다.”

“.....”


무엇이든 매달릴 것이 있다면 빌고 싶었다. 내가 받을 큰 무언가가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포기 할 테니, 내게 끝을 달라고. 지금 이 순간이, 내가 가진 시간의 끝이도록 만들어 달라고.


“사랑해.”

“.....”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째깍 시간은 가고 똑딱 모든 것은 흐르고 있었다.


“...잘 있어.”

“......”


마음도 멈추지 못하고 있었다. 갈수록 더 부풀어 오를 뿐.





같이 가면 안 돼요? 혹시나 하는 물음에도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 곽아론을 그저 불퉁한 얼굴로 바라만 보며 애꿎은 땅만 툭툭 차던 나는 이제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는 시간이 되자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는 곽아론을 따라 현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 이제 진짜 가야겠다.”

“가든가 말든가.”

“....”

“같이 가는 것도 못하게 하고.”

“그럼 너 데려다 주러 나 다시 집에 온다?”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입고 있는 후드 티셔츠의 앞주머니에 두 손을 푹 찔러 넣은 채 투정을 부리던 나는 이내 미간을 있는 대로 구기며 곽아론을 노려보았다. 그거 아니면 안 된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얼굴을 보며 난 얼른 가버리라는 듯 옆에 놓인 캐리어를 내밀었다.


“여권은요.”

“챙겼어.”

“그걸 또 냉큼 챙겼어.”


더 이상은 붙잡을 명분이 없었다. 더 이상 지체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서 보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만 가라는 말이 나오질 않아 나는 입술만 연신 깨물었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입술 아프게 왜 그래.”

“.....”


그런 내게 짧게 입을 맞춘 곽아론이 곧 가만히 머리를 쓸어주고는 먼저 물러났다.


“나 갈게. 밥 챙겨 먹고.”

“본부장님이나 잘 챙겨요.”

“아, 오늘 분리수거 하는 날 인거 알지?”

“.....”

“그거 꼭 해. 밀리면 다음 주까지 기다려야 해.”


굉장히 중요한 것이 생각났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중얼거리는 곽아론을 보며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곧 곽아론도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제 정말 가봐야겠다며 돌아서는 곽아론을 붙잡으려던 나는 이내 그 손을 그대로 거두어버렸다.


“아, 맞아. 그리고 욕실에 휴지 얼마 없어. 사야 돼.”

“본부장님.”

“...어, 나 엄청 가기 싫어.”

“....”


그런 내 손을 보기라도 한 듯 돌아섰던 몸을 다시 돌려 또 실없는 소리를 하는 곽아론을 바라보던 나는 이내 그대로 현관으로 내려서 곽아론의 몸을 꽉 끌어안았다.


“조심히 가요. 도착하면 꼭 전화하고.”

“.....”

“마리랑 인증샷도 찍어주고.”

“.....”

“내가 보러 갈게요. 꼭.”

“.....”


내가 보내지 않으면 가지 못할 것 같은 곽아론의 눈을 보며 했으면 더 좋은 말이었지만 나는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얼굴을 더 보고 있으면 참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내가 본부장님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죠?”

“....”

“그러니까 걱정 말고 가요.”

“.....”

“난 여기 있을 테니까.”

“.....”


당신이 기억하는 그 모습 그대로 언제나 같은 곳에서 같은 모습으로 있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듯 의젓하게 중얼거리는 내 목소리에 그제야 돌아설 준비를 하는 곽아론을 나는 그대로 놓아주었다.


“......”


얼마를 더 머뭇거리다 이내 결심한 듯 돌아서는 곽아론을 나는 붙잡지 않았다. 문이 닫히고 그 문을 바라보다 그대로 돌아선 나는 이내 텅 빈 공간을 바라보다 곧 느리게 걸음을 옮겼다.


“......”


따스한 햇살이 쏟아지는 날이었다. 아무 날도 아닌 수요일 어느 오후. 쏟아지는 햇살 가운데 선 나는 곧 내 눈 앞에 보이는 것을 가만히 집어 들었다.


“......”


얼굴 보고 주고 싶었는데,  그럼 너 울까봐.


“......”


가지고 있어. 그리고 돌아오면, 네가 나한테 줘.


“....”


길지 않은 메모와 함께 놓여있는 네모난 상자 속의 동그란 것 두 개를 빤하게 바라보던 나는 이내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리고 끝내 참았던 것이 터졌다. 어린아이처럼 엉엉 쏟아지는 눈물을 어쩌지 못하고 나는 전부 다 뱉어 버렸다. 괜찮은 척 하려 했던 순간, 잘 지내보려 견뎠던 모든 순간을. 헤어지는 순간조차 할 수 없었던.


“가지마...”


그 말까지도.


“......”


그리고 내가 돌아와 이걸 받을 때, 그땐 절대 안 헤어져.


“......”


그러니까 기다려줘, 꼭 돌아올게.


“......”


아직 우리의 이야기는 마지막 페이지가 남아있었다. 언제 채워질지 알 수 없는 페이지가.


“......”


이 연애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외전이 한 편 남았습니다:)


꿀잠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