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좀 얘기로 풀지 않겠슴까?"

 평화로운 오후였다. 물론 지금 여기에 있는 네 명의 스탠드사들에게는 평화롭지 못한 오후였지만. 이들이 평화롭지 못한 오후를 맞은 이유야 뻔했다. 스탠드 공격. 키라 요시카게가 전투 중 사망한 이후 모리오초에 스탠드 유저가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고 나서 벌어지는 기현상 중 하나였다.  스탠드 유저는 서로 끌어당긴다고 했었던가. SPW 재단과 함께 스탠드 구현의 화살에 대해 조사하고 있는 죠타로의 말대로라면 드물게도 스탠드 유저가 상당히 많이 모여있는 이 모리오초에 스탠드 유저들이 나타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대체. 죠스케와 코이치, 오쿠야스, 유카코가 대치하고 있는 옥상에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죠스케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크레이지 다이아몬드를 보며 고민에 빠졌다. 사실 쿠죠 죠타로. 그러니까 자신의 가계 상 조카와 있을 때도 들은 얘기였지만 이런 전투는 죠스케가 즐겨하는 비디오 대전 게임과는 달랐다. 스탠드 유저라고는 해도 육체는 평범한 일반인에 가깝다. 어느 정도 스탠드의 능력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스탠드를 쓸 수 있고, 볼 수 있다는 것만 빼면 스탠드 유저도 타마미나 토니오처럼 정말로 평범한 일반인인 것이다.

 죠스케가 끙, 하고 잇새로 숨을 뱉었다. 건너편에 있는 여자의 주위로 묘하게 생긴 스탠드가 떠돌아다니는 게 보였다. 마치 작은 하트처럼 보이는 수십 마리의 벌이었다. 비주얼만 보면 발렌타인 초콜렛 상자에서 튀어나왔을 법 하지만 뾰족한 침으로 봐선 정말로 말벌 정도의 위력이 있어 보인다. 붉은색 머리를 짧게 친 것 외에는 별다른 특이점이 없는 여자는 유카코와 같은 교복을 입고 있다. 자신들의 학교와 같은 학생이란 소리겠지. 

"대화라... 대화? 대화는 필요없고, 선물을 주고 싶은데. 있지. 거기 잘생긴 너. 좋아하는 사람 있지?"

잘생긴, 그 단어에 오쿠야스가 죠스케를 쳐다봤다. 유카코를 제외하고 네 명의 시선이 죠스케에게 모였다. 

"저, 저말임까?"

"뭐야, 죠스케. 인기 많잖냐... 바로 잘생겼다는 소리 듣고."

 아니 이런 걸 부러워해도. 단박에 잘생겼다는 수식어를 부러워하기 시작한 오쿠야스의 반응에 죠스케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얼떨결에 튀어나온 대답은 이미 전달된 채다. 여자는 그런 죠스케를 바라보더니 무언가 결정한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너로 할래.

"네 사랑을 이어줄게. 난 21세기의 큐피드거든."

코이치의 얼굴이 난감하게 일그러졌고, 오쿠야스의 눈이 둥그레졌다. 어이, 죠스케. 큐피드가 뭐냐? 오쿠야스가 말하든 말든 개의치않고 여자가 말을 이었다. 

"너 분명히 고백도 못했지? 상대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내가 확실하게 이어줄게. 고마워하도록 해."

"죠스케, 너 좋아하는 녀석 있었냐?"

오쿠야스가 이어 묻는 소리가 들리지만 죠스케는 꼼짝할 수가 없었다. 아, 아니. 그걸 어떻게 아는 건데! 물론 좋아하는 사람이 있긴 있다. 까칠하고, 성격 나쁘고, 호기심이나 자기 만족을 위해서라면 멋대로 사람을 괴롭혀대고,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 승부욕이 유치할 정도로 강한데다 극단적이고. 그리고 어쩌면 좀 귀여울지도.아니, 잠깐. 죠스케가 더듬댔다. 허둥지둥 새빨개진 뺨을 보기라도 한듯이 짧고 높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안개에 감싸여 사라지는 걸 막을 새도 없이 여자가 자취를 감춘 뒤에야 죠스케는 자신의 뒷목에 짧은 바늘 같이 보이는 작은 화살이 박혀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후 죠스케가 카페 드 마고에서 키시베 로한을 마주친 건 3시쯤이었다. 화살을 맞은 부분이 아직도 따끔거렸다. 그것 외에는 별다른 이상이 생기지 않았어서 그냥 가만히 두긴 했지만. 죠스케가 로한을 보고 인사도 하기 전에 로한이 인상을 썼다.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뭐냐니, 그냥 걷고 있었는데요. 로한은 유독 죠스케를 마주치면 신경질적으로 굴었다. 원래도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고 상냥한 사람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코이치나 토니오 씨를 생각하면 모든 사람은 아니었다. 특히 코이치와 같이 걷고 있을 때면 같이 있는 죠스케를 깨끗하게 무시하고 코이치에게만 웃어주면서 집에 놀러오라느니, 그런 말을 하는 태도는 이제 익숙해졌을 지경이다. 하루는 그게 너무 신경 쓰여서 한 마디 한적도 있다. 저도 놀러가면 안됨까? 말을 뱉자마자 싸늘한 시선이 꽂혔다. 

"왜, 이젠 내 집을 반 태워먹을뻔한 것도 모자라서 죄다 전소시킬 작정인 모양이군. 히가시카타 죠스케?"

그러니까 말 꺼내자마자 본전도 못 찾았단 얘기다.

친치로링 이후로 로한은 죠스케가 없는 것처럼 굴었다. 아니면 신발 밑창에 껌이라도 붙은 것처럼 보거나.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면 그런 로한을 졸졸 쫓아가면서 잔소리를 듣든, 차가운 시선을 받든 어떻게든 같이 있고 싶어 안달하는 자신이 있다. 진짜 어떻게 된 일이냐고. 그런 인간한테. 삼일 밤낮을 로한 생각으로 밤을 샌 다음 결국 죠스케는 인정했다. 자신이 키시베 로한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자신 앞의 의자에 대놓고 앉은 죠스케를 보자마자 로한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로한이 카페 테이블이나 제 성질 둘 중 하나를 뒤엎어버리기 전에 죠스케가 최대한 애교 어린 표정으로 로한을 제지했다. 

"로한, 자리가 없어서 그런데... 잠깐만... 앉으면 안됨까?"

입술을 살짝 내밀고, 눈썹을 살짝 내려서 마치 시무룩한 강아지처럼 보이게 하는 애교 작전. 토모코한테 추가로 용돈을 받을 때 쓰는 필살기였다. 아까 관찰한 바로는 로한은 카페 테라스 앞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스케치하고 있었다. 거기다 지금은 햇빛이 쨍쩅한데다 카페엔 다른 자리도 없다. 로한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혀를 찼다. 방해하면 죽여버리겠단 표정이었다. 어쨌든 이제 로한이 자신을 피하지 않을 거란 확신이 들자 죠스케가 로한과 천천히 눈을 마주했다. 사나운 눈빛이 스케치북을 떠나 죠스케의 얼굴에 꽂혔다. 네놈 앞에선 죽어도 눈을 피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눈빛이었다. 귀여워. 소리 내서 말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죠스케는 자꾸만 스믈스믈 입가에 감도는 미소를 지우려고 애썼지만 로한과 마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나서 어쩔 수 없었다. 그 때였다.

뿅, 뭔가 비눗방울 터지는 소리 같은 것이 들리더니 로한의 귀 옆에서 작은 하트가 생겨났다. 저게 뭐지? 죠스케가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은 것과 로한이 기민하게 몸을 물린 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뭐하는 거냐, 히가시카타 죠스케!"

뿅. 또다시 게임 효과음 같은 소리와 함께 로한의 얼굴 옆에 세 네개의 하트가 생겨났다. 아까보다는 조금 더 크기가 큰 하트였다. 이게, 뭠까. 로한. 죠스케가 손을 뻗자 하트 몇 개가 자석에 딸려오듯이 죠스케의 손가락에 달라붙어 스며들었다. 이게 뭐지? 죠스케가 머리를 굴리고 있는 동안 로한의 손가락이 눈을 찌를듯 얼굴 가까이에 닿았다. 너.. 머리에. 뭘 붙이고 다니는 거냐? 아니, 네놈 머리 모양 말고! 다급하게 로한이 덧붙였다. 아마 죠스케의 머리 모양을 모욕했다가 늘씬 두드려맞은 트라우마는 제대로 새겨져 있는 모양이었다. 죠스케가 이리저리 고개를 움직이면서 눈을 굴렸다.

"뭐, 뭠까?"

그리고 죠스케는 봤다. 로한이 이거 말이야. 하고 고개를 숙인 죠스케의 머리 위로 몸을 굽혔을 때 자신의 머리 위에서부터 무언가 알록달록하고 붉은 것들이 후두둑 떨어져 로한의 심장을 겨냥하듯 쏟아지는 것을. 죠스케와 로한은 동시에 물음표를 띄웠지만 로한의 대응이 더 빨랐다. 

"우악, 이거 뭐, 뭐에요!?"

"내가 아냐! 너. 말하지 말아봐!"

죠스케가 입을 다물었다. 죠스케는 자신의 귀 옆을 작은 행성처럼 선회하고 있는 하트가 서서히 로한의 공중을 미끄러져 가서 녹아들듯 사라지는 걸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너...너.. 뭔 짓을 한거지? " 의심스럽다는 눈빛을 숨기지 않고 로한이 따져 물었다. 

아니, 저도 모르겠슴다. 웃기지마! 뭐든 네 놈이 원인이다! 쿠소스케!! 어째서 제가 원인임까! 투닥투닥 이어지는 말싸움 끝에 뭔가 말해주겠단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고 험악하게 사람 속을 긁으려던 로한을 가로막은 건 카페 점원이었다. 

"죄송합니다만 두 분, 다른 손님들이 시끄럽다고 하니 퇴장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만..." 

그제서야 죠스케는 카페 안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을 쳐다보고 있음을 알아챘다. 그건 로한도 마찬가지였는지 로한은 너랑 얽히면 되는 일이 없다며 쏘아붙이고 스케치북을 챙겨 뒤돌아섰다. 그건 제가 할 말이거든요? 죠스케가 발걸음을 재게 놀려 로한을 따라붙었다. 한적한 골목길에 접어들어서야 로한이 홱 돌아섰다. 

"따라와서 불이라도 지를 심산이냐? 얼른 네 집으로 꺼지지 그래. 그... 그것들이랑."

그거? 죠스케가 이리저리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로한도 이 하트들이 보이는 건 확실한 것 같았다. 로한, 이거 보여요? 로한이 팔짱을 낀 채 툴툴거렸다. 네놈이 한 짓이지. 죠스케가 데굴 눈을 굴렸다. 아마도 그 작은 벌 같은 스탠드에 쏘여서 이렇게 된 건 확실했다. 그러니까 사랑을 이루어준다던가 뭐 그런 식으로 말했었던가. 그러면, 그게 사랑?

죠스케의 이야기를 듣고 난 로한은 대놓고 비웃었다. 하! 하! 비웃음으로 빙하기라도 오게 할만한 싸늘한 웃음이었다. 

"지금 그걸 나더러 믿으라는 거냐, 히가시카타 죠스케?"

"아, 믿기 싫으면 마십셔. 큐피드랬나, 그 여자가 벌침 같은 스탠드로 쏘자마자 이렇게 됐단 말임다."

흐응, 로한의 눈이 가늘어졌다. 죠스케는 이 표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생선을 발견한 고양이 표정. 이렇게 속으로 부르고 있는 걸 알면 로한이 머리를 쥐뜯어놓겠지만. 고양이, 아니 로한이 좀 더 흥미로워진 표정으로 종잇조각처럼 흩날리고 있는 하트를 바라봤다. 네 놈이 입을 열 때마다 생기던데. 전염되는 건 아니겠지? 로한이 의심스럽게 중얼거렸다. 와, 이 인간 어떻게 이런 걸 보고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지? 죠스케는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장미 꽃잎이나, 귀여운 하트 정도다. 물론 처음엔 자기도 놀라긴 했지만. 그러고 보니 이거 좀 늘어난 거 같지 않아?

"근데 왜 늘어나는 거지? 입도 다물고 있는데."

같은 생각을 한 건 로한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의심스럽게 허공을 쳐다보던 로한이 손을 뻗었다. 아까보다 조금 더 많은 양의 하트가 로한의 손을 타고 쏟아졌다. 발갛게 로한의 뺨에 붙었다 떨어지는 것도 있다. 물끄러미 그 광경을 바라보는 로한이 아름답다고 생각할즈음 누가 택배 포장재를 힘주어 터트리고 있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뽁, 뽁. 순식간에 죠스케의 주위에 생겨난 하트들이 일순 로한을 향해서 달려들었다. 윽..! 로한이 괴상한 소리를 내며 몸을 틀었다. 그래봤자 유도 미사일처럼 다시 돌아왔지만.

"이거 아무래도..."

하트를 향해 파리 쫓듯 손을 휘두르고 있던 로한이 잇새로 짜증을 뱉었다. 어떻게든 좀 해 봐! 늘어나잖아! 이상하게도 그런 모습이 귀여워보여 죠스케가 히죽댔다. 뿅, 뽁, 연달아 들리는 소리만큼 하트가 늘어났다. 웃지마! 죠스케가 성질을 내는 로한을 끌어당겼다. 뭐, 뭐야. 몸을 움찔대는 로한의 뒤로 뽁, 뽁 하트가 늘어났다. 죠스케의 것보다는 작고 수도 적었지만 분명한 하트 모양이다. 자신의 것과 같은.

"... 로한한테도 생기는 거 같은데요."

분명히 로한의 뒤통수를 맴돌고 있다 수줍게 죠스케의 목덜미로 미끄러져 가는 건 작은 하트였다. 스티커라도 붙인듯이 찰싹 목덜미에 붙은 하트는 서서히 스며든다. 이거 생기는 이유, 알 것 같슴다. 로한. 죠스케의 눈이 빛났다. 이제 알았다. 사랑을 이루어주겠다는 그 말.

"로한... 사실은 저 좋아하는 거 아님까?"

"웃기지마라. 난 널 싫어해. 널 싫어하는 이유라면 백 가지라도 말해줄 수 있다. 히가시카타 죠스케."

단답치고는 길었다. 그 말을 하는 동안 로한의 표정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정곡을 찌른 걸까? 죠스케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설마, 정말로.

"하나만 말해보십셔." 죠스케는 당장이라도 로한을 껴안고 싶은 걸 참아내느라 주먹을 쥐었지만 그게 로한 눈에는 다르게 보인 모양이었다. 몇 걸음 정도 보이지 않게 물러난 로한이 죠스케를 노려봤다.

"너도 날 싫어하잖아." 

"좋아해요."

죠스케가 뱉은 그 말에 로한의 표정이 대번 단박에 굳었다. 뭐? 평소엔 미운 말만 골라 쫑알거릴 텐데, 지금도 자기 마음은 하나도 알아주지 않으면서 키스라도 해달라는 듯 뾰족하게 튀어나온 입술이 바로 눈 아래에 있었다. 좋아해요. 

죠스케의 말에 로한이 신음 비슷한 한숨을 흘렸다. 

"뭔가 착각했나본데, 나는 너를 좋아하지도 않고. 앞으로도 좋아할 생각이 없다. 죠스케."

역시 또 미운 말만 쫑알댄다. 하지만 지금 그 말은 거짓말이라는 걸 로한도, 죠스케도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는 계속 나오고 있잖슴까." 비눗방울처럼 퐁퐁 솟아오르는 하트들은 로한의 말을 배반하듯 죠스케에게 달라붙었다. 훨씬 더 색이 진해진 채로. 로한의 당황한 눈동자가 하트를 따라 기울었다. 로한이 다시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분명히 봤으면서 죽어도 인정하지 않을 기세다. 

"이건 큐피드인지 뭔지 그 스탠드사의 농간이잖아."

죠스케가 빙글빙글 웃고 있는 걸 본 로한이 입을 꾹 다물었다. 웃지마! 아무리 성질내봤자 어차피 알 수 있는데. 마음 속에서 몽글몽글 피어나는 사랑스러움만큼 죠스케의 머리 위에 작은 하트들이 토도독 생겨났다. 그러니까 로한, 이때까지 절... 말을 끝내기도 전에 몸이 당겨졌다. 따뜻한 온기가 입술에 닿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던 세상이 잠깐 멈춘 것 같다. 멍하게 죠스케가 눈을 깜박였다. 로한? 정작 키스한 당사자ㅡ 로한은 아무렇지도 않게 죠스케를 노려보고 있었지만. 

"로한?"

죠스케가 움찔했을 때엔 로한이 자신만만하게 웃고 있었다. 뭐야, 고작 일시적인 현상이었잖아. 그런 말을 한 로한의 머리에 무언가 툭, 떨어졌다. 죠스케가 고개를 올려본 순간 하늘에서 수많은 하트가 쏟아져내리기 시작했다. 로한을 겨냥해서 떨어지는 하트들에 위협을 느낀 죠스케가 간신히 로한을 이끌어서 피했다. 처음엔 만화적 효과처럼 보이긴 했는데, 지금와서는 조금 위협적이다. 저렇게 수도 많으니 꼭 새떼같이 보이네. 숨을 몰아쉬고 조금 목소리를 가다듬은 로한이 죠스케를 노려본 채 말을 이었다. 네가, 날? 좋아해? 죠스케가 끄덕였다. 사실 이런 식으로 고백을 해버릴 줄은 몰랐지만요. 

"... 날 좋아한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지? 넌? "

죠스케가 갸웃 고개를 기울였다. 알 수 없다. 언제 사랑에 빠져버렸는지 같은 건. 그냥 눈을 뜨니까 언젠가 로한이 보고 싶어졌고, 예전처럼 성질을 긁는 말에도 그닥 악의가 담긴 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고. 자기 자신이 이상하게도 로한을 보면 기분이 좋았다. 인상을 찌푸리고 뒤로 물러나는 손을 자꾸 잡아보고 싶었고, 모양좋게 둥근 귓바퀴가 붉어지는 걸 보고 싶어지고, 자신을 향해서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눈길을 둬주길 원했을 뿐이다. 

"로한을 보면 확신이 듬다."

증거가 없잖아. 로한이 입술을 깨물었다. 증거라고 해도 잘 모르겠다.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다면 로한이 평생 자신을 싫어하는 줄만 알았겠지. 죠스케가 한 걸음 더 다가서자 로한이 기댄 벽 뒤로 그림자가 졌다. 퐁, 퐁. 죠스케의 주위에서 다시 생겨나자마자 갈 곳을 알아챈 하트들이 로한의 머리 위로 쏟아져내렸다. 로한이 입을 꾹 다물고 흩날리는 작은 종잇조각같은 하트들을 바라봤다. 

"증거.... 여기에 내리는 비로 해둘까요."

옷깃을 빨갛게 덮은 하트가 조금씩 로한의 안으로 스며들었다. 하얀 피부를 물들이며 사라지는 제 마음의 색이 로한한테 닿을 수 있을까. 저렇게, 조금씩 로한의 안으로 쌓이기 시작하면 지금 당신을 둘러싼 벽도 녹여버릴 수 있을까. 나를 당신에게 각인시킬 수 있을까.

".... 비에 젖는 건 질색이야." 

조금 더 죠스케가 로한 가까이로 다가섰다. 머리를 토독토독 때리는 하트들이 느껴졌다. 로한의 옆에서 올망졸망 생겨난 하트들이었다. 죠스케의 가슴으로 뭉쳐 스며든 하트들이 붉게 빛났다. 솔직하지 못한 주인 대신에 표현이라도 하는 것처럼. 붉은 빛이 스며들자 가슴께가 따뜻해지는 것 같아 죠스케가 짙은 미소를 띠었다.

"로한. 한 번 더 키스해도 됨까?"

"...말 많은 놈도 싫어."

로한이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꼭 키스해달라는 신호처럼 느껴져 죠스케가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눈가가 붉어진 로한이 자연스레 눈을 감고는 어깨에 손을 얹는다. 이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지.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것에 퐁당 빠져 있는 것 같은 부드러운 느낌. 수십 마리의 나비가 퍼덕거리는 것 같은 두근거림.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지지 않는다. 조금 더 수가 늘어난 하트들이 스며드는 게 느껴졌다. 자신을 둘러싸고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로한의 마음들.

달콤하게 얽히는 로한의 혀보다 참기 어려운 건 눈을 깜박일 때마다 눈 앞에서 자신과의 키스에 집중한 채 옅은 숨을 쏟아내는 로한이었다. 목덜미에서 귀 끝을 발갛게 물들인채 열심히 입술을 맞대고 숨을 삼키는 사랑스러운 로한. 입술을 떼자 벽에 기대선 로한이 살짝 이지러진 눈동자로 죠스케를 올려다봤다. 조금씩 비가 잦아들고 있었다.

"아직도 확신 못해."

확신하냐는 물음을 들은 것처럼 로한이 뱉었다. 언제 잡아챘는지 마지막 남은 하트가 로한의 손에 잡혀 있었다. 마치 지금이 무슨 상황인지 아는 것처럼 얌전하게 로한의 손 안에서 잡혀 있는 하트가 꼭 제 심장 같다. 서서히 로한의 손바닥이 펼쳐졌다. 공중에 잠깐 떠 있던 하트가 천천히 죠스케의 가슴께로 옮겨갔다. 이런 걸 봐도. 확신 못하겠어. 로한의 눈동자가 죠스케를 마주했다. 

"널 좋아하는지 확신하지도 못하는 상대를 좋아하게 되다니. 유감스럽군. 히가시카타 죠스케."

로한이 보란듯이 팔짱을 꼈다. 그 말 끝에 걸린 미소가 이상하리만큼 눈부셔 죠스케가 따라 마주 웃었다.

"확신하게 해줄게요. 큐피드 화살 없이도."

당신이 내게 사랑받고 있다는 것도, 당신이 날 사랑하고 있다는 것도. 확신할 때까지 퍼부어줄테니까.

해보던지. 로한이 밉지 않게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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