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골목의 의사가 하는 일이야 뻔하다. 축 늘어진 몸에 칼을 대고 배를 헤집어서 하얀 가루가 터질 듯이 들어찬 플라스틱 주머니를 꺼내거나, 아직 숨이 붙어 있는 몸뚱이에 박힌 총알을 빼내고 상처를 대충 봉합하거나.

전자는 확실히 의사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의사 면허 없이 의사 흉내를 내는 뒷골목의 의사가 그렇듯이, 뒷골목의 멍청이들은 해부학적인 지식이라고는 하나도 없어서 칼을 얼마나 쑤셔 넣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멋대로 배때기를 쑤셨다가 그 귀한 가루랑 피로 매스꺼운 반죽을 만들어대곤 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총 소리가 나고, 골목이 시끄럽다. 그래서 언젠가는 내 집 문을 열고 들어와서 이 몸뚱이 배 좀 열어 주십사 한다는 말이 나오진 않을까 했는데. 그 날이 바로 어제였다.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는 온통 검은 옷에, 머리까지 시커멨다. 그리곤 한다는 말이 나와 계약을 했으면 좋겠다는 거였는데. 어쩌고저쩌고 말도 정말 많았다. 금발에 퍼런 눈을 반짝이는 변호사도 달고 왔다면서 이 계약서에 싸인을 하면 또 뭐가 어쩌고저쩌고. 나는 꺼지라고 말했고, 금발은 웃었고, 검은 머리는 얼굴을 찡그렸다.

“뭐가 문제죠? 짐, 우리 서류에 닥터에게 불리한 조항이 있습니까?”

“아니, 스팍. 나는 최대한 이 아저씨의 권리를 보장하는 쪽으로 작성했는데. 봐봐, 일반적인 연봉 계약 형식으로 했단 말이야. 매달 11일에 정해진 금액을 제공하는 건 물론이고 건당 인센티브도 약속했어. 물론 이런 동네에서 계약서가 다 무슨 소용이냐 싶지마는, 나는 닥터도 분명히 우리 소문은 들었을 거로 생각해서 최대한 네 취향에 맞춘 서류를 구비했거든. 우리 한테는 아무 이상도 없어.”

“그런데 어째서 닥터가 거부하는 겁니까?”

“글쎄, 그냥 네가 싫은 건가? 왜 대부분 너 처음에 보면 되게 무서워하잖아. 시커멓고, 커다랗고. 그러니까 양복은 좀 밝은 톤으로 입으라고.”

“옷을 탓하는 무의미한 언쟁은 그만 두십시오. 아무리 말해도 바꾸지 않을 겁니다. 내 자리는 당신처럼 상대방의 호감을 사기 위한 자리가 아니니까.”

그렇게 녀석들은 내 앞에서 한참을 떠들었다. 대부분 금발이 떠들고, 시커먼 놈은 눈썹을 삐딱하게 올리고서 반박하거나 거부하거나 반론하거나 했다. 태생이 남 꼬투리를 잡고 싶어 하는 놈처럼 보여서 눈을 가늘게 뜨고, 그 놈한테 물었다.

“나한테 이런 제안을 했던 게 네놈들이 처음이 아닌데, 내가 왜 너희랑 손을 잡아야 하는지부터 설명해 보는 게 어때?”

시커먼 놈은 곧바로 대꾸했다.

“그들 중에서 우리가 가장 크기 때문입니다.”

자기 조직이 일대에서 가장 크다고 말하는 녀석치고는 상당히 젊었다. 그러고 보면 변호사라던 금발도 상당히 젊었다. 혹시 두 놈이 장난질을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금발이 말했다.

“VF. 알지? 안다고 해줘. 정말 유명하다고. 만약에 우리가 유명하지 않다면 스팍. 이건 다 네 잘못이야. 벌칸 패밀리가 뭐냐? 진짜 이상하다고. 내가 차라리 파이크 핸드폰 번호를 따서 짓자고 했잖아. 1701!”

“우리가 리모 서비스 업체입니까? 그런 이름이라면 누구도 기억하거나 부르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 게다가 벌칸 패밀리라는 이름은 이상하지 않습니다. 이쪽에 대한 권리는 저에게 있었으니, 제 이름을 붙인 것에 대해서 뒤늦게 불만을 표출해도 소용없습니다.”

금발은 내게 동의를 구하듯이 쳐다봤지만, 나는 어떤 이름을 가진 갱이건 마피아건 그 놈들 앞에서 나는 네놈들 이름이 구려서 싫다는 말을 꺼내기 싫어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랬더니, 녀석들이 내 안전을 들먹이면서 말을 이어 붙였다.

“솔직히 나이도 있어 보이는데, 지켜야할 가족 같은 거 있을 거 아니야? 아니면 뭐 여자 친구라던가. 그런 사람이 있으면 믿음직한 조직 밑으로 들어와서 보호를 받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란 말이지. 언제까지 이 구역만 중립지역일 수는 없어. 새로 뜨내기들도 들어왔단 말이야. 동양계라던데, 엑셀시어라던가. 걔들이 주력하는 쪽도 마약이라니까 언젠가는 결국 일어날 일이야. 닥터가 한쪽으로 속하는 일. 나중에 우리 일도 맡았다가 걔들 일도 맡았다가 몸에 3번가에서 없어진 맨홀 뚜껑 같은 커다란 상처가 몸에 생기면 후회할 찰나도 없이 그냥 훅 가게 될 거야.”

나는 멋들어진 금발과 구슬처럼 푸른 눈을 하고서 끔찍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변호사를 보며 얼굴을 구겼지만, 그 옆에 시커먼 놈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 녀석의 말을 받았다.

“구멍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머리나 심장을 노리지만, 엑셀시어는 자르고 베어내는 것에 더 열중한다고 알려졌으니까요.”

정리해보니까 편하게 죽고 싶으면 저를 택하라는 거였다.

살려두는 수를 경우에서 배제하고 말하는 것에서부터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그걸 굳이 되묻지는 않았다. 어차피 사람은 죽는다. 다 자기의 시간이 있으니까. 내 어린 딸은 나보다 먼저 위로 돌아갔고, 그 이후에 아내였던 여자는 내 모든 것을 가지고 떠나버렸다. 나는 지킬 게 아무것도 남지 않은 사람이다. 녀석들이 이 동네에서 가장 커다란 조직을 가지고 있는 녀석들이긴 했어도, 뭔가 뒷조사를 잘 하는 놈들은 아닌 것 같았다. 아니면 그냥 떠보기 위해서 들어왔을 수도 있고. 의사야 없으면 만들면 되는 거 아닌가. 나는 이 계약서를 그대로 들고 나가서 시내에 개업의를 찾아가 말하면 누구든지 싸인도 하고 지장도 찍을 거라고 권해줬다.

금발은 내 말에 금세 동의하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다면 뭐 어쩔 수 없지. 대충 그런 투로 인사를 하고 정리하려는데, 시커먼 놈이 나를 붙잡았다.

“나는 그런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정확히 당신이 필요한 겁니다.”

“그러니까 이유가 뭐냐고.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나도 금발도 시커먼 머리카락만 쳐다보고 있었다. 녀석은 뭔가 더 말하지는 못하고 얼굴을 조금 더 찡그리더니 제 검은색 코트 안주머니에서 총을 꺼내들고 나를 향해 겨눴다.

“스팍?” 

금발이 조금 당황한 목소리를 냈다. 

“어차피 닥터를 곁으로 끌어들이지 못한다면 언젠가는 해야 할 일입니다. 짐. 우리는 분명히 그렇게 정리 했었죠.”

“……. 나도 알아. 아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갑자기 이게 뭐야? 오늘은 말만 하고 돌아가겠다고 했잖아? 기다리겠다고 했었던 건 애초에 너였잖아. 왜 조바심을 내는 거야?”

“맞아, 분명히 처음에는 그렇게 계획 했는데, 네가 무시했죠. …나는 분명히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풀어가는 게 별로 좋은 영향을 끼칠 리 없다고 말했었고.”

“그래. 다 내 잘못이야. 내가 나빴어. 그것 좀 집어 넣어.”

금발이 몹시 당황하며 손을 뻗었지만, 그는 총을 내리지 않은 채 빠르게 대꾸했다.

“오늘 우리가 여기서 돌아간다면 이후에 닥터가 계속 여기에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구역을 넓히는 일은 절대로 쉽지 않습니다. 짐. 다음이 언제가 될지는 장담할 수 없으니, 여기까지 온 이상 오늘이 아니면 안 됩니다.”

금발은 퍽 당황한 듯이 눈을 깜빡거렸고. 시커먼 눈동자가 온전히 나를 향해 있었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 사람도 그와 다르지 않았고. 나는 오히려 이렇게 죽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평생 뒷골목에서 주먹 쓰는 놈들의 뒤나 빨아주느라 시체 뱃속에 손을 집어넣고 헤집으면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그냥 녀석들에게서 등을 돌렸다. 쏠 테면 쏴보라지. 배 째라는 식이었다. 어차피 언젠가는 죽는다. 그게 신병모집에 실패한 갱에 의한 것이든, 다 늙어서 심근경색으로 인한 것이든지 간에. 어차피 그 과정이 고통스러울 거라는 건 같다.

나는 늘 하던 것처럼 눈을 감았다. 그랬더니, 누군가가 내 뺨을 가볍게 찰싹 때렸다. 주의를 환기 시키듯 가벼운 손짓이었지만, 나는 화들짝 놀랐다. 눈을 뜨니 보이는 것은 새카맣게 보일 정도로 어두운 눈동자 뿐이라서 고개를 뒤로 물리는데, 그가 어깨를 붙잡았다.

“14년 전 당신이 근무하던 응급실에 대해서 기억나는 게 없습니까?”

“어린애 둘, 황금보다 반짝이는 금발의 천사 같은 꼬마 지미랑 검은머리에 우중충하고 똑 부러진 꼬맹이 스팍 말이야. 사실 그때 너는 지금보다 훨씬… 뭐랄까? 예뻤는데. 지금은 그냥 아저씨네. 우리 기억이 좀 미화된 모양이야.”

녀석들은 어느새 내 바로 앞에 서 있었다. 부담스럽게 가까워진 얼굴에 놀라서 몸을 뒤로 물리면, 하얗게 질린 손 하나랑 적당히 분홍빛으로 물든 손 하나가 내 팔을 한 쪽씩 잡아서 당겨서 뒤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나를 바라보는 두 명의 젊은 남자 앞에서 마른 침만 삼켰다. 어느새 총은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전혀 알 수 없음에 막역한 공포를 느꼈다. 총구가 눈앞에 들이밀어 졌을 때보다는 확실히 좀 더 무서웠다. 내 두려움에는 아랑곳없이, 시커먼 옷을 입은 녀석이 또 뭐라고 떠들어댔다.

“그때 당신이 우리를 살려냈습니다.”

나는 무슨 소린지 단번에 알아듣지 못하고 미간을 찡그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금발이 눈썹을 들썩거리더니, 말을 이어 붙였다.

“우리가 있던 위탁가정은 진짜 좆같은 곳이었거든. 전날에 맞은 곳이 너무 아파서 몰래 응급실에 갔다가 들켜서 샘한테 뒤지게 맞고 있는데, 짜잔! 네가 나타났잖아. 나는 거의 반쯤 죽어 있었고. 스팍은 거의 죽을 뻔했었지. 샘이 커다란… 뭐였지? 벽돌이었어? 아니면 그냥 몽둥이였어?”

“벽돌이었습니다. 짐은 바닥에 쓰러져있었고, 샘은 내 머리를 내리치려던 순간이었죠. 그는 욱하는 성질이 너무 강했습니다. 우리는 온전히 데리고 있어야 돈이 나온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고 있었죠.”

“아무튼, 그때 네가 슈퍼맨처럼 나타나서 몸통 박치기로 샘을 쓰러트리고, 나랑 스팍을 안고 응급실로 갔었어. 네가 경찰에 신고도 했고. 그래서 우리는 다른 위탁가정으로 들어갔거든. 거기가 파이크 집이었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파이크 집은 아닌데……. 대충 비슷한 거야.”

“당신이 우리 운명을 바꾼 겁니다. 파이크가 아니었다면 VF를 만들거나, 짐이 엔터프라이즈의 변호사가 될 일도 없었을 테니까요.”

녀석들은 그렇게 떠들더니, 그것이 정말 충분한 설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을 다 마친 듯이 입을 다물었다. 나는 그런 녀석들에게 여전히 손을 한 쪽 씩 붙잡힌 채였고, 여전히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눈동자를 굴리다가 물었다.

“과거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단순한 감사인사를 하려고 온건 아닌 것 같은데. 그래서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검은 머리의 녀석이 입술을 달싹거렸을 때, 금발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우리한테는 아주 중요한 건데, 당신한테는 필요 없는 거. 그것만 주면 더는 귀찮게 하는 일 없을 거야.”

나는 그게 뭐냐고 묻지 않았다. 

금발 녀석은 내가 눈치 챘다는 것을 알아 챈 것처럼 예쁘게 씩 웃더니, 물었다.

“줄 거야?”

어린애 같은 말투로 푸른색 눈을 반쯤 휘어가며 입꼬리를 반듯이 접어 웃는 모습에 나는 말을 잃은 입술을 더 꾹 다물면서 외면했다. 시선을 돌린 곳에서 마주한 짙은 갈색의 눈동자에 또 금세 붙잡히듯 시선을 마주하면서도 입을 떨어질 줄을 몰랐다.

“우리가 원하는 건 당신입니다.”

“그래, 결국 말해 버렸네.”

과장되게 어깨를 으쓱인 금발이 다시 물었다.

“그래서, 줄 거야?”

“미리 말씀드리지만, 우리는 원하는 것은 꼭 손에 넣습니다. 당신을 손에 넣기 위해서 영역을 이쪽까지 확장 시킨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십시오.”

“어차피 도망갈 곳은 없어, 레너드 맥코이.”

두 남자가 나를 향해 아주 해사하게 웃었다. 동화 속에서 건져낸 듯한 금발의 해사한 미소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새카만 남자의 창백한 미소에도 어린애 같은 해맑은 면이 있었다. 나는 어쩐지 소름이 돋아서 뒤로 살짝 물러서려고 했지만, 두 사람은 용서 없이 나를 끌어당겨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

어둠 속의 유일한 빛을 마주한 건지, 아니면 어둠 속 아주 깊은 곳으로 떨어진 것인지 구분이 되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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