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인가가 마룻바닥을 팡팡 쳐대는 소리만 울렸음. 그 소리의 발생지는 여주의 꼬리였음. 규칙적인 속도로 꼬리가 바닥을 팡팡 내려치는 마찰음이었음. 불편한 여주의 심경을 대변하는 소리였음. 꼭 사냥감을 목전에 둔 포식자처럼 예리한 눈빛으로 쿠로오를 노려보며 경계를 하는 여주였음. 조금이라도 움직임이 있으면 바로 몸을 일으켜 등을 세우고 털을 세워 위협하는 자세로 바뀌었음. 꼬리도 민들레 꽃씨처럼 펑펑 불어있었음. 정말 제대로 찍힌 모양이었음.

이렇게 될까 봐 그렇게 인내하고 견뎌냈는데 마지막의 행동 때문에 말짱 도루묵이 되어버렸음. 그래도 좀 친밀감이 생겼다고 생겼는데 한 순간의 충동에 다 날려 먹었음. 모래성 같은 유대감이지만 그걸 쌓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해왔는데! 그게 여주의 잘못도 아니었지만 괜히 얄미웠음. 누구 때문에 내가 그렇게 되었는데! 분명 내가 경각심을 가져야 된다고 했잖아! 그렇게 볼 때마다 알려줬는데 무방비하게 있었던 여주 잘못 아니냐고...

알아. 나도 말도 안 되는 소리인 거. 다 내 잘못인 거 알아. 안다고... 오늘따라 눈치코치 없는 리에프가 보고 싶었음. 헛소리하면서 분위기라도 가벼웠다면 그러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쓴소리를 하는 켄마는 더더욱 보고 싶었음. 옆에서 정신 차리라고 회초리 질이라도 당했으면 아마 고삐는 잘 잡혔을 텐데. 아니다. 어차피 나는 이런 놈이었으니 언젠간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었음. 밀폐된 공간에 단 둘이 남겨지니 결국 사달을 낸 내 잘못이 가장 크지. 하... 애들 언제 오려나... 쿠로오는 그렇게 구석에 꾸겨진 듯 앉아 최대한 움직이지 않으려 노력을 했음. 그래야 여주에게 덜 자극이 될 테니까. 죄인은 그렇게 아이들이 오길 기다렸음. 



한참 쿠로오가 움직이지 않자 그제야 슬그머니 긴장해 있던 몸에 힘을 풀었음. 그리곤 편안한 자세로 자신의 젖은 털을 그루밍하기 시작했음. 그러나 날이 선 눈빛은 여전히 쿠로오에게 고정이 되어있었음. 허튼수작이라도 부릴 것 같은 낌새가 있으면 바로 죽빵을 쳐 날릴 생각이 만만했음.


아주... 무서운 녀석이었음. 불손한 놈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위협이 되는 놈일 줄은 몰랐음. 평소엔 나한테 허허실실했던 놈이라 그런지 배신감이 더 컸음. 생경한 감각과 기분에 경계심이 커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음. 내 평생 느껴본 적 없는 위기감과 위험신호였음. 이게 무슨 느낌이었나 표현하기가 어려웠음. 그리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는 그 감촉... 뭔가 소름이 끼치는 듯하면서도 묘하게 이상했음. 그 이상한 감촉을 아무리 떨쳐내려고 해도 자꾸 남아있는 것 같았음. 무슨 이런 느낌이 다 있냐고. 왜 자꾸 저 손가락이 쓸어내리는 것 같냐고!



한참 그렇게 적과의 공간을 공유하고 있는데 밖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음. 귀가 까딱 거리면서 몸이 절로 일으켜졌음. 후다닥 거실을 뛰쳐나가 현관문 앞에 앉아 근원지가 빨리 들어오길 오매불망 기다렸음. 다리도 기다란 놈이 왜 이렇게 꾸물거리는지 모르겠네!


"마중 나온 거야? 여주야! 나 보고 싶었어?!"


"야이 쉐키야! 왜 이제 와! 나를 저런 나쁜 쉐키랑 둘이 있게 만들고! 너 왜 이제 와!!"


정말 이럴 줄 몰랐는데 저 거대한 놈이 오지게 반가웠음. 왜 이제 왔냐고! 죽고 싶냐고! 욕을 퍼붓는대도 거대종은 나를 만난 것이 마냥 좋은지 헤실헤실 웃기만 했음. 아니 저 쉐키 데리고 꺼지라고! 이제 우리 집 오지마라고!!


"약간 하소연 하는 것 같지 않아? 쿠로랑 무슨 일 있었어? 근데 쿠로는 어디 있는 거지?"


"그 쉐키 이름 꺼내지도 말라고! 그냥 데리고 꺼지라고오오! 진짜 꼴도 보기 싫다고!"


왜 내 말을 이해를 못하냐고! 사람일 때는 알아들으면서 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면 알아듣질 못하니! 답답해 죽어! 빨리 들어와서 저 새카만 놈을 데리고 가라고!! 예전에 읽었던 이야기에서 이런 상황이 있었던 것 같았음. 그때는 이해를 못했는데 지금은 백번 천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음. 그 고양이도 얼마나 답답했을지 말이야! 어쨌든!

(네이버웹툰 - 냐한남자 발췌)



답답함에 빨리 따라 들어오라고 울부짖으며 복도를 걸으니 그제야 따라오는 둘이었음. 진작에 좀 빨리 왔으면 이런 일 없었을 거 아니냐고!


"엑? 쿠로오상 그 구석에 왜 그렇게 찌그러져 계세여?"


"여주가 불편해해서... 뭐 그렇게 됐어."


"무슨 일 있었어? 얘 이렇게 많이 우는 거 처음 봐서 좀 당황스럽네. 우리를 반기는 것은 아닌 것 같고 뭘 이르는 것 같은데...?"


"...뭐... 많은 일들이 있긴 했지..."


"그냥 다 꺼져줬으면..."


데리고 가라고 집 안으로 들인 두놈이었는데 짐을 풀더니 자리를 잡아버리는 게 아니겠음?! 속이 터질 것 같았음. 인제 그만 나를 혼자 있게 다 꺼져줬으면 좋겠는데 영 갈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음. 이럴 땐 좀 사람 모습으로 변하는 게 간절하기도 했음. 내 마음대로 조절을 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어떤 요령으로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으니... 아까도 마당으로 가는 문 앞에서 경계를 하며 앉아있으니 제멋대로 원래의 내 모습으로 변해버렸음. 정말 불편하기 짝이 없어. 내 몸인데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


"자꾸 옷을 훌렁훌렁 벗으려고 하지 않나."


"몸에 이상이 있는 줄 알고 그랬다."


"내 배를 때리질 않나."


"그건 네놈의 배가 나랑 달라서 짜증 났다. 네 것이 더 탐스러웠단 말이다."


"내 가슴도 주물떡 거리고 말이야."


"비교해도 된다고 하지 않았나. 그건 지가 보여줘 놓고 왜 내 탓인 거지."


"왜... 반박을 하는 것 같져...?"


"내가 듣기에도... 정말 사실이야?"


"하... 한 치의 거짓도 없어. 정말이야."


"그리구여? 또 뭐하셨나여?"


"...마당에... 싸려고 해서... 붙들었지..."


"화장실? 마당에서?"


"땅을 갑자기 파더라고... 그리고 자세를 잡는 게... 딱..."


"여주야! 사람일 땐 그러면 안 된다고! 화장실을 사용해야 해."


"내 영역에 내 흔적을 남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야 적들이 침범하지 않는 것이다."


"사용법을 알려줬어. 그리고 나서 보니 발도 손도 엉망이길래 좀 씻기려다가..."


"그래서 다 젖었구나. 쿠로. 어쩐지 티셔츠가 젖어있더라. 좀 닦지. 내 수건 빌려줄까?"


"...아니다. 저 자식이 나를 물의 지옥에 가둬놓고 고문을 했다. 난 그 위험한 곳에서 치열한 전투 끝에 생존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여주가 기분이 안 좋은 걸까요? 물로 씻겨서?"


"어... 아마도. 샤워기를 놓쳐서 한바탕 했거든."


"아니다. 저 쉐키가 내 가슴을 만졌다. 기분이 이상했다! 아! 물론 놓친 건 내가 맞다! 하지만 원인은 저 쉐키다!"


"이럴 땐 먹을 것으로 기분을 풀어주면 좋을 것 같아. 여주가 아까 부실 털었잖아? 그때 소시지를 다 뜯어먹었다더라고."


"아 맞아! 내가 한 통 사왔어! 여주야 이거 마음에 들었어?"


거대종이 자신의 가방에서 뭘 꺼내는데 좀 궁금했음. 뭔데. 나 줄려고 뭐 가져온 건데? 상자를 까더니 확 풍기는 냄새... 이 냄새는...!

아까전 내가 맛있게 먹은 음식이었음. 식감도 식감인데 맛이 아주 기똥 찼음. 생전 먹어본 적 없는 맛이었는데 너무너무 맛있었음. 나를 꼬시는 이 향기. 아주 매혹적이었음.


"...그거 나 줄거냐...? 소시지라는 거구나... 거... 빨리 주면 안돼?"


소세지를 꺼내는 거대종 앞으로 다가가 재촉을 하자 그건 또 알아들었는지 껍질을 까는 속도가 더 빨라졌음. 그래 그거 껍데기 엄청 번거롭더라. 내가 이빨이 날카로워서 뜯어먹었지 아니었음... 뭐야. 저거 왜 저렇게 쉽게 벗겨져! 그거 뭐 어떻게 한 건데! 아니 그건 일단 댔고 빨리 내놔봐!!


거대종의 손에서 떨어지자 무섭게 입에 넣었음. 정말 너무 맛있었음. 아까는 조금 밖에 없어서 맛만 본 것 같아 너무나도 부족했는데 이렇게 많이 있다니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음. 그래. 거대종 네가 그나마 여기 있는 놈들 중에선 나은 것 같다. 너만 빼고 다 꺼졌으면 좋겠다. 너도 이거 소시지 들고 올 때만 왔으면 좋겠다.


"허기질 만 하지. 나름 일들이 많았으니.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 고맙다. 덕분에 여주 기분이 좀 풀린 것 같네."


"근데 언제 다시 고양이로 돌아온 거야?"


"음... 물벼락 맞고 한 10분 정도 있다가? 뭘 해명해주고 싶어도 저 상태론 서로 대화가 안되니까 자극하면 안될 것 같아서 구석에 얌전히 있었지. 리에프가 보고 싶긴 처음이었다. 당연히 켄마도 보고 싶었어."


"빨리 오고 싶어도 어쩔 수 없었어여. 감독님 화가 많이 나셔가지구."


"아... 맞다... 감독. 나 어떡하지?"


"...뭐 어쩔 수 없지. 설사병이 난 걸로 알고 계실 거야. 그 뒤는 네가 알아서 해. 우린 최선을 다했어."


"아아. 이 나이에 바지에 지리는 놈 된 건가. 좀 억울하네."



한참 소시지를 조지고 있는데 아직 덜 먹었건만 더 까주질 않고 소시지를 치워버리는 게 아니겠음?! 나 더 먹을 수 있는데! 어?! 더 주란 말이야!


"안돼. 이건 영양가도 별로 없고 염분도 많아서 몸에 안 좋단 말이야. 물 많이 마시고 제대로 된 밥을 먹어야지."


"..거참... 줬다 뺏는 게 어디 있느냐. 좀 더 줘봐라. 간에 기별도 안 온다."


"근데 여주는 평소에 뭘 먹는 거지? 저번에 츄르같은 걸 싫어하는 거 보니 고양이 사료도 안 맞을 것 같은데. 아니 근데 고양이 사료를 먹어도 되나?"


"...뭐... 맛있는 거 줬으니까 기다려봐. 내가 금방 구해올게."


우리 엄마가 그랬음. 뭘 받으면 꼭 갚아주라고. 은혜든 복수든 갚아주는 게 이 세상의 법칙이라고 했음. 엄마의 말씀을 잘 듣는 나는 그럼 당연히 따라야 했음. 일단 저 소시지는 마음에 든 것은 사실이니까. 그렇다면 내 솜씨를 또 보여줘야지.


여주가 뭐라고 냥냥냥 거리는데 알아들을 리 없는 셋은 왜 저러나 어리둥절하게 바라볼 뿐이었음. 여주가 뭐라고 하더니 마당의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 담벼락으로 오르더니 이쪽저쪽을 유심히 살펴보았음. 그리곤 곧장 뛰어 내려가 버려서 더 얼떨떨할 뿐이었음.


"어딜 가는걸까여? 가출?!"


"우릴 쫓아내면 냈지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뭐 잠시 영역순회라도 하는 게 아닐까?"


"그럼 좀 기다려볼까? 나는 상관없어."


그렇게 한동안 여주가 돌아오질 않아 그냥 집에 갈까 말까 하는 찰나였음. 다시 담을 훌쩍 넘어온 여주가 위풍당당하게 거실로 들어오는데.


"자. 이게 생각보다 맛이 좋아."


여주는 신선하게 가져오기 위해 일부로 숨통을 끊지 않고 사냥감을 가지고 왔음. 이게 얼마나 어렵고 섬세한 힘 조절이 필요한지 이 미천한 인간들은 모르겠지만 하여튼 별미였으니 마음에 들 것이 분명했음. 그래서 내려놓으려고 하는데.


"쥐?! 쥐?! 어어! 놓지 마! 여주야! 놓지마아!"


"아... 난 무리. 난 못 치워. 못 잡아."


"...이거 복수인가? 내가 기분을 상하게 만들어서 내리는 벌인가?!"


"뭔데. 왜 그따위 반응인 거지? 나 지금 입에 쥐 날 것 같은데. 내려놓고 싶은데. 얘 너무 버둥거리는데... 근데 반응을 보니... 내려놔도 재밌을 것 같고... ㅋ"


여주는 그렇게 입에서 힘을 풀었다.

결국 여주의 집은 터졌다.


- 끝 -










"여주야아... 다음엔 그런 거 안 가져와두 대... 진짜... 괜찮아..."


"그렇다고 버릴 필욘 없잖아!"


"고양이 보은은 사실이었구나. 소시지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나보다."


"아아. 그걸 보은이라고 하는구나. 난 또 테러하는 줄 알았는데. 물벼락에 대한 복수이거나."


"틀에 박힌 생각 밖에 못하는군. 얼마나 맛있는데. 내 마음도 모르고 말이야. 아님 그냥 내가 먹어도 됐는데 왜 버리냐고!"


여주가 놓아준 쥐는 재빠르게 거실을 돌아다니며 살 구멍을 찾아다녔지만 아무것도 없는 거실이었기에 숨을만한 장소는 없었음. 당연히 그렇게 구석으로 몰리게 되었고 선배들의 성화에 결국 리에프가 어디서 가져온 대야에 가둬버렸음. 그리곤 그렇게 대야와 함께 집 밖으로 퇴출 당했음. 


내 성의를 몰라주는 것에 대해서 좀 서운했지만 그래도 꽤 재미있는 광경이었음. 다 큰 수컷 셋이서 끼약끼약 소리를 지르며 난리를 치는데 제법 볼만했음. 그러나 버린 것은 좀 충격적이었음. 사냥감 귀한 줄 모르고 말이야. 내가 먹어도 됐는데...! 요즘 세상에 사냥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저 자식들은 전혀 모르는 모양이었음. 


"보니까 여기 가전제품이랑 전자기기들 다 사용이 가능하더라고. 다음번엔 그냥 정육점을 털어오자."


"좀 다양한 음식을 접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게 좋을 것 같아. 낯설어서 그런 걸 수도 있으니까."


"여주는 언제 사람이 될 수 있어? 나도 여주랑 이야기해 보고 싶은데."


"그걸 내가 알겠냐고. 나도 모른다고. 근데 너네 언제 가냐고. 이제 좀 가라고!"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너무 중요하고 필요했음. 그런데 이 녀석들은 전혀 갈 생각이 없어 보였음. 다들 해가 떨어지고 어두워지면 집으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왜 이 녀석들은 안 돌아가려는지 모르겠음.


"그건 그렇고, 일단 교육은 정말 필요한 거 같아. 배워야 할게 너무 많아."


"... 너 지금 뭐 하는...? 왜 다가오는데...?"


"요즘 유튭에 시각적 자료가 좋은 게 많더라고. 일단 어떻게든 때려 넣어보는 수밖에 없겠지?"


"그런 거 정신 사납다. 저리 치워라. 보기 싫다."


"하항. 내 도움이 필요할 때 말해줄래? 일단 여주가 날 제일 미워하는 것 같아서 몸 사리고 싶거든."



"쿠로오 테츠로! 넌 아직도 집에 안 갔냐?!"


이걸로 난 끝인 줄 알았지. 이 자식들...! 그날 이후로 이 녀석들은 내가 있는 곳은 어떻게 알았는지 귀신같이 찾아오며 나를 붙들고 강제로 집으로 끌고 가기 일쑤였음. 그렇게 시작 된 자기들 말로는 교육. (이라고 하지만 내 입장에선 날벼락이었음) 

당연히 나는 거부하는 입장이었으니 냅다 도망부터 갔고, 그 이후는 뭐... 어떻게든 잡더라고... 젠장. 나 처럼 날쌘 인간들은 처음이라 많이 당혹스러웠음. 그래도 난 포기하지 않았음. 그 세놈과 맞닥뜨리게 되면 일단 나도 모르게 줄행랑을 치게 되었음. 그렇게 술래잡기 끝에 내가 포박이 되면 그 이후엔 강제 교육이 며칠 동안이나 이어졌음.



"오! 벌레. 단백질 개꿀!"


밖에서 놀다가 좀 출출해서 간식거리를 잡으려고 하는데.


"앗! 안돼 여주야. 잡는 건 괜찮은데 먹지는 마. 좋지 않아."


내가 열심히 사냥한 벌레를 입에 넣기도 전에 리에프에게 빼앗겨버렸음. 그리고 내 간식은 그렇게 어디론가 버려져 버렸음.



"요즘 내 냄새가 옅어졌어. 방해꾼들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일을 할 수가 있어야지."


나는 영역 동물임. 내 영역을 확장하고 관리하는 것이 내 일과 중 가장 중요하고 확실히 해야 하는 일이었음. 내 영역 안에서 지내는 약자를 보호하는 것도 내 일인데...!


"여주야. 화장실 사용하기로 했잖아."


"...젠장. 내가 싸고 싶어도 왜 싸질 못하냐..."


언제 또 내 영역표시 장소를 알았는지 올 때마다 질질 끌려가기 일쑤였음. 볼일을 보려고 자세를 잡을 때 무방비한 상태인 것을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음. 이땐 솔직히 좀 어이가 없어서 끌려가게 되더라.


가끔 또 사람으로 변하는 때가 오면 눈앞에 들이밀어지는 작은 기계를 강제로 시청하게 했는데.

"...나 그거 재미없다..."


"안돼. 여주 네 말투 너무 독특해서 교정해야 해."


"...우리 엄마가 좋아한 드라마 주인공 말투다."


"어머니...? 무슨 드라마 좋아하셨는데...?"


"육룡이 나르샤. 그거 재밌다. 너도 함 보거라."


"어쩐지 말투가 독특하더라. 사극 보고 배웠어?"


처음엔 무슨 애들이 나와 노래를 부르면서 몸을 희안하게 움직이는걸 보여줬었는데 내 취향을 알고 난 뒤 드라마를 보여주더라. 그건 좀 볼만하더라. 재밌기도 했고. 덕분에 내 말투가 요즘 사용하는 말투가 아닌 것을 알게 되어 교정... 은 아니고 나름 흉내 정도는 낼 수 있게 되었음. 근데 급할 땐 다시 원래 말투가 나와서 아직까진 멀었지만... 다른 거 또 여러개 보면 완벽해 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근데 가장 힘든 일은 사실 저런 것들이 아니었음.


생각보다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란 게 입에 맞더라고. 다양한 것들을 가져왔지만 난 역시 고기 종류는 다 좋아했는데 그걸 말을 하지 않아도 어떻게 알았는지 저 셋이 알아서 잘 가져오더라고. 가장 비중이 많은 것은 닭가슴살이었는데 난 그것도 나쁘지 않았음. 근데 문제는.


"여주야! 나처럼 이렇게 도구를 써서 먹어야지!"


"... 그거 귀찮아. 그냥 손으로 먹는 게 더 편한데..."


"그럼 손에 다 묻잖아. 얼굴에도 벌써 다 묻었네."


"어차피 또 물로 강제로 씻길 거 아니야? 씻을 거 뭐, 좀 더럽혀지면 어때."


"우리끼리 있을 땐 괜찮을지 몰라도 밖에서 그러면 좀 곤란할 수도 있어."


"너! 내 몸에 손대지 말랬지!"


언제 물티슈를 들고 왔는지 내 손을 가져가 닦고 있는 쿠로오 테츠로였음. 괘씸한 놈. 아직도 난 너를 믿지 못하겠으니 건드리지 말랬는데도 이 녀석은 서슴없이 다가왔음. 퍼스널 스페이스 모르냐고! 이런 말 어디서 배웠냐고?! 켄마가 보여주는 유튭에서 배웠다! 왜!


그렇게 내 특훈은 계속 이어졌음. 나 진짜 놀러도 가고 싶고 먹고 싶은 별미도 많고, 해야 하는 일도 많았는데 그래도 날 위해서 해주는 일이라고 겨우겨우 참아가며 내가 너네랑 어울려줬단 말이다! 이 정도 했으면 됐잖아!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어. 난 이렇게 속박적인 삶을 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고."


정말 많이 참은 거라고. 난 항상 자유롭고 평온한 삶을 사는 것이 내 궁극적인 목표이자 모토였음. 그런데 내가 모습이 변하고 난 뒤 저 세놈이 끼어들면서 엉망이 되고 있었음. 아무것도 아닌 것 처럼 보일지 몰라도 나름의 계획과 질서가 있는 고양이란 말이다.

내가 어디 갈 데가 없기도 하고, 간다고 해도 이 자식들은 내가 어딜 가든지 분명 찾아낼 것이 뻔했음. 그 숲속의 아지트를 찾아낸 것이나 우리 집으로 쳐들어온 것만 해도 이건 확실했음. 그렇다면 제발 좀 쉴 수 있게 해달라고 아니다 그냥 통보하고 잠깐의 가출 아니 외출 정도는 할 수 있잖아?

결심이 섰다. 난 필요하다.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 난 자유를 원해.



이전까지만 해도 이 근처까지도 내가 관리하는 영역이었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야외였음. 근데 이젠 저 미천, 아니 인간들이 득실거리는 안에까지 친히 들어가야 한다니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음. 일단 오긴 왔는데 저 자식들은 아직도 내가 원래 모습으로 변하면 대화가 안 통했음. 나는 이렇게 귀에 피가 나도록 공부를 하고 있는데 말이야 쟤네들은 내 쪽의 세계에 대해서 알아주지도 않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음. 진짜 괘씸하지 않음? 이건 내가 부당한 거 맞지 않음? 와... 생각해보니까 나 진짜 억울하고 속상하네. 역시 이건 타당한 권리였음. 못 알아들어도 그건 너네 잘못이지 내 잘못 아니다.



지난 번 애들과 마주친 곳으로 들어가기 위해 창을 넘었음. 그리고


"어! 여주다!"


"끼야아앙! 누구세요!"


난 당연히 내가 아는 세놈이 있을 줄 알았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지! 그리고 그 사람이 내 이름까지 알 줄은 전혀 몰랐지! 그리고 당연히 놀랄 수 밖에 없었지! 그리고 더 큰 일이 난 것은 지금 내 몸이 간질간질 하다는 것이고


"아...!"


그나마 다행인 것은 모르는 사람 뒤에 켄마가 있었단 것이고.


"조졌다."



그렇게 지겹도록 익숙한 소리가 귀에 들렸음. 펑!

이 소리는 내가 사람으로 변할 때 나는 소리였음.





먹고싶은 맛이 있는데 아직 메뉴에 없다면 직접 조리하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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