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든 의문이다. 아이폰에 내장된 사람 모양 이모티콘을 보면 남성과 여성 각기 피부색별로 백인부터 흑인까지, 중간에 아시안 계열 피부색이 끼워져 다섯 단계로 그라데이션이 되어 있다. 단순히 백인 남성에 국한시키지 않은 애플의 ‘정치적 올바름’ 실천 사례로 볼 수 있겠지만, 뭔가 찝찝하다. 그래서 나는 트위터 타임라인에 올라온 한심한 소리들을 인용하며 머리를 짚고 한숨을 내쉬는 이모티콘을 사용하는 데에 있어 굳이 내 피부색을 찾기보다는 그냥 기본으로 설정된 국적 불명의―그러나 아마 백인 남성을 모티프로 만들었을― 샛노란 남성 이모티콘을 쓰게 된다.

 의문의 요(要)는 이것이다. 정말 인종이란 게 백에서 황을 거쳐 흑으로 이어지는 그라데이션으로 표현될 수 있는가? 이 역시 정치적 올바름 가장한 폭력적인 틀이 될 수 있지 않은가?

 이러한 의문을 들게 만들어준 건 2년 전, 한창 입시를 준비하던 시절 자료로서 읽은 모 일본 교수의 「아시아」라는 글 때문이다. 내용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살면서 여태껏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던 백/황/흑인종 구분의 틀, 아시아에 대한 개념 등을 거세게 흔든 글이었다. 그러니까, 중동 이슬람 문화권과 인도 문화권 그리고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 등이 정말 ‘아시아’라는 틀 안에 묶을 만한 공통적인 특징이 있는가를 물으며, 결국 이는 서구인들이 제국주의적 관점으로 대륙을 나누면서 남은 것들을 통틀어 아시아라고 부른 것이라 짚는 대목에서는, 계속 봐온 똑같은 세계지도가 한 꺼풀 벗겨져 다시 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와 함께 지적되었던 게, 내 이모티콘에 관한 의문의 요지와 일맥상통하는, 인종 구분의 틀이다. 백인종을 기준 삼아 흑인종을 반대쪽 끝에 배치하고, 나머지 인종들을 그 일직선 가운데에 정렬시킨다. 그 일직선을 상하로 기울이기만 하면 지금까지 이뤄져왔던 역사의 위계질서 도식이 되고, 이 도식이 사람들 머리에 새겨질 때 우리는 역사가 만들어온 차별적 논거를 무의식적으로 수용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그간 역사적으로 별다른 마찰 없이 지내던 아프로에 대한 이유 불명의 차별 의식 역시 해당 도식의 내면화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생각이 들 때, 정치적 올바름을 위해 만들어진 애플의 이모티콘 도식은 오히려 인종 서열이라는 제국주의적 상상력을 확대-재생산시키는 요소로서 작용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그 텍스트를 비롯한 입시 공부를 통해 겨우겨우 들어간 대학에서 작년 이맘때 〈서브컬처론〉이라는 강의를 이따금 도강했다. 거기서 교수님은 “서브컬처(sub-culture)는 중심이 아닌 것들의 문화를 가리킨다. 그러면 중심은 무엇이냐? 바로 유럽이다.” 이렇게 단정 지었다. 아마 교수님은 학생들이 ‘뭔 소리여 이게’ 상태가 되기를 노린 것 같고, 나는 선생의 기대에 완벽히 부합하는 도강생이 되었다.

 교수님의 “80년대론”을 중심으로 한 강의는 일본 사회에 대한 배경 지식 부족과 언어의 정의 및 용례의 괴리감 등으로 인해 이해가 잘 안 됐다. 만, 수업을 통해 여러 컬트적인 문화 양상을 본 것이라든지, “하위문화는 주류에의 반발로서 탄생한다.”와 같은 말들이 기억에 남았다.

 이와 엮어서, 조금 뜬금없지만, 그 말을 들을 즈음에 발매된, 매우 좋아하는 한국의 힙합 듀오 XXX의 첫 풀-렝스(full-length) 앨범 《LANGUAGE》(2018)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고 싶다. 본래 주류 힙합에서 주로 쓰이는 사운드와 달리 일렉트로닉 장르의 소리를 중심으로 다양한 소스(source)를 촘촘히 버무려 강렬하고 독자적인 사운드를 구축한 것이 특징인 본작은, 가사 면에서도 주류 힙합에 대한 안티테제로서의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내고, 자신들 음악의 고유성이 곧장 수입으로 이어지지 않는 시장의 상태를 꽤나 직설적으로 한탄한다. 이와 같은 특징과 당시 얻은 지식을 활용해 본작을 서브컬처론에 대입시켜볼 때, 이들은 시장의 중심 세력과 먼 외부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주류를 공격하는 서브컬처적 특징을 가졌지만, 동시에 그런 주류와의 수입 차이를 질투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특권 의식에 대한 욕망을 감추지 않는다. 그리고 본작의 이야기는 결코 바뀌지 않는 현실과 음악 산업 시스템에 절망하는 것으로 끝나는데, 웹진 〈온음〉에서는 이를 ‘언어 체계’ 내에 들어가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사어’를 놓지 않고 붙잡다가 결국 그 체계에 도입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그린다고 평했다. 그들의 음악은 정말 음악이 발현하는 소리 그 자체에서 소수성을 정체화했고, 그렇기에 우리는 거기서 표현되는 돈에 대한 분노와 한탄이 권력 전복을 위한 처절한 싸움처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비록 이들 음악에서 ‘소수’라는 표현을 쓰는 데에는 심각한 무리가 있지만, 그럼에도 이는 소수가 기득권 세력에 대항하는 구도에서 오는 쾌감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근래 국내 힙합 씬(scene)에 있어 가장 공격적이고 치밀한 프로덕션과 함께, 가장 극적인 계급 전복을 시도한 작품이라 생각한다.

 결국 이를 가지고 말하고 싶었던 것은 기존에 형성된 주류에 편입되지 못하는 소수가 가질 수 있는 태도에 대한 것이다. 이처럼, 흑인 빈민가를 배경으로 시작된 힙합 장르 본연의 카타르시스 중 하나는 바로 백인 중심 사회에서 권력 관계를 어떻게 전복시키는가에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수의 권력 잔치에 참여하는 데 혹은 이를 뒤지븐 데에 있어 그들 커뮤니티의 정체성을 온전히 가지고 드러낸다는 점이다.


 현재를 구성하는 상상력은 역사에서 계승되고, 우리는 이미 서구를 중심으로 한 역사관의 영향력을 벗어나기 힘들다. 아무리 내가 아이폰을 켜고 친구에게 이모티콘을 보내려는 찰나에 비치는 인종 그라데이션에 의무적인 거부감을 내비치더라도, 대안의 카테고리를 만드는 데에는 또 많은 시간과 논의와 연대가 필요하고, 그것이 다수의 승인을 받기 전까지 주류적 사고로 공유되기는 힘들 것이다. 지금까지 이러한 보편세계관을 생성하고 유지시켜왔던 것은 전쟁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를 버리고 주류로 편입되려는 시도를 많이 목격한다. 미시적인 예시로는 청소년기 ‘아이돌 그룹’ 혹은 ‘인터넷 게임’과 같은 취미의 공유를 통한 또래 집단 형성이 있겠다. 같은 취미를 공유하지 않을 때 그 또래에서 소외되는 현상은 비일비재하다. 특히 집단적 의식이 강한 경우 취미란 해당 집단 내의 필수 생존 요건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이 현상이 집단 형성의 자연스러운 과정임을 인지하기 때문에, 그것이 곧 따돌림과 같은 학교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을 외면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이의 거시적인 사례 역시 아픈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 예를 들어, 결과적으로 동아시아를 끔찍한 피와 수탈의 역사로 물들인 일제(日帝)의 탈아입구(脫亞入歐) 정책 같은 것 말이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죽이고 주류의 것을 극단적으로 수용한 결과로서 나타나는 지금의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정말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성장과 영향력―심지어 그것도 근대의 경제력은 6.25 전쟁의 부산물이다―을 보고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들에게 주권을 빼앗긴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있는 우리는 당연히 “NO”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입장이고, 이 역사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는 우리를 조롱하고 비웃는 시선의 암묵적 용인은 그들이 주류로서 지배했던 역사를 반대로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지를 대변해준다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렇기에, 다시 화제로 돌아와, 주류의 시선으로 재단한 인종의 나열은 폭력적이고 위험한 것이다.

 (*1)김준양은 “흔히 … 국제적으로 잘 팔리는 문화 상품을 논하면서 무국적성을 바람직한 가치로서 주장하는 후기 산업 자본주의적 입장의 근저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제국적 의지”라며 “미국의 제국적 의지는 바깥의 모든 것을 자신의 ‘보편성’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문화의 고유성이 누군가의 ‘보편’이라는 이름하에 나열하려는 시도는 언뜻 평등하게 보이지만, 그것을 중심으로 모으는 상상력에 대해 계속해 지적하고 성찰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그것은 힘든 싸움이다. 선세계 정보화사회의 검색 아카이브를 장악한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보편’적으로 쓰이는 이모티콘까지 세세하게 재단하고 있고, 우리 생활권의 기술 하낳나가 그런 ‘제국적 의지’에서 나온 상상력으로 가득하니까. 그래도 이제 제국은 지긋지긋하지 않은가.


----------------

1)   김준양, 『이미지의 제국: 일본 열도 위의 애니메이션』, 한나래, 2006

작가-지망생-지망생

만능초보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