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바다를 본 적이 없었다. 자쿠는 척박한 사막 행성이었다. 어딜 가도 따라오는 모래는 거칠고 성가셔서, 그녀는 늘 바다를 상상하고는 했다. 본적도 없는 것을 상상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녀는 운카에게 고철을 팔기 위해 대기할 때 다른 사람들이 뜻없이 중얼거리는 말을 조합해서 그녀가 상상하는 바다의 이미지를 덧그렸다. 푸르고, 넓고, 물로 가득 차있다. 깊고, 짜고, 그 안에 생명을 품고 있다. 자연적 오아시스도 말라버린 자쿠에서 막연히 바다를 상상하는 것으로도 그녀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언젠가 가족들이 그녀에게 돌아와서 함께 바다를 보러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척박하고 치열한 하루살이도 견딜 만했다. 자쿠에는 안식이 없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하루가 매일 같았다. 모든 희망이 꺾여버린 자쿠처럼 자신 안에 희망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그녀는 애써 외면하며 다른 곳에서 희망을 찾았다.

자쿠의 낮은 덥고 치열했지만, 밤은 춥고 외로웠다. 고철 더미 속에서 홀로 잠드는 것은 익숙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그녀를 견딜 수 없게 하는 것은, 그녀 안에 싹트는 의심이었다. 10년이 넘은 기다림이었다. 어쩌면, 이대로, 영원히 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런 의심이 들 때면 도통 잠들 수 없었다. 어릴 때는 매일 밤낮을 울었다. 울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안 후로 그녀는 우는 것을 멈추었다. 사막에서 물은 곧 생명이다. 눈물을 흘리면 수분을 잃는다. 슬픔은 사치다. 그녀의 마음은 척박한 사막처럼 하루하루 말라갔다.

가족들이 올 거야. 그녀가 끝없이 되뇌는 말은 사실 믿음 따위가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그녀가 버려진 것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희망을 버리지 마. 가족들이 올 거야. 공허한 다짐은 그녀의 정신이 부서지지 않기 위한 주문에 더 가까웠다.





카일로는 명상을 멈추었다. 그러자 그녀도 모래처럼 흩어졌다. 또, 그녀의 의식 속으로 들어갔다. 자신이 그녀를 들여다보고 있다면, 그녀 역시 자신을 들여다 보리라. 그녀의 정신과 동화되었을 때 과시하듯 그녀의 마음을 읊었지만, 그는 그녀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외로움. 두려움. 그게 무엇인지 그는 너무나도 잘 알았다. 그도 부모에게서 버려지다시피 제다이 스승에게 맡겨졌다. 왜 그랬느냐 묻지 못했다. 답을 들으면 그가 감당하지 못할까봐였다.

그녀는 카일로가 가장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불안을 단박에 읽었다. 카일로는 렌 기사단을 이끌고 있지만 자신이 강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불안정하다. 모두 카일로 렌을 그렇게 생각했다. 다크 사이드의 길을 걸으면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다스베이더가 아니었다. 그 길을 걸을 수록 그는 자신을 잃었다. 그가 걸어온 길은 피와 재의 길이었다. 돌아갈 수 없다. 하지만 카일로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망설이고 있었다. 너는 약해. 어둠이 그를 책망한다. 최고 지도자의 시험을 완수했는데도 그는 조금도 강해지지 못했다. 외려 그는 부서지고 있었다.

다르지만 비슷하다. 그래서였을까. 그녀와 정신이 완전히 연결된 이후, 카일로는 무의식 중에 계속 그녀를 읽었다. 그녀와 그는 수십 광년을 떨어져있지만 포스로 연결된 둘의 정신은 거리에 구애 받지 않았다. 카일로는 문득 레이가 보고 싶었다. 그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겨줬지만 복수를 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탐이 나지만 두려웠다. 그녀가 그보다 강해서인지, 아니면 그녀가 그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인지는 그로서도 알 수가 없었다.








*









레이는 카일로를 떠올렸다. 그도 그녀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레이는 그와 헤어진 후 다시 의식이 처음 연결된 때를 생각했다. 레이와 의식이 동화된 후 카일로는 수치스러워 했다. 자신이 걷는 길이 무엇인지를 레이의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선택할 수 있었다. 매 순간이 선택이었다. 끝까지 남아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은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카일로는 치열한 삶을 살았으나 그의 삶에 목적은 없었다. 그는 암초 같았으며, 불안하고 뒤엉켜 있었다. 다스베이더를 목표로 한다 했지만 그가 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조부에게 다크 사이드의 길을 보여달라고 무릎 꿇었던 건, 약해지는 자신을 다잡기 위한 의식에 가까웠다. 레이는 그런 그가 낯설지 않았다.

그를 생각하면 레이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빛을 등지고 서서 자신이 속한 곳이 어둠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어둠에 눈이 가려져 자신이 빛 안에 있는 것도 모르는 그가 가여웠다. 레이의 머릿속을 헤집고 고통을 줬고, 레이가 막연히 덧그린 아버지 같은 존재인 한 솔로 선장을 살해했는데도, 분노가 가라앉고 나니 그에 대한 연민이 싹텄다. 그와 정신이 연결되었기 때문인가. 그가 레이를 떠올릴 때마다 레이도 그를 떠올렸다. 정신이 동화된다는 것은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함이 있었다. 그를 아는 것과 그를 느끼는 것은 천지차이다. 타인이 아니라 내가 된다. 그가 느끼는 것을 그녀가 느끼고, 그들은 둘이자 하나이다. 그가 느꼈던 그대로를 그녀가 본다. 레이는 카일로가 얼마나 고통과 방황 속에서 구원을 간절히 바라 왔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안을 보는 순간 그녀는 타자가 아니라 그가 된다. 그도, 그녀도 더는 외로워할 필요가 없었다. 정신으로 영원히 결속된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타자이자 내가 생긴 것이다.

넌 두려워하고 있어. 네가 다크 사이드의 길을 걸을 수 없을까봐. 네가 라이트 사이드로 돌아가면, 네가 해온 모든 짓들에 대한 책임을 져야해. 네가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그 부분이야. 너는 네게 행복이란 없다 하지만, 그건 네가 선택한 길이야. 너는 행복해질 수 있었어. 나와는 달리. 내가 부랑자라고? 너는 도망자야. 문제에서 도망치고, 회피할 생각만 하지. 문제에 맞서고 자신이 깨지더라도 답을 얻을 생각조차 하지 않지. 부모를 탓하고, 스승을 탓하고, 빛을 탓하고. 너는 평생 다른 것들을 탓하다가 어둠에 질식할 거야. 문제에 대한 해답은 네 안에 있었는데도 빛으로 나아갈 용기가 없어 어둠에 숨어버렸잖아. 너는 나약해. 나약하고 비겁해. 살아있는 모든 것을 원망할 생각이야? 너 자신에 대한 분노를 다른 이들에게 투영하지마. 넌 이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될 수도 있어. 그저 마음만 먹으면 돼. 돌아가겠다고 하면 돼. 빛으로 가. 모두가 널 기다리잖아. 그들에게로 가.

그를 생각하자 그에게 전하고픈 생각들이 저절로 떠올랐다. 그녀는 자신의 진심이 그에게 닿기를, 간절히 포스에게 빌었다.









*









"이 길의 끝에 뭐가 있는지 알아? 공허만이 있어."
"말하지 마! 의료 드로이드가 오고 있으니까-"
"레이."


난 돌아가지 않아.


포스를 통해 그녀에게 말을 걸면서 카일로는 한 움큼 피를 또 뱉어냈다. 원래부터 하얀 얼굴이 핏기가 가셔 더욱 창백해져 이제는 거의 푸르게 보였다. 예상치 못한 그의 말에 레이가 눈을 크게 뜨자 카일로는 씩 웃어 보인다.


이 길을 걷기 위해 무엇이 희생되었는지 봐. 난 용서받을 수 없어.
"내가- 널 용서해. 카일로, 제발, 이러지 마."


레이는 울고 있었다. 카일로의 감정이 정제되지 않은 채로 그녀의 머릿속으로 모두 흘러 들어 왔다. 두렵고, 쓸쓸하고, 후회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고집스럽게 빛의 품에 안기기를 거부하였다. 레이는 포스의 힘으로 끝을 향해가는 그의 시간을 최대한 늦추려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가 살려는 의지가 없기 때문이었다. 레이는 카일로의 머리를 무릎 위에 올려두고 몸을 숙여 그를 껴안았다.



"넌 나와 같은 길을 걸을 필요가 없어. 넌 빛에서 왔으니 빛으로 돌아가야 해."

카일로, 제발. 빛으로 돌아간다 말해. 구원이 있다 말해.
네가 나의 구원이야. 그래서 난 네 손을 잡지 않을 거야.



그녀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 지도 모른 채 나오는 대로 말을 내뱉었다. 머릿속에서 여러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렵고 혼란스러웠다. 카일로의 소리가 작아지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를 공포스럽게 했다.


"널 잃을 수 없어! 또다시 널 잃는 고통을 겪게 하지 마."

날 잊지 못할 것을 알아. 날 기억해줘. 그거면 돼.



카일로는 끝내 빛으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한 채 죽음을 맞았다. 카일로의 남은 생명 에너지가 꺼지자 그의 리빙 포스가 흩어졌다. 레이는 그를 끌어안고 오열했다. 정신 감응이 끊기자 이제 카일로로부터 아무 생각도 들려오지 않았다. 어둠이 소멸하자 그 자리에는 공허만 남았다. 공허한 우주 속에 레이는 이제 완전히 혼자가 됐다. 레이는 심장이 조각나는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며 포스를 통해 절규했다. 지켜내지 못했다. 그녀도, 그녀의 조각도.

포스의 계획대로 레이는 또다시 포스의 균형을 이루었다. 하지만 레이의 마음은 공허했고, 그녀가 잃어야 했던 것들을 떠올렸다.


돌아갈래요. 이제 다시는 깨고 싶지 않아요.


레이는 광막한 우주를 보며 지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녀의 조각을 스스로 거두었다. 지독한 형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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