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한편, 바깥의 난리와는 멀리 떨어진 깊은 궁 안에 선 프란시스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왕자인 척을 하며 오늘 일어났던 사태의 보고를 받았다. 이렇게 선제공격은 시작되었고, 아마 지금쯤 이 소식을 클로드나 다른 귀족들도 듣고 있을 것이니 이제는 빨리 움직여야 했다.

“어휴, 말도 안 되는 모임이군요. 마음을 깊이 이해하지만 최고의 무대에 선 전사들께 큰 실례라니…나중에 그 전사들을 꼭 궁으로 초대해 주십시오. 직접 사과할 테니까.”

그 모든 것은 프란시스가 계획한 것이어서 보고를 받을 것도 없었다. 그는 적당히 중간에서 신하의 말허리를 잘라먹은 뒤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겼다며 훌쩍 사라졌다. 그리고 망토를 가져와 몸을 대충 가리고는 계획대로 병사 몇을 불러들여 그들도 망토로 신분을 숨기게 했다.

“지금부터 해야 할 일, 다시 설명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그런 일 없습니다!”

“좋군요. 잘 부탁합니다.”

말에 올라탄 뒤 성을 빠져나간 왕자 일행은 한참이나 말을 달리다가 수도에서 가장 오가는 사람이 많은 장미대로의 한가운데까지 도착했다. 그러자 불과 하루 만에 왕자님을 향한 충성의 전사로 각성한 사랑의 모임 회원 몇 명이 튀어나와, 아주 우연히 그들의 말 앞을 막아서다 일부러 몸을 부딪치고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아악! 아파!”

쓰러진 회원들이 아프지도 않은 각자의 배나 다리를 움켜쥐고 신음을 흘리자 말에 탄 병사들이 바짝 긴장하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프란시스는 친절하게 그들을 안심시킨 뒤 넘어진 사람들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미안합니다. 많이 다치셨는지요?”

“켁, 죽을 뻔했소이다!”

회원 중 하나가 그의 손을 붙잡자 프란시스가 그에게 바싹 얼굴을 들이밀고는 그를 일으켜 세웠다. 허리를 두들기며 일어난 그 회원은 잠시 허리를 이쪽저쪽으로 꺾으며 심각한 얼굴을 하더니, 자신을 말로 친 망토의 남자를 쳐다보다 깜짝 놀라며 물러섰다.

“아니 자네, 그, 그, 아가씨 열성 팬인!”

“아, 당신이 나올 줄은….”

역시 이 사내와는 이상하게 연이 깊다. 지난날 함께 경기를 보았고, 수도의 밤거리에서 마주치기도 했던 두 사람이 이제 세 번째로 만나는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이상한 총각이었고 다음에는 호위기사였던 익명의 남자 프란시스는 이 기묘한 인연에 한참이나 웃더니 시원하게 망토의 후드를 벗고 외쳤다.

“안녕하신지요? 몰래 경기 보러 간 이상한 스토커에, 그 아가씨 열성 팬인 호위기사를 겸직하는 프란시스 왕자 본인입니다.”

“허…허억…!”

사내는 오늘 사람들의 주의를 끌기 위해 말에 치이는 척을 한다는 이야기만 듣고 여기까지 왔지, 설마 자기를 치러 온 사람이 진짜 왕자에다 이 사람이 전에 몇 번 본 그 총각일 거라는 예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전개에 깜짝 놀란 그의 얼굴에 연기가 아닌 진심으로서의 경악이 드러나자, 주위의 다른 회원들도 혼비백산하며 자리에 주저앉거나 두려워하며 몸을 빼려 했다. 다급한 사람들의 행동에 이상함을 느낀 수도의 행인들은 가던 걸음을 멈추었다.

“뭐야? 사고 났어?”

“교통사고인가 봐. 빨리 경비 불러.”

사람 몇이 수도 경비를 부르러 사라지자 남은 사람들은 목격자 진술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일단 그 사고현장을 눈에 잘 담아두려 했다. 그런데 사람으로 말을 친 쪽의 얼굴이 어디서 굉장히 낯이 익은 것이, 일 년에 한 번 정도 퍼레이드를 할 때 얼굴을 비췄던 왕자님과 아주 닮아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왕자님과 꼭 닮은 자가 마침 자기 이름이 프란시스라고 소개까지 하고 있었으니 그 현장을 지켜보던 수도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

“왕자님, 신분을 노출하시는 것은 위험합니다! 일단 다른 곳으로 피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병사가 말하는 것도 이미 예정된 일이었다. 까맣게 모여든 사람들의 귀에 왕자님이라는 세 글자가 박히자 구경꾼들의 입이 벌어지고 눈동자가 좌우로 열심히 흔들렸다. 설마? 진짜? 하는 빠른 눈짓이 사람들 사이에서 파직 튀었고, 지나가던 행인들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사고현장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저하. 얼른, 일단 이 자리부터…”

“아뇨. 내가 사고를 쳤으니 어쩔 수 없죠.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좀 바쁜데 사고를 내서…사과하지요. 다치지는 않으셨는지요? 보상은 당연히 해 드리겠습니다. 이봐요, 이분의 성함과 주소를 받도록. 나중에 연락드릴 수 있게.”

“아? 예! 예!”

명령받은 병사가 말에서 훌쩍 내려 사내에게 다가가 감히 그 귀하신 존함과 댁의 주소까지 여쭈었다. 그러자 주위의 사람들이 잔뜩 흥분해서는 자신들의 손을 어디에다 두어야 할지도 모른 채 산만하게 부들부들 떨었다. 아무리 수도 주민이었어도 이렇게까지 왕자를 가까이에서 볼 일은 없는 게 정상인데, 그들은 오늘 지나가다 차기 국왕을 구경하는 행운아가 되었다. 얼른 이 이야기를 자기 가족들에게 퍼뜨려야 오늘 잠이 올 것 같을 정도로 놀랍고 신기했다. 왕자님이라니 다가가서 말도 걸어 보고 싶고, 가능하다면 사인도 받고 싶지만 그래도 왕자님인데 사인은 무리일 거라 생각하며 사람들은 그 마음을 열심히 참았다. 그래서 선뜻 다가가는 사람은 없었지만, 대신 모든 시선을 프란시스에게 찰떡같이 붙이고 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하나 탐색하듯 지켜보았다.

“우연히 이런 사고가 날 줄은 몰랐는데…. 크게는 안 다치신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그럼 전 갈 길 가 봐도 되겠습니까?”

자기 손으로 정체를 밝힌 주제에 프란시스는 뒤늦게 주위를 둘러보는 체했다. 그리고 후드를 다시 덮어쓴 뒤 그 사내에게만 들리도록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지금 예니치카를 보러 가는 길이라서요. 대충 아실 거라고 생각하는데, 제가 좀 바쁩니다. 사실 매일 만나러 다니고 있거든요.”

“헉!! 예니치카 님!! 왕비님을 만나러!!”

“크게 소리까지 쳐 주시니 완벽하군요. 맨날 친구도 없냐고 타박만 먹었는데, 당신이라면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신 좋은 사람이네요.”

프란시스는 작게 웃은 뒤 그와 악수까지 했다. 그리고 말에 올라타 자연스럽게 그 현장을 빠져나갔다. 프란시스 일행이 사라진 것을 본 수도의 행인들은 한꺼번에 그 사내에게 몰려들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추궁하기 바빴고, 얼이 나간 사내가 자기가 들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고하자 그야말로 장미광장 전체가 뒤집히며 큰 소란이 일었다.

“세상에, 예니치카 님이 왕궁 나가셨다길래 다 망한 줄 알았는데! 아직 사귀고 계셨구나!”

“사귀는 게 아니라 결혼 전제잖아! 이게 무슨 애들 흙장난인 줄 아나!”

“엄마야, 나 지금 뭐 본 거야?! 엄마, 진짜 대박! 지금 왕자님이 전하 눈 피해서 챔피언 님이랑 비밀연애하는 거 맞죠! 맞죠! 와하하하!”

왕자의 작은 비밀을 엿본 행인들은 흥분의 도가니에 휩싸여서 얼른 자기들이 보고 들은 것을 가족과 친구들에게 열심히 퍼뜨리고 싶어졌다. 안 그래도 두 사람의 이야기로 요즘의 수도는 바짝 달아올라 있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만큼 재미있는 안주가 없어서 술집도 연일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봐봐, 봐봐! 집중! 내가 아까 엄청난 걸 봤다고!”

커다란 술잔을 든 남자가 크게 소리치자 모든 사람이 호응하며 그의 말을 들었다. 그의 말에 따르자면 이 나라에는 지금 왕자가 딱 하나인데, 왕국 최고의 전사인 연인이 목숨까지 걸어가며 호위기사를 해 주려 했으나 안타까운 사고로 그들의 사랑이 좌초위기에 빠졌다고 한다. 실제로도 상황은 심각했고, 왕비 목록이 나올 정도로 진지하게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그에 굴하지 않은 왕자님은 대놓고 반기를 들었고, 이에 화답한 수도의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모임을 조직하다 뜻이 맞아서 활동을 함께하고 무도대회 물량을 무기로 협박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다 다친 챔피언이 부모님의 장례 때문에 밖으로 나왔다기에 혹시 장례를 핑계로 몸을 빼고 파혼하는 것 아닌가 했지만, 방금 열렬한 사랑의 전사인 왕자 본인이 그녀와 몰래 만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니 이보다 더 흥미로운 구경거리가 없었다.

실제로 프란시스는 약속했던 것처럼 장례 절차나 기타 복잡한 문제를 함께 논의하고, 예니치카의 주위 사람들이 그녀를 잘 돌봐줄 수 있도록 당부하려는 목적으로 매일같이 그녀의 집을 출퇴근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상상은 왕자의 방문이 그런 건전한 것일 리가 없다는 방향으로 열심히 뻗어 나가기만 했다. 그들은 멋대로 클로드를 악역으로 설정하고, 이번 일을 나쁜 삼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사랑을 꿋꿋이 밀고 나가려는 젊은 연인의 가슴 찢어지는 로맨스로 만들었다. 그래서 그들은 시원한 술 한 잔과 함께 끝도 없이 나오는 안주를 열심히 뱃속에 쓸어 담고, 목이 터지도록 온종일 왕자님의 이야기를 해댔다. 왕국의 그 어떤 인기 배우보다도 유명해진 프란시스와 예니치카는 이제 사람들의 입과 입 사이에서 왕국 최고의 연인으로 거듭났다. 모두가 즐거워했고, 이 재미난 소동에 너도나도 참여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게 되었다. 살면서 왕자씩이나 되는 인간을 도와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고, 그들의 사랑 이야기도 너무나도 애틋해서 관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 사이를 도는 날조는 반만 맞고 반은 틀렸지만 모든 얘기가 다 재밌으니 전부 다 맞게 들렸다. 자신들이 하는 행위는 소중한 왕자님의 사랑을 지키는 정의로운 행동이라는 점이 그들의 행동에 면죄부를 부여했고 모두가 그 기세에 올라탔다. 그야말로 수도 전체가 벌떡 일어나 흥청망청 춤추는 밤이었다.


다음에 계속


※ 본 게시물은 모바일게임인 판타지 비주얼노벨 조사 어드벤처 <바이너리 프린세스1> 의 원작자가 제공하는 외전격 단편소설입니다. 게임은 구글플레이에서 다운로드하실 수 있습니다.


왕국 여행자

메이슨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