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도 시간되시면 들어보세요!>

    

가위바위

- 사랑을 되찾기 위한 한 판



#JM



"우리 열차는 이제 곧 종착역인 부산역에 도착하겠습니다. 차내에 두고 내리시는 물건은 없는지 다시 한 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저희 KTX를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광명역까지 과자를 먹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피곤했는지 한 번도 깨지 않고 부산역까지 쭉 졸다가 내려갔다. 종착역이어서 그런지 사람들도 부산스럽게 부산역에 내릴 준비를 하고, 나도 기지개를 살짝 켜보았다. 꽤 오랜 시간 자세를 고정해서 그런지 뿌드득 뼈소리도 크게 나서 괜히 창피했지만, 밤 10시 35분 이제는 집으로 바쁘게 출발해야 될 거 같아서 사람들을 따라 기차에서 내렸다. 오랜만에 도착한 부산은 늘 그랬던 것처럼 똑같았다. 누군가는 부산역에 도착해서 마중나온 연인을 만나거나 소중한 친구들과 새로운 여행을 하겠지만, 오늘 나는 괜히 혼자라는 사실에 몹시 외로움을 느겼다. 

한 층 올라와서 부산역 주위를 괜히 둘러보았다. 부산항대교가 보이는 바다는 언제나 화려해보였지만, 그걸 지켜보는 내 마음은 뭔가 한 두 조각을 잃어버려서 완전한 그림을 맞추지 못한 퍼즐같았다. 


"내가 이래서... 부산 내려오기가 싫다니까. 내일 점심에 다시 서울로 올라갈래."


괜히 짜증이 나서 혼잣말만 늘어놓고 있었을 때, 주머니 속 휴대폰이 벨소리를 울리면서 자신의 존재를 뽐내고 있었다. 그래도 연락은 빨리 받아야지 싶어서 눌러보니, 전화의 주인공은 바로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신 우리 어머니 '김 여사'셨다.


"지민아, 부산역 도착했어? 아직 저녁 안 먹었지?"

"네, 오늘 집에 내려갈 거 같아서 학교에서 저녁 안 먹고 퇴근했어요."

"그래, 어디 쏘다니지 말고 집으로 얼른 와. 너가 좋아하는 떡볶이하고 이것저것 해놨으니 빨리 와서 밥 먹고,"

"네, 지하철타고 갈게요. 해운대 어디로 가면 되요?"


집에 아주 가끔 내려오다보니까 이사간 우리 집이 어디 있는지는 물론 기억하지 못한다. 원래 부산의 어느 작은 동네에서 살았는데, 동네 전체가 재개발이 되면서 집을 옮기게 되었다고 한다. 그간 삼형제를 혼자의 힘으로 키우셨던 어머니께서는 이제는 나이도 있으니 살던 곳보다 좋은 동네로 가고 싶으시다며 갑자기 해운대의 깨끗한 아파트로 이사하시고 일방적으로 통보를 하셨다. 집 이사했으니 이제 여기로 오면 된다고.

결혼한 두 형들과 다르게 나는 아직 어머니의 해운대 집에 같이 지내기로 했는데, 꽤 어릴 때부터 곁을 떠나 기숙사에서 지내던 막내아들이 늘 마음에 걸려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부산에 오면 꼭 쉬다 올라갔으면 좋겠다는 눈치셨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 생각해주는 사람은 우리 집 김 여사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엄마가 알려준 곳으로 출발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해주는 떡볶이가 너무 먹고 싶어서, 그리고 지금 내 지친 마음을 조금이라도 보듬어줄 사람은 엄마니까.

지하철보다 급행버스가 더 빠르다는 김 여사의 잔소리섞인 주의사항을 숙지하고 온 덕분에 해운대 센텀시티까지는 30분 만에 올 수 있었다. 그런데 집에 올 때마다 느끼는 건 조용한 동네를 좋아하던 우리 엄마가 왜 이런 삐까뻔적한 동네에 제 발로 오신 걸까. 참 취향 독특하다고 생각하는데, 버스에서 내려서 동네로 걸어가는데 집으로 가는 길이 가벼웠다. 그래도 내 집으로 가는 길이라교 생각하니 안심이 되는 걸까. 


"다녀왔습니다."

"지민아, 연락하지. 엄마가 부산역까지 태우러가도 되는데."

"에이, 우리 엄마 또 부산역 오다가 수정터널 넘어가면 어떡해? 아니야, 젊은 내가 이렇게 오면 되는데 구경도 하고 재미있었어요."

"그래, 손 씻고 얼른 와. 밥 먹자."


마침 배에서도 요동치는 소리가 들려서 괜히 웃음이 나왔다. 

그래, 엄마가 해주신 맛있는 집밥먹고 푹 쉬자. 그럼 좀 괜찮겠지.





어릴 때부터 느꼈지만 엄마의 떡볶이 맛은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었다. 요리를 좋아하는 나도 엄마의 비법이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했지만, 분식집에서 파는 떡볶이하고 다르게 뭔가 깊은 맛이 있었다. 해산물의 비린 맛을 싫어했지만 엄마의 떡볶이에 들어있는 오징어, 새우는 맛있어서 계속 입에 들어갔다. 하나에 꽂히면 계속 그 음식만 먹는 걸 알기에, 엄마는 이것저것 반찬을 옮겨가면서 내가 밥을 먹는 걸 지켜보셨다.


"천천히 먹어. 남으면 내일 또 먹으면 되니까."

"오랜만에 먹으니까 맛있어서, 서울에는 떡볶이 별로 맛 없어요."

"그래도 우리 막내는 엄마가 해준 음식 잘 먹어서 좋아."


암, 어린 시절부터 우리 삼 형제를 홀로 키우신다고 분식집을 운영하셨던 어머니의 손맛. 아무도 따라갈 수 없지. 이제는 생활에 여유도 생기시고 몸도 힘들어서 분식집은 정리하시고, 근처에서 반찬 가게를 운영하시기 시작했는데 꽤 단골손님이 많이 생겼는지 꽤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셨다. 그래도 그 투정에도 행복해보이는 엄마의 표정에 괜히 지켜보는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엄마, 나 궁금한 게 있어."

"응, 지민아."

"엄마는 혹시....  안 외로워? 아빠도 돌아가신지 10년 넘었는데 이제 새로운 사람 만나고 싶지 않아?"

"얘가 지금 뭐래, 민망하게."

"아니, 나는 엄마가 조금 더 행복했으면 좋겠거든. 아들 셋 키우면서 힘든 것도 많고 우리 때문에 속상하기도 했잖아. 나는 이제 우리 김 여사님께서 좋은 분 만나셔서 행복하게 지내는 거 보고 싶어서."

"아, 맞다! 내 정신 좀 봐. 엄마가 궁금한 게 있어 지민아."


민망하다듯이 얼굴이 빨개진 엄마는 부채질을 하다가 갑자기 식탁 서랍 속에서 사진 하나를 꺼내보았다. 


"지민아, 이 사진 엄마가 이사하다가 창고에서 찾았는데. 이 친구가 정국이 맞지? 몇 년 전에 너 학교 앞에 자취할 때 너랑 룸메이트였던 그 사범대생."

"응....?"


무슨 사진이길래 나한테 묻나 싶었는데, 너무나도 익숙했던 사람이 그 사진 속에 있었다. 

지금은 내 옆에 없는 내 전 연인, 그리고 내 첫 사랑 전정국.


"엄마가 어떻게 얘를 기억해?"

"지민아, 이 엄마가 사람보는 눈도 정확하고 사람도 잘 기억하잖아."

"아....."

"너 요즘에도 정국이하고 연락 잘 되는 거야?"


우리 엄마는 나와 그 사람의 관계를 정확하게 모르지만, 기숙사에서 같이 있을 때부터 아는 동생이라고 인사시키고 같이 밥도 얻어먹은 적이 있으니까 기억은 남았을 거다. 그런데 그 때를 돌이켜보면, 엄마는 정국이를 참 좋아했다. 듬직하게 생겨서 농담으로 지민이 너가 딸이었다면 곧바로 사위 삼고 싶다고 말도 몇 번 했다가 내가 애한테 무슨 소리를 하냐면서 말린 적도 여러 번. 

그런데 몇 년 전 아무런 말도 없이 내 앞에서 사라진 전정국. 3년 만에 들은 그 이름에 입맛이 딱 사라졌다. 왜 갑자기 그 이름이 나오는 거지? 


"엄마, 너무 많이 먹었나봐. 배불러. 남은 건 내일 마저 먹을게요!"

"얘, 지민아. 벌써 다 먹은거야? 얼마 먹지도 않았는데."

"괜찮아요, 맛있어서 많이 먹었는데!"

"그래, 이거 사진 들고가고. 아참! 방에 정리 좀 해둬. 치울 게 좀 있더라."


사진을 억지로 떠맡듯이 받았는데, 그 사진 하나 때문에 기분도 망친 거 같아 억울했다. 왜 엄마는 갑자기 그 사진을 보여주는 건가 싶어서 괜히 엄마한테 짜증도 났다. 

예전에 정국이를 아무리 잊으려고 노력해도 잊기가 힘들어서 울었던 밤도 몇 밤이었는데, 혼자 보고싶어서 보름달에게 정국이 좀 보게 해달라고 기도한 게 몇 날 몇 일이었는데. 이제 임용고사 합격해서 교사가 되고 겨우 잊어가는 가 싶었는데 다시 떠오른 그 이름 하나때문에 마음이 울적해지다니....

 그런데 이런 내게 웃긴 건 또 한 편으로는 남아있던 그리움에 벅차 올라는 거다. 눈물이 뚝뚝.... 정신없이 흐르는 걸 알고는 침대에 누워 배게를 얼굴을 베고 차오르는 눈물을 닦았다. 3년이 지났는데도 생각나는 그 사람, 이제는 진심으로 잊을 수 있길 올해 초에도 기도했는데, 역시 그 소원은 평생 이루어지기 글렀나보다. 아니 신이 노해서 이루어지지 않도록 괴롭히는 거다.







그렇게 훌쩍이다가 침대에서 일어나 주섬주섬 정리를 하기 시작했는데, 정리를 하다보니 매년 쓰던 다이어리들에 눈길이 갔다. 계획을 정리하고 짤막하게 했던 일을 정리하는 게 좋아서 잘 쓰지도 않던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했는데, 잘 지켜질 거 같지 않았던 이 습관이 9년째 나와 함께하고 있다. 다시 읽어보니 오그라드는 부분도 많고 이 때는 내가 왜 이랬나 싶을 정도로 솔직하게 내 감정도 기록되었던 일기장같은 다이어리. 읽으면서 20대 초반에 나는 이랬구나 싶어서 웃음도 슬쩍 났다. 그런데 책장에서 가장 구석에 있는 다이어리 하나를 발견했다. 빨간 매직으로 크게 X라고 표시를 해놓은 걸보면 분명히 2018년일텐데 싶어서 살펴보니 역산, 2018년이었다. 딱히 내게 좋은 기억으로 남지 않았던 해였기 때문에, 보고 싶지 않았지만 괜히 뭔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포스트잇으로 표시해둔 날짜를 펼쳐 보았다. 



# 2018년 1월 31일


"정국아, 이제 우리 또 언제 봐?"

"형, 우리 꼭 다시 만나요. 몸 건강히 있고, 밥 잘 챙겨먹어요."


오늘은 정국이가 자취방의 짐을 빼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국어교육과 교직복수전공 면접이 있는 마침 집에 들러서 짐을 정리하겠다고 연락이 왔는데, 왜 이렇게 서운할까. 추운 날씨에도 정국이가 언제 올까 싶어서 자취방 베란다에 나와서 1층을 계속 빤히 쳐다봤다. 추운 날씨에 떨면서 올까봐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정국이는 따뜻하게 옷을 입고 면접을 다녀왔다고 한다.

국이에게 슬쩍 물어보니 국이 녀석, 면접은 생각보다 잘 본 것 같다고 말했다. 하긴 원래 말을 잘 하는 녀석이니 교수님들께도 그 진심이 잘 전해졌지 않을까. 꼭 잘 풀려서 나중에 교단에서 나는 사회, 너는 국어 교사로 함께 같은 교무실에서 일할 수 있길 바라는 거 너도 알고 있겠지? 

짐을 정리하고 내려가는 김에 정국이에게 여느 때처럼 품에 안겼다. 뭔가 이번 방학에도 일하느라 바빠서 이 따뜻한 품에 많이 안기지 못할 거 같아서 계단을 내려가는 김에 같이 따라가서 안아달라고 졸랐다. 곤란해하면서도 웃으면서 팔을 벌려주던 정국이는 잘 챙겨먹고 쓸 데 없는 생각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당연하지, 내가 우리 아찌 말 안 들으면 혼나는 것도 잘 알고 있는데. 내가 왜 그래겠어.

어머님 차에 짐가방을 싣고 떠나는 뒷 모습을 보면서 아쉽고 쌀쌀했다. 오늘따라 바람이 많이 차다. 정국이도 나도 방학 잘 지내고 또 만날 수 있길. #

 

그 날은 뼈가 시릴 정도로 칼바람이 불던 2018년 1월 31일이었다.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그와의 마지막 날이었는데, 빌어먹게도 오늘 그와의 사진에 이 일기까지 보게 되었다. 이 날 이후로 나는 내 이야기를 쓰는 일기는 다이어리에 절대 쓰지 않았다. 단순히 어떤 시험을 보고 공부를 하고 어떤 과외 수업이 있는지만 일정을 빼곡하게 채워가는 용도로 다이어리를 썼었던 것 같다. 뭔가 절대로 보지 말아야했던 걸 마음대로 본 것처럼,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는 기분에 괜히 또 울적해지는 건 뭐람. 아우 짜증나!



가위바위

- 사랑을 되찾기 위한 한 판




울적한 마음에 산책 다녀오겠다고 엄마에게 말을 해놓곤 잠시 집을 나왔다. 늦은 밤이니 조심해서 다녀오라는 엄마의 이야기에 대답을 하고 터벅터벅 슬리퍼를 끌면서 나왔는데, 해운대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즐비한 마린시티 바닷가에서 광안대교를 지켜보며 그저 그렇게 서있었다. 예전에 정국이를 기다리던 그 때 내 모습과 똑같이 나는 바보같게도 여전히 기다리는 데만 선수였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람인 걸. 싱숭생숭한 마음에 영혼없이 들고 다니던 아이폰의 버튼을 눌러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그 애라면 괜찮겠지라는 생각에 오늘도 나는 이 시간에도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절친이자 멘토 호석이에게 연락을 한다. 고등학교 때 방송부 연합 활동에서 만났던 녀석과는 꽤 잘 맞아서 대학 때도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재수 끝에 대학교에 왔을 때도 같은 학교를 다니면서 많은 추억을 쌓았던 덕분에 12년 지기의 든든한 친구로 지금까지 연락할 수 있었던 좋은 친구였다. 

호석이가 제발 전화를 받아줬으면 싶어서 제발을 얼마나 속으로 외쳤는지 모른다. 지금 이 복잡한 마음을 알아줄 사람은 호석이가 유일할 거 같아서, 뚜두둑 소리가 조금 지나자마자 다행히 호석이가 전화를 받았다.


"모쉬모쉬"

"아니, 선배 무슨 모시모시야 크크큭..."

"헤이, 쥐!민! 무슨 일이야 맨!"

"또 오버한다 오버해. 뭔 일이긴 그냥 수다를 빙자한 하소연이지. 너무 늦은 밤에 연락한거 아니야?"

"물론 늦었긴 한데, 지민이 너의 전화는 환영이지."


고맙다, 호석아. '환영한다'는 그 말이 왜 그렇게 감동인지 또 주책없이 눈에서 뚝뚝 눈물이 흐른다. 아 스물 아홉이 되었는데도 나는 아직도 눈물이 많아서 큰일이다. 눈물 닦아줄 사람도 없으니 뚝 그쳐야 할텐데


"지민아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우는 거야?"

"호석아, 나 있잖아."

"응, 뭐가 있는데 말해봐 괜찮으니까."

"오늘 엄마하고 이야기를 하는데 진짜 잊고 있었던 사람이 떠올랐어. 이 사람때문에 막 힘들고 원망했던 거 생각나는데, 한편으로는 그립고 보고싶고 막 그렇다? 오늘 부산 내려오면서 내가 힘들 때 옆에 있어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왜 내 옆에는 그런 사람이 없지 싶어서 우울한데, 나 진짜 못된 말도 많이 했는데 이런 생각하는 내가 정상인걸까... "


"뭐 그럴 수 있지. 사람이 사람 좋아하는 게 정상, 비정상을 따져야해? 지민아, 나도 마침 부산 내려왔는데 우리 내일 만날까? 만나서 이야기도 하고 맛있는 거도 먹자. 오랜만에 서울 말고 부산에서도 놀아보자. 지민!"


내가 여자가 아니라 남자를 좋아한다는 고백을 가장 제일 먼저 했던 것도 호석이였고, 그 남자가  윤리교육과 3년 후배인 정국이란 사실도 거의 유일하게 알았던 사람도 호석 뿐이었다. 그래서 말하지 않아도 '이 사람'은 정국이란 걸 호석도 언젠가부터 알아차렸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을 털어놓고 아무런 편견 없이 바라봐주는 친구덕분에 힘든 순간에도 조금씩 힘을 얻었고 지금까지 나아갈 수 있었기에, 늘 고마움을 마음 속에 담아두었다. 오랜만에 맛있는 밥이라도 내가 사줘야겠다는 마음에 호석에게 점심은 내가 사겠다는 말을 호기롭게 그리고 활기차게 하고는 전화를 마무리하였다. 나를 아껴주는 사람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니 울적했던 마음이 가셔서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조금 더 가벼웠다. 집에 가서 정리할 것도 있다는 사실에 아차 싶어서 발걸음을 조금 더 빨리 내딛기 시작했다. 


15층, 엘리베이터의 숫자 15를 누르고 문을 닫으려고 할 때, 갑자기 누군가 문을 열려고 했다. 그런데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고, 헥헥 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뭐지 싶어서 봤는데, 이 아파트는 중앙현관 문이 열리면 자동으로 엘리베이터가 문을 열고 올라가도록 대기하는 시스템이었다. 괜히 내 시간 잡아먹는 거 같아서 짜증나는 마음에 문을 다시 닫고 올라가려고 하는데, 이제는 사람의 형상이 보였다.

헥헥 거리면서 땀을 뻘뻘 흘리던 남자의 모습에 짜증은 났지만 같은 이웃 주민이니까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얼굴은 보고 인사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그래도 이웃주민인데, 내가 괜히 민감한가 싶어서얼굴을 돌려 인사를 하려했다.


"안녕하세요, 15층으로 이사왔습니다. 잘 부탁드릴게요! 혹시 몇 층으로 올라가시는 거에요? 힘들어보이시는데 제가 대신 눌러드릴게요."

"오랜만이네요?"


누구길래 초면에 오랜만이라고 하지 싶어서 주춤거렸는데, 트레이닝 바지에 후드를 입은 남자가 모자에서 얼굴을 빼더니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지민이형, 설마 저 기억 못 하는 거 아니시겠죠? 그럼 섭섭한데."


엎친 데 덮친 격, 설상가상이란 말이 바로 이런 상황을 뜻하는 걸까. 벗어나려고 애를 써서 괜찮아졌더니 추억이 강제로 소환되지 않나, 이제는 아예 같은 아파트의 이웃주민으로 만나지 않나. 

빌어먹게도 아니 뜬금없게도 여전히 웃음지고 있는 그 남자, 바로 전정국이었다. 이게 뭔일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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