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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E - ELEVEN






페로몬? 웃기지도 않지. 난 그런 달큰한 향기 놀이 하고 있을 시간 없었다. 페로몬 나부랭이 때문에 웩웩대다가 고객 놓치면, 그거 누가 다 보상이나 해준답니까? 


- 너도 복숭아구나?


곽철용이의 멱살을 잡아챈 순간, 내 위로 겹쳐진 손. 복숭아고 뭐고, 이 새끼는 제가 먼저 잡았는데요?




🍑🍑🍑



- 이름?


난 잘못한 게 없는데? 난 삐딱하니 앉아 책상 너머의 경찰 선생을 본다. 참고인 조사? 이렇게 중요한 걸 날치기로 해버려도 되는 거야? 국민 신문고에 확 신고해버려야겠지. 썩어빠진 경찰 나으리들 때문에 내가 이런 짓까지 하고 앉아있는 거 아니겠냐고. 난 분주히 돌아다니는 방 안의 경찰들을 본다. 원래도 이렇게 바쁘게 움직이시나 다들?

박, 박승.. 곽철용이가 중얼거린다. 뭐라고? 의자를 끌어오는 경찰 선생.  나는 왼발을 뻗어 곽철용이의 발을 꾹 밟아줬다. 안 닥쳐? 반듯하게 앉아 자판이나 두드리던 경찰 선생, 한숨 푹 내쉬며 턱 괴신다. 복숭아 너. 이름이 뭐냐고. 난 경찰 선생을 한참 노려보다 입을 뗀다. 박승아요. 복숭아 박승아. 경찰 선생 앞에서 개눈깔 뜨다?


- 곽철용이랑은 어떻게 아는 사이야?


그걸 내 입으로 굳이 줄줄 말해야하나. 미란다 원칙 뭐 이런 거 저한텐 적용 안 돼요? 삐딱한 표정으로 날 보는 경찰 선생. 나 같은 히어로가 경찰이랑 엮이면 골치 아파지는데. 차라리 내가 스파이더맨 같은 강화 인간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 여기서 책상 엎고 후닥닥 사라져버릴 수 있었을텐데. 그냥 좀 힘 센 도인 박승아, 책상을 툭툭 두드리는 위협적인 태도에 줄줄 불었다. 자경단 활동을 좀 해서요. 내내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던 경찰 선생님, 허, 소리 내시며 의자에 기대신다.


- 그런 거 언제부터 했는데.


지성아. 경찰 선생님 손짓에 내내 중얼거리던 곽철용, 질질 끌려간다. 맘에 안 드는 게 한 두개가 아니지. 니가 경찰 선생님이면 내가 내 비밀 같은 거 무조건 다 말해야되는 거 아니잖아. 제 이름 말했으니까 저 이제 가도 돼죠. 눈가를 긁적이던 경찰 선생님은 내게 명함을 내민다.

서울도시경찰서

정재현 경장

전화/ 팩스 (127)1997-0214


- 서로 돕고 살자고요.


난 명함을 대충 구겨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





정재현 경장과의 이상한 조우 이후, 난 가택연금 신세가 되었다. 경찰서에 다녀온 박승아, 그걸 본 나쁜 새끼들이 있으니 당분간은 몸을 사리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대장의 판단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포주들 잡으러 나갔다가 다리가 부러진 이태용의 병 수발은 싹 다 내 몫이었다.


나쁜 사람들 때려잡아드립니다.


- 잘 됐다, 승아야. 너도 좀 쉬어야지.


소파에 누워선 입이나 나불대는 이태용. 난 덜덜 돌아가는 선풍기 소리를 배경으로 이태용의 입을 퍽퍽 때렸다. 딱 두 명만 더 잡으면 보스가 사이비 종교 구원 팀으로 승진시켜준댔는데. 곽철용은 경찰 손에 들어갔고, 다른 한 명 잡을 기회도 막혔으니 내 승진은 저기 멀리로 훨훨 날아간 셈이었다. 승아야, 나 청포도게, 아님 보라 포도게? 포도 이태용. 벌겋게 부푼 입술 가리고 속도 없이 물어댄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고.

도시 심부름 센터. 여긴 떼인 돈이나 받아다주는 그런 아마추어 같은 곳이 아니니까. 한국 경찰이 금지한 함정 수사? 경찰이 안 하는 드럽고 위험한 거 우리가 다 했다. 난 원조 교제하는 새끼들 꾀어내서 대가리 깨고, 이태용은 포주들 바다에 묻고. 대가리 깨는 게 어려운 것도 아닌데, 고맙다며 돈 보내주는 사람들 볼 때마다 난 대장이 똑똑하다고 생각했다. 사업 수완이 좋은건가. 따지고 보면 이게 불법인거지 나쁜 짓은 아니잖아?

뒤집어놓은 휴대전화가 부리나케 울린다. 일이칠 일구구칠 공이일사. 연락처엔 없는 번호였다. 저기 유학생 대상 사기 팀에 파견 나간 황인준 전환가? 그럼 이거 국제전화란 소린데. 난 별 고민 없이 종료 버튼을 눌렀다. 이 새끼가 국제 전화 무서운 줄 모르고 막 전화를 걸잖아요. 아 승아야, 나 청포도게 보라 포도게! 이 와중에 이태용은 아직도 내내 징징거리고 앉았다.

127-1997-0214

정재현 경장입니다.

전화 받아주세요.


경찰이면 이렇게 막 일반인들 번호 털고 그래도 되는거냐고.






오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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