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즈 보이

Episode 4. Elope





2047년 12월 24일


지수를 만나지 못한 지도 거의 석 달이 다 되어간다. 마지막으로 짧은 이야기나마 나눈 것이 9월 말이었으니까. 그 뒤로는 두어 번 스치듯 서로를 지나친 것이 다였다. 인사조차 허락되지 않을 정도로 짧았으니 만남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나는 번번이 화가 났지만 참아야 했다. 자칫 멋대로 굴었다가 상황이 더 나빠지리라는 건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SFA의 교관들은 우리를 적극적으로 감시하기 시작했다. 설마 장박사가 말을 흘렸나? 나와 지수의 파장이 어쩌고저쩌고 해댔으니까 말이다. 제일 먼저 의심한 건 그였지만 범인은 따로 있었다.


“당분간 지수 못 볼 거야. 그렇게 알아. 연말까지 B반이랑 체육수업 같이 받고.”


마치 교관처럼 말해와 기가 막혔다. 가만히 듣고 있으려니까 식단과 목표 근량 등등을 읊기 시작한다.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이야기지. 내가 노려보기 시작하는데도 요지부동으로 패드를 들여다 볼 뿐이다.


“야, 최승철.”

“뭐.”


곧바로 시선을 치켜 올려 똑바로 마주한다.


“이게 다 무슨 소리야. 천천히 설명을 해줘야 알아먹지.”


나는 최대한 유들유들하게 말했다. 개소리, 헛소리, 이딴 말은 고이고이 접어놓고서. 미안하지만 사람 다루는 건 내가 한 수 위거든. 지내고 보니 군대란 게 결국 질서조직이라 생도들도 명령과 복종에만 익숙하지 어떻게 해야 타인에게서 저희들이원하는 걸 얻어낼 수 있는지는 잘 몰랐다. 최승철은 패드 위를 펜슬로 툭툭 치며 말했다.


“다 보여줬잖아.”

“그러니까 뭘.”

“S반의 비밀. 동북아 최종병기. 사천왕.”


드디어 감이 온다. 거대로봇 이야기인 것 같은데.


“지수가 널 메인으로 선택했고.”


그러다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어깨를 으쓱한 뒤 패드를 내 앞으로 돌려주었다.


“내년에 완공 예정인 전투로봇은 네 대야. 그걸 사천왕이라고 부르지. 너도 그 중에 하나를 타게 될 거고. 하지만 구색을 맞춰야 하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어? 내년에는 네가 최소 A반에는 들어와야 된다는 말이야.”


진짜 미치겠네.


“육상 신기록 깼다는 말은 들었다. 월반하기에 좋은 핑계잖아?”


말이 좋아서 월반이지 나한테는 징역살이나 다름없었다. 애당초 원하는 일도 아니었고 심지어는 정식으로 반을 옮긴 것도 아니었다. 나머지 과목들은 죄다 F반에서 듣는데, 체육만 B반. 처음으로 수업에 들어갔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선연하다. 체육관 안으로 들어가자 B반 아이들이 보내던 그 눈빛들. 단호한 적개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게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다못해 C반에 합류했다면 내가 받았던 등급이나 기록 같은 게 있으니 애들도 그럭저럭 납득했을 테지만, B반은 어떻게든 상위 반으로 진급하고 싶어 하는 애들로 가득하단 말이다. 김민규 같이 새벽부터 밤까지 피터지게 노력하는 애들이 열여덟 명. 이런 상황에서 경쟁자가 느는 걸 누가 환영할까? 심지어 김민규마저 날 피하는 참이다. 그 사람 좋아하고 재잘재잘 이야기하길 좋아하는 녀석이 말 한 마디 붙이기는커녕 시선도 제대로 마주치지 않는다. 나는 그 이유를 알았다. 김민규는 중간고사 때 원하는 만큼 점수를 올리지 못했다.


이래저래 나는 닥치고 눈치껏 수업만 조용히 따라가고 싶었다, 정말로.


“으아아아악!”


단체로 돌아버린 거 아니야? 이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 않기 위해서 죽을힘을 다 해야 했다. B반의 체육 수업은 고문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3개월 간 매일매일 적어도 3시간은 기록, 기록, 기록과의 사투였다. 예를 들어보자. 나는 월반 테스트 때 서전트 점프와 Z런에서 좋은 성적을 냈다. 다시 말해 이 부분을 특화시키기 위해 죽어라 혹사당했단 뜻이다. 특히 서전트 점프의 경우 처음 측정했을 때 나왔던 기록 정도면 거의 인종적인 한계를 뛰어넘은 거라고 했는데(국제적인 나의 근세포들…). 교관들은 내가 물 위를 걷거나 아예 날아다니길 원하는 것이 분명했다. 토할 때까지 플라이오 메트릭과 바벨 클린 앤 저크에 시달렸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B반 애들 거의 다 그랬다. 차마 교관 앞에서 욕을 할 수는 없으니까 다들 비명이나 지를 뿐이다.


모르겠다, 그냥 죽어버리면 편하지 않을까?


“형, 조심해!”


내 앞에 걸려있던 게 떨어졌다. 유리가 와장창 깨지는 소리. 정신이 확 들어서 아래를 바라보자 내 키의 반만 한 커다란 액자가 부서져 있다. 생도들 전원이 함께 찍은 단체사진이었다. 지난봄에 찍은 것이라 나는 그 안에 없었다.


“안 다쳤어?”


김민규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고, 나는 뭐라 대답을 찾지 못해서 그만 이렇게 말해버렸다.


“김민규 이제 나한테 말하네.”

“와! 그거 따질 때야?”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김민규의 얼굴에 약간 민망해졌다.


“아니, 그냥 그렇다고. 내가 좀 기다렸나봐.”


먼저 말 걸어주길.


그러자 이번에는 김민규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깨진 액자 근처에 서서 김민규는 한참 말을 골랐다. 내가 또 기다리자 안절부절 못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니야.”

“뭐가.”

“다른 애들처럼 형을, 아무튼 그런 건 아니었어. 나는….”


약간 울 것 같은 얼굴이다. 나는 사다리에서 내려오면서 김민규의 머리를 토닥거려주었다.


“말 안 해도 돼.”


반드시 표현해야만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떤 마음들은 그냥 느껴지는 거야, 서로에게 전해지는 걸로 충분해. 엄마는 내게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래서 먼저 유리 파편들부터 치웠다. 누구라도 다치면 안 되니까.


우리는 크리스마스 파티를 앞두고 홀을 꾸미는 중이었다. 사진부라곤 김민규와 나 둘뿐이라 보관실에 둔 액자들을 가져와 걸고 있던 것이다. 말이 좋아서 사진부이지 제대로 된 기기가 없는데다 가르쳐줄 사람도 없어서 직접 촬영을 해본 적은 아직 한 번도 없다. 둘 다 훈련을 받느라 바쁘기도 했고. 동아리 활동은 일주일에 한 번으로 정해져 있었지만 그 시간에 김민규는 추가수업을 받고 나는 모자란 잠을 채우느라 사진부실 여기저기 내려앉은 하얀 더께는 점점 두꺼워질 뿐이었다. 파티 진행을 맡은 교관이 명령해 기념사진이 담긴 액자들을 가지러 갔을 때 나와 김민규는 한참 기침을 해야 했다. 쾌쾌한 먼지 냄새 속에서 액자들을 거둬 와서 벽에 거는 게 우리가 맡은 일이었다.


“그냥 유리를 다 빼자.”


다 똑같은 상태라면 티가 덜 나지 않을까 싶었다. 우리는 목장갑을 나눠 끼고 액자에 끼워져 있던 유리를 죄다 분리해 창고에 가져다 놨다. 배치까지 마쳤을 무렵 교관이 홀에 들어와 점검했다. 액자 상태가 달라진 것도 알아채지 못하는 걸 보니 정신이 없긴 한 모양이다. 평범한 파티가 아니라고 듣긴 했다. 외부에서 사람들이 꽤 온다고, 그 중에는 소위 높으신 분들도 있다고 해서 이렇게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 교관은 다른 곳보다 빨리 끝낸 우리를 대충 칭찬한 뒤 꽃다발과 리스를 가지고 오라고 했다. 결국 일을 더 시키는 거잖아. 교관 앞에서 얼굴을 구길 순 없고 속으로 욕이나 좀 하며 홀을 나설 때, 김민규가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속삭였다.


“지수 형은 원예부야.”

“뭐?”

“온실에 있을 거라고.”


제가 공작부 애들이 만들어놓은 리스를 가지고 올 테니, 나는 온실로 가 꽃다발을 가지고 오라는 것이다. 그 핑계로 지수를 보고 오라고.


“고마워.”


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애써 태연한 얼굴로, 혹시 이렇게 걷는 사이 지수가 온실에서 떠날까봐 초조해하면서.


온실은 뜻밖에 투명하지 않아서 더 마음이 놓였다. 하긴 태양열을 이용해 돌아가는 곳이 아닌데 유리로 만들어놓을 필요는 없겠지.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누르며 문고리를 잡았다.


지수가 그 안에 혼자 있었다.


처음에는 아무도 없는 줄 알았다. 시야에 온통 식물들뿐이었기 때문이다. 학교 안에 이런 공간이 있는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별관 뒤편에 인공 숲이 펼쳐져 있긴 하지만 종의 다양성으로 따지자면 그곳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누가 설계했는지는 몰라도 구획이 정확하게 나뉘어져 있었고 입구 가까이에 백합과 꽃들만 네 종이 넘게 심긴 채였다. 실험장 같기도 하고, 보호소 같기도 했다. 마치 우리들처럼 땅 아래서 생을 이어가는 개체들. 환하게 밝혀 놓은 전구들이 머리 위에서 빛났고, 스프링쿨러는 빙글빙글 돌아가며 물안개를 만들어냈다. 어지러울 정도로 복잡한 향기가 폐부를 찌르고 들어왔다. 그러다 키가 제법 큰 나무들 뒤편에 쪼그려 앉은 지수를 발견했다. 물뿌리개로 이제 막 싹이 튼 묘목들에 물을 주고 있었는데, 무슨 생각에 빠져 있었던지 내가 다가가고 나서야 인기척을 느낀 듯했다.


“아…. 원우야, 뭐 놓고 갔어?”


돌아보지 않은 채 물었다. 낯선 이름이 귀에 걸렸지만, 그보다 황급히 눈가를 닦아내는 모습을 보고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울고 있었던 것 같았다.


서둘러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지수의 팔을 잡았다. 깜짝 놀라며 돌아보다 나와 눈이 마주친 지수의 두 눈에서 허둥지둥 안으로 밀어두었을 눈물이 넘쳐 주르르 흘렀다. 놀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나라서 그랬는지.


“정한아….”


누군가가 그렇게 소리도 없이 우는 걸 처음 봤다. 그래서 그냥 안아줬다. 많이 힘들었나보다. 나만 괴로운 줄 알았는데 홍지수도 힘들었어. 어쩌면 나보다 더.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우느라 작게 들썩거리는 지수의 어깨가 안타까워 등을 몇 번이고 쓸어줬다. 지수는 떨리는 손끝으로 내 팔을 짚다가 푹 잠긴 목소리로 작게 물었다.


“여긴 어떻게 왔어?”

“심부름.”


아아, 탄식하고는 침묵이었다. 속을 털어놓긴 싫은 모양이었다.


“꽃다발인가 뭔가 가지고 오랬는데 그건 없고 울보만 있네.”


그러자 지수가 내게서 금방 떨어졌다. 창피했는지 두 볼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더 멀어지기 전에 지수의 손을 잡았다.


“울어도 예뻐. 괜찮아.”

“뭐야 그게.”


약간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이젠 귀까지 발그스름하다. 도망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손을 더 꽉 잡았다. 식물을 한참 만져서 그런지 조금 서늘하고 물기가 있었다.


“꽃다발…, 원우가 들고 갔어.”

“그게 누군데?”

“너도 곧 만나게 될 거야.”

“흠.”


사실 별로 관심은 없는데 아마도 그놈의 프로젝트와 관련이 있는 애가 아닐까 싶었다. 보통은 같은 동아리원이라든가, 그런 식으로 설명할 테니까. 어쨌든 내겐 석 달 만에 만난 지수가 더 중요했다.


“지수야, 너 계속 빨갛다.”


그러자 그만하라고 때렸다. 아주 살짝. 뭐 이렇게 부끄러워하지, 이러니까 더 재밌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눴다. 나로선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무 아래서 지수에게 내 이야기를 이것저것 늘어놓았다. 지수가 왜인진 몰라도 자기 이야기를 잘 안하니까. 나라도 먼저 하면 말하기 쉽지 않을까 싶었다.


“인터벌 트레이닝인가 뭔가 하는데 미칠 것 같다니까. 숨 못 쉬어서 콱 죽을지도 몰라.”


내 말이 웃겼는지 언제 울었냐는 듯이 두 눈을 접으며 웃던 지수가 말했다.


“너는 안 죽어, 걱정 마.”

“또 그 소리네. 내가 무슨 불사신이냐.”

“그건 아니지만….”


지수는 무슨 말이든 나른하게 하는 재주가 있다. 꿈속에서 듣는 것처럼.


“어쨌든 난 알아. 네가 어떤 상태인지, 멀리 있어도.”


천사도 신도 아닌데.


그리고 나는 왜 이 말에 묶이는 것 같은 느낌일까.


“지수야.”


네가 가진 힘 때문인 거냐고, 나 아닌 다른 애들에게도 똑같이 그런 거냐고 묻고 싶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순간 온실 안으로 방송이 울려 퍼졌다.


[교내에 계신 생도 여러분께서는 즉시 문화관 홀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호기심은 또 다시 뒤로 미뤄졌다. 늦으면 의심 받을 것이다. 언제 또 볼 수 있을지 모르니 다음 약속부터 잡아야 했다.


어디서 만나자고 할까?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온실에서 다시 만나면 되지 않을까.


그러면 언제? 기조연설만 끝나면 파티가 시작될 테니 그때 눈을 피해 빠져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지수는 파티에 참석하지 않도록 지시 받았다고 한다.


“여기서 바로 나가야 돼?”

“더 있어도 돼.”


진작 홍지수 동아리가 뭔지나 알아볼 걸. 왜 생각을 못했을까. 당연히 다른 일들처럼 허락이 안 됐을 줄 알았다. 동아리 활동이란 것도 하기에 따라 친구를 사귀고 누군가와 가까워질 수 있는 거니까.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초조해졌다. 나는 지수의 눈을 보면서 말했다.


“그럼 나 기다려줘.”


얼른 갔다 오겠다고 했더니 지수가 조금 웃으며 말했다.


“천천히 와. 안 없어질게.”


나를 담은 눈동자가 안쪽으로 살짝 휘었다. 순간적으로 나도 따라서 들어가는 것 같았다. 또는…, 들어가고 싶었다.


말도 안 된다, 이런 느낌.


좀 이상하단 생각이 들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수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녀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온실에서 재깍 나와 뛰었다. 한시라도 빠르게 다시 돌아오려고.


홀에서는 인원점검을 막 시작하고 있었다. 다른 때에는 수업이건 행사건 반별로 서서 칼 같이 각을 맞추어야 하는데 파티를 앞두었다고 약간 느슨한 분위기다. 크리스마스이브 파티가 끝나면 연말까지 일주일 정도 공식적으로 쉬게 될 예정이라 더 그런 것도 같았다. 나는 대충 아무데나 끼어서 점검 받았다. 그러다 문제가 생겼음을 알았다.


점검을 하던 교관이 같은 이름을 두 번 불렀다.


이어 세 번째.


하지만 답이 없었다. 분위기가 가라앉으며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교관은 즉각 반별로 나뉘어 5열종대로 줄을 서도록 지시했다. 생도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각반 반장들이 인원을 파악하자 홀 안이 순식간에 정리가 됐다. C반 반장은 따지자면 그 애 잘못이 아니었음에도 책임을 느끼는 것인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자신의 반 아이가 없다고 어렵게 말했다.


이윽고 그 옆에 나란히 서 있던 최승철이 한 손을 들었다.


“교관님.”


최승철의 목소리도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저희 반 권순영도 없습니다.”


그때 공중에 달린 스피커를 통해 긴급방송이 흘러 나왔다.


[본관 야외공간 B-05구역에서 비정상적인 열이 감지됩니다. 분석 결과 허용되지 않은 전투가 시작되었을 확률 75%….]


처음에는 가만히 있으려고 했다. 지수에게 늦어질 것 같다고 전할 수도 없는데 엇갈리면 다시 보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생각이 달라졌다.


교관이 무전으로 이렇듯 말한 것이다.


“문화관 홀에서 수색대 편성해서 본관으로 바로 투입합니다. 만일을 대비해 조슈아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지수가 불려온다면 온실로 가도 만나지 못할 것이다.


“네? 네…. 하지만 빨리 정리를 하려면 A반 생도들이 가야 할 텐데요. 왜 굳이….”


교관은 당황한 채로 누군가에게 지시를 받았다. 그가 어떤 말을 듣고 있는지 알 수 없어 아이들 사이로 불안감이 퍼졌다.


“알겠습니다. 1분 내로 출발합니다.”


무전을 끊은 교관이 설명했다.


“수색조는 4명이다. A반에서 한 명, B반에서 한 명, 나머지 반에서 두 명이다. 자원을 먼저 받고, 없다면 무작위로 지목한다.”

“A반에서는 제가 가겠습니다.”


당연하게도 최승철이 손을 들었고, 곧 익숙한 목소리가 따라붙었다.


“B반 김민규 자원합니다.”


이런 일이 처음인지 서로 눈치만 보느라 뒤가 이어지지 않았다. 교관이 아무나 찍어 보낼 것만 같아서 그 전에 손을 번쩍 들었다.


“교관님, 저도 가겠습니다.”

“이름이 뭐지?”


면식이 별로 없는 교관이었다. C반 담당이었던가, 나를 잘 모르면 더 좋다. 나는 최대한 뻔뻔하게 말했다.


“윤정한입니다.”


그러자 뒤편에서 누군가 고자질해왔다.


“교관님, 윤정한 생도 역시 B반입니다!”


욱해서 돌아볼 뻔하다가 참았다. 시비 가릴 시간에 교관의 마음을 돌려야 했기 때문이었는데 뜻밖의 도움이 있었다.


“윤정한 생도가 B반에 합류하는 건 체육수업뿐입니다. 학적 상으로 F반이 맞습니다.”


최승철이었다.


이 자식, 고맙다. 나는 약간 감동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최승철은 할 말을 했을 뿐이라는 듯 부동자세로 교관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교관은 당장 조 편성을 했다.


“A반 최승철, B반 김민규, F반 윤정한. 그리고 C반 전원우가 한 조다. 즉시 본관으로 가라.”


전원우? 지수가 말했던 그 애다.


C반 열에서 나오는 애를 흘깃 돌아보았다. 전원우는 표정 없는 얼굴로 가볍게 뛰어와 내 옆을 지나갔다. 예민하게 잘생긴 얼굴이었다. 나처럼 눈이 안 좋은지 안경을 낀 채였다. C반인데도 잘 아는 사이인 듯 김민규와 눈인사를 하더니, 가까이에 있던 최승철이 등을 두드려주기까지 했다. 왠지 소외되는 느낌인데.


하지만 무슨 상관인가. 나는 이 무리에 끼고 싶었던 게 아니라 지수를 만나려는 것뿐이다.


교관에게 이어셋을 하나 받은 최승철이 왼쪽 귀에 그것을 꽂았다. 이어 실시간 지시를 받으며 우리에게 손짓으로 방향을 가리켰다. 문화관에서 나오자 타임 테이블에 맞추어 사위가 어둑해져 있었다.


우리는 본관 쪽으로 줄지어 뛰었다. 동행들이 전부 빨라서 나도 뒤처지지 않으려면 힘껏 달려야 했다. 현장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본관 건물과 주변 기물의 손상 정도가 심각했다. 물론 다친 사람에 댈 건 아니었다.


“미친….”


쉬이익─, 쉬이익─, 쉬이익.


쉬이이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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