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른

*이번화의 값은 하트와 댓글로 받겠습니다.⌯' ▾ '⌯



그 을 기억하는 세가지 방법

부제:The rememder stars

글::달분

전독시×내스급 크로스오버



산뜻한 아침, 가을의 아침은 비교적 늦게 찾아왔다. 한수영은 눈을 비비적 거리며 일어난 후, 기지개를 쭉 폈다. 밤새 얼마나 피곤했는지, 침대에 쓰러지듯 잠들었더랬다. 비척비척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가서 씻고 나왔다. 물기가 떨어지는 머리에 수건을 대충 둘러주었다. 한수영은 무엇을 입을까, 고민을 하다 그냥  깔끔하게 셔츠와 바지를 껴입었다. 어젯밤, 담배 피고 온다던 김독자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를 않길래 조금 당황했었다. 그러다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어 급하게 자리를 떴다. 성좌와 비유, 그리고 나는 김독자를 부르며 이리저리 뛰어다녔고, 겨우 찾은 김독자는 엉망이 되어 있었다. 걱정이 된 나머지 언성 부터 높인 한수영은 나른한 목소리에 의해 언성을 멈추었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해보니 주인공의 조력자가 아니던가! 한수영은 어제를 생각하면 아직도 눈앞이 아찔했다. 주인공을 피하려하니 되려 더 엮여버렸다. 어제만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려 한수영은 미간을 지그시 눌렀다. 주인공들을 우연치 않게 만난 이후, 우리는 그들과 제대로된 협상을 하기 위해 만남을 약속했다. 그래서 지금, 한수영은 세성 길드로 가기 위해 옷을 갈아 입고는 옆집인 김독자에게로 가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우당탕탕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벌컥 열렸다. 열린 문 사이로 코트를 껴입다만 김독자가 멋쩍게 웃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수영은 짧게 한숨을 내뱉으며 김독자의 집으로 들어섰다. 한수영은 현관에서 팔짱을 끼고선 짝다리를 짚은채 김독자를 위아래로 훑어 보았다. 정장 위로 걸친 새하얀 코트. 오랜만에 보는 아공간 코트에 한수영은 작게 놀랐다. 김독자가 병실에서 깨어난 이후부터 단 한번도 입지 않았던 코트이기에 충분히 놀랄만한 이유가 될수가 있었다. 


“웬일로?”

“어? 아, 그냥.”


씁슬한 웃음을 지어내며 뒷목을 쓸어보이는 김독자에 한수영은 현관을 나서며 느지막이 말을 하였다.


“…빨리 나와, 늦겠다.”


한수영과 김독자는 건물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익숙한 인영들에 웃어 주었다. 줄줄이 서있던 성좌 삼인방은 김독자와 한수영을 발견하자마자 발빠르게 걸어왔다. 다들 깔끔하게 차려 입은 모습에 그들은 어디 대기업의 자제들 같은 고귀한 느낌이 들어 났다. 한수영은 짧게 그들을 훑어보다 김독자를 돌아보며 말을 하였다.


“그래서, 우리 뭐타고 가? 설마 지하철?”

“아니, 잠시만.”


한수영의 말에 김독자는 아공간 코트 주머니를 뒤적 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무언가를 코트 주머니에서 꺼냈다. 장난감 차 같은것이 외양이 꽤 익숙했다. 김독자는 씨익 웃으며 장난감 차를 바닥에 내려놓자 장난감 차는 점점 커져가며 페라르기니의 모습을 갖추었다. 김독자는 성큼성큼 페라르기니에 걸어가 운전석 문을 열어 차에 탄 후, 창문을 열고는 턱짓을 하며 말을 하였다.


“타세요. 오늘은 제가 운전하죠.”


어이없어 하는 그들을 뒤로한채, 차는 부드럽게 세성 길드로 향하였다. 맑은 하늘이 기분 좋음을 선사해 주었다. 조용한 차안에는 라디오가 작게 흘러나왔다. 오늘은 어떤분이 편지를 주셨는지 한번 볼까요? 흘러나오는 라디오를 듣고있던 한수영은 창밖을 보다 말을 하였다.


“김독자.”

“왜?”

“너, 성현제 그거. 어떻게 하려고?”

“아, 그거. 그냥…뭐, 얇은 실 여러 갈래가 징그럽게 엉켜 있더라. 그거 제거하면 돼.”


김독자의 말에 한수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라디오는 작게 흘러나왔고 뒷자석에서는 색색거리는 숨소리들만이 들려왔다. 아침 일찍 일어난 성좌들이 많이 피곤했는지 아니면 차가 부드럽게 달려서 그러는지 세상 편히 잠들어 있었다.  차의 사이드미러로 그들을 확인하곤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떴다. 한수영은 흘러 내린 단발머리를 한번 쓸어 넘겨 주곤 안장에 등을 붙여주었다. 라디오는 백색소음처럼 들려왔다. 한동안 라디오 소리만 들려오던 차에서 김독자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왔다.


“ 근데 말이야, 한수영. 만약에 있잖아. 만약에 말이야…, 그….”


한수영은 김독자의 답지 않은 뜸들임에 눈썹을 들썩였다.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한동안 입을 달싹이다 짙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하였다.


“아니야, 이건 좀 확실해 지면 말해줄게.”

“뭔데 그래?”

“좀 더 확실해 지면…아직은 확실하지가 않아서.”


한수영은 김독자를 흘기며 입안에 있던 상큼한 사탕을 깨물었다. 짙은 한숨을 내쉰 김독자는 사실 어제 스치듯 본 유중혁의 모습에 한숨도 자지를 못했었다. 김독자는 별의 별 생각이 다들었었다. 내가 본 그가 정말로 유중혁이었더라면, 그는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어째서 이곳에 있는것일까, 하는 생각이 번갈아 들며 답이 나오지 않는 의문이 머리속을 어지렆혔었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도달한 의문은 다른 사람들 또한 유중혁 처럼 살아갈까라는 의문이었다. 그렇다면 평범하게 이세계에서 살아가고 있을 그들에 의해 머릿속이 더욱 복잡해져만 갔다. 만약 그 험난하고도 힘들었었던 전생에 대한 기억이 없다면 난 그들을 이젠 놓아주곤 행복을 빌어 줘야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김독자는 짧게 한숨을 내뱉으며 애써 계속되는 생각의 꼬리를 잘라내며 운전에 집중 하였다.  라디오는 지속적으로 귓가에 나지막이 흘러 들어왔다.


-그러셨군요. 참 힘드셨겠습니다.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을 떠나보내는 고통은 말로 다 표현 할수가 없겠죠. 게다가 그를 닮은 사람을 만나 또 다시 사랑하게 됐다는것에 작성자님의 고뇌가 참 저도 느껴집니다. 지금 사랑하게 된 사람에게 과거를 겹쳐 보이는건지 아니면 정말로 그라는 사람을 사랑하는건지 헷갈리시겠요. 그러실땐 잠시 마음을 놓아 보이시는게 어떠실까요? 세상은 가끔씩 단순하게 살아야 답이 보일때가 있죠. 저는 그 단순함이 아마 지금 필요한 순간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드네요. 작성자님 께서 마음 가시는 대로 하시는게 어떨지 조심스럽게 말을 해봅니다. ……의 노래를 듣고 다음 편지를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자 노래가 흘러나왔다. 김독자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이야기에 왠지 자신과 참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너무 보고싶어 내가 만들어낸 과거의 환상 같은것이 아닐까 하는 아이러니한 생각또한 들었다. 하지만 스쳐가던 그 체향이, 그 직감이 그가 진짜라 일깨워 주었다. 김독자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라디오DJ의 답을 머릿속에서 되뇌이며 노래를 작게 흥얼거렸다.

차는 어렵지 않게 세성 길드에 도착하였다. 차에서 내린 그들의 모습에 세성 길드 주변을 지나가고 있던 사람들이 한번씩 힐끗 거리며 보았다. 높게 솟은 건물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던 김독자와 그의 일행들은 성큼성큼 건물 내로 들어갔다. 한 외모하는 5명의 남녀가 자연스럽고도 당당하게 들어오니 길드 안에 있던 직원들조차 그들의 기백에 눌려 한번 씩은 꼭 돌아보다 다시 고개를 돌리기를 반복하였다. 안내 데스크에 앉아있던 직원은 그들을 바라보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 손님이 온다고 했던가? 직원은 괜히 힐끔거리며 그들의 외모를 감상하였다. 김독자는 두리번 거리다 안내 데스크를 보고는 그쪽으로 걸어갔다. 김독자는 안내 데스크에 있는 직원에게 나긋하게 말을 하였다.


“안녕하세요. 세성 길드장님을 만나러 왔는데요.”

“네? 아, 혹시 약속을 잡으셨나요?”

“아니요.”


직원은 번듯하게 생긴 그들을 번갈아 바라보다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길드장님이 언제나 볼수 있는 어느 동네 형님도 아니고, 이렇게 막무가내로 찾아와서 만나뵐수 있냐니. 이런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던 직원은 적당히 상대한후에 돌려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말을 하려던 순간, 옆에 서있던 단발을 가진 여자가 말을 하였다.


“김독자라 하면 알거야. 일단 전화 넣어 보는게 어때?”

“아…잠시만요.”


아, 왜 초면에 반말이야... 직원은 속마음으로 작게 투덜거리며 한수영을 바라보았다. 딱봐도 어느 명문집 자제 같았기에 별말 못한 직원은 한수영의 말에 따라 어딘가에 전화를 건후 대화를 나누었다. 이내 대화가 끝난 직원은 어딘가 창백해 보였다. 직원은 허둥지둥 하며 김독자와 일행들을 응접실로 안내해 주었다. 김독자는 감사하다며 작게 고개를 숙여 주었고 직원은 무엇을 마실지 물어보았다. 그에 괜찮다며 짧게 고개를 내저은 김독자에 직원은 정중히 인사를 하며 밖으로 나갔다. 조용해진 응접실에서 차에서부터 말이 없던 제천대성이 나지막이 김독자를 불렀다.


“막내야.”

“네?”

“이젠 혼자 무언가를 해결하려 들지마라. 시나리오때랑은 다르다. 그때는 개연성 때문에 제약이 많아 도와주지 못했었더라면, 지금은 언제든 도와줄수 있으니까.”


갑작스러운 제천대성의 말에 김독자는 잠깐 굳었다 낮게 웃으며 그렇게 하겠다고 답을 하였다. 그제서야 안심한듯 한 제천대성은 조금 풀어진 얼굴을 내보였다. 한수영은 새로운 사탕을 까서 입에 넣고는 몇번 굴리다 김독자에게 말을 하였다.


“계획은 있어?”

“응, 계획 없이 왔을리가. 일단 네 말대로 길드를 세운후 던전을 돌아야지.”

“그 다음은?”

“한유진을 통해 이쪽 초월자들과 접촉해 봐야하지 않겠어? 비유야.”

[바앗.]


김독자의 코트 속에서 비유가 튀어나왔다. 비유는 제 볼을 김독자의 볼에 비볐다. 김독자는 작게 웃어 준뒤 제 머리 위에 비유를 올려 놓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한수영은 애써 썩어 가려는 표정을 갈무리 한 후 말을 하였다.


“만나서 뭐하게?”

“성류 채널, 채널 열어야지.”

“…뭐?”

“그게 가능한건가?”

“뭐라고 독자야?”


김독자의 발언에 가만히 듣고있던 성좌들 조차도 동그랗게 뜬 눈으로 김독자를 바라보며 입을 떡 벌렸다. 김독자는 눈웃음을 지으며 느긋이 말을 하였다. 


“가능합니다.  대신 제약이 좀 있어요.”

“어떤 제약?”

“일단, 첫번째는 시나리오를 부여할수 없습니다. 우리 차원과 여기 차원이 너무 멀기 때문에 시나리오는 부여하기 힘듭니다. 두번째는 하루에 딱 한 성좌만이 화신체를 가지고 이곳 던전에 현신 할수 있습니다. 개연성도 개연성이지만 너도 나도 다들 화신체 가지고 현신해 버린다면 제가 애써 맞추고 있는 이 세계 힘의 균형이 기울어져 세계 자체가 폭발해 버릴수도 있으니까요.”


한수영과 성좌들은 침음을 흘리며 김독자의 이야기를 들었다.어쨋든 저쪽 세계와 이쪽 세계의 연락망이 생겼으니 다행이기 하다만, 우리가 다시 저쪽 세계로 넘어가지 못한다는것에 정말로 실감이 났다. 아마 막연히 돌아갈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는지도 모른다. 한수영은 소파에 털썩 앉아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리고는 눈을 감으며 짜증스럽게 말을 하였다.


“그나저나, 손님을 왜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해? 하, 우린 뭐 안바쁜줄 아나. 누구는 마감시간 빼서라도 여기 왔는데.”


한수영의 눈에 작은 섬광이 스쳐 지나갔다. 김독자는 소름이 돋는지 제 팔뚝을 쓸어 내려가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마감때는 절대로 한수영 건들지 말아야겠다. 뭐, 알고는 있지만. 인간, 아니, 성좌란 권태로움을 싫어하고 즐거움을 추구하는 존재지 않는가? 가까운 미래에 김독자는 지금 했던 다짐을 까맣게 잊고 한창 마감중이던 한수영에게 깝죽대다가 거하게 얻어터진다는것을 지금의 김독자가 알길은 없었다. 응접실 창문 너머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김독자는 또다시 속에서 무언가 갉작 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정확히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불쾌함은 어떻게 되지를 않았다. 김독자는 괜한 걱정을 받기 싫어서 귓속에 들어찬 물을 털어내듯 손바닥으로 툭툭 건드렸다. 그러고 나서야 소리는 이내 잠잠해졌다.


그렇게 몇분을 기다렸을까, 접견실의 문이 열리고 성현제가 들어섰다. 그 뒤로 한유진이 들어왔고 한유현과 박예림 또한 뒤따라 들어왔다.  아니 무슨, 뭘 저렇게 주렁주렁 달고 들어오는거야…? 당황한 김독자가 성현제를 바라봤고 한유진을 바라보았다.  성현제는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 있었으며 한유진은 멋쩍은 웃음만을 선보였다. 좋지 않게 헤어졌던 한유현은 서늘한 얼굴로 경계를 하고 있었고, 한유현 따라 얼굴을 굳히고 들어오던 박예림은 김독자 일행들을 보곤 크게 놀랐다. 김독자는 한수영을 바라봤고 한수영은 혀를 차며 말을 하였다.


“쯧, 이게 무슨 줄줄이 비엔나 소세지도 아니고. 뭘 이렇게 주렁주렁 달고 와?”


김독자의 생각을 정확히 짚어 읊어내던 한수영에 김독자는 내가 저걸 직접 말했었나…? 같은 의심이 들었다. 그걸 본 한수영이 얜 또 왜이래 라며  작은 타박을 하였다.


“증인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않나.”

“아, 안녕하세요. 하하…”


멋쩍게 인사를 하는 한유진에 김독자는 작게 고개를 숙여 주었다. 열린 창문 너머로 까마귀가 지나간다.  이 어색함은 어쩔꺼야. 하늘은 파랗고 높았다.  해는 여느때와 같이 밝았고 시원한 바람이 창문을 타고 들어와 복잡한 머리를 식혀주었다. 당황한 김독자는 어버버 거리다 이내 수긍을 하였다. 증인… 그래 뭐, 어차피 언젠가는 다 알게 될것이고…김독자는 한수영을 바라보다 은밀하게[한낮의 밀회]를 걸었다.


–길드 이름은 ‘김독자 컴퍼니’인걸로?

–구리다니까?

–알겠어. ‘김독자 컴퍼니’로 결정.

–야, 야? 야! 김독자? 진짜냐? 아니? 저기요?

–응, 수영아. 너도 좋아해줄줄 알았어. 일단 일부터 해볼까?

–저 미ㅊ-.


한수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김독자는  [한낮의 밀회]를 꺼버렸다. 어처구니가 없어진 한수영은 끝까지[한낮의 밀회]를 걸어왔고 김독자는 제 옆에 떠있는 파란창에 쌓여가는 메세지 숫자를 바라보며 싱글벙글 웃고만 있었다. 한수영은 그런 김독자를 질린다는 듯이 바라보다 이내 속으로 참을 인을 세번 새기고는 낮게 중얼거렸다. 너 이 새끼 두고보자. 이를 바득바득 갈며 주먹을 쥐었다 피기만을 반복하던 한수영이었다.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김독자와 한수영에 [한낮의 밀회]의 존재를 모르는 한유진 일행들은 그저 작은 의문만을 마음속에 품었다. 물론 성좌들은 쟤들 또 [한낮의 밀회]로 싸웠나 보다, 역시 김독자가 또 놀려먹은 거겠지? 같은 생각을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김독자는 짧게 한숨을 내뱉으며 소파에 털썩 앉았다. 다리를 꼬고 그들을 바라보던 김독자가 말을 하였다.


“일단, 어젯밤에 말하던거 이어서하죠.”


한유진과 성현제는 서로 마주보고 나서 작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한유진이 소파에 앉자 이내 양옆을 차지하기위한 무언의 자리 쟁탈전이 시작되었다. 성현제는 웃으며 재빨리 한유진의 왼쪽에 앉았다. 그에 탄식을 하고 있던 박예림과 무표정한 한유현의 눈치 싸움이 시작되었다. 글로만 읽던 풍경이 실제로 펼쳐지니 처음 중혁이를 만났을때와 비슷한 느낌이 들어 씁슬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렇게 눈치싸움에서 이긴 한유현이 재빨리 한유진의 옆에 앉자 박예림은 얼굴을 와락 구기며 한유현의 옆에 앉고는 뚱해 있었다. 그에 머쓱해 하던 한유진과 눈이 마주친 김독자는 작게 웃어주었다. 낮은 데스크를 기준으로 오른쪽에는 김독자 일행이 앉아 있었고 왼쪽에는 주인공 일행이 앉아 있었다. 어색한 공기가 흐르기를 잠시 한유진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단도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솔직히 김독자 씨를 못 믿겠습니다. 일단 저희는 김독자 씨 일행분들의 제대로 된 실력도 파악하지 못했고, 그리고 패륜아와 효도중독자가 아니란 것도 사실 믿기지가 않습니다. 멸망을 같이 막아주겠다는 제안은 감사하지만, 저는 눈으로 본것을 믿자는 주의라….”


한유진은 말끝을 늘려 보았다. 한유진의 말에 김독자가 손으로 턱을 쓸어보이고는 나른히 웃었다. 그의 말도 타당하다. 하긴, 친분도 무엇도 없이 그저 스쳐지나가던 사람이 알고보니 초월자란다. 근데 그 초월자가 어느 편에도 안서 있고 대뜸 자신을 도와주겠다니, 나 같아서라도 개소리 하지말라는 표정으로 바라봤을 것이다. 김독자는 고개를 끄덕인후 말을 하였다.


“그럼, 실력 발휘하면 믿어 주시겠어요? 던전 하나 예약해 주시죠. 그리고… 어젯 밤에 말씀 드렸다 싶이 저희는 이곳 초월자와 하등관계가 없습니다. 자세하게 설명해 드리자면…저희는 성좌라 불립니다.”

“성좌요…?”

“네.”

“아저씨! 저 성좌가 뭔지 알아요!”


아저씨라는 말에 김독자의 고개가 반사적으로 돌아가 박예림을 바라보았다. 아, 이게 아닌데. 제 머리속에 박혀있던 이지혜의 학생시절이 박예림으로 인해 떠올랐다. 이지혜는 제 친구를 자기손으로 죽여 상처 받은 검귀가 되었다. 반면 박예림은 부모님의 죽음과 함께 사촌 집에서 학대를 당하며 살아가게 된다. 그렇게 박예림은 A급 헌터인 얼음 마녀가 된다. 물론 이건 한유진의 회귀 전 이야기다. 한유진이 회귀 후 박예림을 S급으로 성장시켜주니 박예림은 그 이후로 한유진만을 따른다. 어찌보면 지혜와도 비슷하고 나와도 비슷한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쓰잘데기 없는 생각에 김독자는 머리를 털었다. 그리고는 박예림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 성좌라는거, 현대 판타지 소설에 종종 나오는 장르거든요? 저희는 그거 성좌물이라 부르는데. 성좌라는게 말이죠. 그 신화가 된 이야기를 바탕으로 태어나거나, 아님 별 그 자체인…그러니까 한마디로 신적인 존재라고.”

“정확하게 알고 있네요, 박예림 양.”


김독자는 예쁘게 웃어보였다. 박예림은 그에 놀란듯 눈을 크게 뜬후 입을 다물지를 못했다. 자신의 이름이 불리운것에 놀란 건지 아니면 김독자의 예쁜 웃음에 넋이 나간 건지, 갑작스러운 김독자의 미인계에 내성없는 한유진 일행들은 죄다 굳어버렸다. 심지어 한유진의 귀끝은 빨개져 있었다. 제 얼굴이 얼마나 파괴적인건지에 대해 자각이 없는 김독자는 그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그 모습을 직관하고 있던 한수영은 속으로 혀를 쯧쯧 차며 김독자를 흘겨봤다. 저 멍청이는 제 얼굴을 못생겼다고 생각해서 저리 막 쓰는건가. 한수영은 오랜만에 자신이 썼었던 ‘전지적 독자 시점’에 불만을 가졌다. 내가 괜히 못생겼다고 써서…아니, 이게 아니라. 한수영은 괜히 자신의 머리를 헤집다 한숨을 폭 내쉬었다.


“어쨌거나, 박예림 양이 말했듯이 저희는 신적인 존재라고 할수도 있습니다. 이야기로 생을 살아가고 이야기로 생을 끝마치죠.”


한유진은 침음을 흘리며 김독자를 힐끔쳐다 보았다. 그러니까, 저들은 성좌란다. 그것도 소설속에 나오는 아주 강력한 최종보스같은 존재라고 말이다. 예림이는 제가 말하고도 어딘가 넋이나가 김독자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생글생글 웃고 있는 모습이 김독자가 무엇을 말하든 그 누구라도 묘한 믿음이 생겨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박예림은 한유현과 성현제를 번갈아 쳐다보다 다시 김독자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진짜로 이쁘게 생겼네…박예림은 한동안 김독자의 외모를 감상하다 옆에 앉은 단발머리 여자랑 눈이 마주쳤다. 어딘가 앙칼져 보이는 여자는 뚱해 있어보였다. 그 옆에서 멋쩍은듯 웃고 있는 금발의 여성에 박예림은 한번더 넋을 놓았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이쁜 언니들이 있는거지? 박예림은 한수영과 우리엘을 힐끔 거리며 꼼지락 거렸다.


 어쨌든, 저들은 초월자 이다. 성좌든 뭐든 간에 인간의 힘을 초월한 존재라는것은 사실이라는 뜻이다. 그나저나 한가지 걸리는게 있다면 그런 존재들이 겨우 정보 하나 가지고 이 모든것을 조건으로 내건다는 것이 매우 거슬렸다. 그들은 무엇을 원하는것일까. 한유진은 곰곰히 생각하다 고개를 돌려 성현제를 바라보았다. 그는 뭐가 그렇게 즐거운건지 아주 입꼬리가 승천할 지경이다. 


김독자는 영업미소를 지으며 주인공 일행들을 바라보았다. 한수영은 그 표정을 보자 못말리겠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딱 무언가 사기 칠 각을 잴때 나오는 표정이었다. 

김독자는 두손으로 깍지를 낀후 무릎위에 팔꿈치를 올린채 턱을 괴었다. 은은하게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가 무엇이든 빨아 드릴것만 같은 블랙홀 같이 보였다. 성현제는 금안을 반달처럼 곱게 접은 후에 말을 하였다.


“그런 엄청난 존재가 정말 정보 하나만으로 이렇게 후한 조건을 내건다고? 나는 못믿겠는다네. 아니면…그대에게 다른 목적이 있다거나….”


성현제는 입꼬리를 올린 후 말끝머리를 늘리며 김독자를 끈적하게 훑어 보았다. 하나하나 천천히 벗겨 보이듯, 속까지 훤히 뚫고 볼것 같은 눈빛에 김독자는 미간을 찌푸렸다. 뭘 저렇게 봐? 기분이 나빠진 김독자는 은근 슬쩍 성현제의 시선을 피한 후 한유진을 바라보았다. 김독자는 샐쭉 웃으며 말을 하였다.


“그죠. 사실 제가 어디가서 이렇게 후하게 조건을 걸어본적이 없거든요. 이런 성격도 아니고, 그러니까 다른 목적이라면….”


김독자는 눈을 곱게 접었다. 느릿하게 고개를 들어 소파 등받이에 등을 묻은 김독자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하였다.


“글쎄요. 어때 보이는데요? 일단 계약서 작성부터 하죠. 여기는 L급이 가장 높은건가?”

“네. L급이 가장 높습니다만….”

“김독자, 너한테 안통하지 않아?”

“존재맹세 걸지 뭐.”

“야!”

“뭐?”

“뭐라고?”

“구원의 마왕 드디어 미친건가?”


김독자의 태연한 반응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일뻔한 한수영과 우리엘 그리고 제천대성과 흑염룡은 경악을 하며 김독자를 다그쳤다. 김독자는 뭐가 문제냐는듯 그들을 올려다 보며 말을 하였다.


“어차피 약속을 지키면 아무일도 생기지 않을겁니다.”

“진짜 미친거야? 우리가 지금 그 이유로 말하는게 아니잖아.”

“막내야, 이건, 이건 아니다.”


갑작스러운 분위기에 한유진 일행들은 당황하였다. 금방이라도 멱살을 잡고 한대 때릴것 같은 분위기에 한유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이 상황을 진정시키고자 그들을 말리기 시작했다. 한수영은 제 머리칼을 흩으러 뜨리며 도끼눈을 뜨고는 김독자를 바라보았다. 제 목숨을 왜 저렇게 가벼이 여기는 것인지. 이제 다 나은줄 알았던 구원병이 또 도져버린건 아닌지, 그저 속상하면서도 화날뿐이었다. 한유진은 그들을 말리다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하였다.


“그나저나…죄송한데 존재맹세가 뭐죠…?”


한수영은 그 질문에 한유진과 성현제를 째려보다 낮게 욕을 읊은 후 말을 하려던 순간 태연하면서도 어딘가 나긋한 목소리로 김독자가 말을 하였다.


“말 그대로 존재맹세일 뿐입니다. 존재맹세는 저 자체를 걸고 하는 맹세이기에 그다지 크게 신경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무슨 개소리야? 잘못하면 뒤질수도 있는데 그게 신경이 안쓰여? 한유진 잘들어. 존재맹세? 그딴거 없어도 저 새끼는 약속 칼같이 지키는 새끼야. 지금 몸도 많이 약한데, 저기서 맹세같은거 이름에 잘못 새겨봐. 먼저 뒤지는건 니들이 아니라 쟤야. 김독자라고. 그러니까, 계약서든 뭐든 그냥 종이로 해. 존재맹세? 웃기시네. 내가 허락못해.”

“야, 한수영…!”

“닥치고 있어.”

“이건 독자 네가 잘못한게 맞다. 제 몸을 소중히 여기기로 하지 않았나?”


제천대성은 김독자의 손을 맞잡으며 걱정스레 말을 하였다. 김독자는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이곤 한수영을 쳐다보았다. 한수영은 이따가 보자는 식으로 김독자를 바라봤고 그에 머쓱해진 김독자는 한유진을 바라보며 말을 하였다.


“그…렇다네요.”

“음…일단 계약서를 꺼냈는데요. 잠시만요.”


한유진은 펜을 든채 계약서에 무언가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성현제는 여전히 김독자를 흥미롭다는 식으로 바라보고 있어 한수영이 은근슬쩍 김독자의 앞을 막아섰다. 한수영은 신경질적으로 사탕을 까 입안에 넣은 후 이로 까득까득 부숴 먹었다. 한유진은 한수영의 눈치를 보며 빠르게 적어나갔고, 다 적은 계약서를 김독자에게 보여주었다.


1.한유진(갑)에게 김독자(을)는 멸망을 함께 막아준다.


2.한유진(갑)에게 김독자(을)는 자신이 말한 약속을 철저히 지킨다.


3.한유진(갑)에게 김독자(을)는 위협을 가하지 않는다.


4.한유진(갑)은 김독자(을)에게 정보조작을 약속한다.


5.김독자(을)은 한유진(갑)을 도와 매주 S급 던전 하나를 처리해 준다.


6.한유진(갑) 김독자(을)의 소원3개를 들어준다.


위의 계약을 지키지 않을시 강력한 패널티가 부가됩니다.

한유진(갑): (인)

김독자(을): (인) 


김독자는 한유진이 건네준 계약서를 주르륵 눈으로 빠르게훑어 내려가다 5, 6번에서 잠시 멈추어 눈알을 도르륵, 굴렸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한유진을 바라보고는 손가락으로 5, 6번을 가르키며 물어보았다.


“5번은 뭐죠? 전 이런거 약속한적이 없는데.”

“아, 어차피 김독자 씨 일행분들에겐 아주 쉽지 않겠습니까?”


눈썹을 까닥이며 듣고 있던 김독자는 더 말해보라는듯 눈짓 하였다. 한유진은 숨을 내뱉으며 차분히 입을 열었다.


“S급 던전을 들어가시는 조건으로 소원 3가지를 들어 드린다는 것을 계약서 상에 적어 놨습니다.”

“장난해? 소원 3가-.”

“한유진 씨, 제가 무슨 소원을 빌줄 알고 이런걸 지금 계약서 상에 적어 놓으신거죠? 그리고…사실 정보 조작같은거 필요 없습니다. 저희가 알아서 할수 있으니까요. 근데 제가 왜 한유진 씨와 거래하겠다고 이렇게 찾아 왔겠습니까? 한유진 씨, 솔직히 말하자면 굉장히 실망스럽습니다.”

“…….”


냉랭해진 김독자의 표정에 한유진은 침을 꿀걱 삼켰다. 아니, 멸망을 막거나 길드를 세워야 한다면 어차피 던전을 돌아야 할테고, 초월자이니 S급 정도는 그냥 쉽지 않나 해서 적었는데 생각보다 차가워진 분위기에 한유진은 난감해 졌다. 도르륵, 눈알을 굴리던 한유진의 시선 끝에 성현제가 닿았다. 성현제는 가만히 앉아서 김독자를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이 사람은 다른 의미로 또 난감하게 만들었다. 한유진은 슬쩍 고개를 돌려 한유현을 바라보았다. 유현이는 금방이라도 튀어나갈듯 손에 핏줄이 돋아날 정도로 꽉 주먹을 쥐고 있었다. 그걸 본 한유진은 괜찮다는 듯 손등을 톡톡 두드려 주었다. 그제서야 힘을 조금 뺀 한유현은 김독자와 한수영 그리고 성좌들을 차례대로 노려보다 제 형의 손을 꽉 잡고는 이린을 불렀다. 붉은 도마뱀이 한유현의 볼을 따고 올라가 눈동자에 스며 들어 붉게 빛났다. 박예림은 한유진의 뒤로가 지키듯이 서있었다. 언제 꺼냈는지 모를 푸른창을 옆에 꺼내 놓고 눈을 살벌하게 부라렸다. 마치 개판이 되기 오분전 같은 느낌이랄까. 한유진은 괜히 자신의 욕심때문에 잘되갈 계약을 망친것은 아닌지 걱정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알게된 성현제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며 김독자의 눈, 코, 입을 살펴 보았다.


한숨을 작게 내쉰 김독자가 물끄럼히 한유진을 바라보았다. 사실 딱히 화가난건 아니다. 본래의 한유진 성격이 뭐하나 더 빨아먹자는 주의라, 어느정도 예상 범위에 속해 있었던 것이다. 다만 지금 이렇게 눌러 놓지 않으면 더 큰 부탁을 해올것 같아 미리 사전에 예방해 놓기 위해 작은 미끼를 풀어 놓는것일 뿐이다. 어차피 이 계약의 우위는 저이니 이상한 생각 하지 말라는 작은 경고와 같은 의미기도 했다. 김독자는 종이를 툭툭 손가락으로 치며 차갑게 말을 하였다.


“…한유진 씨가 원하신다면 이렇게 하겠습니다. 단-.”


김독자는 한유진 일행을 훑어 보다 저의 일행들을 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김독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굴러 다니던 펜을 들어 계약서 밑에 무언가를 적어 나가기 시작했다. 다 적고나서 펜을 데스크에 내려 놓고는 한유진 앞으로 다가갔다. 움찔 하는 한유현을 성현제가 한손으로 막은 후 미소 지으며 앞을 막아섰다. 김독자는 힐끗 성현제를 바라보고는 말을 하였다.


“비켜주시겠요.”

“내가 무엇을 믿고 비켜드려야 하나?”

“제가 무력을 썼다면 얼마든지 썼습니다. 가만히 있는 초월자 신경 건드리지 말고 비키세요.”

“흠…이런, 괜히 우리 초월자님 신경 거슬리게 하면 안되지.”


그런말을 하며 성현제는 옆으로 비켜 은근슬쩍 김독자와 어깨를 밀착하였다. 그에 별말을 하지 않는 김독자를 보고는 성현제가 입꼬리를 올렸다. 뒤에서 한수영은 발을 까딱거리며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저 자식, 무슨 생각인가 했는데. 김독자 아직 한물 안갔네. 여전하다, 여전해. 한수영은 자꾸만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억지로 내리며 무표정을 유지했다. 김독자는 한유진을 내려다보다 계약서를 전했다. 한유진은 두손으로 계약서를 받아 들고는 다시 읽어 내려 갔다.

7.이 모든 것의 시작은 한유진(갑)이 전적으로 김독자(을)의 의사에 따라 맡긴다.

한유진은 7번을 유심히 읽어 가다 김독자를 올려다 보았다. 김독자는 다시 나른한 미소를 지으며 한유진의 앞에 쭈구려 앉았다. 나긋한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제가 시작하면 그때부터 모든 일을 하나씩 차곡차곡 진행하죠. 이야기도 프롤로그 이후에 본편으로 들어가 듯, 저 또한 준비해야 될게 있지 않겠습니까? 이 점은 한유진 씨가 이해하실거라고 믿어요. 자, 그럼 사인 하실까요? 패널티는….”

“각자의 팔 한쪽씩 걸죠.”

“형!”

“아저씨?!”

“유진 군.”

“괜찮아요. 빨리 진행하시죠. 김독자 씨.”

“알겠습니다.”


한유현과 박예림의 경악을 뒤로 한채, 한유진은 괜찮다는듯이 웃어 보여 주었다. 한유현은 금방이라도 싸울것 처럼 굴다 이내 한유진으로 인해 화를 삭히는 듯 보였다. 그렇게 어렵사리 계약을 채결 하였다. 계약서에 서로의 이름을 적으니 밝은 빛을 발하며 계약서가 두 장으로 나뉘었다. 한 장씩 서로 사이 좋게 나누어 가진 후, 밖으로 나서려던 찰나 김독자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을 하였다.


“솔직히, 저희끼리 이름은 다 알고 있다고 해도 정식으로 통성명 한적은 없지 않습니까?”

“그…그렇죠?”


지레 찔린 한유진은 흠칫 하며 김독자를 보았다. 김독자는 생글생글 웃으며 말을 하였다.


“제 이름은 김독자, ‘구원의 마왕’이라 불리죠. 사실 다른 이름도 많습니다만, 제일 많이 불리는건 구원의 마왕이란 수식언입니다. 그냥 아까처럼 김독자라 불러 주시죠.”


김독자는 한수영에게 눈짓을 주고 그리고 성좌들에게도 눈짓을 주었다. 한수영은 귀찮다는 듯 김독자를 흘겨보다 한유진 일행을 보았다.


“내 이름은 한수영이야, ‘거짓 종막의 설계자’라고 불리기도 하고 ‘흑염마황’이라고 불리기도 해. 알아서 편한대로 불러.”

“제천대성이다. ‘긴고아의 죄수’라고 불리기도 하고 ‘가장 오래된 해방자’라고 불리기도 한다.”

“난, 우리엘이야. ‘악마같은 불의 심판자’라고 불려.”

[바앗-.]


어딘에선가 낮은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한유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고 그곳에는 작은 하얀 솜뭉치에 상아색의 뿔을 가진 생명체가 둥둥 떠다녔다. 뭐야! 완전 귀여워! 근데 어디서 나타난거지? 혹시 삐약이랑 같은종인가? 진짜 귀엽다. 갑작스러운 생명체에 한유진은 눈을 반짝였다. 그 옆에 서있던 박예림 또한 꺄악 거리는 소리를 내며 발을 동동 굴렀다. 성현제는 흥미롭다는 식으로 하얀 솜뭉치를 바라봤고 한유현은 그저 계속 김독자만을 보고 있었다. 솜뭉치는 둥둥 떠다니다 이내 김독자의 어깨에 안착했다.


[바아앗-. 나는 비유, 도깨비 왕이야.]


응? 한유진은 계속되는 주접을 덜컥 멈추었다. 그리고는 비유를 바라보았다.


[뭘 그렇게 보세요? 나 알잖아. 비유.]


그러자 하얀 솜뭉치는 이내 얼굴이 익은 어린 여자아이로 변하였다. 김독자는 낮게 웃으며 소개하였다.


“제 딸아이입니다. 이름은 비유, 도깨비 왕이죠.”

“도깨비 왕이요…?”

“네.”


와…와…아니 도깨비 왕이 두명이라고? 우리한테는….


“아, 그 한유진 씨께서 생각하시는 도깨비 왕과는 다릅니다. 음…이부분은 나중에 말씀 드리지요.”


한유진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꾸만 눈길이 가는 것을 억지로 돌려 손에 붕대를 감고 있고 적안을 가진 남성을 바라보았다. 남성은 음산하게 웃으며 랩을 하듯 읊조렸다.


“난 위대하신 ‘심연의 흑염룡’이다. 큭큭, 너희들 같은 어린 중생들이 감히 쳐다볼수도 없는 그런 위대한 용이니 알아서 고개를 조아-.”

“쟨 그냥 그러려니해. 중2병 말기 환자라 그래.”


한수영의 말에 한유진은 얼떨떨 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도 소개를 했으니 우리도 해야 하나…? 작은 의문에 김독자는 너희는 안해? 라는 눈으로 바라보니 한유진도 김독자 일행을 따라 소개를 하였다.


“한유진 입니다. 현재 도담사육소 소장을 맡고 있어요.”

“세성 길드의 길드장인 성현제라 하네. 앞으로 잘부탁하지, 김독자 군.”

“해연 S급 헌터, 박예림이에요.”


박예림 까지 소개를 끝마친 후 모두의 고개가 한유현에게로 돌아갔다. 한유현은 여전히 무표정을 고수한 채, 김독자를 유심히 바라보다 짧게 말을 하였다.


“한유현, 해연 길드장 입니다.”


제대로된 통성명을 하게 되자 김독자는 피식 웃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어쩔까, 일단 오늘은 집으로 돌아 가야겠다. 피곤하네. 김독자는 몸을 몸을 돌려 접견실로 나가려던 찰나, 모든 핸드폰에 비상 알림음이 시끄럽게 울렸다. 모두가 굳어 급하게 핸드폰을 확인해 보았다. 확인한 그들은 빠르게 뛰쳐 나갔다. 던전 브레이크다. 그것도, 김독자와 그들이 살고 있는 건물과 가장 가까운곳에서 터져버린 것이다.

급하게 차를 몰고 가서 확인해 보니 이미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고 마수들은 여기 저기서 날뛰고 있었다. 제일 먼저 도착한 성현제가 차에서 내려 수색자의 사슬 꺼내 들어 빠르게 마수들을 꿰어 나갔다.


차르륵-!

푸욱-.


연속으로 들려오는 살벌한 소리들과 다르게 마수는 끊임 없이 쏟아져 나왔다. 바로 뒤에 도착한 한유현은 이린을 불러 푸른 버들잎을 쓰며 앞으로 튀어 나갔다. 청색에 가까운 푸른 불꽃이 사방으로 튀며 민간인을 위협하는 마수들을 단번에 불살라 버렸다. 그 옆에서 박예림이 얼음 화살을 수백개 만들어 허공에 띄워 놓은 후, 들고 있던 창을 앞을 내리니 그것이 신호탄이 된듯, 얼음 화살들이 땅으로 떨어져 마수들의 머리를 정확히 꿰뚫었다. 한유진은 그 상황을 지켜보다 눈이 잘게 떨려왔다. 회귀 전, 이 시기에 그것도 이곳에서 던전이 터진적이 없었다. 그리고 저런 마수들 또한 본적이 없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뒤 늦게 도착한 김독자의 일행들은 다급히 차에서 내려 한유진의 곁에섰다. 김독자는 빠르게 마수들을 정리해가는 그들을 보다 주변에 널부러진 마수들의 사체들을 보고는 깜짝 놀라 뒤로 주춤하였다. 김독자는 고개를 돌려 한수영을 바라봤고 한수영 또한 놀랐는지 그저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어째서 저게 여기있는거지.


“왜, 지하종인 땅강아쥐가…?”

“네? 김독자 씨, 저게 뭔지 아세요?”

“이거…이상해. 뭔가, 아니야. 이럴리가 없어.”


김독자는 작게 중얼거리다 금방이라도 앞으로 튀어 나갈듯 다리에 꾹 힘을 주었다. 콘크리트 바닥이 움푹 패이며 작은 구덩이가 생겨났다. 김독자의 상체가 한껏 낮추어져 튀어나가기 편한 자세가 되었다. 그 모습을 본 한수영이 오랜만에 붕대를 풀고는 [예상 표절]을 돌렸다. 이거…설마.


“야, 김독자. 저 게이트 뭔가 이상해.”

“나도 그렇게 느끼고 있었어.”

“김독자.”

“왜?”

“…무리하지말라고.”

“싱겁기는, 우리엘.”

“응.”

“한유진 씨를 부탁드립니다. 정리가 다 끝나면 아마 저 게이트에 들어가 봐야 할것 같군요.남은 분들은 저와 같이 땅강아쥐를 사냥하죠.”


김독자의 말 끝으로 그들의 신형이 빠르게 사라졌다. 오랜만의 전투에 한수영은 송곳니가 드러나게 웃어주었다. 풀린 붕대의 손위로 보라색의 불꽃이 넘실거렸다. [흑염]은 한수영의 손을 벗어나 푸른 불꽃과 어우러진채 커다란 시너지를 일으켰다. 곧 주변이 불바다가 될게 뻔해진 박예림은 잠깐 한수영의 [흑염]에 놀랐다가, 다시 정신을 되 찾은후에 물을 끌어와 불길을 잠재웠다. 김독자는 달리며 옆에서 따라오는 제천대성을 힐끔 쳐다보고는 다급히 외쳤다.


“형님! 형님은 아직 대피하지 못한 민간인들을 대피 시켜 주세요.”

“…알겠다. 조심해라 막내야.”


김독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제천대성은 근두운을 타고 빠르게 날아가 대피하지 못하거나 부상당한 민간인들을 한두명씩 구출 해내기 시작했다. 한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고 각자 열심히 싸우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던 김독자는 그들과 달리 천천히 그렇다고 해서 너무 가볍지도 않은 걸음으로 마수들이 흘러 나오는 정중앙으로 향하였다. 급박한 상황과 맞지않게 김독자는 매우 느긋했다. 새하얀 코트가 낮게 펄럭였다. 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공기가 급박하게 무거워 지는 느낌을 받았다. 한순간에 진공 상태가 되는듯한 느낌을 받은 한유진이 숨을 헐떡 거렸다. 그 모습을 본 우리엘이 한유진의 앞을 가로 막아서 서자 한결 숨 쉬기가 편해진 느낌을 받았다. 우리엘은 힐끔 한유진을 쳐다보며 나지막이 말을했다.


“내 뒤에서 나오지 않는게 좋아. 안그러면 머리가 터져 버릴수도 있거든.”


한유진은 흠칫 몸을 떨었다. 와, 초월자라 세다고는 어렴풋이 알거 같았지만. 이건 차원이 달랐다. 이게 바로 성좌…김독자는 눈을 감은채 설화들에게 귀를 기울였다. 오랜만에 힘을 발아하는 설화들에 김독자는 낮게 웃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눈을 뜨며 한 설화를 깨웠다.


[설화,‘벌레 학살’이 오랜만의 전투에 즐겁게 깨어납니다.]


“그래, 오랜만이야.”


[설화,‘벌레 학살’이 포효합니다!]


“너 하고 싶은대로 해봐.”


그러자 주변에 있던 땅강아쥐들이 삐걱 거리더니 이내 모든 머리가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설화는 오랜만에 깨어남과 동시에 지금까지 꾹꾹 눌러담았던 힘을 터트렸다. 그 상황에 한유진과 한유현 그리고 박예림이 잔뜩 경악 하였다. 성현제도 마찬가지였다. 꿰 뚫고 태우고 하던 그들과 달리 빠르고 간단하게 터져나가는 머리들을 바라보며 허망하게 제자리를 지켰다. 잔인하게 터져나가는 머리들이 늘어 나자 끊임 없어 보이던 마수가 줄어들었다. 그렇게 몇분후 온 바닥이 빨갛게 물들어 있고 마수의 시체들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는 한가운데에 그 무엇도 묻지 않은 새하얀 순백의 코트가 짙은 이질감을 안겨주었다. 김독자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후 멍하니 서있는 그들을 바라보다 턱짓으로 게이트를 가르키며 말을 하였다.


“저 게이트 좀 이상한것 같은데 들어가 볼까요? 아, 위험할수도 있으니 안들어가셔도 되긴 하는데. 한수영.”

“알아. 누구 한명은 밖에 남아 있어.”


한수영의 말에 성현제가 느긋이 말을 하였다.


“어차피 지금 우리 송실장님이 오고 계시니 안남아도 된다네. 근데…궁금한게 있군. 자네들은 이 마수들에 대해 아나?”


김독자는 한수영과 눈빛을 주고 받은뒤 고개를 끄덕였다.


“잘알죠. 지하종, 땅강아쥐 입니다. 마수에 대해서는 게이트에 들어갔다가 나온 후에 설명 드리죠. 뭔가, 이상합니다.”


김독자의 말에 동의를 표한 사람들은 이내 오묘한 색을 띄는 게이트를 넘었다. 게이트를 넘어 처음 눈에 보인것은 짙은 안개였다. 김독자는 무언가 기시감을 느꼈고 성좌들과 한수영 또한 동일하게 기시감을 느낀듯 서로 눈짓을 하였다. 


“일단 저희한테서 떨어지지 마십쇼.”

“네? 아, 네네.”

“한유진 씨가 여기서 제일 약하니 가운데에 두고 전방에는 저와 한수영이 그리고 후방에는 성현제 씨와 한유현 씨가 서주시죠.”

“독자야, 나는?”

“양 옆으로는 우리엘과 제천대성 그리고 흑염룡과 박예림 양이 맡아주시죠.”


그렇게 대형을 만들고 조심 스럽게 짙은 안개를 헤쳐 나가자 흐릿한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미간을 좁히고 앞을 바라보던 한유진이 중얼거렸다.


“영화관…?”


김독자는 멈칫 하다 더욱 빠르게 걸어 건물내로 들어갔다. 익숙하게 보이는 찢어진 포스터들, 음산한 건물 내부, 김독자와 한수영 그리고 성좌들은 아예 굳어버렸다. 건물 내부로 들어온 성현제가 고개를 기울이며 나지막이 말을 하였다.


“이상하군, 던전이라기엔 마수가 없고 웬 건물이라니. 그리고 포스터가 죄다 찢어져 있군. 이건…칼 자국…?”

“칼 자국이요?”

“여기 보게나. 긴 상흔들을 보면 모두 칼이 스친것이지 않나.”

“그러네요. 어? 김독자 씨…?”


김독자는 어이가 없어졌다. 기묘한 불쾌감, 갉작거리는 소리가 커져갔다. 미간을 좁힌 김독자가 비틀거렸다. 그  모습을 본 한수영이 급하게 김독자를 부축해 줬고 김독자는 보면 안돼는것을 본 듯한 표정으로 허망하게 중얼거렸다.


“극장 던전….”


이곳은 그 예전에 클리어 했던 극장 던전이었다.


안녕하세요, BL 웹소설 작가 달분입니다 :) 웬만한 2차 판소 연성은 시리즈로 묶어두었습니다. 이어 1차 BL 외전은 따로 묶어 두었으니 확인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달분 Darbun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