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스럽게 달아났던 방위성 직원은 곧 머쓱한 얼굴로 돌아왔다. 이와이즈미는 그를 보자마자 강하게 불만을 표했다. 사람을 이렇게 납치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적어도 상황 설명은 해줬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구구절절 옳기만 한 항의가 거세게 쏟아졌다. 그러나 그 매섭던 기세는 직원이 연신 고개를 숙이기 시작하자 곧 사그라졌다.

물론 그라고 뭐 대단한 권한이 있는 게 아니긴 했다. 그저 일개 행정 직원에 불과할 따름이니 지시에 따라 이와이즈미를 격리시켰을 것이고 명령에 따라 함구했을 것이다. 그렇다곤 해도 옆에서 지켜보던 오이카와의 귀에는 웃기게만 들리는 얘기였다. 어차피 그런 것들은 이와이즈미가 참작해줄 필요도 없는 방위성만의 사정이었다. 방위성이라는 기관이 얼마나 보수적인지, 일개 실무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행동제약이 따르는지 하는 말들은 들을 가치도 없는, 구태의연한 변명에 불과했다.

국가상대로 소송을 걸어 마땅한 반민주적 인권탄압을 당해놓고도 인정에 쓸려 하, 참, 하고 씩씩대고 마는 것은 오이카와가 보기엔 지독한 사회풍자극의 한 장면일 뿐이었다. 그라면 일을 절대 그런 식으로 처리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와이즈미는 그렇게 할 모양이었다.

오이카와는 눈치가 빨랐다. 독심술 같은 능력은 없었으니 그저 타고난 것이었고, 이와이즈미란 사람을 파악하기에는 이 정도면 충분했다. 정의롭고, 생각보다 마음이 여리고, 쉽게 사람을 신뢰하며 또 사람들도 그를 쉬이 좋아하게 된다. 그런 사람들에겐 그래, 연신 땀을 훔쳐내는 저 방위성 직원처럼, 불쌍한 척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긴 했다.

-

“그래서, 귀하께 말씀드리려는 건은, 여기 계신 오이카와씨를 전담하여 가이드 업무를 수행해 주십사 하는 것으로, 무엇보다도 저희가 안전만큼은 최대한 보장을 해드리고요…….”

횡설수설 이어지는 직원의 말에 이와이즈미가 꺼림칙한 얼굴을 하며 끼어들었다.

“최대한 보장한다는 건, 그럼, 보장이 안 되는 경우도 있긴 있단 얘깁니까?”

직원이 손수건으로 이마를 훔쳤다. 여태껏 홍수처럼 쏟아지던 땀을 모두 닦아낸 손수건은 엉망으로 주름져 있었다. 이미 정신이 혼미해 보이는 직원을 대신해 오이카와가 나섰다. 그리고는 최대한 차근히 가이드 업무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실려 오기 전에 바다에 있었죠?”

오이카와의 질문에 어리둥절한 눈을 하면서도 이와이즈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름방학이었고, 그는 해수욕장의 안전요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날씨는 쾌청했는데도 갑작스레 거센 파도가 일었다. 황급히 사람들을 대피시켰지만 자신이 도망갈 시간은 미처 벌지 못했었다.

“뭘 봤어요?”

느리고, 어딘지 으스스한 말투로 오이카와가 재차 물었다.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를 보기는 했다. 집채만 한 파도 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흐물흐물 흔들리고 있었다. 처음엔 암초인가 했지만 암초가 수중에 떠오를 리는 없었고, ‘아, 그렇다면 고래인가’ 하고 생각하는 사이에 정신을 잃었다. 다음으로 눈을 떴을 땐 병원이었다. 이와이즈미는 별 말을 하진 않았지만 대신 인상을 찌푸렸다. 떠올리기 싫은 것을 떠올리고 만 사람처럼.

“주로 그런 상황에서 일해요. 뉴스에 나올 때도 있는데.”

자신의 존재도 모르는 상대가 그런 뉴스라고 본 일이 있을까 싶어 오이카와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나 이와이즈미는 이번에는 긍정을 표하며 위 아래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면 오늘은 어느 센티넬이 어느 지역을 지켜냈고, 오늘은 어디에 습격이 있었고 하는 소식들이 마치 일기예보처럼 보도 방송의 한 꼭지를 꼭꼭 차지하곤 했던 것이다. 가끔씩 대도시에서 사건이 일어나는 날이면 근방 시민들의 제보 영상도 함께 등장했다. 상황을 제대로 식별할 수 있을 만큼 깨끗한 화질은 아니었지만, 심각성을 인지할 수 있을 정도는 충분히 되었다.

“현장은 내 담당이니까 그 부분은 걱정 안 해도 되지만, 말했죠, 아까. 괴리감을 느낀다고. 현장 상황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필연적으로 더 많은 능력을 쓰게 되고 그러면…….”

“괴리감을 느낀다는 게 정확히 뭔데요?”

이와이즈미의 또렷한 눈동자가 오이카와를 직시했다.

그러나 어떻게 설명한대도 일반인은 이해하지 못 한다. 오이카와는 부드럽게 웃었다.

“일종의 발작 같은 건데……. 그냥 좀 아프고, 정신 못 차리기도 하고. 그러다 최악의 경우에는 아무나 공격하고 그러는 거죠. 그걸 진정시키는 게 가이드의 업무이다 보니까 무조건적인 안전은 보장할 수가 없는 거고.”

어떻게 설명을 한대도 이해하지 못 할뿐더러 동정심을 자극하기에 좋은 방법도 아니었다. 세상엔 내가 이만큼이나 아프고 괴롭다고 직설적으로 호소하는 것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연한 척 하는 것을 더 가엾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었고, 오이카와가 보기에 이와이즈미는 아주 후자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

긴자, 신주쿠, 시부야 같은 번화가의 대형 전광판에 툭하면 얼굴이 걸렸고, TV나 잡지에선 광고도 줄기차게 나왔다. 센티넬이 된 후로는 작품 활동을 잠정 중단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다고 오이카와 토오루 그 이름값이 쉽게 떨어질 리도 없었다. 열 살에 아역으로 데뷔해서 지금까지 그는 쭉 업계 최고였다. 센티넬인데도 불구하고 자유로운 활동을 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대중에게서 오이카와 토오루를 빼앗아 봐야 반감밖에 더 살까. 방위성도 나서서 미움을 살 만큼 미련하진 않았다.

이와이즈미와는 정반대로, 서로가 서로를 이용할 만큼 이용하기로 합의한 관계였다. 쭉 낯설고 꺼림칙한 것으로 여겨졌던 센티넬의 이미지는 오이카와를 이용해 쇄신하고, 오이카와는 센티넬로서의 불편함을 방위성을 통해 해소하고. 물론 예외적 권리를 누리는 만큼 그에게도 의무적으로 따라야 하는 선이 있었다. 예를 들자면, 기꺼이 응해야 하는 수많은 검사 같은 것.

애초 병원에 직접 들른 것 자체가 이와이즈미를 만나는 것과 동시에 겸사겸사 뒤늦게 나온 나머지 검사결과를 직접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확실히 별다른 영향은 없지만요, 글쎄요. 능력을 사용할 때도 별 이상 없다고 하셨죠?”

어중간하게 내려앉은 병실의 침묵을 깨고 등장한 의사는 결과지를 들고선 복잡한 표정을 했다. 목의 선에 대한 얘기는 이제 지겹기까지 했지만 오이카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피부 조직검사까지 진행한 것 치고는 형편없는 결과이긴 했으나 따질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그럼 이것보다는 명치의 타박상이 더 큰 부상인 셈이네요.”

오이카와가 유쾌하게 말했다. 옆 침대에 앉아있던 이와이즈미가 흠칫 어깨를 떨었다. 의사는 안경을 한 번 추켜올리고, 뒤를 돌아 이와이즈미를 쳐다봤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그런 셈이죠.”

-

“그냥 변태라서 한 건 줄 알았는데.”

의사가 설명을 마치고 나간 후에, 이와이즈미가 혼잣말처럼 툭 내뱉었다. 오이카와는 손가락으로 제 목을 더듬어보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네. 내가 그런 취향 있을 것처럼 생겼나봐. 진짜 그래요?”

예, 좀. 하는 말이 튀어나갈 뻔 했으나 간신히 삼키고서, 이와이즈미는 떨떠름한 얼굴로 물었다.

“그래서 그건 정체가 뭔데요?”

“나도 모르죠. 종종 있는 일이에요.”

오이카와는 어깨를 으쓱하며 가볍게 말했지만, 이와이즈미는 잠깐 표정을 굳히고는 눈썹을 찌푸렸다. 감정이 쉽게 드러나는지라 불쌍해 보이려 애쓰는 보람이 있는 상대였다. 즐거운 속내를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오이카와는 턱을 조금 치켜들었다. 그 의문의 선이 조금 더 잘 보일 수 있도록.

-

원래부터가 구류를 목적으로 입원시켜두었던 것이라, 이와이즈미의 퇴원수속은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바로 미야기로 돌아갈 수 있다거나 자유의 몸이 된 것은 아니었다. 오이카와의 가이드로서 일해 달란 요청에 이와이즈미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고, 방위성 측은 자신들의 관리 하에 지낼 것을 조건으로 그 요구를 받아들였다.

따라서 이러나저러나 한동안은 도쿄에 머물러야 했는데, 낭패롭게도 지낼 곳이 마땅치가 않았다. 가이드에게 지급되는 관사가 있기는 했지만 이와이즈미의 신분이 아직은 민간인이었기 때문에 여의치가 않았다. 방위성 직원은 둘 사이에서 눈치를 봤고 오이카와는 두 팔을 벌렸다. 그의 호화 사택이 최선의 선택이긴 했다.

이와이즈미는 며칠간만 신세지겠다며 깍듯이 말했지만, 오이카와가 보기엔 그가 미야기로 돌아가는 것은 한참은 먼 얘기였다.

-

다음날 오이카와는 아주 튼튼해 보이고 비싸 보이는 차로 이와이즈미를 실어 날랐다.

“집이 좀 지저분하죠?”

“그런 겉치레는 뭐 하러 합니까?”

그렇게 도착한 오이카와의 집은 분위기가 다소 삭막한 것만 빼면 모델 하우스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깔끔하고 넓었다. 지저분하단 소개는 누가 봐도 말도 안 되는 겸양이었고, 그래서 외려 자만이나 으스대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이와이즈미는 입을 삐죽이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오이카와가 안내해준 방은 꼭 호텔 객실 같았다. 어색하게 침대 끄트머리에 걸터앉은 이와이즈미가 매트리스를 꾹꾹 눌렀다.

“매니저가 가끔 쓰던 방인데, 침구 정리만 좀 했어요. 불편한 거 있으면 말해요.”

“그럼 그 분은 어디서 자고요?”

순간 헛웃음을 참지 못한 오이카와가 그것을 숨기려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곤 곧바로 흠흠하고 목을 가다듬어 마치 사례에 들리기라도 한 것처럼 잘 위장하고는, 이어 평온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방은 많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요.”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건가 싶어 우스웠던 것이다. 물론 오이카와의 입장에서는 고마운 일이었다. 그 모질지 못한 마음씨 덕에 생판 모르는 남의 집에까지 잠잠히 끌려온 것일 테니까. 그러나 이와이즈미의 인생을 두고 생각해보자면 그저 미련해보일 따름이었다.

 


극악의 업로드 텀...!...!! 쬐끄만 분량...!!....!!!...


이미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