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KMU, 뱃노래-Ziaa Violin Cover.


*로잔나와 바네사가 등장합니다. 커플링적 요소는 없습니다.

*노말 스토리 기준 어떻게 이렇게 저렇게 다 잘 풀렸다면~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선동과 날조 및 개인 캐해석이 가득합니다.


바다의 선율



“역시 로잔나 님은 상냥하신 거 같아요. 옷도 빌려주시고, 배도 태워주시고… 친절에 감사드려요.”


바네사가 머리에 남은 물기를 꾹 짜내며 말했다. 헤헤, 웃는 얼굴은 순진무구했다. 로잔나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쯧, 혀를 찼다. 저 무르기 짝이 없는 입에서 또 무슨 말이 나올지 감당하기 싫다며 로잔나가 몸을 돌려 뱃머리를 향했다. 바네사가 뒤따라 갔다. 로잔나는 그 발걸음을 들으면서도 말리지 않았다.


두 사람이 이렇게 된 사건의 경위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바네사가 타고 있던 배를 로잔나가 이끄는 해적선이 들이박았다. 정정한다. 들이박겠다고 위협을 하고 약탈을 했다. 자, 이제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보자. 바네사는 페르사에서부터 사르디나로 향하는 배에 타고 있었다. 파견은 아니었고, 여행이었다. 평화로운 세상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다니고 싶었다. 바네사가 몰랐던 사실은, 평화로운 세상에서도 남의 배를 침략하는 잔악무도한 해적들은 여전하다는 것이었다.


그 잔악무도한 해적선의 선장, 로잔나 데 메디치는 신나게 저 타국의 배를 부숴버리라고 웃음을 흘리다가 아는 얼굴과 눈이 마주쳤다. 쟤가 왜 저기 있어? 그 물음을 던지기도 전에 해적들은 명령을 듣고 움직였다. 배와 배가 부딪칠만한 거리에서 아슬아슬하게 멈추고, 해적들은 남의 배에서 남의 선장을 위협하고 물건을 훔쳤다. 배에 타고 있던 무고한 뱃사람들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이 익숙하게 자신의 약소한 짐만을 빼내어 탈출용 작은 배로 도망을 쳤다. 남은 건 해적들이 훔쳐간 제 물건을 돌려달라는 듯이 로잔나를 올곧게 바라보는 바네사뿐이었다.


바네사는 로잔나가 타고 있는 배로 건너가기 위해 도약을 했다가, 배가 출렁이는 바람에 아깝게 발이 미끄러져서 그대로 풍덩 빠져버렸다. 야, 저거 건져내! 로잔나가 외치자 누군가 구명 튜브와 함께 몸을 던졌다. 당연하지만 무사히 구조해냈으며, 그리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로잔나는 타국과의 외교에 엿을 먹이듯이 해적질에 앞장서거나 뒤에서 보조해주는 뻔뻔함은 가득했지만, 어느 정도의 친분이 있는 사람이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있는데 내칠 만큼 모질지는 않았다.


파도는 여유롭게 넘실거렸고, 태양은 만물을 환하게 비추었다. 바람에 소금기가 묻어있었고, 소리에 시원함이 담겨있었다. 바네사의 머리카락에 남아있던 물기는 금세 허공으로 흩어졌다. 로잔나는 힐끔 뒤를 돌아 바네사를 바라보았다. 여전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배짱 좋게 날 노려볼 때는 언제고, 이제는 그렇게 실실 웃으면서 나한테 상냥하다느니 어쩌다느니 하는 건 무슨 심경의 변화니?”
“오해세요. 저는 로잔나 님을 한 번도 노려본 적이 없는 걸요. 그저 아는 분이 가장 선두에 서 있으며, 마침 그 분이 책임자이신 거 같아서 바라보았을 뿐이에요.”
“말은 잘 하는 꼬맹이구나.”


두 사람이 약간의 담소를 나누는 동안 해적선의 선원 중 한 명이 바네사의 짐을 가지고 왔다. 소박하고 기다란 갈색의 가방에 무엇이 들어있을지, 로잔나는 어렴풋이 짐작했다. 와, 소리를 내며 바네사가 가방을 받아들었다. 가방은 해적들이 귀히 나른 짐으로써 잘 이동되었기에 조금도 젖지 않았다. 달칵, 가방을 열자 약간의 옷가지를 비롯한 여행용품들이 들어있었으며, 바네사가 그토록 쉴새 없이 연주하던 바네사만의 바이올린이 들어있었다. 여행용 가방을 바이올린에 맞춰 개량한 폼이었다. 짐을 꼼꼼히 확인한 바네사가 다시 가방을 닫았다.


“저야 이렇게 짐을 돌려받았지만, 다른 빼앗은 것들은 어디로 가나요?”
“내가 그것까지 알려줄 의무는 없는 거 같은데.”
“예, 물론 그렇겠지만요. 하지만 그중에는 분명 저처럼 절대 잃을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 있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알려줄 의무가 없다고, 방금 말했단다.”


같은 대답이 두 번 돌아오자, 로잔나가 이후 시큰둥하게 침묵을 택했듯이 바네사 역시 입을 닫았다. 말로 언어를 표현하는 대신 두 사람은 눈빛으로 서로의 언어를 전달했다. 오랫동안 시선이 얽히고 섥혀서 소리 없는 대화가 이어졌다. 얼마를 그러고 있었을까, 먼저 말문을 튼 건 바네사였다. 그렇군요. 로잔나도 이어서 대답했다. 그렇단다.


“됐다, 저리 가봐. 세상 물정도 모르는 애가 뭘 알겠어.”
“그래도 제가 세상 물정을 모르지는 않는걸요.”


로잔나가 손을 휘휘 저으며 그렇게 말했을 때, 바네사는 말 없이 웃으며 넘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로잔나는 그렇게 대답하는 바네사의 미소를 보며, 어른에게 말대꾸를 한다며 역정을 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기로 했다. 로잔나는 훨씬 더 많은 세월을 산 사람으로서의 권위를 드러내는 것이 익숙했다. 하지만 바다가 어떻게 울부짖냐에 따라 배를 몰고 몰지 말아야 할지도 알았다. 굳이 피할 수 있는 풍랑을 정면으로 맞설 필요는 없었다. 로잔나는 순순히 고개를 저었다.


“방금 건 내가 실언을 했구나. 그래, 이렇게 말하면 만족하겠니?”


물론 그렇다고 한참 어린 것에게 일방적으로 져주겠다는 얘기도 아니었다. 바네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음을 흘렸다. 네, 만족스럽네요, 말하는 목소리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로잔나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다 저런 애랑 바다 한가운데에서 마주쳤담! 이 만남 자체가 불만스러운 건 아니었다. 바네사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게 이런 식으로 대화를 나누기 좋다는 뜻도 아니었다.


“로잔나 님께는 로잔나 님의 방법이 있다는 걸 이해해요.”


다소 뜬금없는 서두였으나, 로잔나는 바네사가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눈치챘다. 만족한다면서 물고 늘어지기는! 아니, 그 전에 분명히 알겠다고 얘기했으면서! 두 번이나 얌전히 물러선 건 오로지 이다음 말로 휘몰아치게 하기 위해서였음이 틀림없었다. 바네사는 바다처럼 푸른 얼굴로 웃으며 다시 서두를 열었다.


“저 역시 로드의 기사이기 이전에는 해방군의 수장이었고, 또 그 이전에는 자국의 번영과 안녕을 위하는 왕녀였고……. 로잔나 님께서도 마찬가지이시지요. 사르디나의 종신 통령으로 오래 계시면서, 누구보다 사르디나를 위하시고요.”      
“나 바빠. 핵심만 얘기해.”
“한 명의 인간으로서의 로잔나 님을 믿어요. 그 얘기를 하려고 했어요.”


그리고 태양처럼 환한 얼굴로 웃는 모습을 본 순간, 로잔나는 생각했다. 거봐, 휘몰아쳤네. 로잔나가 살아온 세월 동안 바네사 같은 사람을 한두 명 본 것이 아니었으며, 당장 그 바네사가 기사로 있던 그 군주도 있었다. 그러니 이 다음에 한숨을 내쉰 까닭은 생경함 때문이 아니라 하여간에 그 군주에 그 기사군, 하는 탄식이어서였다. 이번에는 로잔나가 그렇구나, 하고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짝, 로잔나가 박수를 한 번 쳤다. 다시 말하지만, 이대로 새파랗게 어린 것에게 일방적으로 져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갑작스러운 분위기의 전환에 바네사가 고개를 기울였다. 로잔나가 몹시도 한 배의 선장다운 진중한 모습으로 바네사를 손가락질하며 외쳤다. 너도 어쨌건 지금만은 배에 탄 뱃사람이지! 바네사가 조금 더 고개를 기울였다.


“뱃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자기 몫의 일은 해야 한단다! 그게 아니라면 당장 바다에 던져서 상어밥으로 만드는 게 바다의 순리야.”


바네사의 웃음이 일순 굳었다. 그야 바네사는 뱃일을 단 하나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아까 전의 대화에서 심기를 거슬러서 이런 식으로 내던지려는 건가?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바네사는 상어 밥이 되는 실없는 상상을 했다.


“하지만 네가 이 배 위에서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겠니, 방해되면 되었지. 그러니까 너는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라. 마침 방금 네 바이올린을 돌려받았구나?”


그제야 바네사가 기울였던 고개를 다시 올리고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로잔나 님은 상냥한 분이시군요.”


그놈의 상냥한 분 소리 좀 집어치워! 신경질 어린 어투로 말했으나 바네사는 새어 나온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긴 했으나 앞으로도 비슷할 것이 뻔했다. 로잔나는 새삼 생각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어느 격언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라고. 물론 로잔나는 웃는 얼굴에도 말 그대로 침을 뱉은 적이 여럿 있었다. 하지만 저렇게 사근사근하게 오로지 호의만을 가지고 웃는 어린 애한테 침 뱉기는 좀. 팔짱을 끼고 거만하게 고개를 치켜든 로잔나가 말했다.


“바다도 마음에 드는 소리와 거슬리는 소리를 구분할 줄 알지. 네 음악 솜씨가 변변찮으면 우리 모두 여기서 파도에 먹힌다고 생각해.”

“명심할게요!”


이윽고 바네사가 바이올린을 들어 올리고, 활을 잡았다. 가장 바닷소리와 닮은 선율. 파도치는 소리와 비슷하고 물방울이 흩어지는 소리와 비슷하며 물고기가 헤엄치는 소리와 비슷한 노래가 배를 울렸다. 바다를 울렸다. 넘실거리는 가락에 누군가는 자연스럽게 음을 따라 흥얼거렸다. 안쪽에 있던 선원들도 한두 명 씩 나와서 연주를 들었다. 로잔나는 어서 들어가서 일 하라고 소리치는 대신 표정과 기세만으로 명령을 내렸다. 그에 선원들이 들어가긴 했으나… 배에 탑승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들었다. 끊어질 듯이, 끊어지지 않을 듯이 애절하게 현이 울리는 소리를.


그 날의 항해에서, 바다는 종일 잠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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