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화 보기★


#50

 

 

한참을 울어 눈물을 다 쏟은 슈는 4행성이 사라졌다는 걸 직감했다. 관리자는 그가 담당하는 행성의 생사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슈는 굳이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4행성이 체르트에 삼켜진 것을 알 수 있었다.

가슴 한편이 찌르르 울렸다. 얇은 바늘에 콕콕 찔린 것처럼.


“슈, 형아한테는 슈밖에 없어. 슈 말고 다른 건 다 필요 없어. 슈만 있으면 돼. 슈랑 아기만 있으면 형아는 행복해요. 응? 슈. 형아랑 아기……”

“잠깐. 조용히 해보십시오, 테오.”

 

울음을 그친 슈는 이성을 조금 되찾았다. 호텔 건물에 무언가 들이받는 거대한 소리가 왕왕 울려대도 테오는 슈 외에는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지 슈에게만 집중하고 있었다.

슈는 뒤를 돌아 슈의 목덜미를 꼭 끌어안았다.

 

“슈, 이제 형아 용서하는 거야? 형아 좋아요? 응? 형아 아기 낳아줄 거야?”

“읏, 용서는 아직 안 했습니다요. 그리고 아기 낳는 건…싫어.”

“슈우.”


테오의 엄지가 슈의 뺨을 보드랍게 매만졌다. 슈가 말을 이었다.

 

“당신에게 정신이 팔려서 못 알아볼 뻔했는데, 방금 전에 4행성이 없어졌습니다. 아직 기척은 남아있는데, 이상하게 우주에는 존재하지 않다는 말입니다요.”

“형아한테 정신이 팔렸다고? 슈, 형아 좋아하지? 응? 좋아한다고 말해줘. 응? 형아랑 하고 싶다고 그렇게 말해줘, 응? 슈한테는 형아밖에 없다고 그렇게 말해줘, 응?”

“몇 분 후에 체르트가 산산이 조각날 것 같습니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란 말입니다요.”

“슈의 배가 이렇게, 이렇게 부풀어도 형아랑…”

 

슈를 껴안은 테오가 그렇게 말하던 차에, 별안간 스위트룸의 통유리창이 와르르 깨져버리더니, 이리저리 떨어지는 유리 파편 사이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 누구 있는 거 맞죠? 얼른 이리로 오세요! 지금 위급한 상황이에요! 엄청엄청 많이많이 정말정말 아주아주!”

 

 

...

 

 

다행히 호텔 최상층에 머물고 있던 두 사람을 구할 수 있었다. 두 남성이 하얀 토끼들로 꽉꽉 들어찬 투명한 버스에 올라타는 순간, 놀랍게도 거의 동시에, 잠시나마 우리를 쉬게 해 준 위성이 펑 터져버리는 것이 아닌가. 화산이 폭발하는 굉음보다 더 요란하게, 귓가가 먹먹해질 정도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귀 막아요!”

 

도리가 소리쳤고, 나는 두 손으로 귀를 꾹 눌러 막고는 눈을 꼭 감았다. 하나의 위성이 파편처럼 흩어지는, 끔찍한 광경을 보지 않기 위해 눈을 감았지만, 내 앞에 보이는 것은 짙고 두려운 어둠뿐이었다.

도리의 주머니 안에서 나는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소음이 조금 사그라들자, 도리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내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몇 분쯤 지났을까. 나는 눈을 뜨고서, 주머니 속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투명한 버스 너머로 검게 물든 위성의 잔해가 보였다. 수많은 별을 삼킨 캄캄한 우주 공간에 우리를 태운 버스 한 대와 검게 물들어 흐릿흐릿 흩어지는 아름다운 위성, 체르트가 있었다.

 

“겨우 살았네요.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어요.”

“조금만 늦었어도 체르트와 함께 터질 뻔했습니다요.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도리가 말하자, 남색 머리 남성이 도리에게 감사를 표했다.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키가 작은 남성은 눈가가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남성을 꼭 끌어안고 있는 키가 큰 남성이 또 한 명.

그는 날카롭게 내 얼굴을 노려보고 있었다. 나에게 원한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작은 남성이 내게 악수를 청했다.

 

“여기서 또 봅니다요, 다람쥐 선생.”

 

‘다람쥐 선생’……?

특이한 말투, 남색 머리. 그리고, 어디선가 많이 들어 본 또랑또랑한 목소리. 나는 작은 남성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엇인가가 생각날 듯도 하고, 그렇지 않을 듯도 하면서 머릿속에서 얼기설기 뒤엉키고 있었다.

그때, 남성이 말을 이었다.

 

“우리, 그때 만났잖습니까요. 3행성에서. 컴컴한 어둠 속에서.”

“아! 혹시, 이상한 말투를 쓰고 담요를 뒤집어쓰고 다니는 펭귄 씨?”

 

나는 무릎을 탁 치며(물론 다람쥐 몸이었기에 정말로 무릎을 친 것은 아니었다) 검고 동그란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때, 검은색 머리 남성이 매서운 눈빛으로 작고 하얀 다람쥐를 쏘아보며 대꾸했다.

 

“네가 우리 슈 목에 상처를 낸 장본인이지? 가만 안 둘 줄 알아. 지금 바로 죽일 거니까.”

 

나는 흠칫 놀랐다. 누군지 모를, 나만큼 키가 큰 남성이 무서운 표정으로 나를 위협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고, 단지 내가 이렇게 조그마한 아이의 목을 결박했다는 사실에 마음 한구석이 아팠을 뿐이었다.

이렇게 작은 아이였다니, 게다가 아직 학생인 것 같은데.

나는 작은 다람쥐의 몸으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때는 실례했습니다. 도리 씨를 위험하게 했다는 생각에 당신을 아프게 했습니다. 정말로, 정말로 죄송합니다.”

 

다람쥐가 고개를 숙이자, 남색 머리 남성이 대답했다.

 

“아이, 괜찮습니다. 나도 다람쥐 선생을 위협한 거나 다름없었으니까요잉. 그리고, 이렇게 오늘 우리를 구해주지 않았습니까? 이걸로 샘샘 합시다.”

“샘샘?”

“그라니께…… 그쪽이 한 번, 이번엔 내가 한 번 실례 많았다, 하고 생각하자는 겁니다요.”


남색 머리 남성이 웃었다. 조금 쓸쓸하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방긋 웃어 보였다.

 

“그렇게 해요. 그렇게 해 주신다면 고마울 것 같습니다.”

“예에.”

“안 돼! 당신을 죽일 거야. 지옥 끝까지 따라가서라도 죽일 거야. 슈, 소총 있지. 꺼내줘. 슈한테 상처를 입힌 다람쥐 새끼를 죽여버려야겠어.”


검은 머리 남성이 또다시 그렇게 말했고, 이번에는 도리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도리는 주머니를 더듬어 하얀 다람쥐를 꺼내 품 안에 꼭 안았다.

 

“그렇게는 안 돼요. 다람 씨는 내 거란 말이에요.”

“칫.”

 

칫, 하고 도리를 노려보다가, 검은 머리 남성은 펭귄의 몸을 꼭 껴안았다. 그래, 펭귄. 펭귄이었다. 눈앞에 앉아 있는 저 작은 남성은.

펭귄은 이상하게 어딘가 쓸쓸하고 슬퍼 보였다.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물어보려다가도 나는 그저 가만히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펭귄이 나에게 말했다.

 

“이쪽은 테오입니다. 원래 몸은 토끼고요.”

“슈! 원수한테 그렇게 함부로 이름 알려주는 거 아니야.”


옆에서 검은 머리 남성, 테오가 씩씩거리며 대꾸했다.

나와 도리가 웃었다.

펭귄이 말을 이었다.

우울하고 구슬픈 목소리로.

 

“그리고 나는…… 슈입니다. 조금 전에 사라져버린 4행성을 관리하는 펭귄입니다요.”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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