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무리 어둠이 짙어져도 대도시의 밤은 쉬지 않는다. 피터는 요즘 들어 그 새삼스러운 사실을 깨닫고 있는 중이었다. 




뉴욕은 밤새 고동한다. 도로를 따라 점멸하는 붉은 가로등들이 마치 혈관처럼 건물 사이를 관통하는 풍경을, 피터-시민들의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은 종종 넋을 놓고 바라보곤 했다. 시야를 가리는 구조물이 없는 높은 곳에서, 그러니까, 스타크 타워같은 곳에서.

스타크 타워는 매각되었지만 그 구조물은 남아있었기 때문에, 피터는 매끈한 마천루의 외벽에 붙어 조금 공포스러울 정도로 경이로운 광경을 감상하는 일이 잦았다. 자정이 가까워져가는 순간의 공기는 어린 히어로의 폐부를 시리게 흔든다. 소년은 마스크를 벗고 싶다는 충동을 간신히 참아내야 했다.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예민한 그의 귓가에 박혀왔지만 스파이더맨은 미동하지 않았다. 분명 제가 잡은 강도를 체포하러 가는 소리일 것이 분명했으니까. 피터는 곧 타워를 조금 더 기어올라가 옥상에 걸터앉았다. 시선을 내려 빌딩의 아래를 내려다본다- 떨어지지 않도록 꼭 붙잡고 있는 게 좋을 걸. 시커먼 깊이가 피터에게 속삭였다.



"사실, 이 힘을 처음 가졌을 때는 마냥 신났어요. 이제는 축구도 잘 할 수 있겠네, 하면서요."



신체에 달라붙는 재질의 히어로수트는 피터의 목소리를 차단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어쩐지 답답하게 가라앉는 느낌이라고 생각했는지, 마스크의 아랫부분을 잡아 코끝까지 올렸다. 밤공기는 제 생각보다 자극적이었다.



"그런데, 공을 찼더니 그대로 터져버리지 뭐예요. 두번째 공은 터지지 않았지만, 공을 맞은 골대가 휘어버렸죠."



그때부터였어요. 그날부터 조금씩 이 힘이 무거워지기 시작한 게. 피터가 허공에 떠있는 다리를 흔든다. 워싱턴 기념탑에 올라 두려움에 떨던 소년은 어느새 높이에 대한 공포를 잊은 지 오래였다. 웅웅, 타워를 휘감으며 울리던 바람소리는 기계음 섞인 목소리에게 갈라진다.



"그래서?"
"...그리고, 그 무게의 이유를 알았어요. 이 거대한 힘에 딸려오는 거대한 책임 말이에요."



붉은 옷의 히어로는 고개를 돌렸다. 아이의 시선 끝에 있는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아이언맨이었다. 과거 이 타워의 주인이었던 그는 피터의 옆으로 묵중한 발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그는 피터가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음에도 제 존재를 눈치챘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았다.



"위험해. 이리 들어와."
"괜찮아요. 떨어지면 아이언맨이 구해줄 거니까."



아이언맨-토니 스타크는 아이의 맹랑한 목소리에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웃었다. 피터는 아주 순진했지만 종종 저런 말을 할 줄도 아는 아이였다. 피터가 마스크를 완전히 벗었다. 갈색 머리카락 끝에 주홍색 빛이 달라붙는 모습을 지켜보던 토니는 저도 슈트의 헤드를 젖혔다.



"여긴 왜 오셨어요?"
"친절한 이웃이 청승 떨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서."
"하하, 누가 그래요? 프라이데이가 그런 것도 알려줘요?"



피터가 발끝을 다시 한 번 흔들었다. 스타크씨가 제게 주신 슈트는 정말 최고예요. 그런데 좀 무거운 건 어쩔 수가 없더라고요. 그 무게라는 것이 실제로 느껴지는 질량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잘 알았다. 토니는 대답하는 대신 피터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난간에 따라 걸터앉았다.



"위험해요, 스타크씨."
"떨어지면 스파이더맨이 구해줄 테니까 괜찮아."
"생각보다 더 유치하시네요..."
"상대방과 친밀감을 형성하기 위해 패턴을 따라한 것 뿐이야, 파커군."



토니의 큰, 갈색 눈동자 속에 소년의 얼굴이 가득 채워졌다. 피터는 잠시 웃는가 싶더니 고개를 떨구고 어깨를 움츠린다. 토니는 입술을 떼어내기 전 잠시 고민했다. 제 재앙의 주둥아리가 멋대로 어떤 것을 내뱉지 않게 하기 위한 조치였다.



"모두를 구할 수는 없어, 스파이디."
"알아요."
"닿을 수 있어 보였던 것도 놓칠 때가 있는 거고."
"스타크씨도 그런 적이 있었어요?"
"내 삶의 대부분이 그랬지."



조만장자 히어로가 이런 말을 할 것이라 누가 상상했겠는가. 피터는 동그란 눈을 크게 뜨고 붉은 빛이 비추는 토니의 얼굴을 응시했고, 그는 노골적인 시선을 피할 생각을 하지 않으며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지금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고."



속눈썹 예쁘다. 피터는 맥락에 맞지 않게 불쑥 그런 생각을 했다. 슈트로 덮인 팔이 허리를 감아왔고 소년은 그 순간 손을 뻗어 그의 뺨을 잡아당겼다. 꾹, 도장을 찍듯 두 입술이 맞닿았다 떨어진다. 타워를 제외한 도시는 여전히 밝게 타오르고 있었고 빛의 잔상이 남은 눈동자는 흔들렸다.



"...이런 상황은 예상 못했는데, 피터."
"저도 몰랐어요...토니."



저도 이런 적은 처음이에요. 곧 피터가 새벽바람을 맞아 차게 식은 슈트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고마워요, 잡으러 와줘서. 연륜 있는 히어로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모습의 어린 히어로를 밀쳐내지 못했다. 물론 밀어낼 생각도 없었다- 적어도 오늘 밤에는. 그 어린 아이가 제 이름-애칭-을 함부로 부르고, 멋대로 입을 맞춘다고 해도.


"처음이었어요, 사람을 구하지 못한 게."
"네 잘못이 아니야."
"내가 구하지 못한 거예요."
"아무도 너를 원망하지 않아."


앤서니 스타크는 피터 파커의 죄책감을 걷어낼 수 없다는 것도, 소년이 어떤 질책을 짊어져야하는 때가 온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지만 진실을 말하지는 않았다. 아이에게는 거짓말이 종종 필요했으므로. 과거 피터를 몰아붙이며 슈트를 빼앗아갔던 그는 이 밤에 누구보다 상냥한 상대가 되어있었다. 그런 말도 할 줄 아시네요! 너스레를 떨까 고민하던 피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움직일 때마다 들려오는 기계소리는 마냥 딱딱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좋아해요."
"상황에 맞는 말은 아닌 것 같네."
"알아요. 아는데... 지금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요."


다른 날에 하면 도망치실 거잖아요. 순진한 아이는 투명한 눈으로 사람을 꿰뚫는다. 토니는 차마 부정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야경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이도 어떤 답을 바라지는 않는 것처럼, 처연한 얼굴로 도시를 바라본다. 토니는 어린 티가 남아있는 옆선을 응시했고, 어째선지 포만감을 경험했다. 그는 꺼지지 않는 인공적인 불빛들에 정신이 몽롱해진 게 분명하다 여기며 낫지 않을 소년의 슬픔을 보듬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자정을 넘긴 지는 오래되었고, 위로도 고백도 지나갔으나 뉴욕은 여전히 빛을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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