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2일을 기념하여 신돌온에서 202부 무료배포되었습니다.

제 회지와 작중 필존님의 AR카드 및 폴라로이드와 set가 되어 작용하는 부분이 있어, 세트로만 무료 양도를 허용합니다. 모든 내용은 포스타입에 공개된 채 내리지 않으니 마음껏 즐겨주세요.

실제로는 사진 형태의 폴라로이드 굿즈, 아무 그림 없이 구름만 있으나 앱을 통해 보면 영상이 움직이는 AR카드와 같이 배포되었습니다.





사  람  을  찾  습  니  다





온 세상에서 이상한 사진이 찍히기 시작했다.

시작은 인터넷 어느 한 게시판에서였다. 심령사진이 찍혔다는 그 게시글은 여느 괴담이 그렇듯 잠시 화제가 되었다가 빠르게 묻혔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그 게시글은 또다시 화제가 되었는데, 여러 곳에서 연달아 비슷한 심령사진이 찍히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비슷한 심령사진이라 함은, 그랬다. 귀신의 형태가 모두 똑같았다. 사람들 얼굴 사이에서, 거울 안에서, 하늘에서, 강물 위에서, 심지어는 아침을 느지막이 시작한 사람이 따른 한 잔의 홍차 표면에서 사람의 형태가 나타났다. 처음에 사람들은 그것이 도깨비가 아니겠느냐 했다. 뿔이 두 개에 커다란 형체는 우리네 고전에서 흔히 나오던 모습과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스타 스트림의 시나리오 시절을 거치며 생겨난 도깨비의 이미지는 털북숭이였고 사진 속 형태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얼마 가지 않아 ‘흰 도깨비 설’은 설득력을 잃었다. 그것은 머리가 검었다. 수십, 수백, 수천 장 찍힌 심령사진들을 모아보자 점차 윤곽이 또렷하게 보였다. 비슷한 크기의 사진 여러 장을 겹치자 보이는 형태는 사람에 가까웠다. 평범한 키에, 검은 머리를 가진, 그런데 머리 위로 작은 뿔이 두 개나 돋아있고 뒤로 날개까지 있다는 점이 특이한 사람이었다. 귀신이라기보단 인간형 몬스터 같았다.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종말 이후에도 스타스트림의 모든 것은 유지되고 있었고 성좌들은 건재했으며 어떤 종류의 괴수종은 가축화까지 되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사람들은 예전처럼 오컬트 현상 그 자체에 호들갑을 떨지는 않았고 그저 그 심령사진들이 어떤 시나리오와 관계가 있는지, 어떤 성좌들과 관계가 있는지를 궁금해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 귀신의 이름을 몰랐다. 이상한 일이었다. 하얀 코트를 입고, 머리 위 양쪽에 뿔이 돋고, 날개가 있는 검은 머리의 남자라면 어딘가에 설화 하나쯤 있을 법하지 않은가. 분명히 연유가 있어서, 어떤 개연성으로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난 현상일 텐데 아무도 그것의 이름이 뭔지 몰랐다. 이상한 일이었다.

아무도 그것의 이름을 모른다는 건, 확실히 이상했다.

심령사진 소동이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왁자하게 지구 전역을 한 바퀴 돈 뒤 몇 주가 지난 후였다. 인터넷에서는, 같은 내용의 게시글이 반복적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제목: 사람을 찾습니다


[사진 첨부]

내용: 이 사람을 찾습니다


처음엔 게시글을 클릭한 사람들은 실소를 금하지 못했다. 첨부된 사진은 얼마 전 웹상을 뜨겁게 달궜던 그 유명한 심령사진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심령사진을 이용해 새로운 밈이나 낚시글을 만드는 중인 줄 알았던 사람들은 가볍게 댓글을 달았다. 그때쯤 심령사진 이슈는 닳고 닳아서 하나의 웃음거리가 된 지 오래였다. 얘도 오래 보니 정든다. 내 사진엔 안 나와주려나? 얘 요새 어디 지하철역에서 사진 많이 찍힌대. 야 친구없는 것도 서러운데 귀신조차 내 사진에 안 나와주고 이거 사람 차별하는거냐…… 포토샵으로 귀신 지워주는 법 찾는다는 글부터 시작해서 종내에는 자기 사진도 심령사진으로 만들어보겠다고 없던 귀신의 형태를 억지로 만들어 조작한 가짜 사진까지 나도는 지경이었다. 당연히 그런 분위기에서 그 사진을 가져와서 사람을 찾는다고 하니 웃음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는 어떤 사람들은 자기 친구가 이 귀신과 닮았다고 친구 얼굴을 멋대로 올리기도 하고, 어디서 찾았는지 그 귀신을 코스프레한 듯한 분장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글쓴이는 꾸준히 게시글을 올렸다.


제목: 사람을 찾습니다


[사진 첨부] [사진 첨부] [사진 첨부]


글쓴이는 꾸준히 글을 올렸다. 그리고 올릴 때마다 첨부되는 사진의 개수는 늘어나 있었다. 모두 다, 그 심령사진이었다. 특이한 것은 글쓴이가 첨부한 사진마다 밑에 사진이 찍힌 일시와 장소를 적어놓았다는 점이었다. 어떤 사진은 시간대까지, 심지어는 분 단위까지도 정확히 적혀 있었다.


[■월 ■■일 ■■삼거리 오후 3시 23분]


또, 정확하지 않은 사진들은 추측성 정보나마 상세히 적혀 있었다. 보아하니 글쓴이가 사진의 원 출처에서 기재된 정보를 조합하고, 사진에서 보이는 것들을 통해 추측하는 듯했다.


[늦겨울로 추정 강남 일대 이른 새벽 혹은 저녁]


게시글이 하나, 둘 늘어만 갔다. 같은 작성자의 이름으로 매번 똑같이 올라오는 게시글은 또다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내기 충분했다. 그 와중에 뭔가 미심쩍어서 게시글의 사진들을 추적해본 몇몇 사람들은 놀라운 장면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동일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해당 사진들의 원출처, 원 게시글을 일일이 찾아내어 댓글을 달고, 사진을 찍은 위치와 시간대를 정확하게 알려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2월 중순 경 경기도 외곽 고속도로]


물론 글쓴이의 그런 노력이 늘 화답 받는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은 자신이 별생각 없이 올린 게시글의 댓글을 일일이 확인해보지도 않았고, 어떤 사람들은 개인정보가 노출될까 봐, 어떤 사람들은 이상한 사람이 불순한 의도로 물어본 것일까 봐 아예 답하지도 않거나 질문자를 차단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글쓴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글쓴이는 꾸준히, 인터넷에 수십 수백 수천 장 퍼진 심령사진들의 원출처를 찾아 작성자에게 사진과 관련된 정보를 묻고 있었다. 그의 행적이 화제가 되자 처음엔 답해주지 않던 몇몇 사람들도 사람을 찾는다는 그 게시글에 찾아와 정보를 알려주기도 했다.


제목: 사람을 찾습니다


[사진 첨부] [사진 첨부] [사진 첨부] [사진 첨부] [사진 첨부] [사진 첨부] [사진 첨부] [사진 첨부] [사진 첨부]

.

.

.


덕분에 게시글은 끝없이 길어져만 갔다.

글쓴이는 꾸준했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게시글을 올렸고, 게시글마다 새로 찾은 사진과 그 정보들을 더 추가해 달았다. 이제 그의 게시글은 그냥 클릭했다간 너무 많은 사진들이 길게 늘어져 있어 한참 동안 로딩을 기다려야 할 지경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는 듯했다. 그는 오로지 그가 찾으려는, 그 심령사진 속 귀신에 대해 최대한 많은 정보를 담아 조금이라도 더 많은 제보를 얻는 데에만 관심이 있어 보였다.

보다 못한 몇몇 사람들은 글쓴이의 글을 조금 더 보기 쉽게 요약하고 사진들을 편집하여 아예 한눈에 볼 수 있는 방식으로 만들어주기도 했다. 항상 제보 댓글에만 답글을 달던 글쓴이는 처음으로 고맙다는 답을 했다. 그때쯤 이 사람 귀신한테 반했냐든지 오타쿠 아니냐 하는 등의 농담들은 거진 사라져가고 있었다. 글쓴이가 그만큼 절박하게 집착적으로 심령사진 속 귀신 같은 존재를 추적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서였을 것이다.

매번 사진이 주렁주렁 달린 게시글이, 그것도 사람들이 제보해준 대로 형태까지 바꿔가면서 올라오고 그 사진마다 일일이 출처를 찾아 댓글을 다는 글쓴이를 보며 이제 사람들은 글쓴이의 안위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 드넓은 인터넷의 바닷속에서 그 모든 사진을 하나하나 추적한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닐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저렇게 찾는다면 인터넷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뭔가 하고 있을 것이 뻔했다. 실제로 그랬다.



유중혁은 사진 더미 속에서 눈을 떴다.

온몸이 뻐근했지만 기지개는 조심스럽게 켰다. 유중혁이라는 사람과 조심스럽다는 단어는 썩 어울리지 않는 묶음이었지만 요새는 그렇게 되었다. 방 안에 너저분하게 널린 종이 더미는 조금만 잘못 밟아도 금세 구겨지기 때문이었다. 물론 유중혁은 본인이 찾아낸 사진들을 다 벽의 코르크판에 붙여서 나타난 장소와 시간대별로 가지런히 정리해 두고 있었고 바닥에 떨어진 것들은 대개 사진을 잘라내고 남은 자투리 폐지였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자칫 잘못하여 바닥에 떨어진 사진 하나라도 상하지 않게 하려는 마음이었다.


멸망 이후 유중혁의 삶은 많이 달라졌다.

처음에 그는 요리를 많이 했다.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취미이기도 했고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으니 당연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요리를 아무리 잘 해도 먹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유미아나, 컴퍼니의 다른 사람들이 종종 놀러 와 밥을 먹고 갔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했다. 모든 일이 끝난 이후 공허감에 끝없이 시달리던 유중혁은 자신이 느끼는 공허감만큼 솥 안에 재료들을 던져 넣었고, 그렇게 손대중만으로 넉넉히 집어넣은 재료들을 볶고 삶고 끓이다 보면 나오는 요리는 항상 푸짐한 한 대접이었다. 몇이서 쉬이 먹어치울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결국 대량의 요리를 해내고 먹은 후 남은 것을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리길 반복하던 유중혁은 다른 것들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 다음엔 조각칼을 사서 조그마한 것들을 조각해보기도 했고, 톱으로 나무판을 자르고 못질을 해서 작은 의자를 만들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 가지 못해 질려 버렸다. 유중혁은 지겨웠다. 아니, 지겨운 게 아니라 그 무엇도 재미가 없었다. 애초부터 정이 붙질 않았다. 몇 가지 취미를 더 헤매고 나서 유중혁은 지인에게서 사진기 하나를 선물 받았다.

심심하면 주변의 뭐라도 찍어 보라는 것이다.

유중혁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조차도 원래 관심이 있던 분야는 아니었다. 시나리오 중에는 사진 같은 걸 찍는 일은 사치였고 호사였으니 더욱 그랬다. 사진기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필름이 드물기는 했으나 그게 비싸서 호사라는 뜻이 아니었다. 단지, 그 누구와 사진을 찍어도, 어디에서 무엇을 사진으로 찍어 남겨놔도 사진 속에 있던 것들이 얼마 후면 온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현재의 한 순간을 영원히 남기는 건 그에게 호사에 가까웠다. 너무 많이 잃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잃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기록하기 싫어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모든 게 끝난 이후의 유중혁은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더는 잃을 게 없어서였을 것이다. 유중혁은 사랑하지 않는 것들을 찍었고 잃어도 상관없는 것들을 찍었다.

이를테면 여름날 오후의 햇빛, 무심하게 매일 흘러가는 강물, 무너진 담벼락, 기어가는 개미 떼, 닳아버린 책상의 모서리.

유중혁에게는 이제 무채색처럼 보이는, 그런 것들.

더 이상 유중혁에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않고 사라져도 괜찮을 것 같은 무용한 풍경들.

그래서 더 집중해서 찍고 금세 미련을 없앨 수 있는 것들.

유중혁은 풍경이나 정물을 자주 찍었다. 사람은 찍지 않았고 동물도 되도록 찍지 않으려고 했다. 동물 중에서는 곤충 정도만 가끔 찍었다. 몇 번은, 집에 놀러 온 지인들이 유중혁의 집 안에 있는 비싼 카메라와 렌즈들을 보며 자신들을 찍어달라 청하기도 했으나 유중혁은 거절했다. 유중혁은 동생의 요청을 거절한 적이 별로 없었으나 유미아의 요청도 한사코 거절했다. 미래에 되돌아봤을 때 씁쓸해지지 않으려면 그래야 했다. 더 이상 세상에 아무 멸망이 찾아오지 않더라도, 더는 잃을 가능성이 없더라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그건 마음의 문제였다.

한 번은 지인이 유중혁의 방 벽에 붙은 무수히 많은 사진을 보고 짧게 감상을 말했다. 아름답네. 유중혁은 굳이 그 말을 부정하거나 거기에 무언가 덧붙여서 달리 만들지 않았다. 그 대신 벽을 바라보던 지인의 뒤통수를 보며 말했다.

원하면 줄 테니 가져가라.

너 이 사진들에 애착이 하나도 없어?

왜 그래야 하지?

단발머리의 여자는 잠시 유중혁을 바라보다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유중혁은 한수영이 그러는 것을 꽤 자주 보았다. 그러나 한수영이 왜 자신을 볼 때마다 그러는지는 알 수 없었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걱정이랍시고 던지던 한두 마디에서 받는 괴리감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넌 좋은 사진작가는 못 되겠다.

되고 싶은 생각도 없다.

유중혁은 빠르게 응수했지만 뒤따라오는 한수영의 중얼거림까지 귓가에서 쫓아내진 못했다. 꽤 괜찮은 장면들인데, 정작 찍는 놈은 찍히는 대상에 애정이 하나도 없네, 진짜.

유중혁은 입을 다물었다. 이유는 두 사람 다 알고 있었다. 유중혁은 더 이상 그것들에 애정을 주고 싶지 않았다. 애정을 주고 싶은 대상은 이미 세상에 사라져버린 지 오래였다.

유중혁은 원하면 주겠다고 했으나 그 어떤 지인들도 유중혁이 찍은 사진을 가져가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사진이 아름답다던 그들의 말이 빈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단지 그들은 유중혁의 사진을 얻어가는 것에 대해 조심스러워 했다. 유중혁에게 있어서 그것들은 하등 쓸모가 없는 종이쪼가리에 불과했는데도 그랬다. 유중혁은 자신이 존중하지 않는 자신의 것들을 남들이 더 존중하는 것이 쓸데없이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유중혁에게 불면은 오래된 병이었고 이제는 생활에 가까웠다. 원래도 시나리오를 깨다 보면 일정한 생활 리듬이라는 게 생기기 어려웠는데 모든 게 끝난 이후에도 엉망이 된 신체 리듬은 쉽사리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유중혁은 밤중에 침대에 누워 있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나무 조각을 깎고, 못질을 하고, 채소를 다듬고, 국을 끓이곤 했다. 그러나 밤중에 소음을 일으키는 건 선량한 위아랫집 사람들에게 표하기엔 그다지 좋은 예의가 아니었으므로 자주 그럴 순 없었다. 그래서 사진으로 취미를 돌린 이후엔 훨씬 더 편해졌다. 그저 밤중에 언제라도 카메라를 들고 문을 열고 나가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날은 온종일 하늘에 구름이 가득 끼어있었다. 비가 올 것 같지도 않고 온 세상이 바짝 말라 건조했는데 구름은 가득해서 날씨 참 묘하다 사람들이 중얼거리던 때였다. 밤중이었는데도 확연히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흐리고 시꺼먼 구름이 온통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모두가 잠들어 있는 새벽, 유중혁은 카메라를 들고 집 근처 공터로 나갔다. 검은 양떼구름 같은 것이 자욱해서 별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유중혁에게는 차라리 좋았다. 유중혁은 더는 별을 보고 싶지 않았고 별을 찾지 않았기에 별이 있을 때의 하늘을 찍을 수가 없었다. 거리낌 없이 밤하늘을 볼 간만의 기회였기에 카메라를 들었다.

찰칵, 하는 소리와 동시에 사방이 번쩍, 새하얗게 물들었다가 노란빛으로 사라졌다. 갑작스러운 빛에 유중혁은 순간 자신이 플래시를 터뜨렸나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비도 내리지 않는데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내리쳤다. 유중혁은 잠시 카메라를 내렸다. 하필 찍는 순간 벼락이 내리쳤으니 한 순간에 많은 광량이 렌즈로 들어갔을 터였다. 사진이 어떻게 나올지 짐작이 잘 가지 않았다. 렌즈를 내리고 하늘을 올려다보자 마치 신이 지나간 자리처럼 잘고 작은 벼락 줄기들이 조금씩 내려왔다 사라지길 반복하고 있었다. 유중혁은 언젠가의 시나리오에서 이계에서 내려온 것들을 떠올렸고, 또 그 다음은 그때 함께했던 누군가를 떠올릴 뻔 했지만 직전에 간신히 참아낼 수 있었다. 그 대신 유중혁은 그 검은 하늘과 잔 벼락들에서 눈을 떼는 건 실패했다. 유중혁은 잠시간 카메라를 내려놓은 채 맨눈으로, 꿀렁이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멍하니 바라보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니 주위가 꽤 싸늘해져 있었다. 집에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한순간 유중혁은 구름 속에서 벼락의 형태와도 같은 무언가를 본 것 같았지만 넘어갔다.

정말로, 날씨 한 번 괴상했다.


그날 집에 와서 곧바로 사진을 확인했지만 특별한 것은 없었다. 그냥 먹구름 낀 검은 하늘에 벼락 그대로 찍힌 것 같았다. 한밤중이었지만 익숙해서 그런가 딱히 피곤하진 않았다.




유중혁은 곧바로 사진을 현상했다. 어두컴컴한 방에서 하염없는 시간을 보내며 유중혁은 평소 보내던 일상을 익숙하게 보냈다. 잠을 자고, 씻고, 자기 몫의 요리를 했고, 약간을 남기고 버렸다. 자리를 정리했고, 한참 시간을 보내고 다시 돌아왔을 때 사진들은 제 색을 드러내고 있었다. 사진들을 정리해서 벽에 붙이려던 유중혁은 순간 멈칫했다.




검은 먹구름 한가운데에, 사람의 형태가 나타나 있었다.

처음에는 헛것이겠거니 했다. 그때 벼락이 많이 쳤으니까, 빛이 잘못 들어가서 뭐가 허옇게 찍힌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사진 속 형체는 더욱 더 선명해지면서 사람의 형태를 갖췄다. 하얀 코트, 검은 머리, 뿔, 날개.

시꺼먼 무채색이어야 할 사진 속에 갑자기 색채가 깃들었다. 파란 하늘, 하얀 구름, 그 무엇을 사진에 담아도 감흥이 없던 유중혁의 눈이 번쩍 뜨였다. 유중혁은 자신이 정신이 이상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눈을 감았다 떠도, 다시 봐도 사진은 그대로였다. 오히려 가면 갈수록 남자의 형태는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었다. 유중혁은 사진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떨리는 손으로 사진을 집어 들고 쓰레기통 앞까지 간 유중혁은, 쓰레기통 앞에서 우두커니 서서 한 시간을 보냈다.

도저히 버릴 수가 없었다.

도저히 그 사진을 버릴 수가 없었다.





도저히 김독자를 버릴 수 없었다.

유중혁은 결국 버리지 못한 김독자의 사진을 벽에 붙여 두었다. 지인들이 놀러 오면 이게 무슨 사진이냐고 물어볼지도 몰랐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 두고 싶지 않았다. 유중혁은 자신이 미쳐서 이런 게 보인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제정신을 차리면 다시 보이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래서 유중혁은 자신이 제정신을 차리지 않기를 바랐다. 유중혁은 잠을 자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벌떡 일어나 사진이 걸려 있는 쪽 벽을 보고, 사진 속 김독자의 형체가 사라지지 않은 것에 대해 실망하면서 동시에 안도했다.

유중혁은 그 사진을 벽에 붙인 이후 며칠 동안 카메라를 손에 잡지 못했다. 그 다음 사진을 찍을 때도 이런 사진이 나올지, 또는 나오지 않을지, 어느 쪽이 자신이 더 감당할 만 하고 감당할 수 없는지 도저히 가늠이 되지 않았다. 머릿속에 과부하가 걸린 유중혁은 잠시 카메라를 내려놓고, 사진을 보지 않고 집중해서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을 찾기 시작했다.

하도 할 게 없어서 결국 유중혁은 평소에 그가 보지 않던 인터넷의 여기서 저기로 쏘다니기 시작했다. 전에는 무시했던, 영양가 없는 잡다한 이야기들로 머리를 가득 채우려 애썼다.

아무 생각이 없어지고 싶었다. 그렇게 며칠을 더미 텍스트에 뇌를 절이던 유중혁은, 우연히 한 게시글을 클릭하게 되었다.

심령사진이 찍혔다는 게시글이었다.

처음에는 게시글 하나였다. 얼마 안 가 비슷한 사진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댓글이 하나, 둘 달렸다. 며칠 안 되어 다른 심령사진들이 올라왔다. 각기 찍은 장소와 들어 있는 피사체는 달랐지만 같이 찍혔다는 ‘심령’의 모양은 한결같았고 일관적이었다. 유중혁이 찍은 것보다 흐릿하고 다소 윤곽이 명확하지 않았지만 유중혁은 알아볼 수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인터넷에 올라오는 심령사진이 늘어만 갔다. 매번 다른 자세와 각도로, 매번 다른 색으로, 그러나 명확하게 같은 형태와 모습으로 김독자가 올라왔다.

모든 사진 속에, 모든 세상 속에 그가 있었다.

유중혁은 그때부터 그 사진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저장하기 시작했다. 저장했고, 인쇄했고, 잘라서 붙이고, 시간과 장소를 기록했다. 사진 원본을 얻을 수 있다면 어디로든 주저 없이 받으러 갔다. 벽에 맨 처음 붙었던 가장 선명한 사진, 먹구름 위 김독자의 상하좌우로 수많은 흐릿한 그림자들이 늘어갔다. 어떤 모습은 앞모습, 어떤 모습은 옆모습, 가끔 뒷모습,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 거꾸로 찍힌 모습, 어떤 때는 상처투성이의 하얀 손만 조금 나온 모습, 희미한 코트 자락, 사람들의 얼굴들 사이로 나와 있는 검은 머리칼과 작은 뿔 두 개, 보이지도 않을 구석에 흩날려 있는 검은 깃털들, 희미한 흔적들.

중혁아, 우리는 세상을 구할 수 있다, 알지?

한때 그렇게 말하던 김독자는 언제부터인가, 결에 가까워질 때쯤부터 말을 바꾸었다. 두 사람 중 그 누구도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두 사람 모두 다 불안할 때였을 터였다. 시나리오를 완전히 끝내고 세상을 구하고 스타 스트림이 사라진다면, 모든 성좌들은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너는 성좌다, 김독자.

어느새부터인가 두 사람이 말하는 세상의 정의는 꽤 다른 것이 되어버렸다. 물론 유중혁도 세상을 구하고 싶었다. 애초에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 그 오랜 세월을 견뎌온 게 아니던가? 하지만 유중혁은 적어도 자신이 구하는 세상에 당연히 김독자가 포함되어 있으리라 생각했다. 유중혁과 컴퍼니 멤버들의 생각은 아마 같을 것이다. 김독자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다.

네가 네 세상을 찾았으면 좋겠어.

관용적 표현이라지만 세상에 어디 소유격이 붙을 수 있던가. 사실 세상은 모두의 것이었고 그래야만 했다. 하지만 김독자는 꼭, 항상, 유중혁에게 ‘너의 세상’을 이야기했다. 네가 구한 너의 세상. 마치 유중혁에게만 소유권이 있어서 자신은 가질 수 없는 남의 물건을 이야기하듯이 그런 표현을 썼다. 나름대로, 김독자는 유중혁의 세상을 구하길 바랐던 것 같다. 하지만 유중혁의 세상이 뭘로 이루어져 있는지는 몰랐나 보다.

김독자가 수천수만의 조각으로 흩어진 이후 컴퍼니 사람들은 차츰 김독자가 없는 삶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주기적으로 병실에 들르면서도 각자의 삶을 되찾으려 노력했고, 김독자가 돌아오는 데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거나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느리지만 고통스럽게, 하기 싫지만 꾸준히. 유중혁은 그들 중 단연 변화가 느린 사람이었다. 모두가 이해했다. 모두들 유중혁이 김독자와 어떤 사이였는지는 대충 눈치채고 있었다. 유중혁은 배려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진 묵인 아래서 변하지 않는 미련 속에 천천히 흑백으로 말라붙어갔다. 사진 속에 붙박인 정물처럼, 한 시점 한 사람에 대한 기억에 붙어 고정된 유중혁은 차라리 사진을 찍는 주체가 아니라 찍히는 피사체에 가까웠다.

김독자의 사진이 나타나고, 수많은 김독자가 사진에 찍히기 시작하면서 유중혁은 필사적으로 사진을 모으고, 사진이 찍힌 장소들을 조사하며 돌아다녔다. 김독자가 유난히 많이 찍힌 시간대나 장소는 유중혁이 항상 들러 시간을 보내는 장소가 되었다. 거기서 실제로 김독자가 보이진 않았으나 유중혁은 그것으로 안정을 찾았다. 김독자의 사진이 나타나고부터 사진 속의 피사체는 김독자였으나, 그건 사실 김독자가 아니었다. 그 사진으로 인하여 사진 속의 시점과 장소에 영원히 고정된 것은 그 피사체를 좇아 헤매는 유중혁의 마음이었다.


제목: 사람을 찾습니다


[사진 첨부] [사진 첨부] [사진 첨부] [사진 첨부] [사진 첨부] [사진 첨부] [사진 첨부] [사진 첨부] [사진 첨부] [사진 첨부] [사진 첨부] [사진 첨부] [사진 첨부] [사진 첨부] [사진 첨부] [사진 첨부] [사진 첨부] [사진 첨부] [사진 첨부] [사진 첨부] [사진 첨부] [사진 첨부] [사진 첨부] [사진 첨부]

.

.

.


유중혁은, 제보 받은 정보들을 총 동원해서 자료를 만들었다. 장소마다 시간대마다 사진의 종류마다 어떤 사진에서 김독자가 더 자주 찍히는지 보았다. 인물을 찍은 사진에서 김독자가 나타나는지, 아니면 풍경을 찍은 사진에서, 사물을 찍은 사진에서 나타나는지. 산이 배경이어야 더 자주 나오는지, 바다가 배경이어야 하는지, 아니면 도심지 건물이 배경이어야 더 나타날 확률이 높아지는지. 유중혁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정리하고 할 수 있는 한 수합하여 김독자가 나타날 확률을 계산하길 반복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김독자가 찍힌 사진들 사이에선 그 어떤 규칙도 경향성도 나타나지 않았다.

김독자는 모든 곳에서 나타났고 또 모든 곳에서 나타나지 않았다. 땅에서, 하늘에서, 바다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허공에서, 찻잔 속 물결에서, 거울 속 잔상으로, 구석진 곰팡이 핀 벽지에서, 꺼진 모니터의 표면으로, 그림자의 사이에서.

유중혁은 잠과 밥을 줄여갔다. 그러나 그래도 그 무엇도 찾을 수가 없었다. 수척하게 말라가며 정기적인 모임에도 잘 나오지 않는 것을 신경 쓰고 있었는지 지인들이 얼굴 좀 보자며 연락이 왔다. 유중혁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오랜만에 모임에 나갔다. 컴퍼니 사람 몇몇이 유중혁의 몰골을 보고 뭐라고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고, 나머지 몇몇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를 대했다.

별다른 것이 없었다. 평소처럼 같이 밥을 먹고 사는 이야기를 좀 하다가, 헤어지는 정도였다. 그날 유중혁은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도 잘 파악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냈다. 눈 감았다 뜨니 시간이 지나 있었다.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며 인사를 하고 집에 가는데 한수영이 유중혁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 쳤다. 종이백 하나가 유중혁의 허벅지 위에 얹혔다.

-이거, 너 선물.

그날은 특별히 생일인 사람도 없었고 기념할 만한 날짜도 아니었다. 한수영이 평소에 별 이유 없이 선물을 주는 성격은 아니었기에 유중혁은 의아해하며 한수영을 바라보았다. 한수영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사람을 찾습니다, 너지?

유중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한수영은 잠시 유중혁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너한테 필요할 것 같아서 샀어. 별거 아냐.

그날 집으로 돌아간 유중혁은 종이백에서 묵직하고 커다란 책을 여러 권 꺼냈다. 표지는 아무 것도 없고 직접 글씨를 쓸 수 있었다. 열어 보니 책이 아니라, 앨범이었다. 그제야 유중혁은 무수한 종이더미들이 널린 자신의 방 안과, 벽을 다닥다닥 덮어버린 수많은 김독자의 사진들을 돌아보았다.

유중혁은 하나하나 사진을 떼어 천천히 앨범에 넣었다.

그전부터 유중혁이 모아온 사진들은 여러 특징에 따라 정렬되어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정리하는 게 어렵진 않았다. 모아둔 사진들을 다 넣고 보니 한수영이 안겨준 앨범 다섯 권이 거의 다 차 있었다. 유중혁은 두툼해진 앨범들을 내려다보다가, 잠시 후에 포스트잇을 가져와서 라벨링을 하기 시작했다.


서울           새벽/밤              도심지

       아시아           아침/오후          자연

                유럽              저녁 


한참을 바닥에 앉아 포스트잇을 붙이고 분류하던 유중혁은 잠시 후 앨범을 덮었다. 찾을 때도 조금씩 느꼈지만, 이렇게 가지런히 모아 놓고 보니 그래도 두툼한 게 꽤 많은 양이었다. 그때서야 유중혁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전 세계에서 김독자가 발견되고 있었다.

모든 시간대에서, 김독자가 나타나고 있었다.

온 세상이 김독자였다.

그 어떤 사진을 찍어도, 그 어디서, 그 어느 때에 찍어도, 김독자는 항상 거기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유중혁은 벌떡 일어나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던 카메라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카메라를 켜고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러나 눈을 갖다 대고 아무리 주변으로 돌려도 김독자는 보이지 않았다. 한참 카메라를 눈에 댄 체 몸을 돌리며 씨근덕거리던 유중혁은 잠시 후 카메라를 내렸다.

유중혁은 그날 몇 주 만에 처음으로 카메라를 서랍에 넣었다.

유중혁은 맨눈으로 거리를 나섰다.

오랜만에 목에 매어진 카메라의 무게감이 없자 온몸이 홀가분했다. 렌즈를 통하지 않고 맨눈으로 보는 세상이 조금 이질적으로 보였다. 하늘이 시퍼랬고 구름이 하얬다. 풀이 푸릇하게 자라고 그 사이 핀 민들레 꽃 한 송이가 노오랗게 부풀어 있었다. 적갈색과 고동색이 뒤섞인 흙 사이 누런 점처럼 모래가 묻은 회색 돌들이 굴러다니고 있었고, 오래되어 낡고 깨진 보도블럭 사이로 진녹색 이끼를 헤치고 지나가는 까만 개미들이 있었다. 사람들이 걸어 다녔고 말을 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노래를 부르거나 뛰거나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거나 했다.


사람을 찾습니다

유중혁은 끝없이 걸었다.

이름은 김독자

걷고, 또 걷고,

검은 머리에 피부가 희고

평범한 사람들을

키는 중간 정도

여러 명 지나치고

흰 코트를 입고 있었고

각양각색의 옷 입은 사람들을 지나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은

신호등을 건너

버스 정류장

버스와 택시가 서는 곳을 지나

지하철 3호선 4-2번 칸

지하철역도 지나고

■■ 초등학교 운동장

학교도 지나서

어린이 대공원

공원을 지나고

그리고, 또……



하루 종일 걸어 발이 닿을 수 있는 모든 곳까지 동네를 한 바퀴 돌아 유중혁은 아주 먼 곳까지 갔다. 유중혁은 걷는 내내 주변에서 김독자가 사진을 찍힌 형태를 그려낼 수 있었다. 아니, 그 모든 장소에서 김독자를 그려낼 수 있었다.

유중혁은 더 이상 자신에게 사진이 필요치 않음을 깨달았다.



제목: 요새 그 글 안 올라오지 않냐


내용: 허구한 날 사람 찾는다던 글


└컨셉질에 지쳤나보지

└그 사람도 현생이 있지 않겠냐

└도배글이라고 신고 먹인 사람도 있던데

└└못됐다

└그 사람 찾은 거 아냐?

└└찾은 거였음 좋겠네 간절해 보이던데

└└찾았으면 인증이라도 하지

└└못 찾아서 포기한 거 아냐?

└└└이왕 생각하는 거 난 찾았다고 생각할래

└└└근데 심령사진에 있는 걸 어떻게 찾아?



몇 번째인가의 날 저녁, 유중혁은 집으로 돌아왔다.

뉴스를 켜면, 예전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참 각양각색의 소식들이 들려왔다. 평범하게 감동적인 소식부터 시작해서, 스타 스트림의 시스템이 남아 있는 바람에 벌어진 자잘한 소동까지 내용은 다양했다. 확실히 유료화 이전과는 다른 세계였다.

유중혁은 마른 눈으로 베란다 창 바깥의 세상을 바라보았다. 김독자가 살려낸 세계였다.

유중혁이 원하지 않는 형태였지만, 그래도 여전히 김독자가 있는 세상이었다.

유중혁은 노을이 지고 있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귓가에 아나운서의 낭랑한 목소리가 지나가고 있었다. 귀를 간지럽게 하는 소리도, 지금 바깥의 나무를 흔들고 있는 바람도, 지고 있는 해에서도, 유중혁은 누군가의 형상을 너무나 명징히 그릴 수 있었다. 모든 탄생에서, 모든 현상에서 시시각각 태어나고 있는 누군가의 생명과 역동을 볼 수 있었다. 유중혁은 그제야 김독자가 어떤 식으로 자신의 세상이 되려고 했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헛웃음이 나왔다. 이건 명백한 소통의 부재였다. 유중혁으로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건 김독자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유중혁은 사진 프레임 밖에 존재하는 광활한 세계를 바라보면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오라고.



제목: 사람을 찾습니다 정리본 (12.5ver)


[사진 첨부] [사진 첨부] [사진 첨부] [사진 첨부] [사진 첨부] [사진 첨부] [사진 첨부] [사진 첨부] [사진 첨부]

내용: 보기 쉽게 정리해둠


└얘 또 왔네

└└ㄴㄴ 난 그사람 아니고 걍 정리충

└원글쓴이도 없는데 아직도 이거 해?

└└걔도 가끔 지칠 때가 있겠지

└정성이다

└퍼감

└출처 없이 퍼가도 ㄱㅊ?

└└어 퍼가주면 고맙지

└└└그럼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퍼뜨려봄

└이거 하면 돈 받냐

└└걍 자원봉사임


[스크랩] 사람 찾는 글 정리본

[다음글] 그 사람을 찾는다는 거 말인데

[인기글] 사진들 보면 공통점 있지 않냐



유중혁이 잠시 쉬는 동안에도 세계는 돌아가고 있었다.



└걘 언제 집간대?

└└가출 아님? 그럼 찾지 말아야지

└가출했다고 영원히 떠나는 건 아니잖아

└찾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걔가 누군데

└└김독자래

└└└이름 진짜 개이상

└이쯤 되면 현수막 걸어야 하는 거 아니냐 집가라고

└이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원하면 집 갈 때가 됐다

└다수결의 원칙 좋다 다수결의 말을 들어라 김독자

└└여기서 이런다고 걔가 알겠냐



유중혁은 사진 바깥의 세계에 조금 더 집중했고, 세상의 모든 것들에 조금 더 충실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사람이 항상 의연할 수는 없는 법이어서, 가끔은 앨범 속 사진을 꺼내보기도 했다. 수많은 ‘심령사진’ 중에서 가장 선명한 것은 단연 맨 처음 먹구름과 번개 속에서 찍었던 바로 그 사진이었다. 유중혁은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 사진 속 김독자가 조금 움직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착각인가 싶었으나 착각이 아니었다.

유중혁은 어쩌면 자신이 너무 많이 김독자를 바란 바람에 어떤 개연성을 부여하는 데 성공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했다. 스타 스트림 체계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유중혁 한 명으로는 뭐가 될 리가 없었다. 아무리 패왕이라 할지라도 혼자서 세계를 짊어진 김독자를 되돌릴 개연성을 부담할 수는 없었다. 유중혁은 그래서 사진 속 김독자가 움직이는 것 정도가, 자신이 부담할 수 있는 개연성의 최선이려니 했다.


└살아있는 거 맞지?

└└그렇다는데

└건강하게 집 갔으면 좋겠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아마도 사진 바깥의 세상에 살아 있는 김독자가 나올 일은 없을 것이다.


└이정도로 걱정하는 사람이 많으면 집 가야지

└└ㅇㅈ. 속 썩이는 것도 한계가 있다

└글쓰던 사람 진짜 속터지기 전에 가라


유중혁도 알고 있었다. 아마 컴퍼니 사람들 다 같이 개연성을 부담해도 불가능할 것이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은.

그래서 그 어느 날,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을 때도 유중혁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기대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인기글] 김독자 집 돌아가는 만화 그려봄

[찬반글] 솔직히 실종된 지 그렇게 오래면 가망이 없…


그래서 문을 열고 너무 오랜만이라 낯설어진, 그러나 한때 익숙했던 얼굴을 보는 순간, 아주 당황하지 않았다.


[인기글] 행복한 걸 바라는 게 뭐가 나빠?

[인기글] 충격! 김독자 진짜 집 감!


때론 아주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는 기적도 있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 갖고 잘들 하는 짓이다

└└뭐 어때 나쁜 맘은 아니잖아

└이렇게라도 잘 됐으면 좋겠다


유중혁은 그냥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겨우 한 마디를 말했다.


…잘 돌아왔다, 김독자.






제목: 근데 요새 정말 그 글 안 올라온다


내용: 사람을 찾는다는 글 있잖아. 글쓴이 어케 된거야?

찾는다는 사람은 찾았냐?


└찾았대는데

└└진짜? 잘 됐다

└└인증 없는데 어떻게 믿냐 본인임?

└└뭐 글쓴이가 찾으면 다 보고해야 하냐

└└└그동안 사람들 다 한마음 한뜻으로 도와줬는데

      말은 해 줘야 하는 거 아님?

└찾은 거 맞지?

└다행이다 잘됐네

└찾았으면 찾은 거지 뭘 또 따져

└└어떻게 믿어?


└└└이런 건 원래 그냥 믿는 거야




[다음글] 요새 심령사진 그거 안 찍히네 왤까?



결국 어디에 한눈을 팔아도 글쓰기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문의는 side_n_table@naver.com

밋뜨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